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놈 나온다. / 국회의원 나온다. / 곱사같이 굽은 허리, 조조같이 가는 실눈, / 가래끓는 목소리로 웅숭거리며 나온다 / 털투성이 몽둥이에 혁명공약 휘휘감고 혁명공약 모자쓰고 혁명공약 배지차고” 지난 5월 작고한 김지하 시인의 담시(譚詩) '오적(五賊)'에 나오는 구절이다. 1970년 발표된 이 시에서 오적은 재벌과 국회의원, 장성, 장차관, 고급 공무원 등을 일컫는다. 오적에 각각 개견(犬) 자를 붙인 한자 조어로 풍자의 극치를 이룬 이 담시가 실린 책은 오랫동안 불온서적이었다. 대학 시절 선배에게 복사본으로 받아 읽고는 낯섦에서 오는 충격을 가눌 길이 없었다. 미끈한 언어의 나열을 시라고 생각했던 고정 관념이 흔들렸으나 형언할 길 없는 쾌감도 있었다. 판소리를 현재화한 담시의 형식미를 따져볼 겨를도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은 무엇보다 말을 막는 시대 탓이 컸다. 광주 학살을 통해 대통령이 된 전두환은 문제 제기적인 모든 말을 유언비어로 몰아 족쇄 채우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말은 봄날 대나무 죽순 뾰족하게 솟듯이 여기저기서 삐져나왔다. "전두환을 ×× 죽이자", "전두환 ×새끼", "광주 원흉 대머리", "피는 피를 부른다", "네
우리는 순수하기에 우리 집단을 보호하기 위해서 주적(主敵)을 설정하고 폭력의 정당성을 내세울 때 도덕은 세 가치 차원에서 패배하게 된다. 첫 번째 단계는 비인간화(dehumanization)이다. 곧 주적 집단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얼굴이 빨갛고 뿔이 달린 도깨비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콘라트 로렌츠는 나중에 동물학 연구로 노벨상을 받았는데, 인종의 정치학을 위한 나치의 업무를 위한 논문에서 결함이 있는 구성원들을 갖고 있는 국가는 악성 종양을 지닌 개인과 같다고 썼다. 유대인들을 인류의 몸에 붙은 썩은 종양과 같다고 본 것이다.(90-92쪽) 남한의 국가보안법은 북조선을 반국가불법단체로 명명함으로 한반도라는 몸에서 제거해야 할 암으로 보고 있다. 두 번째 단계는 자신이 희생자라는 의식(victimhood)을 확립하는 것이다. 적들에게서 인간성을 박탈하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가 자행하려는 악에 대한 책임감을 넘겨줄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그러기위해 스스로를 희생자로 정의한다. 따라서 살인을 하고 심지어 종족학살을 자행하는 것은 단순히 자기방어 행위가 된다. 제프리 허프가 지적한 것처럼, 히틀러와 그의 선전 요원들은 서로 완전히 모순되는 두…
감당하기 힘든 패배나 위기를 맞이할 적에 특별한 용단을 보여줌으로써 난관을 헤쳐나가는 것은 인간사회에서 종종 목도되는 일이지요. 비상의 시기에 비상의 방법을 쓰는 것은 어쩌면 요긴한 지혜일 거예요. 그러나 작금 이 나라 정치에 걸핏하면 등장하는 ‘비대위(비상대책위원회)’ 정치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걸까요? 임금이 질병이나 고령으로 정사를 제대로 돌볼 수 없게 될 때 누군가 왕 대신 정사를 돌보는 것을 대리청정(代理聽政)이라고 하지요. 또 임금이 어린 나이로 즉위했을 때 왕대비나 대왕대비가 정사를 돌보던 일을 수렴청정(垂簾聽政)이라고 해요. 그런데 대리청정이나 수렴청정의 이면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추악한 모략들이 수두룩 일어나 나라를 풍전등화로 몰아넣은 역사도 없지 않았어요. 지난해 재보궐 선거에서부터 대선·지방선거에서 내리 3연패를 당한 더불어민주당이 ‘비대위’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는 건 다소 납득이 가는 일이에요. 그러나 윤석열 정부 출범 80여 일 만에 ‘비대위 체제’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을 정도로 집권 여당 국민의힘이 난파 직전에 몰린 일은 희한한 사태예요. 더욱이 연일 쏟아지는 내홍 파열음의 진원이 당권을 장악하기 위한 아귀다툼이라니 참으로 어이가 없는
