환경운동가 출신의 염태영 시장이 세 번 째 연임중인 수원시는 ‘환경수도’, ‘생태도시’, ‘레인시티’임을 자부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수원시는 타 지방정부에 앞선 환경정책을 추진해오고 있다. 그중 하나가 증가된 강우 유출로 인한 오염 부하를 최대한 자연친화적인 기법으로 관리하기 위한 ‘레인시티’ 사업이다. 빗물정원, 빗물을 이용한 사계절 노면 살수, 빗물침투화단, 투수블록, 빗물침투도랑, 빗물저금통, 빗물주유기, 나무여과상자, 투수성주차장 등 빗물 이용시설과 중수도 시설, 그린 빗물 인프라 등 물 순환하는 사업들이 시작됐다. 이후 빗물의 표면 유출량이 감소되고 빗물 침투량은 증가했다는 물수지 분석 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 창가에 녹색식물을 심어 태양광을 차단함으로써 실내온도를 3℃ 이상 낮추고 전기에너지를 절감하는 효과를 거두..
미래통합당에서 시작된 어젠다들이 뉴스를 장식하면서 제1야당이 총선 대패의 충격에서 조금씩 빠져나오는 인상이다. 진보적 어젠다를 선제적으로 내놓으면서 대중의 관심을 일깨우고 있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비대위원장)에 대해 기존 통합당 중진들이 비판을 꺼내 들고 있다. 그러나 ‘보수’를 표방했던 미래통합당(자유한국당, 새누리당 포함)을 이끌었던 사람들은 김종인의 이슈 파이팅을 비판할 게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고 논쟁을 시도하는 게 맞다. 통합당의 잠재 대권 잠룡으로 분류되는 원희룡 제주지사가 뜻밖으로 한바탕 ‘보수 타령’을 늘어놓았다. 원 지사는 9일 미래통합당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에서 “실력을 인정할 수 없는 상대한테 3연속 참패를 당하고, 변화를 주도했던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잃어버렸다”며 “보수는 우..
텔레비전 화면에서 송해를 볼 때마다 아련한 생각이 든다. 너무 오래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KBS배 쟁탈 전국노래자랑’이란 제목으로 1972년에 시작했다가 1977년 4월까지 진행했다. 1980년에 ‘전국노래자랑’으로 재탄생한 뒤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다. 송해는 1988년 5월부터 1994년 4월까지 5년 11개월 동안 맡다가 몇 개월 다른 사람이 맡던 것을 1994년 10월부터 다시 맡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뒤에 맡은 기간 만도 26년, 그 전까지 합치면 30년이 넘는 세월이다. 얼마전 그만 둔 강석, 김혜영은 각각 36년, 33년 동안 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진행자의 재능 여부를 떠나서 특정인의 전유물처럼 보인다. 비슷한 경우로는 ‘가요무대’가 있다. 1985년 11월부터 시작한 이 프로그램의 사회는 김동건 아나운서가 맡고 있다. 2대째인 1985년 11월부터 2003년 6월을 진행한 뒤 다시 2010년부터 4대째를 이어받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4대만 본다면 10년, 2대 9년까지 더하면 19년을 같은 프로그램 진행을 맡으면서 해당 프로그램의 상징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와는 달리 진행자가 바뀌면서도 장수하는 경우도 있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 ‘별이 빛나는 밤에’ 같은 프로다. 1964년 ‘라디오 서울’(RSB)에서 첫방송을 시작한 ‘밤을 잊은 그대에게’는 동양방송(TBC)을 거쳐 한국방송공사(KBS)로 넘어간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성화 아나운서가 초대 진행을 맡은 이후 37명째 진행자가 바뀌었지만 같은 타이틀로 56년을 이어 오고 있다. 1991년 프로그램 개편으로 폐지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이듬해에 같은 제목으로 다시 살아나 최장수 프로그램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별이 빛나는 밤에’는 1969년부터 시작해 오남열, 차인태, 이종환, 조영남, 이문세, 이휘재 등 27명의 진행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지난 5월부터 김이나 작사가가 27대 진행자를 이어 받았다. 역대 진행자들은 각각 다른 솜씨의 진행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했지만 진행자가 바뀌어도 프로그램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에 이어 장수 프로그램으로 통하고 있다. 