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신문 = 황기홍 화백 ]
팔란티어의 창업주 피터 틸의 <제로 투 원>(한국경제신문, 2014)에 나오는 내용이다: 사람을 채용하려고 면접을 볼 때 내가 자주 하는 질문이 하나 있다. “정말 중요한 진실인데 남들이 당신한테 동의해주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13면) 좋은 대답은 다음과 같은 형식을 취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X라고 믿지만, 진실은 정반대예요.”(14면) 흔히들 믿고 있는 잘못된 믿음을 찾아낼 수 있다면 반대로 그 뒤에 숨겨진, 통념과는 다른 진실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21면). 잘못된 믿음인지는 알 수 없지만 흔히들 받아들이고 있는 믿음이 있다. 인공지능이 모든 전문직을 대체할 것이고, 법률가들도 대체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벌써부터 이러한 믿음에 따라 변호사 시장의 신규 채용이 줄어들고 있다는 뉴스가 나온다. 국내 10대 로펌의 신입 변호사 채용 인원이 작년에 비해 23.3% 감소했는데, AI 확산의 영향이라고 한다. 미국 노동통계국장도 “앞으로 법조계로는 절대 진로를 정하면 안 된다”, “로펌들은 인공지능에 리서치를 시키면 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고 한다(해럴드경제, 문과 전문직 ‘사망 선고’ 나왔다... “법조계 진로 절대 안돼”, 2026.
기다릴 수 있음은 행운입니다. 기다림의 반대편에는 조급함이 있고, 체념이 있고, 재촉이 있습니다. 얼핏 어울리지 않는 단어 같지만, 조건에 따라 기다림의 반대편에 서는 건 제각각입니다. 기다림이 시간을 의미할 때, 반대편에 서는 건 조급함입니다. 기다림이 희망을 품은 상태라면 체념은 절망에 짓눌린 상태이고, 기다림이 배려로 쓰일 때 코웃음을 날리는 건 재촉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다림은 불행이기보다 다행에 가깝습니다. 다행이기로는 기다릴 수 있는 사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은 떠남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봄을 기다릴 수 있음은 겨울을 떠나보낼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어떠십니까. 당신도 나처럼, 그늘진 시간을 뒤로 하고 온기가 머무는 계절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렇다면 나와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적어도 우리의 일정표에는 모든 날, 모든 순간이 기다림이라는 두근거림으로 빼곡할 테니까요. 올겨울은 유난히 춥습니다. 그래서겠지요. 겨울과 작별하려는 사람 또한 많습니다. 그들에게 겨울은 꽁꽁 얼어붙은 땅과 하늘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전쟁과 기아는 계절과 상관없는 겨울입니다. 그 겨울이 지구별 곳곳에 눈물 폭탄을 투하
지속 가능한 개발과 안전은 공동체 발전의 중요한 두 축이다. 특히 생명과 직결된 안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우선 가치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경기도와 경기주택도시공사가 K-컬처밸리 아레나 사업의 안전성을 들어 사업 기간을 조정한 점은 아쉽지만 불가피한 상황이기에 긍정 평가한다. 경기도와 경기주택도시공사는 지난해 10월 세계 최고 수준의 공연 기획사인 라이브네이션 컨소시엄을 K-컬처밸리 아레나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협상을 진행해 왔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라이브네이션 컨소시엄은 2월 20일 기본 협약을 체결하고, 17% 공정률을 보이고 있는 아레나 구조물을 인수해야 한다. 그리고 그 구조물의 원형을 유지해서 아레나를 건설하게 돼 있다. 그런데 최근 라이브네이션 측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하자를 완벽히 차단하고, 국제적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기존 구조물에 대한 정밀 안전 점검을 요구했다. 이에 경기도와 경기주택도시공사는 기술적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이 사업 성공에 필수불가결 하다고 판단하고 라이브네이션 의견을 수용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기존 구조물 점검에만 그치지 않고, 흙막이 시설과 지반 등 안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점검 요소들을 전
[ 경기신문 = 황기홍 화백 ]
성인이 된다는 것은 말의 무게를 입술이 아닌 종이 위에 얹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흔히 사회생활에서 '신뢰'를 강조하는데, 신뢰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기둥은 서류이다. 인간의 기억은 주관적이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재구성되기 마련이다. 감정과 구두 약속이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갈등이 발생했을 때 시시비비를 가릴 기준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때 서류는 변하지 않는 객관적 지표이자,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개인들이 합의할 수 있는 유일한 공통분모가 된다. 특히 근로계약에서 서류의 중요성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근로기준법상 근로계약서 작성과 교부는 사용자의 엄격한 법적 의무다(근로기준법 제17조). 이를 위반할 경우 사용자는 단순히 과태료를 무는 수준을 넘어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라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근로기준법 제114조). 이는 국가가 서류의 힘을 빌려 고용 관계의 투명성을 강제하고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피고용인이 근로계약서 작성을 요구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불신이나 무례함의 표현이 아니라, 법이 보장하는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는 정당한 절차다. 임금, 근로 시간, 휴일 등 핵심적인 근로 조건들이 서류라는 단단한…
