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수업 대신 나라의 중요 방송을 들어야 한다고 하셨다. 중학교 1학년의 삶과 매우 동떨어진 딱딱한 발표가 교내 방송으로 흘러나왔다, 선생님이 해주신 보충설명은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남과 북의 최고위층 인사가 서로 비밀리에 평양과 서울을 방문했다. 이제부터는 남북이 싸우지 않고 통일을 해 나가기로 했다. 얼떨떨했다. 바로 전달 6월에도 멸공통일 글짓기와 웅변대회를 하지 않았던가? 이승복 어린이를 무참하게 죽이고, 울진 삼척으로 무장공비를 내려 보내던 ‘북괴’와 어떻게 대화를 하지? 그게 말이 돼?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어른들도 얼떨떨해 하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단지 어른들은 왠지 안도하는 분위기였고, 약간 흥분한 것 같기도 했다. 석 달 후엔 10월 유신이라는 게 선포됐다. 역시 무슨 의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어른들 표정은 무거웠다. 중1 우리들 일상이 천지개벽할 일은 없었으므로, 이번에도 묻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유신의 공포는 고등학생들도 실감한 정도였으나, 1972년에 무슨 일들이 일어난 건지 조리 있는 설명을 들은 건 대학생이 되고 나서였다. 선배들의 설명은 이랬다. 박통은…
8일 우연히 들른 서울 교보문고에서 닉 부이치치를 만났다. 2010년 10월 방한 때 본 후 2년 반만이었다. 신간 출판기념 사인회를 갖는 그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맑고 행복해 보였다. 당시 그에게서 영혼의 아름다움을 많이 느꼈던 터라 매우 반가웠다. 팔다리 없이 태어나 왕따와 좌절, 자살의 유혹을 극복하고 세계를 돌며 ‘행복’과 ‘희망’ 을 강연하는 그는 이번 방문이 3번째다. 자신의 두 번째 저서 「플라잉」을 소개하고 절망을 넘는 기적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는 1982년 호주에서 세르비아계 목사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신체가 양팔과 양다리 없이 발가락 두 개가 달린 작은 왼발 하나만 가지고 있는 오체불만족(五體不滿足)이었다. 때문에 초등학교 시절부터 3번의 자살을 시도하는 등 절망 속에 살았다. 그러다 13살 때 부모의 도움으로 희망 찾기에 나섰고 비장애인이 다니는 중고교에도 진학, 그곳에서 학생회장을 지냈다. 호주 로건 그리피스대에선 회계와 경영을 전공했다. 사지가 없음에도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서핑을 하고, 드럼을 연주하고, 골프를 치고, 컴퓨터를 하는 만능 엔터테이너로 성장한다. 그는 이러한 삶을 진솔하게 표현한…
지나간 장날에 노점상들 사이에 얼굴을 붉히는 일이 있었다. 대개가 그렇듯이 사소한 일에 서로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이유인즉 장을 돌며 장사를 하다보면 장터에서 서로 만나고, 그러다보면 자연 얼굴을 익혀가며 친분이 생기고 정도 들어 서로를 생각해주는 사이로 발전해 말 그대로 이웃사촌처럼 지내게 된다. 장마다 옷을 파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가 자리를 잡지 못한 이웃사촌의 사정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는데 마침 한 장 걸러 오는 자리가 비어 있어 그 자리를 얘기해 주었다. 접시나 공기 수저 같은 그릇을 파는 노점상이 좁은 자리를 비집고 물건을 펼치게 되어 다행이라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후부터 옆에서 묘목을 파는 사람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고, 옷장수가 찾아가 양해를 구하고 사과를 해가며 주위에서 양쪽을 한 자리에 불러 화해를 붙이고자 했으나 묘목장수는 들은 체도 안 하고 계속 뭐 씹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태가 이쯤 되자 계속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던 사람도 지치고 은근히 속이 치밀어 될 대로 되라며 빠지고 그릇장수는 오자마자 된 시집을 만나 보따리를 싸라는 지경에 이르러 이웃사촌끼리 뜨악하게 지나갔다. 언제나 아침을 서두르게 하는 소리는 옷장수의…
