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참 좋았제, 구름도 한 점 없는 그런 날 훨훨 날아갔데이. 허리 구부리고 양팔 휘적휘적 저으며 그래 바지런케 살더이. 무슨 힘으로 저래 높은 하늘로 미련도 없이 훨훨 날아갔을꼬. 매정도 하제, 갈 때는 어째 그래 덧없이 가노. 봄날에 나비처럼 우리 형님 박분화씨 그래 날아갔부렜데이.” 남도 구슬픈 배따라기 한 자락 풀어내듯, 하늘 환하게 열리고 구름 비껴선 얼마 전 그날 얘기를 엄마는 수도 없이 하고 또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한 번 더 떠올리고 기억하고 싶으신 거다. 갓 스물에 시집 와 지척에 살림 꾸리고 고락을 함께 해 온 사이. 남편 먼저 보내고도 서로 다독이며 의지 해 온 오십년지기 단짝. 팔순이 넘도록 아침저녁으로 안부 전하던 그 손윗동서룰 먼저 보낸 헛헛한 마움. 무엇으로도 그 빈 곳 채울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기에 묵묵히 그 얘기 듣고 또 들어드린다. 봄꽃 진 자리에 여름 꽃 꽃대 올리듯 삶 속의 죽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 인식하면서도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현실 앞에서는 숱한 사람들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지막 죽음을 준비하던 가장이 꺼져가는 한 가닥 희망을 붙잡
모든 예술가들의 궁극적인 목적이란 결국 예술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찍는 일일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작품이 예술의 역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명작으로 남길 바랄 것이다. 클로드 로랭(Claude Lorrain, 1600~1682)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잔잔하고 아득한 풍경 위로 한 시기의 위대한 역사가 막을 내리는 듯한 영감을 받는다. 1662년경에 제작된 <아폴론에게 제물을 바치는 풍경>에서는 황금빛 햇살과 수증기를 가득 품은 대기가 너른 초원 위에 드리워져 있다. 고대의 신전은 햇살을 받아 노랗게 반짝거리고 있고 주변의 나무들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신전 앞에 서있는 사람들은 분주해 보이지만 크기가 너무나 작아 이 거대한 풍경을 잠시 스쳐 지나가는 존재로만 여겨진다. 나무는 신전보다 더 크고 웅장하며 자신의 아래로 묵직한 그림자를 내리고 있다. 클로드 로랭은 프랑스 출신의 화가로, 이탈리아의 풍경에 매료된 이후로는 평생 이탈리아를 배회하며 살았다고 한다. 고대 로마의 위대한 건축물들 그리고 지역별로 시시각각 변하는 다양한 기후와 자연 풍경은 그를 무한한 영감으로 이끌었다. 오늘날의 우리가 클로드 로랭의 작품을 바라보면 그다지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정호승 나는 희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 희망에는 희망이 없다 희망은 기쁨보다 분노에 가깝다 나는 절망을 통하여 희망을 가졌을 뿐 희망을 통하여 희망을 가져본 적이 없다 나는 절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 희망은 절망이 있기 때문에 희망이다 희망만 있는 희망은 희망이 없다 희망은 희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보다 절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이 중요하다 희망에는 절망이 있다 나는 희망의 절망을 먼저 원한다 희망의 절망이 절망이 될 때보다 희망의 절망이 희망이 될 때 당신을 사랑한다 - 정호승 시집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중에서 ‘희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니, 이 모순의 형용을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희망은 앞날에 대한 기대이며 누구나 희망을 갖고 살아간다. 정신적 물질적으로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인간에게 반짝이는 희망은 현재 시제 안에서는 실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언제나 결핍의 상태로 현재에 속한다. 언제나 미래 시제에서 살고 있는 희망은 ‘현재 시제’와는 거리가 있다. 그 거리가 멀든 가깝든 희망은 ‘현재’와 거리를 두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시
일년 중 가장 추운 시기는 1월경인데도 불구하고 최근들어 기온 급강하로 인한 한파주의보가 연일 계속되고 그로 인해 화기의 사용도 급증되고 있다. 그야말로 본격적인 월동기 불조심 강조기간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13일 오전 9시26분경 발생한 인천서부소방서 관내 가정동 루원시티내 신축 상가 건물 지하 1층 주차장 바닥에 언 얼음을 녹이기 위해 작업자들이 휘발유를 조금씩 뿌려 불을 붙이는 과정에서 주변 스티로폼 단열재로 옮겨 붙어 1명이 사망하고 22명이 연기를 마시는 화재가 발생하였다. 휘발유는 일반적으로 상온 상압에서 증발하기 쉽고 현저한 인화성을 지니며 유증기와 공기가 혼합되면 폭발성 혼합가스가 되어 매우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휘발유의 특성을 무시한 채 신중하고 조심치 못한 행동으로 대형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이처럼 순간의 방심이 겨울철에 화재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대표적 원인으로 들 수 있으며 결국 대형사고를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화기를 취급하는 모든 장소에는 필수적으로 소화기를 비치해야 한다. 만일의 돌발상황에 대비하여 소화기의 비치는 가장 손쉽게 화재를 진압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항으로 화마로부터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줄 수 있는…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의 취약한 보안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해킹 공격에 뚫려 고객 자산을 도난당한 가상화폐거래소 ‘유빗’이 파산 절차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가상화폐 해킹이 발생한 것은 네 번째다. 