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드라마(응답하라1994)에서 소환되었던 94학번이다. 첫 번째 실시된 수능을 보았던 세대. 그해는 X-세대마케팅의 시작인 태평양의 트윈엑스의 광고가 시작되던 해였다. 대학생활이 자유로왔는지 그때 누리는 게 특별한지 그 당시는 몰랐다. 마치 충분한 산소가 있는 공기의 가치는 없어졌을 때 비로소 알 수 있듯이. 대학생활을 마치고 사회생활을 처음시작한 병원생활이 그랬다. 인턴시절은 놀라웠다. 레지던트가 오더를 내리면 인턴은 기계처럼 수행해야 했다. 8명이었던 인턴 중 한 명이 실수하면 단체로 기합을 받았다. 한 번은 담당레지던트한테 엄청나게 혼났었는데.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하라면 하지 무슨 질문으로 토를 다느냐는 논조였다. 바로 윗년차 레지던트 중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그는 병원이 군대보다 더 빡세다고 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렇게 경험했던 문화가 한국조직사회 전반에 스며들어있다는 걸 후에 알게 되었다. 남녀의 차이는 없었다. 병동에 주치의로서 근무를 할 때는 오히려 환자들이 나를 더 따랐다. 오히려 더 꼼꼼하게 진료를 잘 봐준다고 다른 주치의를 거부해 나를 커버해준 남자선배가 무안해진 일도 있었다. 대학교 때는 여학생회
“연말 대목 썰렁한 호프집…” 얼어붙은 소비 동향이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중앙, 12.26자). 다행인 것은 정부안에서 전액 삭감됐던 지역화폐 예산이 국회에서 3525억 증액됐다는 전언이다. 김동연 경기지사는 “경제 어려움 속에서 민생과 취약계층을 지키는데 더욱 힘을 기울이겠다. 지역화폐는 이미 내년도 예산에 반영했지만, 앞으로 추경 등을 통해 수요에 맞춰 추가 편성하겠다”고 밝혔다(경기신문, 12.26자). 지역의 소상공인 자영업자는 목하 매출 부진과 부채 상환에 정신 줄을 놓고 있는 중이다. 그렇기에 그들에겐 너무나 반가운 소식이다. 물론 경제가 잘 돌아가고, 대·중소기업이 함께 발전하면, 국민의 소비가 늘면서 자영업자도 덩달아 신바람이 날 것이다. 그러나 경기 전망은 매우 부정적이다. 긴장해야 한다. 지역화폐로 지역 내 소비를 활성화하지 못하면 종국엔 국가를 지킬 수 없게 된다. 통화량은 정해져 있는데 지역주민이 대기업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 쇼핑을 하게 되면, 지역의 돈은 중앙으로 갈 수밖에 없다. 자영업자의 눈물은 마를 겨를이 없다. 이런 것 막아보자는 게 지역화폐다. 우리나라엔 편의성이 좋은 화폐 지불 시스템이 많다. 그럼에도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지난 23일은 내가 30년 철도기관사생활을 끝내고 마지막 열차를 운행하는 날이었다. 이제 연말까지 일주일 남짓한 시간이 내게 주어진 유일한 유급휴일이다. 퇴근하며 주변사람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는데 후배인 모팀장이 잔뜩 미안한 얼굴로 말을 건넨다. “형님, 저.. 내일 혹시 승무가능하십니까?” 사연인즉 며칠전 사무소에 코로나환자가 5명이나 발생하여 인력이 태부족이란다. “아무리 짜내도 탈 사람이 형님밖에 없습니다” 애원하는 후배의 말에 차라리 웃으며 답했다. “그래, 퇴직하면 실컷 놀건데 뭐..”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저녁, 나는 부산신항만으로 출근해 33량 컨테이너열차를 경부선으로 끌고 나갔다. 등뒤에서 쿵쿵거리는 디젤기관차의 엔진소리가 정겹다. 기관차위에서 흰머리소년이 될 때까지 보낸 지난 세월처럼 남성현터널 주변에는 흰 눈이 쌓여있다. 돌아보면 대한민국의 역사만큼 철도도 격변의 시기였다. 124년의 철도역사를 거슬러 100년 동안 바뀐 것보다 최근 20년 동안 바뀐게 더 크다고 할 정도였으니.. 처음 입사했을 때는 한 달에 온전한 휴일 하루를 구경하기 힘들었다. 군대막사 같은 곳에서 잠시 눈 붙이고 근무 나가기 일쑤였던 처지에서 지금은 매월 8~10일의