6월 임시국회가 지난 2일 개회되어 여야 원내교섭대표단체의 연설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고 이번 주에는 대정부 질문이 예정돼 있다. 이번 임시국회는 박근혜 정부 출범 100일이 지난 시점에 열리는 것으로 산적한 국정현안들을 다루어야 한다. 몇 가지 현안을 중심으로 6월 임시국회에 부여된 역할을 살펴본다. 최근 이슈화된 경제문제들은 경제운영에 대한 기술적 문제라기보다는 각 경제주체의 이해관계와 정부정책으로 인한 수혜의 대상과 폭을 둘러싼 심각한 정치 갈등이라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6월 임시국회 원내교섭단체연설에서 드러났듯이 여야는 경제민주화 방법론에서부터 시각차를 드러냈다. 경제민주화라는 지난 대선에서의 쟁점이 이제 본격적으로 국회에서 다루어지게 된 것이다. 남양유업 사태로 시작된 갑을 논쟁은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을 서두르게 만들었고 이러한 여세를 몰아 여야는 공정위 전속 고발권 폐지, 가맹점주 보호법 등의 6월 국회 처리 약속과 함께 일감 몰아주기 규제, 신규 출자순환 금지, 금산분리 강화 등의 입법에도 속도를 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여야는 다루어야 할 의제라는 큰 틀에서는 합의를 이루어냈지만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안의 내용에 대해서는 격돌을…
시민 5만 명이 매일 이용하는 대중교통 버스가 파업에 돌입할 때는 뚜렷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교섭과 단체행동은 노사 자율 영역이므로 파업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이뤄지는 파업은 시민을 볼모로 한 싸움에 불과하다. 지난 주말 인천 삼화고속의 파업이 선언된 전후사정을 살펴보면 상식 수준에서 납득할 수 있는 명분을 발견하기 어렵다. 왜 파업을 하는지, 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지, 사측이 파업을 유도한 건 아닌지 석연치 않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인천시가 나서서 주요 4개 노선을 정상 운행키로 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표면적인 파업 이유는 통상임금 소송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노조 측이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 1심에서 지난 5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내려졌고, 노조가 이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쟁점은 상여금을 통상임금 산정에 포함하느냐 여부다. 1심 재판부는 삼화고속의 상여금은 성과급에 해당한다며 제외시켰다. 사측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판결임에도 불구하고 소송이 계속되는 한 패소에 대비해 구조조정 노력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며, 일부 노선 폐지를 결정했다. 사측의 이 같은 결정은 노조의 소 취하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성
흡사 체증이 걸린 듯, 호흡곤란증이 생긴 듯 답답했던 한반도 정세가 생기를 찾은 것 같다. 이명박 정권 이후 경색됐던 남북관계가 활로를 찾을 것 같기 때문이다. 북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지난 6일 6·15 공동선언 발표 13주년을 계기로 삼아 개성공단 정상화와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남북 당국 간 회담을 하자고 제의했다. 이날 발표한 대변인 특별담화문에서 ‘6·15를 계기로 개성공업지구 정상화와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북남 당국 사이의 회담을 가질 것을 제의한다’고 밝힌 것이다. 이에 우리 정부도 긍정적이다. 정부는 남북 장관급 회담을 오는 12일 서울에서 개최하자고 북한에 제의했다.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이번 북측의 제의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시로 인한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속내야 어떻든 우리는 일단 북측의 제의를 환영한다. 왜냐하면 조평통은 개성공단 정상화와 금강산관광 재개문제 논의뿐 아니라 이산가족과 친척 상봉을 비롯한 인도주의 문제도 협의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6·15 공동선언과 7·4 공동성명 기념행사의 공동개최도 제안했다. 단절됐던 남북 간 통신망의 복구의사도 밝혔다. 이번 북측의 제안에 대한 우리 정부의 반응
