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성장에 필수 영양소인 질소의 발견은 화학에 위대한 성과이다. 공기속 질소를 얻으려면 전기가 필요하다. 전기는 물로 만들어진다. 물의 길을 따라 생겨난 것이 화학공업도시 흥남이다. 흥남을 만든 노구치 시타가우(野口遵)는 1873년 일본 이시카와현에서 태어나 도쿄제국대학 전기공학을 전공한 화학기술자이다. 암모니아합성기술 특허권을 구매하여 노베오카(1923년), 미나마타(1909년)에 암모니아합성공장을 세웠다. 비료수요가 높아지자 자원이 풍부한 조선에 눈길을 돌리었다. 화학공업도시로 천혜의 자연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는 함흥-흥남은 해발 2,000m가 넘는 산맥에서 내려오는 풍부한 강수량과 석탄과 석회석이 풍부하고, 저렴한 토지와 노동력, 대륙과 해양을 잇는 교통이 편리하다. 이러한 이유로 노구치는 1927년 함흥에서 12km 떨어진 흥남에 질소비료공장을 세웠다. 이를 시작으로 물의 길은 부전강에서 장진강, 허천강에서 압록강까지 뻗어나갔다. 그리고 흥남은 빠르게 확장되었다. 흥남은 화학공장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거대한 화학공업도시가 되었다. 노구치는 흥남의 초대읍장으로 흥남에 모든 것을 관할하는 기업도시가 되었다. 리승기는 1905년 전라남도 담양에서 태어나…
서양화가 장욱진(1917~1990)의 그림에는 주로 나무와 새, 소, 달, 산, 사람 등이 등장하는데 표정 하나하나가 우스꽝스럽다. 어느 하나 특출 난 것 없이 두루뭉술하다. 모두 어깨동무를 한 것 같다. 이 때문인지 장욱진의 그림 세계를 불교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수행의 십우도(十牛圖) 중 마지막 단계인 입전수수(入廛垂手)를 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입전수수는 이른바 깨달음을 성취하고 난 뒤 중생 속에서 아픔을 함께하는 보살도의 단계다. 한자 '전(廛)'이 말뜻을 잘 나타낸다. '전빵(전방)'의 '전'자와 같은데 가게를 상형한 것이다. 가게는 저잣거리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입전수수는 저잣거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으로 쉽게 풀이가 된다. 저잣거리에서 대중들과 함께 한 이들이 어디 한 둘이겠느냐만 한 사람만 꼽으라면 우리는 신라시대의 원효를 드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머리를 기른 채 저잣거리에서 춤을 추는 퍼포먼스를 서슴지 않았다. 부처가 대중 속에 깃들어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승려와 신도, 엘리트와 대중, 권력자와 피지배층이라는 이분법이 들어설 틈이 없었다. 당대의 지배 이데올로기에도 초연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이후는 원효 지우기 시대였
2018년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조사단’이 충남 아산시의 야산 중턱을 파헤쳤다. 아산지역 부역혐의 학살사건 현장이었다. 이곳에서 유해 208구를 수습했다. 어른 유해 중 85%가 여성이었고, 나머지 58구는 어린이였다. 현장에는 부녀자들이 착용했던 비녀와, 구슬 같은 아이들 장난감이 드러났다. 난리통에 남자들은 어디론가 흩어지고 남은 여성과 아이들이 구슬을 손에 움켜쥔 채 군인들의 보복살인에 쓰러진 것이다. 집단광기가 아니면 설명이 불가능한 현장. 끌려가다 콩밭에 아기를 안고 몸을 던져 겨우 살아난 사람이 있었다. 살았어도 산 목숨이 아니었다. 평생의 트라우마와 한으로 온전히 숨쉬기조차 버거운 한평생이었다. 전쟁이라서 그랬다고? 전쟁이 멈춘 지 70년이 지난 현실에서도 엄연히 학살은 일어난다. 2019년 무소불위의 검찰권력을 개혁하고자 나선 법무부장관의 가족을 향해 검찰이 벌인 가혹한 수사를 떠올리면 나는 ‘학살’이란 표현 이외에 다른 단어를 찾을 수 없다. 무차별적인 압수수색, ‘딸의 어릴 적 일기장을 뒤지고 봉사활동 시간을 추적하는가 하면 생활기록부까지 까발리던 일을 떠올리면 ‘사냥’이란 말밖에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알량한 표창장을 빌미로 엄마
미래학(未來學)은 절대적인 실증이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무책임한 엉터리 학문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요. 그러나 선진국일수록 ‘미래 연구’가 활발한 흐름을 보면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일은 지극히 현실적인 탐구 영역이 틀림없어요. 미래사회를 시사(示唆)하는 변화 조짐을 찾아내려는 학문이 미래학이라면 넓은 의미에서 ‘미래학은 곧 현재학’이라는 개념도 오류는 아닌 듯해요. 그러나 인류의 미래 전망은 결코 장밋빛이 아니에요. 발목을 잡는 가장 심각한 한계는 급격한 환경파괴지요. ‘산업 만능주의’에 빠진 인류는 지구촌의 자연환경이 급속하게 피폐해지는 현상을 장기간 무시해왔어요. 