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통 삶의 단계를 구별할 때 유년기(0~20세) 성년기(20~60세) 노년기(60세 이상)으로 생각해 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생의 단계 기준을 간단하게 보더라도 노년기는 인생에서 가장 긴 구간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백세시대에는 노년기도 이제는 젊은 노인(60대) 노인(70대) 고령노인(80대) 초 고령노인(90대 이상)으로 세분화해야 한다. 이제는 백세시대라는 현실을 감안할 때 길어진 노년기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문제를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 한다. 이는 결코 장년의 문제만이 아닌 중년의 문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중?장년들은 백세시대의 사전 설계와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나이가 어리고 생각이 짧을수록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삶이 최고라고 여기는 법이며, 나이가 들고 지혜가 자랄수록 정신적인 삶을 최고로 여기는 법이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는 ‘나이 들어 보인다. 늙어 보인다’가 욕이고 ‘어려 보인다. 젊어 보인다’가 칭찬의 말이다. 왜 우리는 ‘나이 들어 보인다. 늙어 보인다’는 말에 불쾌할까? 젊음이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에서 ‘나이 들어 보인다’라든가 ‘늙어 보인다’는 말은 그만큼 가치가 없거나, 가치가 떨어졌다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젊고 아름다운 것’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 사회가 젊음과 아름다움을 돈으로 환산하는 사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보다 젊고 외적으로 더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강박적으로 ‘나이 들어감, 늙어 감’은 재난(?)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거나 늙어간다’는 것은 엄연한 자연의 이치이자 섭리인 누구에게나 닥치는 일이다. 그렇다면 지혜롭게 나이 들기 위한 지적여정은 무엇들이 있는가? 첫째, 삶이라는 모험의 동반자인 친구와의 우정은 누구와 어떻게 나눌 것인가? 둘째, 주름살이 매력적일 수는 없다. 자신의 몸을 돌본다는 것, 나이 들어가는 몸을 어떻게 대하고 가꿀 것인가? 셋째, 지난날을 돌아보며 과거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후회대신 어떻게 만족한 삶을 살 것인가? 넷째, 통제권을 상실할 준비와 유산분배와 상속, 그리고 돌봄 비용을 어떻게 마련하고 지불할 것인가? 다섯째, 강제 은퇴는 반대하더라도 자발적 은퇴 시기는 언제로 할 것인가? 여섯째, 장년, 노년이 되어도 사랑은 어떻게 나눌 것인가? 여섯째, 인간의 역량이라는 관점에서 본 불평등과 빈곤은 어떻게 대처하고 해결해야 할 것인가? 일곱째, 나눔의 역설과 나름의 해결책으로 무엇을 남길 것인가? 여덟째, 중병이 들었을 때 어느 선까지 의료도움과 기계적 도움을 받을 것인가? 아홉째 나잇대 별로 신변정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떻게 의연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등이다.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는다’는 말이 있다. 젊을 때는 잊고 있지만 사람은 모두 다 늙으며, 언젠가는 늙음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하는 시기가 오는 것이다. 프랭클린은 “20세에 소중한 것은 의지, 30세에는 기지, 40세는 판단이다”고 말했고 쇼펜하우어는 “인생 처음 40년은 본문이고, 나머지는 주석이다”고 말했으며 오슬러는 “스물다섯까지 배우고 마흔까지 연구하고 예순까지 성취하라”고 했다. 그렇다면 칠십부터는 어떤 삶을 살아야할지 나름대로의 설계와 준비의 지혜가 필요하다. 나이 들어가는 법을 알고 준비하는 것은 ‘지혜의 걸작’이며 ‘위대한 삶의 예술’ 중 가장 어려운 장(章)에 속한다. 여기서 루소의 명언 하나를 더 인용하고자 한다. “가장 장수한 사람이란 가장 많은 세월을 살아온 사람이 아닌 가장 뜻 깊은 인생을 체험한 사람인 것이다.” 끝으로 한권의 책을 추천하고자 한다. 철학자이자 수필가이신 김형석교수(1920년생으로 현재 100세)의 ‘백년을 살아보니’를 읽을 것을 권한다. 전대미문의 백세시대를 맞아 우리는 설레고 기쁘기보다는 불안하고 허둥대기 바쁘다. 남은 인생을 어떤 인생관과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이 행복인가? ‘겪어봐야 깨닫는다’고 한다. 먼저 백세인생을 사신 분의 경험과 지혜를 빌려 앞으로 자신의 삶이 조금도 명확해 지고 향기로워 지도록 주도면밀하게 사전 준비해 두고, 그러고 나서 맞이해야 하는 것이다.