劉向(유향)이라는 사람이 지은 책에 이 내용이 있는데 ‘낚시로 유명한 전략가 강태공은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의 집 지붕 위에 있는 까마귀까지도 사랑하며(愛其人者 兼愛及屋上之烏), 사람을 미워하면 그 집종들까지도 미워한다(憎其人者 憎其儲庶)’라는 말을 했다. 시인 두보도 그의 詩에서 ‘장인 댁 지붕위에 까마귀, 사람이 좋으니 까마귀도 좋구나(丈人屋上烏 人好烏亦好)’며 읊었다. 옛글에 너무 지나치게 아끼는 것이나 엄청나게 간직하려는 것은 분에 넘치게 애걸하는 것과 같다. 명성을 애걸하면 할수록 추해지고, 재물을 탐하면 탐할수록 더러워지며, 이득만 노리면 노릴수록 사납게 되고 만다. 그래서 살아서 명성을 누리는 것은 의심스러운 것이고 죽어서 얻은 명성은 영원하다 하였다. 그러므로 명성을 심애(甚愛)하지도 얻으려 애쓰지도 마라. 생쥐가 꿀단지 있는 곳을 알면 제 명대로 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사랑이건 재물이건 지나치거나 너무 치우치지 말 일이다. /근당 梁澤東 (한국서예박물관장)
젊은 육체를 탐한 재벌과 그들의 재력을 탐한 젊음이 공모한 더티 판타지(Dirty fantasy). 재벌가의 뒷 이야기를 파격적으로 그린 영화 ‘하녀(2010)’로 전도연을 칸의 여왕에 등극시킨 임상수 감독이 지난해 세상에 던진 영화 ‘돈의 맛’에 대한 감상이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씁쓸했던 기억이 아직도 오롯하다. 재벌에 대한 환상따위야 이미 개에게 줘 버린지 오래지만, 탐욕의 정점이 육체를 포함한 쾌락에 집중되는 구도는 아니올씨다, 였다. 욕망을 미학의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라는 기대? ‘에라이.’ ‘돈의 맛’의 인물 대강은 이렇다. 대한민국을 돈으로 지배하는 재벌 백씨 집안의 탐욕스러운 안주인 ‘금옥(윤여정 扮)’과 돈에 중독돼 살아온 자신의 삶을 모욕적으로 느끼는 그녀의 남편 ‘윤회장(백윤식 扮)’. 백씨 집안의 은밀한 뒷일을 도맡아 하며 돈 맛을 알아가는 비서 ‘영작(김강우 扮)’. 감독은 이들이 벌이는 돈에 의한, 돈을 위한, 돈의 인생을 권력과 욕정, 집착 등을 섞어 여러 겹의 데칼코마니로 그려냈다.
몇 년전만해도 발레는 일반인들에게 생소하게 느껴지는 문화코드중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대중화가 이루어지면서 관심 또한 높아졌다. 올 들어선 그 인기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상반기 고전발레 공연이 매진됐거나 매진에 가까운 판매율을 보인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아무리 인지도 높은 클래식 발레라 해도 지난해까지는 유료 예매율 70%를 채우기가 힘들었던 것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다. 국립발레단의 지난 2월 ‘지젤’ 공연은 한국 발레 공연 사상 처음으로 전회 전석 매진을 달성하기도 했다. 지난 1일부터 서울 예술의 전당을 비롯해 5개 공연장에서 대한민국 발레 축제가 열리고 있다. 7월13일까지 개최되는 이번 축제에 양대 국내 대표 발레단인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을 포함 15개 발레단이 총 출동한다. 이 또한 시작부터 관심이 대단하다. 발레가 우리 곁에 친숙하게 다가선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동안 발레는 값비싼 고급문화라는 인식들 때문에 대중화 되지 못하고 일부 부유층만 즐기는 고귀한 품격의 공연으로 치부됐었다. 발레의 대중화에 일등공신은 국립발레단이다. 그동안 단장과 단원들은 10여년동안 발레 대중화에 발 벗고 나섰다. 발레를 쉽게 이해할 수 있
‘읍참마속’이란 말이 있다.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정치가이며 전략가인 제갈량이, 마속이 군령을 어기어 전투에서 패했을 때, 눈물을 흘리면서 마속의 목을 베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큰 목적을 위하여 자기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을 버리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조조의 명령으로 위나라의 명장 사마의가 20만 대군을 거느리고 제갈량의 군사와 대치하게 되는데, 천하의 제갈량이었지만 지략이 뛰어난 사마의와 전면전을 벌일 수 없는 상황이 생겼다. 그때 마속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조조의 군대를 무찌르겠다고 자원하게 된다. 그러나 노련한 전략가인 사마의와 대결하기에는 아직 어렸고, 그래서 제갈량이 주저하자 마속은 거듭 간청하기를 “만약 패하면 저는 물론 일가권속까지 참형을 당해도 결코 원망치 않겠다”고 서약을 하고 출정을 했지만 결과는 참패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제갈량은 그 당시에는 마속에게 책임을 묻지 않다가, 갑자기 그 이듬해 마속을 처형하고야 만다. 마속의 일급 참모들은 마속 같은 유능한 장수를 잃는 것은 나라의 손실이라고 설득했으나 제갈량은 듣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미 전쟁이 끝났는데 너무 가혹한 처사라고 만류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