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부의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처사에 대해 처음엔 매우 언짢았었다. 그런데 개방된 청와대에 우리 국민들이 즐겁게 방문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전임 정부도 추진했던 ‘청와대를 국민에게로’ 란 구호의 현실화는 윤 대통령의 결단과 추진력이었기 때문이다. 북한 핵문제 해결의 열쇠를 대미종속의 극복에서 찾는 필자로서는 윤 대통령의 저런 결단과 추진력이라면 기대를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세계패권의 유지가 대외정책의 핵심인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핵국가화를 인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악의 축으로 생각하는 북한과 거래로 NPT(핵비확산조약)체제의 약화를 가져올 정책을 선택할 리도 없다는 사실은, 지난 2018년 싱가포르 회담에 이어 하노이 회담에서의 미국 행태를 보며 우리가 잘 알 수 있었다. 북한이 원하는, ‘협상을 통한 핵문제 해결’이 아니라 북한의 굴복을 요구하기 위한 북미정상회담이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과 9.19 평양남북정상회담을 보며, 이제 핵문제도 해결되고 남북관계도 획기적으로 발전하여 통일의 날도 그리 멀지 않다는 꿈을 꾸며 하노이 회담을 기대했었다. 전임 민주당정권의 북한관련 대미정책의 핵심은 북미
북한은 2020년 코로나19 발생이후 육로 해로 하늘길을 스스로 차단하면서 감염자가 발생하지 않은 청정국이라고 자랑하다가 5.12 최초로 평양에서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환자가 나온 국가 최중대 비상사건이 발생하였다고 공개하였다. 이후 방역대전, 건국이래 최대동란 등의 표현을 하면서 전국 모든 도 시 군을 봉쇄하고 사업소별 생활단위별 격폐된 생활을 하면서 전주민 집중 검병과 발열자에 대한 격리 및 치료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전염성이 강한 코로나 19 특성으로 매일 수십만명의 확진자와 함께 사망자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북한의 열악한 보건환경과 백신을 포함한 해열제 등 의약품이 충분치 않은 상황을 감안할 때 북한이 강조하는 자력갱생의 정신 즉, 자체적으로 코로나19라는 역병을 잠재우는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북한이 코로나19 청정국이라고 주장할 때 국제사회는 북한이 체제 선전차원에서 하는 주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4.25 북한인민군 창건 90주년 기념행사에서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고 수만명이 집단 행사를 하는 북한을 보면서 북한이 정말 코로나 역병에서 벗어난게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북한은 돌연 2년여 넘는 기간동안 인정하지 않았던 코로
무릇 참다운 사상, 살아 있는 사상은, 기르는 힘과 변화하는 힘을 갖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그 변화는 서서히 나무처럼 변하는 것이지 구름처럼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다. (존 러스킨) 진정으로 위대한 사업은 모두 서서히 눈에 띄지 않게 달성된다. (세네카) 인생은 영혼의 탄생이어야 한다. 동물적인 것이 인간화되고, 육체가 정신으로 거듭나고, 양초가 빛과 열로 바뀌듯 육체적 활동이 정신적 활동으로, 의식으로, 이성으로, 정의로, 관용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숭고한 연금술은 지상에서의 우리의 존재를 정당화한다. 