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광고 가운데 두 명의 어린이가 길을 걸으면서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사용하다 서로 이마를 부딪치는 장면이 있다. 이게 우리나라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사회는 어린이들까지 스마트폰에 넋을 빼앗겼다. 한때 TV를 바보상자라고 하면서 지나친 시청을 자제하자는 사회적 캠페인이 일어날 정도였는데, 지금 스마트폰 열풍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다. 스마트폰으로 음성통화와 SNS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게임을 하거나 TV를 보고 각종 정보를 검색한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의 휴대폰 보유율은 92.4%로, 만 6세 이상 국민 10명 중 9명이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은 스마트폰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 국민들의 ‘스마트폰 사랑’은 도를 넘었다. 식당에서도 술집에서도 각자 스마트폰을 향해 고개를 숙인 사람들이 많다. 나이 많은 노인을 모시고 통닭집에 간 아들·며느리와 손자·손녀들은 모두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고 대화상대를 잃은 노인만 멀거니 앉아있는 풍경은 이제 낮 설지 않다. 본인은 스마트폰 폐인이 되건 말건 그래도 이 상황은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문제는 보행 중에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운전을 하면서도…
칼을 한번 즈음 잡아 본 사람들은 칼에 대한 로망이 있다. 큰 칼을 멋지게 뽑아 시원하게 뭔가를 싹뚝 잘라버리는 환상이다. 옛말에 칼을 뽑았으면 썩은 무라도 한번 베어야 한다는 말처럼 칼을 쥐면 멋지게 휘둘러 보고 싶은 것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칼에 환상은 딱 거기까지다. 실전에서는 어떠한 고수라도 큰 칼질 한번으로 상대를 두 동강 내버릴 수 없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동작이 크면 클수록 공백이 생겨 방어 취약하기에 쉽게 움직임을 만들 수 없다. 역시 다른 맨손 무예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자신의 발차기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영화처럼 하늘을 가르는 멋진 상단발질 한번으로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주먹 역시 한방에 상대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크게 휘두르는 형태는 무모한 움직임인 것이다. 작은 주먹, 짧은 주먹, 작은 발질, 짧은 발질을 교묘하게 섞어 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큰 한방을 뻗어 내는 것이다. 검법에서는 크게 한칼을 베는 것을 씻어낸다라고 하여 세법(洗法)이라고 표현한다. 우리말로는 베기라고 부르며 짚단이나 대나무를 대체물로 활용하여 베기법을 연습하곤 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세법 즉 베기는 동작은 크고 멋있지만, 말 그대
비무장지대(DMZ) 내에 위치한 민간인 거주지역 파주 대성동마을이 새롭게 태어난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지난 23일 대성동 마을에서는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과 이원종 지역발전위원장, 김희겸 경기도행정2부지사, 이재홍 파주시장을 비롯해 한국해비타트, 새마을금고중앙회, 청호나이스, LH, KT, KT&G, 네이버 관계자, 김동구 대성동 마을 이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통일맞이 첫마을’ 대성동 프로젝트 관계기관 협약식을 가졌다. 이 마을의 낡은 주택 개축은 물론 상.하수도 등 각종 기반시설을 재정비해 관광명소화한다는 종합발전계획이다. 대성동 종합개발계획은 지난 1980년에 추진됐으나 이후 35년만에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대성동 자유의 마을은 지난 1980년 주택개량사업 이후 35년이 흘러 주택이 노후화했다. 주민들의 꾸준한 건의로 지난 1월 정종섭 행자부장관이 이곳을 직접 방문해 지원을 약속했다. 만시지탄이다. 대성동마을은 남한에서 유일하게 비무장지대(DMZ) 내에 위치한 마을로, 공동경비구역(JSA) 내에 있다. 1953년 휴전협정에 의해 남북에 하나씩 민간이 거주할 수 있는 마을을 두기로 합의하여 생긴 마을로, 북쪽에는 기정동 마을이 조성됐다. 분단