아버지가 내게 주신 문화유산은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이다. 선을 쌓는 집에 경사가 있고, 조상의 적덕으로 자손이 받게 되는 경사를 생각하라는 뜻이다.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악한 끝은 없어도 선한 끝은 있다’고. 그러니 힘들어도 착하게 살면 ‘나도 이만하면 살겠구나!’ 싶을 때가 온다고 다독거려 주었다. 조선 시대 사대부들은 논어 맹자 노자를 줄줄 외울 정도의 독서광이었다. 동양문화의 핵이 되는 인문학 공부는 자존심을 도도히 지니게 했다. 쩨쩨하거나 천박한 일은 하지 않았다. 체면을 매우 중시했으며 수신하고 가정을 건사한 뒤 사회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았다. 기원전 343년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로부터 열세 살 된 아들의 교육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 왕실에서 최고의 대접을 받으며 훗날 알렉산더 대왕으로 불리게 되는 알렉산드로스 3세를 7년 동안 가르쳤다. 그 결과 알렉산더 대왕은 아리스토텔레스를 만났기에 전쟁터에서도 책을 읽는 알렉산더의 두뇌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1807년, 아리스토텔레스의 알렉산더 대왕 교육법 중 하나인 ‘논박(elenctic)’은 크리스토퍼 랭델 교수에 의해 1924
북한은 국가비상방역사태속에서 코로나 19 상황을 관리하고 있다. 최근 들어 유열자가 발생하지 않다고 발표하고 있지만 북한만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코로나 청정지역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6.25전쟁이 발발한 지 72주년이 되는 만큼 북한주민중 6.25전쟁 참여 노병들의 연령은 80에서 90대가 대부분이다. 고령 전쟁 노병들을 평양으로 초청해서 대대적인 행사에 참여시킨다는 것은 30도가 넘는 한여름 폭염과 코로나 상황에서는 결코 자연스럽지가 못하다. 이렇게 해서라도 북한 주민의 혁명정신과 전투의식을 고양해서 당면한 어려움을 헤쳐나가고자 하는 북한 지도부의 현실과 괴리된 접근이 매우 아쉽다. 북한은 2018년 미북정상회담이후 미국에 대한 유화적 태도를 보여왔으나, 2019년 하노이 미북회담 결렬이후 ‘강대강’ ‘선대선’의 병행적 입장으로 변화하였고, 금년 들어서는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공개적이고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2018년이래 하지 않았던 ‘반미투쟁 월간행사’를 전국단위에서 진행하고 6·25 전쟁이 미제국주의자들의 침략에 의한 ‘보병소총과 원자탄과의 대결’이었고 지금도 미국은 북한의 생존권과 발전권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는 선전하고 있다. 이와함께 북한
시조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의 작자(作者) 조선 문신 남구만(1629~1711)이 관련된 이야기다. 문장과 경사(經史·경서와 사기)에 밝았고 영의정까지 지낸 당시의 ‘셀럽’이다. 전에 어디선가 들었던 간단한 줄거리와 그것의 취지(趣旨)다. 하루는 낚시를 하는데 물고기가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다. 대조적으로 조과(釣果)가 화끈한 곁의 한 낚시꾼에게 남구만이 물었다. 그 문답(問答)의 기록이 남았다. “똑같이 낚싯대를 던지는데 물고기가 그대의 미끼만 잇따라 무는 이유가 무엇인가? 비법을 가르쳐주게나.”(남구만) “법(法)을 일러드리기는 어렵지 않으나, 묘(妙)를 가르치는 것은 어렵소이다.”(낚시꾼) 남구만이 그 대답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이겠다. 요즘 말로 ‘의미부여’다. 그가 어떤 의도를 표현하기 위해 비유(比喩)의 방법으로 글을 지어냈을 개연성(蓋然性)도 있다. 세상 이치이기도 하리라. 낚시의 방법은 같아도 경험이 주는 절묘한 경지가 어찌 같을까? ‘법과 원칙’을 늘 내세우는 대통령과 ‘완장질’로 헛발질 연발하며 급전직하 지지율에 당황하는 여당의 대표 직무대행(당시)을 생각한다. 낚시의 ‘일반론’은 法이고 물고기를 잘 낚는 ‘비법’은 妙일…
매미가 울기 시작한다. 6년을 땅속 칩거하다가 밖으로 나와 허물을 벗으면 매미가 된다. 그리곤 짝을 찾느라 저리도 자지러지게 울어댄다. 본능에 따라 울고, 짝을 만나면 사랑을 하고 그러다가 어길 수 없는 때가 되면 사라진다. 언제 아플 시간이 있을까. 사랑하기도 부족한 시간에. 그때는 그랬다. 힘이 없었잖아. 그리 말하면 할 말이 없지만 미물같은 매미도 할 일은 다 하고 사라진다. 너덜거리는 시간을 뒤져봐야 한숨만 나오지만 그래도 도대체 머리가, 아니 심장이 왜 아픈지 아무리 최고의 병원 의사를 찾아도 진단도 처방도 못한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혹여 북쪽의 지도자는 이러한 변명은 하지 말았으면. 옥수수도 여물어 가는데, 나만은 살아 있어 매미 울음소리가 덧없이 커지는 8월이다. 태어난 고향이라고 부모 형제의 소식은 알고 싶어 생명줄 잡고 이 글이나마 쓰는 것이니 북쪽도 남쪽도 내 고향이요, 광복을 위해 싸운 사람들은 분단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되었고, 어디서 살든지 배부르면 고향이지 편한 생각도 하지만. 너무도 오랜 시간 지나 잊혀도 그놈의 매미소리 때문에 옥수수 알이 목에 걸린다. ‘멀리서 왔다고 하면 안되갓구나’ 평양냉면에 평양 소주에 화