진로 및 대학교 학과 선택과 관련해 학생들에게 많이 듣는 질문이 있다. 경제학과 경영학의 차이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이다. 이 같은 질문을 받을 때면 필자가 고등학생이었을 때가 떠오른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그 당시 상경계열 학과를 지망하면서도 나는 경제학과 경영학의 차이를 잘 알지 못했다. 지금이야 경영학 전공자로서 분명한 차이가 보이지만 잘 모르는 학생들에게는 외관상 경영학과 경제학은 큰 차이가 없어 보이고, 같은 상경계열로써 비슷할 것이라 오인하기 쉽다. 우선, 경제학과 경영학을 묶어서 상경계라고 부르고 비슷하게 보는 경향은 왜 생긴 것일까. 이는 두 전공 모두 ‘경제’라는 것에서 파생된 학문이기 때문이다. 경제는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분배·소비하는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경제학이 경제 주체 전반에 관심을 두는 영역이라면, 그 경제 주체 중 하나인 기업이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경영학의 관심이다. 따라서 경영학의 많은 부분들이 경제학의 학문적 기초를 바탕으로 발전하였다. 때문에 경제학과 경영학을 칼로 무 자르듯이 딱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둘의 정확한 차이는 무엇일까. 경제학과 경영학은 분석 대상과 방법에서 차이점을 나타낸다. 먼저 경제학은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그 원리를 탐구한다. 따라서 우리가 살면서 매일하고 있는 경제활동을 연구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려는 학문이다. 또한 경제학은 한 국가의 경제 전체를 분석 대상으로 한다. 구체적으로 나라 전체의 경제, 국가와 국가 사이의 경제, 국민소득에 대해 연구하는 거시경제학과 기업과 가계 사이의 경제를 연구하는 미시경제학으로 구분할 수 있다. 거시경제학은 경제 규모가 확대되었는지 축소됐는지, 지금까지의 추이는 어떠했는지 등을 분석한다. 예를 들면, 실업률, 국내총생산(GDP), 인플레이션, 통화정책, 기준금리 등이 이 분야에서 다루는 주제다. 미시경제학은 국가 전체보다는 경제 주체 사이의 선택 문제와 가격 결정 원리를 연구 대상으로 한다. 또한 미시경제학은 가계, 기업, 정부의 경제활동 등 경제주체의 시장에 초점을 맞춘다. 예를 들면, 수요의 가격 탄력성, 정보 비대칭성, 게임이론 등이 이 분야에 속한다. 반면 경영학은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연구한다. 보통 경영학에서 말하는 조직은 기업이고, 목표는 이윤창출이다. 자본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조직유형이 기업이기 때문이다. 즉, 기업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운영하는 방법을 찾는 학문이다. 따라서 경영학은 철저하게 기업의 경제 행위를 연구 대상으로 한다. 한마디로 기업의 운영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루는 학문이다. 그렇다 보니 기업이 어떻게 하면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 잘 운영될 수 있는지 연구하는 게 주요한 관심사이다. 기업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할 일이 많다. 일할 직원을 뽑고 월급을 지급한다. 기업이 만든 상품을 많이 팔기 위해 마케팅도 잘 해야 하고, 회계장부를 작성하고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소비자들의 트렌드도 정확히 파악해야 하며, 손실을 내지 않고 이익을 내기위해 손익계산도 잘하고 통계를 내야 할 것들도 많다. 그래서 인사·조직관리, 마케팅, 재무관리, 회계, 생산운영관리, 경영정보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연구해야 한다. 이것들을 통틀어서 경영학이라고 하는 것이다. 경영학은 다양한 학문을 복합적으로 다루는 학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적인 기업의 형태가 등장한 이래로, 기업이 진행하는 기본적인 경제 활동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경제학의 개념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렇게 두 학문은 서로 다르면서도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경제학이 좀 더 사회과학에 가까운 이론 중심의 학문이라면, 경영학은 실용적인 기술에 가까운 응용학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경영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경제학을 알아야 하고, 경제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시장 주체인 기업을 알기 위해 경영학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경제관념과 경영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상호 간의 균형적인 이해와 사고가 반드시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이다.
