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나가면 피자, 햄버거, 스파게티 등 맛있는 음식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아무리 맛있는 음식들이 많다 해도 어머니께서 해 주신 따끈한 쌀밥 한 공기보다 더 맛있는 식사가 또 있을까? 그러나 경제가 발전하고 ‘밀가루와 육류’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쌀’ 소비량이 줄어들고 있다. 또한 왜곡된 정보로 쌀 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쌀이 비만과 당뇨 발생의 주요 원인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은 쌀 전분이 밀 전분에 비해 소화 흡수가 느려 급격한 혈당 상승을 억제해 비만 예방에 효과적이다. 쌀 단백질에는 필수아미노산인 ‘라이신’이 밀가루, 옥수수, 조보다 2배 더 함유돼 있는데, 이것은 혈중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감소에 효과가 있다. 즉 밀보다 더 우수한 식품이라 할 수 있다. 밀가루를 주식으로 식사를 하는 경우에는 필수아미노산이 부족하기 때문에 채소와 육류를 훨씬 더 많이 곁들여 먹어야 균형을 이룰 수 있다. 알고보면 비만예방에 효과 쌀에는 쌀눈과 쌀겨를 중심으로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식이섬유, 미네랄 등 10여 가지의 영양성분이 존재한다. 그래서 식품영양학적으로 우수
집 근처 동사무소 앞에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라는 문구가 담긴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그 플래카드를 볼 때마다, 6·25 전쟁과 그동안 북한의 도발로 희생된 분들을 생각하며 마음이 아프고, 전쟁의 위협이 없는 땅에서 살고 싶은 바람이 간절해진다. 나는 개인적으로 전쟁을 겪어 본 사람도 아니고, 가족 중에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도 없지만,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에 나고 자라면서 받은 간접적인 피해는 참으로 많았던 것 같다. 아직도 기억나는 내 인생 최초의 악몽은 일곱 살 때쯤 꾼 간첩 꿈이었다. 우리 집에 간첩이 들어 왔는데, 바들바들 떨며 숨을 곳을 찾던 공포감이 생생하다. 만나 본 적도 없는 누군가를 뿔 달린 도깨비라 못 박고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교육받은 어린 시절이었다. 탈북자 연구를 하며 만난 북한사람들은 뿔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랑 비슷한 게 많았다. 어린아이에게 단지 어떤 배경 때문에 누군가를 무조건 배척하라는 것은 좋은 교육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적대감을 가르치지 않아도 되는 것, 내가 통일 세상을 꿈꾸는 이유이다. 분단국가에 살면서 피해를 본 사람들을 크면서 많이 보았다. 월북…
국가대표 축구팀 새 감독으로 홍명보 전 올림픽대표팀 감독이 거론되고 있다. 터키 출신 세놀 귀네슈 감독과 아르헨티나의 마르셀로 비엘사 등 외국 감독 영입설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지만, 국내파 홍 감독 발탁설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과의 아시아예선 A조 마지막 경기가 끝나자마자 한 언론이 ‘홍 감독 확정’이라고 성급하게 보도할 만큼 국민들의 관심도 높다. 결론부터 말해 우리는 홍 감독이 사령탑을 맡아 국가대표팀을 일신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홍 감독이라면 안정된 리더십과 선수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대표팀을 새롭게 탈바꿈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홍 감독은 이미 2009년 U20 월드컵 8강,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동메달,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통해 지도력을 충분히 입증했다. 지금의 대표팀 선수 가운데 기성용 박종우 김보경 등은 홍 감독의 지도를 받았던 선수들이다. 국민들이 홍 감독에게 거는 기대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란전에서 드러났듯이 한국 대표팀은 강력한 새 바람이 필요한 상태다. 