인도 붐바이에 가면 색다른 관광상품이 외국인을 유혹 한다. 아시아 최대 빈민촌 다라비 슬럼을 방문하는 두시간짜리 투어가 그것이다. 가격은 약 200루피, 우리나라돈으로 4800원을 내면 가이드의 안내로 100만명이 거주한다는 슬럼가 구석구석을 둘러볼수 있다. 일종의 체험여행인 슬럼투어는 인도 말고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호싱야, 케냐 나이로비의 키베라등 제3세계의 거대한 슬럼가도 인기 있는 장소로 꼽힌다. 인기의 비결은 유적지나 명소 위주의 관광 코스와 차별화된 문화 체험이 가능하다는 이유다. 따라서 유명 슬럼가는 해마다 2만명에서 5만명이상의 관광객이 몰린다. 세부적인 프로그램도 ‘슬럼가 주민의 집에서 하룻밤 자보기’ '슬럼가 공터에서 축구해보기’ 등등 다양하다. 1992년 브라질에서 처음 시작됐다는 슬럼투어는 1880년대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역사가 매우 오래다. 당시 호기심 많은 영국 런던 귀족들이 자선을 명분 삼아 경찰의 호위 아래 슬럼가를 둘러보던 것이 시초라는 것이다. 특히 이들의 호기심은 매우 대단해서 런던과 뉴욕의 슬럼가를 비교할 정도 였다고 하는데 뉴욕에선 이들을 고객으로 붙잡기 위한 여행사가 등장했고, 슬럼 가이드책자까지
그 후로도 오랫동안 /김갑수 그 후로도 오랫동안 바람 불고 비 뿌리고 날빛이 소복소복… 아팠다 아팠으므로 천지에 눈 내리고 바람 치고 이렇게 살아서 국 국물을 들이키거나 잡지를 사거나 왈칵 아침이 찾아와… 쓰라렸다 어떻게 정말 다들 미친 것은 아닌지 살아서 나 저녁 길섶에 어두운 기억들 불러모아 두런두런 말하며 저물려 하네 나무나 돌이나 바람이나 혹은 헤어져 버린 사람이거나 오직 지금 말 할줄 모르는 것 하고만! 시에서 어떤 이별의 정한을 노래한 듯하다. 처음보는 사람과 대하는 차한잔도 그렇고 사랑도 그러하다. 추억을 발견하고 창조한다는 것은 지난 일에 대해 솔직하지 못한 뜻일 것이다. 가슴 속에 헤아릴 수 없는 사연을 묻어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말할 줄 모르는 것, 이야기 할 수 없는 것들과 대화를 갖는 것이다. 절박한 현실문제가 있지만 터놓고 마음을 나누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삶이란 현실은 분명 현실일 수밖에 없는 또 다른 길이다. 세월의 나이를 먹고 주름살 파고드는 절박한 일들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대화를 가질 수 없다는 것 더불어 추억을 재생하는 일들이란 자유롭지 못한 병환과 같다. /박병두 시인
인천은 개항기부터 우리나라와 세계를 연결하는 관문이었다. 지금은 동북아 물류와 국제 비즈니스의 중심지다. 특히 위치적으로 중국과 아주 가까운 지역으로서 화교들이 많고 차이나타운까지 들어서 있을 정도다. 인천시와 가장 가까운 외국인 중국, 그 중에서도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시는 지척거리다. 과장된 이야기지만 웨이하이시 석도(石島)에서 닭 우는 소리가 한국에서 들린다고 할 정도다. 한국에서 가는 저렴한 배편과 항공편도 많다. 인천항과 평택항, 군산항에서 매일 여객선과 화물선이 들락거리며 인천공항에서도 비행기가 자주 다닌다. 웨이하이에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농담으로 ‘인천시 위해구’라고 할 정도로 한국인이 많이 살고 있으며 한국인 관광객도 많다. 현재 위해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2만5천여 명 정도인데 주로 기업체 주재원이나 자영업자, 자녀유학 때문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다. 예전엔 이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교민들이 있었다고 한다. 한국인회와 한국상회가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 관광객도 많고 한국 간판을 단 상점도 즐비하다. 뿐만 아니라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과 한국 식당, 한국 상품을 판매하는 가게가 도처에 보인다. 위해 시내 경제의 약 70% 정
수십 년간 지속되어온 해운비리를 척결하지 않고서는 선박안전운행을 보장할 수 없다. 온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세월호 사건이후에도 근절되지 않은 각종해운비리가 만연하고 있다. 해운사고는 피해가 엄청나므로 철저하게 관리되어야한다. 대기업 정유회사의 부두로 입·출항하는 유조선 관련 일감을 두고 수십억 원대의 금품을 공여한 사건이 적발됐다. 인천 계양경찰서는 유조선 관련 일감을 주는 댓가로 하청업체로부터 장기간 억대의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로 SK인천석유화학 선박 안전관리 담당부서장과 선박대리점 대표를 구속했다. 