어느 진행자가 특정 프로그램을 오래 맡고 있다면 나름의 개성이 있거나 방송국의 전략적 의도가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특정한 프로그램이 장수하는 것은 탓할 일이 없다. 특정한 진행자가 장수하는 것과는 다르다. 방송은 공공재적인 성격을 지닌다.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 동원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진행자가 오래될수록 해당 프로그램은 진행자와 동일시되거나 진행자가 그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본인이나 기획자가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사유화가 이루어 지는 것이다. 특정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장수하면 상대적으로 진행자의 이미지가 대중들에게 각인된다. 널리 알려질수록 친근함도 높아져 유명인이 되기 쉽다. 어느 진행자는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는가 하면 곳곳에 기념물이 세워지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 기여도가 큰 인물 중에서 그만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에서 특별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진행자는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광고를 내보내기까지 한다. 특정 프로그램에 광고를 붙이는 일은 진행자가 결정하는 일은 아니라 하더라도 프로그램 진행과 광고를 함께 듣는 기분은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유쾌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방송을 사유화하는 것은 방송의 공공성과 어울리지 않는다. 진행의 능숙함 여부와는 상관없는 문제다. 해당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능숙하다거나 그만한 진행자를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안일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진행자가 바뀌어도 프로그램은 온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밤을 잊은 그대에게’, ‘별이 빛나는 밤에’는 증명하고 있다. 세상 모든 분야에는 정년이 있고, 정년이 아니더라도 물러 나야 할 때가 있다. 공공방송이라면 더욱 그렇다. 공공재인 방송이 특정인의 노후를 지키는 방패가 되어서는 안된다.
“비 맞은 닭이 구시렁구시렁 / 되똥되똥 걸어와 후다닥 헛간 볏짚 위에 오른다 / 그리고 아주 잠깐 사이 / 눈부신 새하얀 뜨거운 알을 낳는다 / 비 맞은 닭이 구시렁구시렁 미주알께를 오물락거리며 다시 일 나간다” 이시영 시인의 「당숙모」라는 작품이다. 당숙모는 종숙모라고 부르는 5촌으로 시골에서는 흔히 ‘아지매’라 부르기도 했다. 새끼를 여러 마리 품고 있는 암탉의 사진들을 종종 보듯 여기 ‘당숙모’는 그런 암탉으로 그려져 있다. 암탉이 집밖에 나갔다가 꼬꼬댁거리며 집안에 들어오듯 밭일을 나갔다가 당숙모가 집에 들어온다. 아이들이 난장판을 벌이며 놀고 있다. “이놈 새끼들아 제발 좀 어지르지 말고 치우면서 놀아라.” 구시렁거리면서 얼른 부엌으로 들어가 따뜻한 밥을 차려 내온다. 집안에 할머니에게도 차려주고 애들도 먹고 자신도 한 술 뜨는 둥 마는 둥 다시 일을 나간다. “싸우지 말아라. 흙 장난질 치다 옷 버리지 말고…” 또 구시렁대며 밭일을 간다. ‘미주알께’를 오물락거리며. 미주알은 항문을 이르는 말이니 정말 우스꽝스럽지 아니한가. 다소 수다스럽지만 생활력이 강한 푹 퍼진 아지매의 뒷모습이 저절로 그려진다. 몸배바지를 입고 뒤똥거리며 일 나가는 모습이 그려지면서 절로 웃음을 머금게 하는 작품이다. 이런 작품들이 주는 것이 바로 해학의 미학이다. 복잡한 현대 생활을 살아가면서 생활의 윤활유 같은 역할을 문학이 해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문학에서 재미성, 더 나아가 해학성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현대시나 시조가 고(古)시가보다 못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점에서일 것이다. 고시가에서 해학적 요소는 중요한 미적 요소인 반면 현대시나 현대시조에서는 이러한 면에서 너무 진지한 쪽으로 변모해버렸다. 해학은 잘 알다시피 사회적 현상이나 현실을 우스꽝스럽게 드러내는 방법이다. 해학은 풍자와 함께 혼용되는 중요한 미학적 방법이다. 둘은 주어진 사실을 곧이곧대로 드러내지 않고 과장하거나 왜곡하거나 비꼬아서 표현하는 기법이다. 