골 결정력 부족이나 수비불안 등 고질적으로 따라다니는 병폐도 문제지만, 무엇엔가 짓눌려 전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송탄관광특구는 평택시 신장동 주한미군 주둔지인 K-55 기지의 주변지역으로 면적은 49만1천316㎡이다. 1997년 관광특구로 지정된 이래 주한미군과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다양한 볼거리와 쇼핑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매월 2차례 관광특구의 특색을 살려 각종 문화행사와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그런데 요즘 이 지역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미군- ㈔한국외국인관광시설협회 송탄지부(이하 송탄지부) 소속 업주와 관련 종사자들-K-55 기지 주변 상인들 간에 갈등이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갈등은 먼저 미군 측과 송탄지부 소속 업주와 관련 종사자 사이에 빚어졌다. 업주들은 현재 부대 앞에서 무기한 집회를 열고 있다. 송탄지부와 업주, 종사자들에 따르면 “미군 측이 업소 측에 여종업원 고용금지, CCTV 설치 등을 요구하며 자유로운 상업 활동을 저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미군부대 주변에서 외국인 전용 클럽 50개 업소 가운데 최근 8개 업소가 오프 리미트(출입금지구역)처분을 받았다고 말한다. 업소출입금지 처분을 통보받은 6개 업소의 경우 ‘여종업원과 야한 춤을 췄다’, ‘여종업원이 인신매매에 연루돼 있다’ 등 미군 측의 일방적인 이야기를 근거로 미군 지휘관으
필자가 정명희 시인을 만난 것은 오래되었지만 가까이 뵙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줄곧 화성시에서 교직에 몸담고 있었던 시인은 수원의 정자초교 초빙공모제 교장선생님으로 부임했다. 시인이란 직업을 가진 탓일까? 시인은 인문학에 대한 열정이 깊다. 사람은 모름지기 인문학적 소양을 갖춰야 좋은 인성을 쌓을 수 있는데, 정 시인은 인문학적 좋은 학교를 만들어가는 교직자로, 아름다운 시를 쓰는 시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정 시인은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지만 문협 행사에 꼭 참석한다. 동료 문인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인문학적 소양을 쌓기 위함도 있지만 정 시인은 항상 자신의 몸을 낮추고 진솔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면하신다. 얼마 전, 필자는 정 시인의 학교에서 시화제 행사가 열려 참석했다. 교실에는 아름다운 시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어린 학생들의 작품이 액자에 담겨 시선을 끌었다. 시인 교장선생님이 시의 향기를 학교 곳곳에 퍼뜨리고 있구나 싶었다. 교직원들이 곱게 액자에 담아 놓은 것도 참 인상적이었고, 시낭송회 때 낭랑한 목소리로 시를 낭송하는 모습도 이색적이었다. 시대가 변하다 보니, 학생과 교직원들을 관리하는 것도 예전 같지 않은 모양이다. ‘행
1969년 8월 15일 미국 뉴욕 북부 베델 근처 화이트 레이크의 한 농장에서 열린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지금도 록페스티벌의 상징이자 전설로 불린다. 당시 히피, 반전이라는 이유로 당국이 개최를 제재했지만 50여만명의 젊은이들이 몰려들어 진흙 펄을 구르며 ‘사랑’과 ‘평화’를 외쳤다. 기타의 신 지미 핸드릭스, 포크의 여왕 존 바이즈, 그룹 산타나 등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이 무대에 섰고 거의 모든 장르의 록 음악이 연주된 한바탕의 잔치였다. 당시 록페스티벌은 음악 공연이라기보다 하나의 문화현상이었다. 그리고 젊은이들에겐 반전과 평화를 노래하고, 기존 체제에 대한 반감을 마음껏 표출하는 해방구였다. 「우드스탁」이 1960년대 카운터컬처와 반전운동을 상징하는, 20세기의 가장 큰 문화적 사건으로 불리는 이유도 여기 있다. 1970년대 이후 록페스티벌의 중심은 영국으로 이동했다. 영국에서 개최되는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은 유럽을 대표하는 꿈의 무대고 일본에서 열리는 ‘후지록’과 ‘서머소닉 페스티벌’은 아시아의 대표적인 록페스티벌로 꼽힌다. 인천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4대 록페스티벌 중 하나로 불린다. 매년 여름에 열리는 이 축제는 1999년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후략-’ 이 노래를 아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될까? 아직도 끝나지 않았으나 잊혀가는 전쟁, 6·25로 수백만명이 죽었고 1천만 이상의 이산가족이 생겼다. 남·북한은 물론 중국동포까지 무사한 가정이 없었다. 우리가족도 이 전쟁에서 막내삼촌을 잃었다. 1950년, 중학교 3학년이던 삼촌은 학도병으로 참전하셨다. 평소와 다름없이 책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 후 그 길로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다. 그해 여름, 먼 메아리처럼 쿵… 쿵 하는 소리와, 보퉁이를 이고 진 사람들이 신작로를 따라 줄지어 가고 있었다. 우리들의 놀이터였던 당산나무 아래에도 낯선 사람들이 빼곡 차, 누워 있거나 밥을 지어 먹던, 바랜 흑백사진 같은 유년의 토막기억들이 남아있다. 삼촌은 입대 후 한 번의 연락도 없었다. 막내를 전쟁터에 보낸 할머니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었다. 장맛비가 내리고 두꺼비가 엉금엉금 마당으로 기어 나오던 날, ‘홍두야’ 삼촌을 부르며 통곡하시던 모습이 선하다. 문풍지가 파르르 우는 한겨울, 화롯불 앞에서는 ‘이놈