기후 변화가 초래하는 생존환경 황폐화, 산업 혁명이 불러온 대기오염 같은 치명적 변화에 대한 대응에 여전히 마지 못해 흉내나 낼 정도로 소극적인 게 사실이지요. 핵전쟁 위협은 또 어떤가요. 지난해 발발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는 지구촌이 여전히 위태롭기 짝이 없는 화약고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잖아요. 침략국 러시아를 상대하는 일에도 나라마다 다른 셈법이 작동하니 정의냐, 불의냐의 가치관도 완전히 헝클어졌지요. 러시아의 ‘핵 공격 위협’을 귓전으로도 듣지 않는 듯한 국제사회의 분위기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우리를 이웃과 또 하느님과 하나가 될 수 있게 함으로써, 그 무엇으로도 빼앗을 수 없는 진정한 내면적인 행복을 가져다준다. 본인 외에 그 누구도 인간의 정신적인 성장을 방해할 수 없다. 육체의 쇠약이나 지력의 감퇴도 정신적 성장에 대한 장애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정신적 성장은 오로지 사랑의 증대 속에 있고, 그 증대를 방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류시 말로리) 현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에서 행복을 발견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파스칼) 지나간 일을 후회하지 마라. 후회한들 무슨 소용인가? 허위는 회개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진실은 오직 사랑하라고 말한다. 모든 추억을 멀리하라. 지나간 일에 대해 얘기하지 말라. 오로지 사랑의 빛에서 살며 그 밖의 모든 것은 지나가버리는 대로 내버려 두어라. (페르시아의 금언) 사람들이 중국의 현자에게 물었다. “지혜는 무엇입니까?” 현자가 말했다. “그것은 사람을 아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또 물었다. “그럼 또 인(仁)이란 무엇입니까?” 그러자 현자가 대답했다. “그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여간해서는 행복에 도
"사장님, 2-3일씩 수시로 철야근무하는 것은 제게 즐거운 일입니다. 그런데, 신혼의 아내에게 연락할 길이 없어 상 차려놓고 저를 기다리다가 밥도 못먹고 잠드는 일이 너무 잦습니다. 오늘은 퇴근시켜주십시오." 일반 가정집에 전화가 없을 때였다. 다음 날 전화가 생겼다. 혼다기연의 엔진개발 핵심 기술자였던 야기 시즈오씨의 젊은 날 추억 한 토막이다. 선생은 일을 지시하고 집에 가지 않고 관련팀을 돌며 젊은 기술자들과 밤을 세운다. 수시로 '터무니 없는' 목표를 제시하고, 그 성취를 위하여 모두가 달려들도록 분위기를 조성한다. 끝내 성공한다. 그 불가사의한 경험들이 누적되면서 신뢰는 두터워지고 존경심은 높아진다. 3류들은 80점짜리를 이루어놓고 만족해하며 파티를 벌인다. 선생은 스스로 "성공이란 99%의 크고 작은 실패 끝에서 거두는 결실이며, 1%는 강한 정신력"이라고 역설한다. 혼다인들은 선생의 신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특별한 집단이다. 이는 주입시켜 되는 일이 아니다. 월평균 잔업 300시간의 기술자들 가운데 노동강도에 불만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1960년, 세계 최초로 연구소를 별도법인화 했다. 생산판매와 연구개발을 분리한 뒤, 주로 연구소에서 기술자
보여주지 않아도 압니다. 얼굴은 필요 없습니다. 뒷모습만 보아도 분명할 때, 확인이라는 절차는 생략해도 좋습니다. 그럼에도 방송에서는, ‘이십대로 추정되는 남성과 좀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여성’이라고 표현할 것입니다. 그건 그들의 방식입니다. 나는 그냥 ‘엄마와 아들’이라고 부를 겁니다. 그리 불러도 무방할 만큼 두 사람의 뒷모습은 닮은꼴입니다. 피는 못 속인다고 했습니다. 쾌활한 팔 동작과 명랑한 발놀림만 봐도 틀림없습니다. 저런 생김새와 걸음걸이는 물려줌과 물려받음 아니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손과 발을 교차하며 걸어갈 때, 고개 젖히며 웃는 머리 각도와 어깨 들썩이는 모양새까지 영락없습니다. 보여주지 않아도 압니다. 설명은 필요 없습니다. 까르르 웃을 때, 서로를 향해 쏟아지는 봄 햇살 같은 눈빛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언론에서는, ‘발달장애 아들을 보살피는 어머니’라고 보도할 것입니다. 그건 그들의 말투입니다. 나는 그냥 ‘엄마와 아들’이라고 부를 겁니다. 그리 불러도 좋을 만큼 두 사람의 웃음은 온전합니다. 억지웃음은 들키기 마련입니다. 특수학교 통학버스에 오르는 아들의 웃음에는 꾸밈이 없습니다. 아들을 배웅하는 엄마와, 차창 안에서 손 흔