여기에 우리의 사명이 있고 우리의 존엄성이 있다. (아미엘) 병아리가 웅크리고 있는 달걀을 깰 때, 병아리의 목숨에 미치는 위태로움을 감수해야 하듯, 사람도 다른 사람의 영혼에 미치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는 그를 자유롭게 할 수 없다. 모든 영혼은 일정한 단계까지 성장하면 스스로 자신의 쇠사슬을 끊는다. (류시 말로리) 생명은 끊임없는 기적이다. 생명의 성장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자연계의 가장 신비로운 비밀을 아는 것이다. (류시 말로리) 자신은 성공했다는 생각만큼 도덕적 완성에 해로운 것은 없다. 다행히도 진정한 도덕적 성장의 길은 눈에
얼마 전에는 스승의 날이었다. 매년 이맘때쯤이 되면 몇몇 아이들이 편지를 써서 책상 위에 두거나 수줍게 전해준다. 편지의 내용은 ‘가르쳐주셔서 감사하다,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하겠다’로 압축할 수 있다. 흔한 말들이지만 평소에 데면데면하게 인사하던 사춘기 아이들이 사랑한다, 감사하다는 말을 아낌없이 써 놓은 걸 보면 괜히 마음이 찡해온다.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스승의 날이었지만, 최근에는 형식적으로 이름만 남아있는 스승의 날을 ‘교육의 날’로 바꾸자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교사가 나서서 스승의 날 기념행사를 진행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교사들이 쉴 수 있는 날도 아니기에 현실에 맞게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스승의 날 기념 행사는커녕 교사들이 디지털 범죄의 피해자가 되거나 감정노동에 못 이겨 정신과나 상담을 찾는 현실에 맞는 건 ‘감정노동자 보호법’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은 악성 민원인으로부터 무방비 상태에 놓여있는 콜센터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법이 시행된지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법의 실효성에 의문이 있을 정도로 악성 민원인들이 활개를 친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보인다. 다만, 법이 생겼으므로 악성 민원인 등장 시 대응
이번 지방선거에서 반드시 실현하겠다고 마음먹은 오랜 꿈이 있었다. 경향각지의 교육전문가(교사나 학부모·학생활동가) 중 최소 50명이 광역의회나 기초의회의 교육시민후보로 출마해서 당선되도록 조직적으로 돕는 꿈이 그것이다. 다른 일로 내가 꾸물거린 탓에 시점을 놓쳐 나의 오랜 꿈이 이번에는 무산되기에 이르렀다. 교육전문가에 의한 지방교육정치의 개막을 또 4년이나 속절없이 미루게 돼 마음이 쓰라리고 아프다. 다행히 오랜 교직경력과 빛나는 활동이력을 가진 이창국 선생이 동대문구 4인 선거구의 구의원후보로 출마를 결심했노라고 알려 와서 기꺼이 후원회장을 맡았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4인, 5인 선거구를 시험 삼아 11군데만 실시해보기로 여야가 합의했는데 마침 사는 곳이 신설 4인 선거구가 된 것이다. 시작부터 나쁘지 않다. 당선자를 넷이나 뽑는 4인 선거구라도 무소속 시민후보 입장에선 조금도 만만하지 않다. 거대양당이 최소한 2인, 보통 3인씩을 공천한다. 양당후보만 해도 최소한 4, 5명이고 진보정당 후보도 두엇은 된다. 이런 구도에서 10%(1600표)를 득표해야 4위로 당선된다. 4인 선거구라도 유권자는 1표만 행사한다. 유권자 입장에선 누굴 뽑을지 더 고민된다.
순수한 의문에는 순수하기 때문에 더 강렬한 분노가 예비되어 있다. 법기술의 무법으로 정의를 인멸한 죄, 뿌리도 없이 꽃을 피운 죄, 정직하게 답하지 않는다면 너는 순식간에 진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우리는 다만 의아할 뿐이다. 잠시 너의 바닥 없는 허공을 인정하노니 답하라.