야피존이 지난 4월 전자지갑을 해킹 당해 55억 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도둑맞았고, 6월에는 국내 대표 가상화폐 거래소인 빗썸(회원 3만6천여 명 정보 유출)이, 9월에는 코인이즈(21억 원 상당 가상화폐 도난)가 해킹을 당했다. 야피존에서 이름만 바뀐 유빗은 해킹 피해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되던 와중에 다시 해킹을 당했다. 국내에 가상화폐 열풍이 불면서 하루 조(兆) 단위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지만 사실 거래소의 보안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지난달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주요 가상화폐 거래소 10곳을 보안 점검했는데 모두 낙제점으로 나왔다. 하지만 조치는 개선 권고에 그쳤다. 가상화폐 거래소가 해킹에 취약한 것은, 겉으로는 개인 간 거래 같아도 실제로는 거래소 컴퓨터 안에 가상화폐를 보관해 놓고 판매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상화폐 해킹이 북한 소행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가정보원은 올해 들어 국내에서 발생한 일련의 가상
본보는 그동안 여러 차례 사설을 통해 정부에 100만 이상 대도시 특례와 지방자치 분권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기초지자체 중 인구 100만 명 이상 대도시는 경기도 수원시와 고양시, 용인시 그리고 경남 창원시다. 이 중 수원시 인구는 125만여 명으로 광역시인 울산시 118만6천여 명보다 많은 전국 최대 규모의 기초자치단체다. 그런데도 행정체제는 기초자치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광역급 도시엔 광역급 행정시스템이 필요한데도 중앙정부는 획일적 기준으로 지방정부의 조직·인원·예산 등을 통제했다. 무늬만 지방자치인 셈이다. ‘덩치 큰 어른에게 어린아이의 옷을 입히고 어린아이만큼만 음식을 먹으라고 강요’했다는 비유는 적절하다. 그러니 부작용이 생긴다. 우선 대 시민 행정서비스가 부실할 수밖에 없다. 시민들의 삶을 질 향상을 위한 도시기반시설도 제대로 갖출 수 없고 도시의 미래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는 공공연한 차별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연방제 수준의 강력한 지방분권을 약속했는데도 행안부는 지금까지 소극적인 행태를 보인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100만명 이상 기초지자체들은 헌법에 지방분권형 국가를 명시하고, 지방재정 안정성 강화, 재정 자율성 확보, 자치입법권 보장,
드라마 ‘도깨비’ 속의 명대사인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는 2017년 유행어가 되었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의 시선이다. 또 다른 2017년 한 해의 유행어 중에 하나는 ‘꽃길만 걸어라’는 것이 있다. 무거운 짐 지고 가고 있는 가시밭길인 인생에 있어 희망의 메시지만 보라는 것일 것이다. 모든 사물이라는 것은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관심을 갖는 것만 보이게 마련이다. 그리고 자신이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으면 다른 것이 별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인간은 원래 자신에게 유리한 것, 자신에게 닥친 것만 보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정작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기피하고 보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상대방에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을 정작 자신은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 한다. 그러나 조금만 시선을 달리하면 세상은 정말이지 살만한 곳이다. 결국 살아가는 것은 스스로가 어떻게 하는냐에 달렸다고 생각을 한다. 요새 꿈속에 어릴 때 살던 사당동 산동네가 나타난다. 사당2동 산 15번지인 이곳은 남성시장
요즘 인터넷이나 TV를 보면 정치인들이나 관료들의 부정부패에 관한 뉴스들이 넘쳐나고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한국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부패와의 싸움이 계속 되었지만 그 싸움에서 승리하기 보다는 오히려 패배로 끝난 사례가 훨씬 더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유지되는 이유는 이런 부패한 세상에서도 누군가는 강인한 절제와 인력으로 부패와의 사슬을 끊고 청백리의 길을 걸으면서 깨끗한 공직사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우리 삶에 귀감이 될 만한 옛 선조들의 모습을 살펴봄으로써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스스로 청렴에 대한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오늘 소개할 인물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청백리라 칭송되는 최부와 송흠의 이야기다. 최부는 조선 초기 전라도 나주에서 태어나 처가 고을인 해남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제자들을 길러낸 뛰어난 학자이자, 문과에 급제하여 상당한 지위의 벼슬살이도 했던 관료이며 송흠은 전라도 영광에서 태어나 22세에 진사과에 급제하고 고관대작을 역임한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이웃고을 출신으로 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