대한민국의 역동성을 상징하는 단어 ‘빨리빨리’는 옥스퍼드 사전에도 등재될 만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유명사가 되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배우는 단어가 ‘빨리빨리’라는 사실은 우리가 얼마나 속도와 효율에 진심인 민족인지를 방증한다. 이러한 압축 성장의 에너지는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냈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에 짙은 그늘을 남겼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 급격한 가족 해체, 그리고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고독사는 우리가 앞만 보고 달려오는 동안 무엇을 놓치고 짓밟아 왔는지를 아프게 증언하고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 AI 혁명이라는 거대한 물결이 밀려왔다. AI는 인간이 수십 시간에 걸쳐 하던 일을 단 몇 초 만에 처리하며 인간이 추구해 온 속도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이제 단순히 지식을 축적하거나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 능력은 더 이상 인간만의 경쟁력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속도의 경쟁이 사라지는 자리에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존재해야 하는가? 필자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지혜를 빌려오고 싶다. "하라카 하라카, 하이나 바라카." 번역하면 "서둘러 하는 일에는 복이 없다"는 뜻이다. 모든 것이 빛의 속도로…
지방자치는 풀뿌리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린다. 세계화·지방화 시대에 지방자치는 점점 심화‧확대되는 게 시대 흐름이다. 지방자치가 발전할수록 지방행정은 위민(爲民), 곧 주민을 위한 주민 중심으로 이뤄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지방정부 선출직들의 역할이 갈수록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중요하지 않은 선거가 있으랴마는 6월 3일로 예정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더욱 중차대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반헌법적이고 뜬금없는 12·3 계엄 선포나 김건희 국정농단에 대한 사법부의 엄정한 심판이 내려지고 있는 때이다. 만기친람의 제왕적 대통령제와 중앙집권제의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징적 헌정질서 유린 사태가 비상계엄이다. 물론 이재명 정부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 의한 비상계엄 및 탄핵에 따라 탄생한 정부로서 우리 국민은 물론 세계인이 주시했다.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건강하다는 반증을 세계 앞에 보여줬다. 이젠 헌법과 법률 위에 군림하는 지도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국리민복을 위한 지도자상을 구현해야 할 책무를 띠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끌어올리고 새로운 나라로 향하는 분기점이 돼야 하는 당위가 여기에 있다. 더구나 작금 성장 정체라는 위기가 우리 앞에…
수원특례시의 총 44개 동에서 ‘2025 우리동네 자치계획’이 마련됨으로써 주민자치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변화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동(洞) 단위의 중장기 발전 구상을 담고 있는 ‘우리동네 자치계획’은 단발성 사업 중심의 활동이 아니다. 주민과 도시·마을 분야 전문가가 함께 구상한 계획은 마을을 중심으로 주민자치의 미래상을 구체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원형 ‘우리동네 자치계획’이 풀뿌리 지방자치 역사의 새 지평을 열길 기대한다. 44개 동이 수립한 자치계획을 살펴보면 주민들이 바라는 마을의 모습은 크게 네 가지 흐름으로 나뉜다. ‘주민 간 소통을 핵심 가치로 삼은 마을’, ‘노후화된 지역을 지속가능하게 재생하려는 마을’, ‘지역 자원을 기반으로 성장을 모색하는 마을’, ‘안전하고 쾌적한 생활 인프라 확충을 목표로 하는 마을’ 등이다. 이 가운데 수원시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계획은 주민 소통을 마을 발전의 출발점으로 제시한 11개 동의 구상이다. 지난해 수립된 우리동네 자치계획에는 ‘함께 사는 방법’을 찾으려는 주민들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겼다. 특히 역사성이 깊거나 주거 밀도가 높은 지역일수록 주민 간 소통을 핵심 의제로 설정한 경향이 두드러
공동주택 하자 소송에서 방수 공사의 하자는 누수와 직결되어 입주민의 생활에 큰 불편을 초래하고 건물의 내구성을 저하하는 중대한 문제이므로, 거의 모든 아파트 하자소송에서 핵심 쟁점으로 다루어집니다. 특히 지하주차장, 욕실, 발코니 등에 시공되는 시멘트 액체방수는 그 시공 품질이 매우 중요하지만, 오랫동안 방수층의 적정 두께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부재하여 시공사와 입주자대표회의 간의 법적 다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1994년 건축공사 표준시방서는 액체방수의 두께(벽 6mm, 바닥 10mm)을 정하고 있었으나, 1999년 건축공사 표준시방서가 개정되면서 방수층의 두께 기준이 삭제되고 성능 기준으로 변경되고 2006년 건축공사 표준시방서는 공정을 단순화하자, 시공사들은 실제 누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설계도면에 특별한 두께 명시가 없다면 방수층 두께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하자가 아니라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위와 같은 표준시방서의 변경은 방수층 두께를 일정하게 유지하여 시공하기 어렵거나 그 두께를 정량적으로 측정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한 것일 뿐 방수층의 두께와 성능이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더라도, 통상적인 방수 성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