선박회사관계자로부터 일감을 받는 대가로 억대 금품을 공여한 화물검사 업체와 하청업체 대표 3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예선, 도선사, 줄잡이 등을 공급하는 하청업체 등으로부터 257차례에 걸쳐 총 8억4천여 천만 원을 받아 챙겼다. 또 다른 업체도 2008년 1월부터 지난 6월까지 같은 수법으로 총 1천475차례에 걸쳐 14억4천800여만 원을 하청업체로부터 수수하였다. 하청업체가 유조선의 입·출항과 관련해 일감을 받는 대가로 선박대리점과 선박회사에 금품을 상납하면 이 중 상당수가 SK인천석유화학의 안전관리 총괄 담당자에게로 상납됐다. 대표로 있는 대리점을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과 다투거나 심지어 방화와 살인까지 범하는 현상들이 급증하고 있다. 환경부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층간소음 상담 건수가 2012년(7천21건)에 비해 2013년(1만5천455건)과 2014년(1만6천370건)에 급증하여 2년 새 두 배 이상 늘은 것으로 나타났다. 층간소음 문제뿐이 아니다. 주차문제 또한 이웃 사이의 주요 갈등요인들 가운데 하나다. 좁은 골목길에서의 주차문제로 갈등을 겪다가 홧김에 흉기로 이웃을 살해하는가 하면, 주차단속에 불만을 품고 포클레인을 몰아 파출소를 부순 사례도 있다. 이런 현상들의 밑바닥에는 서로 공감하지 못한 채 분노를 폭발해버리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들이 복합적으로 뒤섞여 있다. 심리학자 프랭크 미너스(Frank minirth) 박사는 “타인으로부터 무시당하거나 무가치한 존재로 취급될 때 분노가 폭발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가치가 무시당하거나 자기보전 욕구가 박탈당할 때 느끼는 감정이 분노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작은 일에 쉽게 분노할까? 여기에는 무엇보다 현대인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그 이면에 깔려 있는데, 가령 사회의 발전 속도에 비해 자신은 정체하고 있다는 박탈감과, 승자 독식
가까운 어느 후배가 말하길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친구들을 데려와 본인을 ‘내 아빠, 내 엄마’라 소개하였다 한다. 아! 요즈음 아이들은 영어처럼 그렇게 부르는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단어이긴 하지만 조금만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나’라고 하는 표현 방법은 오늘날을 사는 기성세대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80년대 중반 이후 가장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우리나라 전반에 걸친 문화계의 가장 큰 화두였다. 전국에 산재한 각 지역마다의 독특한 문화정체성이 곧 가장 한국적인 것이라 여기며 중앙 중심문화에서 벗어나 지역성을 발현하자는 부흥이 일기도 하였다. 그런 즈음 나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며, 지역의 문화적 독특성은 무엇인가를 찾아보려고 노력을 기울여 보았으나, 확실한 답을 찾지 못하였다. 이후 서양에서 발간된 책자의 번역본을 뒤지며 내가 한국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우리의 것이 무엇이냐고 서양에 묻는 역 오리엔탈 성향을 보였던 바 있었다. 90년대 중반 우리나라는 전국에 지자체를 시행하면서 20여년이 지난 현재 어느 시·군을 막론하고 독특한 지역성의 발현을 실현시켜온 지역을
셋, 둘 나란히 빈 의자가 놓여있는 공원. 명자나무 무리 옆으로 폴폴 날아오르는 참새 몇 마리 지켜보고 있다. 간혹 스치는 발길에도 파르르 놀라며 숨어드는 녀석들이랑 벌써 한 시간째 어설픈 호흡을 맞추고 있는 사내. 까딱까딱 까부는 모습이 젊은 날 어린 자식 보듯 하였는지 입가로 애틋한 미소를 흘리고 있다. 언제 그렇게 여유로운 시간이 있었던가. 새삼 가져보는 여유이건만 아직도 어색하고 불안해하는 건 정신없이 밟아오던 삶의 폐달, 그 속도 줄이는 연습이 부족한 탓일 게다. “소원했던 휴가 드디어 얻으셨군요. 이제부터 마음껏 그 여유 즐기세요.” 정년퇴직 하던 날, 자식들이 하는 말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남편은 땅이 꺼지라고 한숨만 쉬고 있다. 술기운 빌려가며 몇 날을 버텨 봐도 결코 채울 수 없는 그 허전함, 그 긴 하루, 무엇이 빠져나간 빈자리인지 자꾸 서러움만 밀려든다며 헛웃음을 흘린다. 안절부절 집안을 두리번거리다 이것저것 뒤져내어 정리를 하는가 하면 새벽잠 설치고 공원을 배회하기 일쑤. 하루 이십사 시간이 부족하다며 동분서주 먹이만 물어 날랐던 지난날, 아버지만 있고 나는 없는 가장만 있고 나는 없는 그 지난날만 자꾸 돌아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