- 어두운 숲속의 출구 찾기 “내 인생의 여정(旅程)을 가던 중에 나는 어둡고 캄캄한 숲속에 갇힌 내 자신을 보았네. 그만 길을 잃고 말았지 뭔가.” 단테의 『신곡』 그 첫 문장이다. 이렇게 헤매고 있던 주인공 앞에 야수(野獸) 세 마리가 나타나 그를 두렵게 한다. 표범과 사자 그리고 늑대. 그는 과연 출구를 찾아 자신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까? 검찰개혁의 선두에 섰다가 정치적 참화를 겪은 조국과 그의 가족 이야기를 다룬 '그대가 조국'의 마지막 장면은 바로 이 단테의 『신곡』 첫 대목을 닮아있다. 산을 오른 그가 어느 숲길에서 길을 찾는다. 그런데 그것은 조국 한 개인의 출구로 그치지 않는다. 오늘날 이 시대 전체가 탐색의 임무를 안게 된 과제다. 다큐는 2시간의 길이다. 이승준 감독의 작품으로 총연출에 진모영 감독, 제작에 정상진, 강병석 PD와 양희 크리에이비트 프로듀서등이 힘을 합했다. 『조국백서』, 『조국의 시간』을 거쳐 이제 입체적 영상이 우리 앞에 온 것이다. 시사회에 초대를 받아 보는 내내 모르는 내용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숨이 막히고 고통스러웠다. 한 시대를 제대로 살아내는 것은 이토록 쉽지 않다. 영화는 냉정할 만큼 감정의 여지를 최대한 빼
자신의 영혼을 정화하고 의심에서 해방된 사람들에게 하늘은 땅보다 가깝다. 육체의 모든 감각으로 얻을 수 있는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해도, 만약 그들이 사물의 참다운 본질을 모른다면 그 지식 속에서 아무런 유익함도 찾지 못할 것이다. 온갖 사물에 대한 참다운 지식은, 그 속에 사물 자체로서의 참다운 본질이 숨어 있음을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 (인도의 쿠랄) 인간은 강한 존재이며, 자기 내부에 있는 영혼의 힘을 아는 자, 자기 밖에서 힘을 찾을 때는 무력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자신의 육체와 영혼을 통제함으로써 진정한 지배자가 되어, 한눈팔지 않고 전진해 목표를 달성한다. 그는 자신의 두 발로 힘차게 서 있기 때문에 당연히 땅바닥에 쓰러진 자보다 강한 사람이다. (에머슨) 어떻게 신을 알고 있느냐고 묻거든 신이 내 마음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라.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인간은 완전히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 이 시공을 초월한 존재자를 육체의 눈이 아니라 영혼의 눈으로 보라. 자기 자신을 모르는 자가 어찌 신을 알 수 있겠는가? 진정으로 자신을 아는 것이 바로 신을 아는 것이다. (페르시아 금언) 사람들은 장사를 하고, 계
“1980년 5월에 지금처럼 휴대전화가 있고, 인터넷이 있고, SNS가 발달했다면, 신군부가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지 못했을 겁니다.” 나경택 기자는 지금도 5월이면 가슴이 먹먹하다고 말했다. 기자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후회는 쉽게 잊히지 않는 듯했다. 광주 지역 대부분의 기자들이 그랬듯 그 참상을 목격하고도 신문에 기사 한 줄, 사진 한 장을 싣지 못했다. 신군부의 보도통제 때문이었다. TBS가 5·18민주화운동 42주년 특집으로 제작한 ‘오일팔 증명사진관’에서 나 기자는 당시 광주의 상황을 밖으로 알릴 수만 있었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광주는 고립무원의 도시였다. 광주와 전남 지역 외 다른 곳에서는 광주의 진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정부는 광주시민을 무자비한 폭도로 매도했다. 나 기자는 건물에 숨어 촬영을 계속했다. 옷 안에 카메라를 숨기고 다녔다. 건물 옥상에서 군용헬기가 자신을 조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황급히 숨었던 아찔한 상황도 있었다. 그는 계엄군이 시민을 곤봉으로 구타하는 장면을 찍었다. 광주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는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필름과 사진을 잃을 수 없었다.
지난 5월 19일은 베트남의 정신적 지주인 호찌민이 태어난 날이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지 53년이 지났지만 바딘광장에 있는 그의 영묘에는 참배객들의 줄이 끊어지지 않는다. 호찌민에 관한 글을 여러 번 쓴 적이 있는 내게 베트남통신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다. 한국 작가로서 호찌민이 지닌 가장 큰 가치와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첫 번째 질문이었다.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호찌민은 자신의 말과 행동이 완전히 일치한 사람이었다. 인민을 위한다는 지도자는 많았지만 인민을 위해 산 지도자는 매우 드물었다. 호찌민은 그 드문 지도자 중에서도 매우 특별했다.” 내가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베트남에서 살았던 여섯 개의 집에 모두 가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태어난 응애안의 작은 시골집은 베트남의 전형적인 농가다. 베트남의 최고액권인 50만 동 지폐 뒷면에 찍힌 야자나무 지붕의 소박한 바로 그 집이다. 내가 가본 호치민의 두 번째 집은 베트남 남부에 있는 해변도시 판티엣의 야간학교였다. 그는 베트남을 떠나기 전에 늑맘(젓갈)생산지로 유명한 판티엣의 젓갈공장 부설 야간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내가 오래전 비 오는 날 산길을 달려 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