사회구조의 개선을 방해하는 가장 큰 원인은, 그것을 사회의 외면적 형식의 변경을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한 잘못된 생각은 사람들의 활동을 엉뚱한 곳으로 끌어들이고 만다. 사회생활은 사람들의 의식 위에 구축되는 것이지 학문 위에 구축되는 것이 아니다. 문명은 무엇보다 먼저 도덕적인 문제이다. 만약 성실함이 없으면, 또 인간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존경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다시 말해 사람들에게 선덕이 없으면, 모든 것이 위험해지고,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이다. 학문도 예술도 영화도 산업도 미사여구도 경찰도 세관도, 토대가 없는 국가는 추악하고 불안정한 구조물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대중의 도덕성만이 모든 문명의 견고한 기초를 이룬다. 그리고 그 건물 네 귀퉁이의 주춧돌 구실을 하는 것이 의무이다. 조용히 나의 의무를 다하면서 사람들에게 좋은 모범을 보여주는 사람이야말로, 미래의 빛나는 세계를 구원하고 이를 지탱하는 사람이다. 아홉 명의 의인이 더 있었으면 소돔을 구할 수 있었겠지만, 민중을 타락과 멸망에서 구하기 위해서는 수천 명의 선인이 필요하다. (아미엘) 문제는 결코 그리스도교인가 사회주의인가 하는 선택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양자
1964년, 그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절해의 고도 로벤섬 감옥에 투옥되었다. 감옥은 다리 뻗고 제대로 누울 수조차 없을 정도로 좁았으며, 변기로 사용되는 찌그러진 양동이 하나만이 감방 구석에 있었을 뿐이었다. 면회와 편지는 6개월에 한 번 허락되었고 교도관들은 그의 전향을 강요하기 위해 견딜 수 없는 모욕과 강제노역 그리고 고문을 가하는 등 폭력은 일상적으로 가해졌다. 사회에서 변호사로서 받았던 인간의 품격은 상실된 지 오래되었다. 그가 감옥에 갇히자 가족들은 살던 집을 빼앗기고 흑인들이 모여 사는 변두리 지역으로 쫓겨났다. 수감 중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큰아들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장례식 참석은 허락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결혼한 큰딸이 자신의 아기를 데리고 면회를 와서 아기 이름을 지어 달라고 했다. 그때 그가 손자에게 지어준 이름이 ‘아즈위(Azwie)’였다. ‘희망’이라는 글자였다. 로벤섬에서의 27년의 감옥생활을 마치고 석방되어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희망없이 살아가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들에게 희망이 무엇인지를 심어주었다. 그리고 보복이 시작될 것이라며 공포에 떨던 백인들에게도 오히려 흑인과 함께 사는 아름다운 세상의 희망을…
미국 미네소타주가 영하 48도라는 뉴스가 전해진다.. 미네소타라면 미시간 5대호 옆에 붙어 있는 미국 최북단 도시이다. 워낙 추운 곳이긴 해도 영하 48도는 아무래도 정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롤랜드 에머리히의 영화 ‘투모로우’가 현실화됐다는 얘기다. 물론 ‘투모로우’가 기후변화에 의한 재난을 그린 내용만은 아니다. 내 기억엔 이 영화는 부상(父性)의 가치,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얘기를 그린 작품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들이 메릴랜드 워싱턴D.C. 밑으로 밑으로 피난을 가려할 때 아버지 잭(데니스 퀘이드)은 아들 샘(제니크 질렌할)을 구하기 위해 뉴욕주의 뉴욕인지(컬럼비아 대학이었는지) 매사츄세츠의 보스턴인지(보스턴 대학이었는지)로, 그러니까 북으로 북으로 향한다는 이야기이다. 잭의 아내인 의사 루시(셀라 워드)는 그의 북상이 죽으러 가는 길일 수 있음을 알면서도 남편을 떠나보낸다. 아들을 꼭 구해 올 것을 믿는다면서. (가서 우리 아들 구해와!, 하는 것 같았다.) 난 그 옛날 이 영화를 처음 볼 때 그 장면이 꽤나 의미심장하게 보였다. 당시 2004년은 9·11 테러 여파가 심했을 때였다. 롤랜드 에머리히는 이 '얼척(어처구니)없는' 상업재난영화를 통해 놀랍
TV시청률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지만 특히 2022년은 더 줄었다. (시청률은 닐슨 자료이며 기간은 1/1 – 12/10까지의 년간 집계치임) TV 가구시청률의 합이 2017년 40% 에서 5년 후인 2022년 32% 로 줄었다. 동기간 지상파는 16.9% 에서 10.7%로 대폭 줄었지만 종편, CJ계열 채널 등 비지상파는 23.2%에서 21.3%로 약간 감소되었다. 지상파방송의 세대별 시청률을 보면 이런 현상의 원인이 뭐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2022년 현재 개인시청률 기준 베이비부머 세대는 7.3%, X세대 4.6%, M세대 1.9%, Z세대는 0.86% 다. 베이비부모 세대가 M세대의 3.5 배 이상 Z세대의 8.5 배의 시청량을 보이고 있다. TV는 특히 지상파는 중장년 세대의 놀이터다. 신문은 말할 것 없고 TV도 잘 안 보는 M, Z세대가 성장한 10년 후 미디어 업계의 모습이 그려진다. 더 심각한 건 2017년에서 2022년 베이비부머 세대 시청률변화가 11.2%에서 7.3% 인데 X세대는 8%에서 4.6%로 급감했다. 이처럼 한 해가 갈수록 X세대도 이 흐름을 좇아간다는 점이다. 잘못하면 2030년 TV 프로그램은 장수만세와