독일 바이에른 주의 수도인 뮌헨에서 서남쪽으로 1시간 정도 가면 독일에서 가장 높은 산이 있는 독일 알프스가 시작됩니다. 한 여름에도 정상에 눈이 쌓여있고 큰 호수가 있어 휴양지로 잘 알려진 아주 작은 툿칭이라는 시골마을이 있습니다. 여기에 독일 개신교 아카데미라는 작은 회의장이 있는데 이곳에서 지난 5월 말, 한신대학교 ‘평화와 공공성 센터’와 미국의 시라큐스 대학, 독일의 ‘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등이 공동으로 주최한 동북아시아 평화와 한반도문제에 대한 두 번째 국제학술모임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모임은 작년 4월 뉴욕에서 열렸고, 남과 북, 미국, 중국, 일본, 독일 대표들이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두 번째 모임에는 유감스럽게도 북한에서 아무도 올 수 없었습니다. 박근혜 정부 후 남북관계가 이전보다 전향적으로 진전되리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개성공단 폐쇄 이후, 그나마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된 남북당국 간 회담도 준비단계에서 결렬되었습니다. 이른바 격(格)이 문제된 것이지요. 바로잡을 ‘격’은 사전적으로 ‘주위 환경이나 형편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분수나 품위’를 의
그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팜티호아. 기억은 비를 타고 1968년 베트남으로 거슬러 오른다. 그해 2월 22일 한국군은 꽝남성 하미마을에 살던 주민 137명을 학살한다. 팜티호아 할머니는 당시 다섯 명의 가족을 잃고 자신도 수류탄에 두 발목이 잘린다. 가슴에 꼭 품고 있던 열 살 아들과 다섯 살 딸은 총탄에, 그리고 임신중인 조카 며느리는 한국군에게 차마 글로 옮길 수 없는 일을 당하고 결국 죽임 당한다. 가족을 불귀(不歸)의 객(客)으로 떠나 보낸 뒤 오랜 시간을 고통 속에 살았던 할머니. 아름다웠던 삶을 지옥으로 바꾼 그 군인들의 나라에서 온 사람들의 손을 언제나 따뜻하게 잡았다. 지난 3월 열린 하미마을 학살 45주기 위령제에 처음으로 한국 사람이 참가했다. 할머니는 그들에게도 따뜻함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사죄하는 젊은 마음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아무 죄도 없는 너희들이 뭐하자고 여기까지 왔어. 이 불쌍한 것들이 어째….” 보편적인 인간의 감성을 넘는 성숙한 인격체, 그 자체다. “다시는 전쟁 같은 건 없어야지, 나 같은 사람 없어야지….” 할머니의 마지막 당부다. 베트남을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 소식에 눈물을 흘렸다. 죄송한 마음이 모여 비가
아마 우리들 중에 상처 없는 사람 없을 것이며, 그 상처 중 진실로 아픈 것들은 분명히 사람 때문에 생긴 것이리라. 그래서 사람들은 동물을 키우고 식물을 키우며 위안을 받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는 이미 천만을 넘어선 지 오래라고 하니 한마디로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다. 아마도 이 사람들은 배신을 모르고 모든 걸 내어놓고 충성하는 강아지를 키우면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사람을 따르던 강아지 중 상당수가 사람의 배신으로 길거리로 내던져지고 있으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전국 유기견 보호소로 접수되는 유기견 수를 따져보면 대략 8만 마리. 전문가들은 10만 마리가 넘는 유기견이 한 해에 발생된다고 추정하는데, 고작 10%만이 새 주인을 만나고 2만 마리는 공식적인 안락사로 삶을 마감하며, 나머지는 보신탕집에 팔려가거나 거리를 배회하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고 한다. 언젠가 한 TV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광경을 잊을 수가 없다. 사람들이 버리고 가서 섬에 남겨진 강아지들, 도저히 주인이 자신을 버렸다고 믿지 못하는 강아지들은 주인의 마지막 모습을 잊지 못해 배가 들어올 때마다 항구에 나가 주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