경기도의회 이창균 의원(더불어민주당·남양주5)이 경기도의회 본회의에서 밝힌 입장에 공감하는 도민들이 많을 것이다. 이 의원은 13일 5분 자유발언을 통해 ‘훼손지 정비사업’이 실효성이 전혀 없다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훼손지 정비사업은 그린벨트에서 동·식물 관련시설로 허가를 얻은 후 창고 등 다른 용도로 사용 중인 토지를 일정한 조건을 충족할 경우 물류창고로 용도변경을 해 주는 사업이다. 이행 강제금 부과를 유예하는 대신 훼손된 토지 중 최소 30% 이상을 공원과 녹지로 조성해 지자체에 기부 채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올해 12월까지 한시적으로 유효하다. 하지만 자체부지로 기부채납하는 방식은 토지소유주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이처럼 복잡한 추진절차와 환경여건에 전혀 맞지 않는 규정 등으로 도내에서 훼손지 정비사업..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30원(1.5%) 오른 시급 기준 8천720원으로 의결했다. 이번에 결정된 최저임금 인상률 1.5%는 최저임금 제도를 처음 시행한 1988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결정된 인상률에 대해서 노동자 측과 사용자 측 모두가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모든 노동자에게 일률 적용하는 방식의 최저임금제도 자체가 모순투성이이고, 결정 구조 또한 이대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현재의 최저임금제도는 업종이나 기업의 규모, 지역에 구분 없이 일괄적용되도록 하고 있다. 말하자면 체급이 다르고 종목이 다른 모든 선수를 한꺼번에 운동장에 집어넣고 경기를 시키는 불공정한 게임을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일본·프랑스·영국 등 외국의 경우, 이런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최저임금의 업종별·지역별 차등화..
지난 6월에 보여준 북한의 위기 고조 행태와 돌연한 중단 등 변칙적 행동과 코로나 사태 장기화는 정보예측의 중요성을 더해주고 있다. 정보를 한마디로 정의하라고 하면 단호히 강조한다. “정보는 예측”이라고. 복잡성과 불확실성으로 상징되는 현대사회는 이제 ‘예측하기 어려운 것을 예측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미래에 대한 예측 훈련과 정확도를 높이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개인적으론 파산을, 국가적으론 국가위기 상황까지 불러 오게 된다. 대영제국 시절 웰링턴 공작은 “전쟁이나 인생이란 비즈니스는 언덕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예측하는 일”이라고 설파했다. 김정은 정권이 지난달에 벌였던 ‘한반도 위기고조 쇼’에 대해, 국가정보기관은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하고 판단했는지 냉철하게 성찰해봐야 한다. 일각의 지적처럼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실에 대한 징후가 있었음에도 이를 경시하고 문 대통령이 ‘6·15 유화연설’을 강행했다면 심히 우려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보를 정치권력자의 입맛에만 맞추는 행위, 이른바 ‘정보의 정치화’ 행태는 정보기관의 예측 능력을 무력화시킬 뿐 아니라 안보적 판단에 심대한 장애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이 핵능력 고도화를 분명히 한 시점에서 북핵문제 해결의 선봉에 서야할 국정원장이 교체된 만큼 미래의 핵 현실을 전망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예측실패의 소지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2030년의 핵세계는 3가지 시나리오가 예상된다. 첫 번째는 2018년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핵이 정당한 무기로 자리잡아 핵보유국이 늘고 나아가 핵전쟁 직전까지 가는 경우이다. 세 번째는 핵전쟁 후과를 목격한 뒤 ‘핵 없는 세상(Global Zero)’운동이 결실을 맺는 경우이다. 첫 번째 시나리오의 경우, 핵전쟁 억지 논리, 즉 상호확증 파괴논리가 작동하고 향상된 핵 3종 세트로 인해 안정국면을 유지하는 것이다. 미국은 핵무력의 3대축인 ICBM· SLBM·전폭기 분야에서 우위를 유지한다. 미국은 핵전력의 중요한 축인 SLBM을 정교화하고 동시에 잠수함 14척을 스텔스 기능이 강화된 오하이오급으로 교체한다. ICBM도 구형인 400 Minuteman Ⅲ를 정확도가 높아진 신형으로 교체한다. 러시아 역시 핵전략 3종 세트에 대한 정교화작업을 계속해 나간다. Borei급 잠수함을 10척을 건조한 뒤 다탄두 탄도미사일을 적재할 정도로 전력을 증강한다. ‘수중 핵드론’도 개발하여 미국의 해양전력 무력화를 노린다. 