1980년대 한국.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낭만과 인정은 살아 있었다. 민주화를 위한 갈망으로 시위가 끊이지 않고 이들을 저지하는 경찰 기동대는 살벌했다. 사이렌이 울리고 돌과 화염병이 날아가고... 모진 풍파 속에서도 대한민국 청년들은 꿋꿋하게 그들의 젊음을 만끽했다. 대학가요제가 열리고 청바지에 통기타를 맨 선수들이 출전해 멋들어진 노래를 하고, 수상작들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 나가고. 이런 여유 덕에 우리는 그 어려운 시대를 살아낸 것이 아닐까. 그 추억 속에 ‘모모’가 있다. 가수 김만준 씨가 불러 대히트한 곡.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계바늘이다 모모는 방랑자 모모는 외로운 그림자(...) 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이 꿈꾸는 모모는 환상가(...) 인간은 사랑 없이 살수 없다는(...)” ‘모모’는 모하메드의 애칭 발랄하고 경쾌한 이 노래가 흘러나오면 우리는 그저 흥얼거렸다. 하지만 이 노래의 가사는 결코 간단치 않다. ‘모모(Momo)’. 모하메드의 애칭이다. 열 네 살의 알제리계 소년. 그는 파리 20구 벨빌(Belleville)에 있는 로자 아줌마네 집 7층에 산다. 이 아줌마는 아우슈비츠에서 생환해 매춘부 생활을 했
인간은 그 의식이 가장 높은 곳에 있을 때 고독하다. 그 고독은 때로는 이상하고 낯설며 괴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생각이 부족한 사람은 여러 가지 기분전환을 시도하며, 괴로운 고독의 의식에서 도피하고자 의식의 높은 곳에서 바닥을 향해 내려가고 만다. 이에 반해 생각이 깊은 사람들은 기도를 통해 그 높은 곳에 계속 머물러 있다. 개체는 유한하다. 그러므로 신은 결코 개체일 수가 없다. 그런데 기도는 신에 대한 호소이다. 개체가 아닌 것에 어떻게 호소한단 말인가? 천문학자들은 정말로 움직이는 것은 보이는 별자리가 아니라, 자신들이 천문대와 망원경을 설치한 지구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역시 지구의 움직임이 아니라 별자리의 움직임을 기록한다. 그렇게 할수 밖에 없는 것이다. 기도도 바로 그것과 같다. 신은 개체가 아니다. 그러나 나는 개체이기 때문에, 자신과 신의 관계를 신이 개체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개체와의 관계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개체를 인격체로 이해하는게 더 옳을 것 같다. 옮긴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 우리의 시대가 오늘날 사로잡혀 있는 이기주의와 회의와 부정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요구되고 있는 것, 그것은 우리
분단 이후 최초로 3·1절 행사를 남북 민간단체에서 공동으로 개최하였다. 2003년 3월 1일 북측대표단 105명이 방한하여 워커힐 제이드가든에서 역사적인 3.1민족대회가 열렸었다. 이때 있었던 재미있고 의미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한다. 6·15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간 회담, 공동행사 등이 자주 열렸다. 이때 남북간 만남의 장에는 항상 통일부와 국정원, 북에서는 통전부와 국가안전보위부 요원들이 행사의 지원을 위해 참석하였다. 남북교류협력법과 국가보안법이 함께 적용되는 남북관계의 법질서의 단면을 보여주는 현실이다. 국방백서에 ‘주적’을 넣는다. 만다.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첫날의 3·1민족대회 행사도 의미 있었고, 이튿날 일요일에는 북한종교인들이 우리의 종교시설에서 남북이 함께 종교의식을 치렀다. 불교는 봉은사, 천주교는 명동성당, 천도교는 수은회관, 기독교는 소망교회에서 각각 행사를 맡아서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보안요원과 북측 보장성원(행사지원인원을 북에서는 보장성원이라 부른다)간에 사소한 일로 다툼이 있었다. 사람 사는 일이라, 더욱이 60년 가까이 헤어져 살았던 적대관계의 체제를 보위하는 요원들간에 다툼이 발생함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