2002년 평양에서 열린 경제회담에 대표단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하여 평양 지하철을 처음 타 볼 기회가 있었다. 평양지하철은 동서와 남북 2개 구간에 17개 역의 노선으로 되어 있고, 지하 100-150m 깊이에 만들어져 있으며, 1973년 광복절에 운행을 시작했다. 총연장 길이는 34km이고 당시 내가 타고 내려갔던 에스컬레이터는 길이가 120m 정도였다. 플랫폼은 대리석 돔 형태로 되어 있고 벽에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을 주인공으로 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마치 중세 유럽의 궁전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역구조상 4량 운행이 가능한 것으로 보이나 당시 내가 탄 차량은 3량으로 운행하고 있었다. 우리의 서울 지하철 1호선(서울역-청량리 구간)이 1974년 광복절에 운행을 시작했으니 평양보다 1년 개통이 늦다. 70년대 초 평양주민의 교통수요가 많아 지하철을 건설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지만 북한의 안내원 H선생에게 건설 경위에 대해 물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사실 미군의 핵 공격에 대비한 대피 시설 역할도 겸하고 있다고 했다. 6·25 조국해방전쟁(6·25 전쟁을 북한을 조국해방전쟁이라 부른다)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평양에는 제대로 된 건물이 하나
부자는 아무래도 무자비해지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가 인간다운 자비심을 발휘하기 시작한다면 그는 이내 가난해질 것이다. 우리가 식탁에 둘러 않아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면서 배불리 먹고 있을 때, 길가는 사람이 울고 있는 것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고 더 나아가 그들에게 화를 내고 사기꾼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정말 부당한 일이 아니겠는가? 빵 한 조각 때문에 남에게 사기를 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설령 그 사람이 정말 그랬다 하더라도, 너는 그를 가엾게 여기고 더욱더 그 사람을 가난에서 구해주어야 한다. 만일 네가 끝까지 자선을 베풀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적어도 그들에게 모욕만은 주지 말아야 한다. (요한) 먼저 약탈을 중지하고, 그 뒤에 자선을 베풀어라. 부정한 돈에서 손을 뗀 뒤, 그 손을 이웃을 위해 내밀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제 손으로 어떤 사람의 옷을 벗겨, 같은 손으로 다른 사람에게 입힌다면, 우리의 자선 행위가 곧 범죄행위에 대한 방아쇠가 되는 셈이다. 그 같은 자선은 아예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요한) 부자가 자선 행위를 할 때만큼 그의 잔인함이 잘 드러날 때는 없다. 부잣집에서는 세 사람 앞에 열다섯 칸의 방이 있지만, 가난한 사람이 몸
유엔아동기금(UNICEFF) 의약품 등 지원물자가 1월 초 해로를 통해 북한에 반입됐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북한은 코로나19 발병직후 지금까지 국경 봉쇄 중이며, 북한 상주 국제기구 직원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90년대 후반에 활발했던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활동은 현재 많이 약화되어 있다. 그 이유는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 인식이 매우 나빠졌기 때문일 것이다. 중 러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국제사회는 북한을 세습 독재체제로 핵무기로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국가라는 부정적 이미지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북한 당국으로부터 버림받고 있는 북한주민들의 인도적 고통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휴머니즘과 자유와 인권, 일상의 행복을 북한주민과 함께 향유하고자 하는 정서를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 인도적 지원은 90년대 중반 북한의 대규모 식량난으로 200만 명에서 300만 명이 아사했다고 하는 상황에서 세계식량기구(WFP) 등 유엔기구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우리 정부는 국내산 쌀 15만 톤 지원 등 가급적이면 남북간 직접 지원을 선호하는 입장이었고, 국제사회는 우리의 참여와는 무관하게 피골이 상접한 북한 아동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