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4 (화)

  • 맑음동두천 9.6℃
  • 맑음강릉 19.0℃
  • 맑음서울 13.2℃
  • 맑음대전 10.6℃
  • 맑음대구 11.0℃
  • 맑음울산 9.6℃
  • 맑음광주 12.1℃
  • 맑음부산 13.5℃
  • 맑음고창 8.6℃
  • 맑음제주 13.9℃
  • 맑음강화 10.2℃
  • 맑음보은 7.5℃
  • 맑음금산 7.8℃
  • 맑음강진군 9.3℃
  • 맑음경주시 7.9℃
  • 맑음거제 10.0℃
기상청 제공

[월드뮤직] ‘1033명의 아리랑, 돈데 보이’

  • 김여수
  • 등록 2020.08.20 06:37:45
  • 인천 1면

 

막이 내렸다. 일행만 아니었으면 객석에 혼자 남아 조명 꺼진 무대를 보며 꿈같이 지난 한 시간 반을 음미하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뒷자리에서 들려오는 소리. ‘그런데 왜 연극 제목이 돈데 보이래?’

 

지난 16일을 마지막으로 서울 왕십리의 소월 아트홀에서 닷새간 올린 연극 ‘돈데 보이(Donde Voy)’이야기다. 젊은층에게는 낯설겠지만 ‘돈데 보이’는 20년 전,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배반의 장미’ 삽입곡으로 소개돼 당시 불황에도 10만장 넘는 음반이 팔려 화제가 된 노래다.

 

스페인어를 모르니 잔잔한 기타 선율에 맞춘 애절한 목소리가 딱 ‘님아 나를 버리고 떠나지 마오’의 느낌이라 지레 사랑타령으로 생각했고 노래의 히트로 양산된 경박한 유머들에 웃기도 했다. 남자친구에게 밥값 뒤집어씌울 때 쓴다는 ‘돈 대! 보이’. 뭐 이런 식이다.

 

뒷날 노래의 유래와 뜻을 알게 된 뒤 그 전과(?)에 화끈거렸다. 돈데 보이를 부른 미국가수 티시 이노호사(Tish Hinojosa)는 이름과 외모에서 짐작되듯 멕시코 이주민의 딸이다. 돈데 보이는 우리 말로 ‘어디로 가야 할까요’ 정도의 뜻이고 가사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미국 국경 넘는 멕시코인들의 공포와 밀입국자로서 살아가는 외로움’에 대한 내용이다. 잠깐 들여다보자

 

희미한 새벽, 달려가는 그림자/ 붉은 노을 저 하늘 나래/ 태양이여, 부디 나를 비추지 말아줘/ 국경의 냉혹한 밤/ 가슴 속에 느껴지는 이 고통은/ 쓰라린 사랑의 상처/ 당신의 품이 그리워/ 당신의 키스와 열정이/ 어디로 어디로 난 어디로 가야하나/ 사막을 헤치며 도망자처럼/ 어디로 가야 하나

 

연극 ‘돈데 보이’는 돈 벌기 위해 미국 국경 넘은 멕시코인들처럼, 백년 전인 1905년 멕시코로 떠났던 조선인 1033명의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1905년이 어떤 때인가. 제국주의 열강의 혓바닥이 조선을 향해 널름거리고 일본의 식민지 야욕이 을사늑약으로 본색을 드러내던 때였다. 당시 일본은 농지를 뺏기 위해 소위 ‘토지조사사업’을 실시, 소작농들을 날품팔이로, 걸인들로 전락시켰다.

 

굶주림에 시달리던 조선인 1033명은 ‘세상 반대편 땅 멕시코라는 땅에 가면 삽으로 돈을 푼다’는 일본인 거간꾼 말에 속아 4년 계약으로 이민선에 오른다. 그러나 한 달간의 고된 항해 끝에 도착한 멕시코 에네켄 농장에서 그들을 기다린 것은 조국에서도 겪지 못한 노예의 삶이었다.

 

뙤약볕 아래에서의 종일 노동, 할당량을 재촉하며 내리치던 가죽채찍, 아내는 물론 자식까지 끌어들인 가족노동 등을 겪으며 4년 계약도 마치기 전 도망가다가 병 들어서, 맞아서, 죽어나갔다. 살아남은 이들에게도 약속한 품삯은 주어지지 않았고 만신창이 돼 귀국길을 찾은 그들에게 전해진 건 고국이 식민지가 돼 나라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비보였다.

결국 멕시코와 쿠바 등 남미 이곳저곳 떠돌이 신세가 된 그들은 그 와중에도 나라를 되찾겠다고 독립자금을 모아 보내고, 한글학교를 세워 자식이 자신의 나라를 잊지 않게 했다.

 

연극의 마지막 대목에서 눈물을 쏟은 게 나뿐일까. “금의환향은 아니더라도 부모, 형제 사는 고국 땅을 다시 밟는 게 소원이었을 그들. 그러나 1033명 중 돌아온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멕시코 이민자의 애환 담은 노래 돈데 보이가 내 나라 1033명의 멕시코 아리랑으로 화한 순간이기도 했다.

 

돈데 보이는 티시 이노호사의 젊은 목소리도 권하지만, 대만가수 치유(Chyi Yu)가 영화 ‘말레나’ 배경음악으로 부른 영어가사의 눈물(Tears)도 괜찮다.

 

(인터넷창에서 www.월드뮤직.com을 치면 소개된 음악을 유튜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