북한은 핵프로그램과 제재해제를 교환하되, 수중 핵드론을 은밀히 개발한다. 두 번째는 핵보유국이 대폭 늘어 핵다국체제로 가고, 핵전쟁 일보직전까지 가는 시나리오다. 핵타부가 무너지고 핵무기는 정당화되고 핵확산은 가속화된다. NPT 탈퇴국가가 늘고 한국, 타이완, 일본 등도 북한의 핵능력을 따라잡으려 핵개발을 본격화한다. 재래식 전쟁과 핵전쟁과의 구별도 희미해지고, 국제사회는 핵전쟁을 막기보다 ‘재앙적 핵전쟁’만 막는 쪽으로 갈 것이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핵 없는 지구가 실현되지만, 미국과 러시아 등이 한 차례 핵전쟁을 치루고 나서야 이뤄지는 세상이다. 핵전쟁의 참상을 겪고 난 뒤 유엔의 깃발 아래 모든 나라가 핵무장 해제를 약속하는 협정을 맺어 핵홀로코스트의 망령이 사라진다. 결론적으로 2030년 핵세계는 첫 번째 시나리오가 될 것이지만,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곳은 북한이다. 김정은 정권의 핵능력은 더 고도화·정교화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핵무기는 사용할 수 없는 무기’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특정 지역을 겨냥한 ‘저위력 핵폭탄’ 사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기에 국정원의 예측노력은 더없이 요구된다. 수장이 교체된 국정원은 ‘예측 실패를 반복하는 정보기관은 문 닫아야 한다’는 각오 아래 망전필위(忘戰必危)의 자세로 일해야 할 것이다.
완벽한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코로나 K방역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4·15총선을 압도적으로 승리한 여당. 축제 분위기 속에 샴페인을 터트리기 무섭게 몰아친 찬 서리. 북한은 개성공단에 위치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탄으로 폭파하고 금방이라도 전쟁을 일으킬 것처럼 도발해 왔고,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문제는 공정성시비를 불러일으키며 민심을 들끓게 했다. 설상가상으로 아파트값은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아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이대로는 큰일이다 싶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청와대로 소환했다. 그런데 어인일일까. 문 대통령은 부동산 정책을 엉망으로 끌고 온 김 장관을 문책하기는커녕 또 한번 신임하고 지지를 보냈다. 22번의 정책 실패를 거듭해 온 장관에게 너무 관대한 것은 아..
그동안 공동주택 경비 노동자에 대한 일부 입주민의 심각한 ‘갑질’ 행위가 잇따라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이에 경기도는 경기도 공동주택관리규약 준칙 개정안을 최종 결정했다고 14일 발표했다. 경기도 공동주택관리규약 준칙은 2000년 경기도가 만든 공동주택 관리 또는 사용 기준 안으로써 각 아파트는 이 관리규약 준칙을 참조해 자체 관리규약을 만들고 있다. 경기도의 이번 개정안은 경비원, 미화원 등 공동주택 관리노동자에 대한 폭언·폭행 등 갑질 행위 금지를 공동주택 관리규약에 명시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안 제14조 업무방해 금지 등에 ‘관리주체, 입주자대표회의, 입주자 등은 공동주택 내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경비원, 미화원, 관리사무소 직원 등 근로자에게 폭언, 폭행,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
부동산 정책 실패로 민심의 질타를 받는 중인 정부·여당이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습이다. 잇달아 나오는 두더지 잡기식 정책들을 빗대어 ‘사지도, 팔지도, 살지도 말라더니 이젠 물려주지도 말라는 것이냐’는 볼멘소리가 불거진다. 부동산 정책이 온통 ‘강남’만을 조급하게 시비하는 쪽으로 집중되는 현상이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강남의 장점을 여러 곳으로 분산해 다수의 명품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는 역발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귀가 솔깃해진다. 정부는 7·10 대책을 통해 다주택자와 법인에 대한 취득세율을 현행 주택가격의 1~4%에서 8~12%로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내년 6월부터는 2년 미만 단기 양도차익에 대한 양도소득세율이 현행 40~42%에서 60~70%로 높아지고, 다주택자에 대한 10~20%의 양도세 중과세율도 20~30%로 올라..