1.1942년 1월 유럽의 모든 유대인들을 멸절시키기로 ‘최종해결책’을 결정한 반제회의 참가자들 중 절반 이상이 의학박사였거나 박사학위 소지자들이었고, 친위대 장교들의 41%가 대학졸업자들로서 당시 전체 인구의 대학졸업자 비율은 2%에 불과했다. 줄리앙 벤다는 그의 유명한 책 『지성인들의 배반』에서, 어떻게 공적 담론이 “정치적 증오심을 조장하는 지적인 조직”으로 둔갑하는지를 보여주었다. 흑백이원론이 문화를 휩쓸기 시작하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은 거의 없다. 2. 히틀러가 세운 나치즘은 완벽히 병적인 이원론이었다. 빛의 자녀들은 독일 민족이었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아리안 족이었다. 어둠의 자식들은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악의 세력이며, 독일을 파괴하는 자들이며, 독일 민족의 순수성을 더럽히는 자들, 독일문화를 타락시키고 그 사기를 저하시키는 자들이었다. 3. 인간의 사회성 논리 중 하나는 한 집단의 내적 응집력은 그 집단이 외부에서 받는 위협의 정도에 정비례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특히 분열이 심한 국가를 통일하려는 자는 적을 악마화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적을 만들어서라도 악마화해야만 한다. 4. 정치지도자들이 일단 적을 명시하고, 선택된
『판타 레이』. 기계공학을 전공한 민태기 박사의 책 제목이다. 공학자의 책이지만, 인문학으로서의 성격이 강한 명품 걸작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revolution)에 관한 새로운 발견은 데카르트를 거쳐 뉴턴 역학을 탄생시켰고, 뉴턴 역학은 열역학과 전자기학으로 이어졌다. 코페르니쿠스의 업적은 이렇게 역사에 미친 충격이 컸다. 하여 revolution은 나중에 혁명을 의미하는 단어가 되었다. 저자인 민태기 박사는 이 이론들이 별개가 아니라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잃어버린 고리’를 ‘판타 레이’라는 개념에서 찾는다. 판타 레이(Panta rhei)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남긴 말로 ‘만물은 유전한다.’ 라는 뜻이다. 잃어버린 고리를 연결하는 과정에서는 과학과 경제, 사상, 철학, 역사, 음악, 미술 등과 관련된 주옥같은 이야기와 유명인사들의 삶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볼륨은 꽤 되지만 읽다 보면 책을 덮을 수 없을 만큼 재미가 쏠쏠하다. 17세기 유럽에는 커피하우스가 곳곳에서 성업 중이었다. 커피하우스는 신흥 부르주아 지식인들의 사교장이자 토론장이었다. 커피하우스 출입이 금지된 귀부인 여성들은 따로 살롱을 개설해 새
-인류세, 여기서 마무리 되는가? 인간의 미래는 어디에 달려 있을까? 오늘날 기후위기를 인류 전체가 마주한 가장 위태로운 사건으로 여기는 절박감은 한국 사회에서는 의외로 강하지 못하다. 기후정치는 우선 순위의 상위권에 들어가지 않는다. 자신이 살아가는 기본이 무너지고 있는데 "그냥 어떻게 되겠지" 한다. 인간이 지구를 지배해온 시대가 마감된다는 ‘인류세(Anthropocene)의 종말’이 경고되고 있어도 꿈적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들어온 문명이 도리어 인간을 파멸시킬 수 있다는 디스토피아(Distopia)의 도래에 대한 걱정은 소수의 기우(杞憂)로 취급된다. 과연 그럴까? 최근의 제임스 웹(James Webb) 우주 망원경이 보여주는 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별이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지 다시 깨우친다. 오랫동안 우리의 우주 시력(視力)을 받쳐준 허블 망원경의 차원을 넘어 우주의 탄생과 우주에 새겨진 생멸(生滅)의 순간들을 포착한 사진들은 지구의 나이 45억년과 맞먹는 시간을 거쳐온 빛의 풍경을 보여준다. 칼 세이건(Carl Sagon)이 1990년 보이저(Voyager) 1호가 찍은 지구를 보고 “창백하고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고 불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