해학이 공격받는 대상에 대한 동정으로 인하여 읽는 이에게 그런 상황을 공감하게 하여 우호적인 시각을 갖게 하는 특징이 있는 반면, 이와 비슷하게 쓰이는 풍자는 대상에 대해 부정적 비판적 태도를 취하므로 아이러니(Irony)와 비슷하다. 그러나 풍자는 어떤 면에서 아이러니보다도 더 날카롭고 노골적인 공격 의도를 지닌다. 예를 들어 『흥부전』에서 ‘흥부’는 해학적으로 표현되어 동정심을 유발시키는 대상이라면, ‘놀부’는 노골적인 공격의 풍자 대상이 된다. 소설에서는 김유정이 「봄봄」, 「동백꽃」, 「만무방」 등의 작품을 통하여 고전문학 속에 나타나는 해학성을 계승하면서 당대 서민들의 현실을 형상화하여 웃음으로 비참한 현실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을 주기는 했지만 시나 시조에서 이러한 전통계승은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해학적인 시나 시조들이 많이 창작되어 어려울수록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면 좋겠다. 모두가 힘들게 넘어가고 있는 2020년 여름 「당숙모」같은 친근한 웃음이 그리워진다.
미국이 난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상황에서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까지 겹치면서 심각한 사회혼란을 겪고 있다. 방송에서는 상점을 약탈하는 시위대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시위대의 자정 노력에 의해 약탈 행위가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이다. 문제는 이러한 약탈자가 대부분 흑인 중심의 유색인종이라는 것이고, 여기에는 역사적·사회적 맥락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보였던 미국이라는 국가의 반인권적이고 비윤리적인 인종차별주의가 2020년에 다시 나타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인종차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노예제 폐지를 두고 격돌했던 남북전쟁 이후에 인종차별이 더 공고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역사적인 원인이 있었다. 1861년 에이브러햄 링컨이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에 취임하자 남부의 7개 주는 미연방에서 탈퇴하였지만, 테네시주의 앤드류 존슨은 링컨을 지지했다. 이러한 인연으로 남북전쟁 중이던 1864년 링컨이 재선에 도전하였고 민주당의 앤드류 존슨을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발탁해 선거에서 승리하게 된다. 그러나 1865년 4월 링컨이 존 윌크스 부스에게 저격을 당해 사망하였고, 앤드류 존슨이 제17대 대통령에 취임하게 된다. 남부 출신의 앤드류 존슨은 남부 주들이 해방 노예의 권리를 제한하는 주(州) 법안을 만들어도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는데, 이는 노예해방 전쟁이었던 남북전쟁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남부 지역이 오랫동안 흑인에 대한 차별이 상존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영화 ‘그린북’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다. 이 영화는 천재 피아니스트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 분) 박사의 운전기사로 고용된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 분)가 미국 남부 지역으로 콘서트투어를 떠나면서 겪게 되는 차별과 혐오를 그리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흑인이 미국 남부를 여행할 때 출입 가능한 레스토랑과 숙박업소를 알려주는 책이다. 현실에서도 ‘흑인’ 아버지에서 ‘흑인’ 아들로 대물림 되었던 책! ‘그린북’은 미국의 인종차별 정책이 일상화되어 있었다는 증거물이었으며, 과거의 유물쯤으로 치부되었던 그 책의 음울함은 아직도 미국사회에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미국의 다문화주의를 표현할 때 ‘용광로(Melting Pot)’ 모델이라고 한다. 거대한 사회인 용광로에 다양한 민족을 ‘미국’이라는 가치로 녹여낸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미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백인 주류 문화를 중심으로 소수 민족과 유색인종을 대상화하여 통합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국 주류 사회는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로 대변된다. 