“그게, 솔직히 모르는 것도 많고 도움 요청드릴 일이 많다 보니 괜히 폐가 될 것 같아서요.” 얼마 전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조카가 필자에게 경험담을 얘기한다. 줄곧 회계업무만 보다가 단독으로 기획일이 맡겨지니 뭐가 뭔지 몰라 힘들었지만 어떻게든 혼자 해보려 끙끙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하고 있는 직장과 사회의 현장에서의 변화와 혁신은 실행력을 담보하지만, 실행력은 현장에서의 질문과 요청에 대한 즉각적인 응답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즉, 모르는 것, 궁금한 것을 묻고 답하면서 함께 알아가고 그것을 실행시켜가고, 그것이 곧 변화와 혁신을 이끄는 힘이 되곤 한다. 그럼에도 많은 직장인들이 동료들과 선배들에게 질문이나 요청하는 것을 여전히 어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큼은 스스로가 해내는 주도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일부의 사람들은 주도적이라는 의미를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한다는 것으로 생각하는 오해를 하는 것일까.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것과 어려움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기억하자. 진정 부끄러운 것은 알지 못하고 해내지 못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질문하지 않고 알려달라고 도와달라고 요청하지 않는 행위일 수 있다.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하고 궁금할 때 질문을 잘하는 사람들은 주어진 과제나 문제에 대해 어떻게든 해결을 하고자 하는 ‘동기’가 강한 사람들로서 겸손함이 몸에 배어 있다는 점이다.현대 경영학의 구루인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는 과거 20세기까지의 문맹인은 ‘글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21세기 문맹인은 ‘더 이상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이가 적건 많건 상관없이 겸손하게 누구에게 배우겠다는 자세로 ‘요청하고 질문하자.’ 여기에 해답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질문과 요청을 잘할 수 있을까? 첫째, 자신이 그간 어떤 노력을 했는지 설명해줘야 한다. 무조건 도와달라거나 질문을 하지 말고, 내가 그간 어떤 노력으로 어디까지 해 봤는지를 정확히 진심을 담아 설명해 줘야 한다. 상대의 입장에서는 내가 도움을 주었을 때 얼마나 개선일 될지 확신을 갖기 어렵다. 그럴 때 이렇게 자세한 설명을 해주면, 구체적인 도움의 범위를 가늠할 수 있다. 둘째, 남과는 차별화되게 요청해야 한다. 건성으로 조언을 요청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행동은 성의가 없어 보이거나,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주기가 어렵게 된다. 상대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배우려는 태도를 보여준다면 상대는 더욱 의욕을 불태우면서 도움을 주게 될 것이다. 셋째, 보답 또는 감사를 표시하고 피드백을 제공해야 한다. 도움을 받고 나서 바로 연락을 끊어버리는 행위는 상대를 힘 빠지게 하고 배신감마저 들게 하는 극악한 방법이다. 자신의 시간을 들여 도움을 준 행위는 무척이나 감사를 표해야 할 사안이다. 예를 들어 부담을 느끼지 않을 과일 몇 개나 절대 과하지 않을 점심 식사 대접을 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또한 무엇보다 더 중요한 일은 그 결과 내가 도움이 되어 문제를 해결한 것에 대한 피드백을 반드시 제공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피드백은 상대로 하여금 보람을 갖게 하는 것으로써 다음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쉽게 도움을 주었던 사람에게 다시 접근할 수 있는 촉매제가 된다. 넷째, 가족과 친인척에게도 요청하라. 우리는 가족과 친인척이 혈연으로 엮어져 있어 가깝다고 느끼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보기 드물다. 모르는 것을 물어보고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상사나 동료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주변 누구에게도 심지어 후배나 가족, 친인척에게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주변 누구와도 소통하며 대화할 때 그게 진정한 소통이다.
장마철이다.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나니 비 오는 날 창밖 풍경도 그전보다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떨어지는 빗방울에 도로가 저벅저벅 잠기면 세상은 물그림자를 머금은 채 매끈해진다. 지금으로부터 약 120년 전 카미유 피사로가 그렸던 풍경화의 감성이 절로 떠오른다. 당시 피사로는 파리의 숙소에 머물며 창밖에서 바라본 거리와 광장의 풍경을 그리고 있었다. 시력이 급속도로 약화되어 실내에서 요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완성된 작품들이 차분하고 멜랑꼴리한 분위기를 머금고 있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리라. 슬기롭지만 어쩔 수 없는 집콕 생활을 해야 하는 요즘 우리들의 사정에도 잘 들어맞는 작품들이다. 오페라 거리, 몽마르트 언덕, 튈르리 광장 등의 풍경은 시간대별로 그리고 계절별로 각기 다른 모습을 띠고 있다. 작품에 펼쳐지는 시간과 계절의 변화가 어찌나 섬세하고 탁월한지 감성 드라마를 감상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중에서도 1898년에 완성된 ‘비 오는 날의 오페라 거리’는 안개 낀 하늘과 흠뻑 젖은 도로의 표현이 일품이다. 비 오는 날 차분한 감성에 흠뻑 빠지고 싶다면 이 작품을 찾아서 감상해보길 추천한다. 하지만 피사로가 감성적인 표현을 추구한 화가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는 그림을 사실적으로 그리려고 노력했던 화가이다. 사실적인 표현 속에서 감성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것이지, 화가의 감성이 질펀하게 펼쳐진 작품이 아니다. 화가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충실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작품은 따뜻한 감성을 전한다. 이는 피사로의 작품이 지닌 참맛이다. 이는 인상주의자로서 한결같았던 그의 태도와도 관련이 있다. 그는 정석에 가까운 인상주의 화풍을 끝까지 고수했던 최후의 인상주의자이기 때문이다. 피사로는 인상주의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한때 인상주의 안에서 활동했던 밀레는 좀 더 자유분방한 터치와 색감을 구사하기 시작했고 세잔은 구성에 더 치중하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다. 피사로는 동료와 후배 화가들이 개성을 발굴해가는 와중에 충실하게 가장 인상주의다운 화풍을 고수했다. 피사로의 파리 풍경화에서 포착할 수 있는 또 한 가지 매력은 그날의 기후에 따라 다른 기운과 움직임을 지니고 있는 군중들의 모습이 풍경화에 담겨있다는 것이다. 피사로가 먼 거리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화면 속 사람들은 그저 크고 작은 점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다. 한 저명한 평론가는 피사로의 작품을 보고 화가 나서 “만약 나도 이 거리를 걷고 있다면 나도 이렇게 보이는가?”라고 질문했다 한다. 희한하게도 그 점들은 눈 오는 거리 사람들의 조심조심한 발걸음, 새벽 동이 틀 무렵 분주한 이들의 감정을 한껏 담고 있다. 그리고 대중들이 띠고 있는 시시각각의 활기는 풍경화 전체와 조화를 이룬다. 피사로는 실내에서 요양을 하고 있는 처지였지만 분명 사람들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하고 있었을 것이다. 따뜻한 인품의 소유자였던 그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사람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전에 완성했던 풍경화에는 노동자, 농민, 도시인이 자주 등장하곤 했다. 현재 예술의전당에서 진행 중인 ‘모네에서 세잔까지’전에서는 피사로의 인물 스케치와 풍경화가 여러 점 전시되고 있으니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 피사로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최근 도시의 곳곳에서 동네와 거리 풍경을 다루는 프로젝트들을 주변에서 많이 접할 수 있다. 특히 사진이나 영상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피사로의 작품을 자주 떠올리게 된다. 사진과 영상 역시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담고 있으면서도 동네와 작가의 감성을 우회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서울 성북구 종암로에 위치한 문화공간 이육사의 ‘아는 동네’전을 다녀왔다.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인해 대중에게 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 전시다. 스톤김 작가는 섬세하고 예리한 시선으로 동네의 구석구석을 사진으로 담았으며, 이현철 작가는 동네를 거니는 이 특유의 시선을 카메라 영상에 담았다. 거리를 걷듯 편안하게 관객들을 만나야 할 작품들이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에, 작품에는 안타까운 심정이 한 겹 더 포개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