이 용어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수 디그비 발트첼(E. Digby Baltzell)이 그의 책(The Protestant Establishment: Aristocracy & Caste in America. 1964년)에서 언급하면서 대중화되었는데, 사회학적, 문화적, 민족지칭어라고 할 수 있다. WASP는 백인이면서 앵글로-색슨 민족이며 개신교도를 일컫는데, 미국의 다문화정책은 개신교 신자인 백인의 정체성을 근간으로 ‘위대한 미국’의 건설만이 목표였고 이민족이나 흑인의 다양성은 존중받지 못하였다. 남북전쟁 이후에도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을 위한 정책은 북부지역에서 조차 보잘 것 없었다. 피츠버그에서는 백인과 흑인학생이 함께 교육받지 못했고 로드 아일앤드에서는 백인과 흑인의 결혼이 금지되었었다. 이와 같은 차별과 배제의 역사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교육 받을 권리에서 멀어져 있다. 2019년 미국의 4학년, 8학년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전국학업성취평가(NAEP)를 보면 흑인 및 히스패닉 계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역사적으로 지속되면서 흑인들은 그들의 정체성이 백인 주류사회와는 다른 ‘터그라이프(Thug life)’라고 생각한다. 터그라이프는 폭력을 일삼는, 쿨(cool)한, 얽매이지 않는 등의 의미로 해석 할 수 있지만 사실은 백인 주류 사회를 향한 저항이자 다른 사람의 눈치 따위는 보지 않으며 스스로의 삶을 세상에 내던져버린 막장의 삶이기도 하다. 2020년 오늘의 미국사회는 기로에 서 있다.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청산하고 오욕의 역사를 바로잡을 것인가 아니면 백인 중심의 사회를 고집하면서 반복되는 사회혼란을 감내할 것인가. 과연 트럼프의 트위터는 어떤 메시지를 준비하고 있을까?
1987년 서울시청앞 광장, 광화문, 종로, 남대문시장, 명동을 가득 메운 함성으로 전두환 독재정권의 ‘6·29 항복선언’을 받아낸 6·10민주항쟁 33주년 기념식이 (구)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열렸다. 6·10민주항쟁은 “탁치니까, 억하고 죽었다”는 공안경찰의 거짓수사 발표로 우리들 뇌리에 남아있는 부산 출신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계기로 결성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본부가 강력한 반독재 저항을 전개하면서 시작됐다. 광주출신 연세대생 이한열군 최루탄직격 사망사건은 국민적 저항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직선제 개헌’을 쟁취하게 되었고, 1979년 12·12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정권의 장기집권을 저지한 범국민적 민주화운동으로 자리매김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길에 위치한 경찰청 산하의 대공수사기관으로 5층에 취조와 고문이 이뤄졌던 15개 조사실이 있었고, 박종철 열사는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으로 509호에서 사망했다. 경찰청 인권센터를 거쳐 문재인 정부 들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로 관리이관되어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이름 지어졌고, 2022년 정식 개관이 예정되어 있다. 전 세계인이 함께 민주주의를 학습하고 감동을 느낄 민주주의의 기념비적 장소로 탄생하길 바란다. 살아남은 우리는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다. 이제는 열사들의 희생으로 다져진 제도적 민주주의를 주춧돌로 삼아 민주주의의 일상화, 생활 속 민주주의로 뿌리를 내리고 꽃피워나가야 한다. 이 길이 목숨을 다해 민주주의를 만든 열사들의 헌신에 답하는 길이다. 이한열 열사를 광주망월동 묘지로 떠나보내는 날 연세대학교 영결식장에서 모두 함께 불렀던 노래가 입안에 맴돈다. “한밤의 꿈은 아니리 오랜 고통 다한 후에, 내형제 빛나는 두 눈에 뜨거운 눈물들…(중략)…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 피맺힌 그 기다림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 /심흥식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