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매서운 추위에 온 나라가 꽁꽁 얼었다. 겨울 초입에 내린 폭설이 아직도 녹지 않고 양지와 음지를 가르며 얼룩무늬를 만들고 있다. 세월에 가속도가 붙어, 새 달력을 걸기가 무섭게 택시 미터기처럼 숫자가 바뀐다. 1월 말일이 설날이라고 표시되어 있지만, 별다른 느낌이 없다. 귀성 차들이 막히기 전에 부모님 산소에 한 번 다녀오면 그만이다. 부모님이 기독교인이라 차례가 없어, 평소와 다르지 않은 날이다. 두 아들이 외국에 살고 있고 세뱃돈 달라고 손 내밀 손자도 없다. 설날이나 추석이면 더욱 짙은 외로움이 온 집안을 싸하게 채운다. 은퇴 후, 수도권의 농촌마을에 자리 잡아 수년째 살고 있다. 옛 고향은 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사람들은 물론 산천조차 낯설어진 지 오래다. 이곳도 설날이면 이웃집 마당에 자녀들의 자동차가 하루쯤 머물다 가는 것 외에는, 어디에도 다른 낌새는 느껴지지 않는다. 대보름날 마을 어르신들이 회관에 모여 식사와 술, 윷놀이로 하루를 즐기는 정도이다. 설날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아내와 산책을 나서지만, 먼 그리움은 어쩌지 못한다. 6·25 동란으로 부서질 수 있는 것들은 다 부서지고 불탔지만, 오직 땅은 남아있어 다시 농사를…
영화 ‘변호인’이 1천만 관객을 향해 가고 있다. 이 영화는 송강호라는 톱스타가 주연한 영화인 것에 비해 개봉 전에는 세간에 노출되지 않았다. 제작발표회는 물론 마케팅 차원에서 하는 시사회도 비교적 조용하게 치러졌다. 이것은 이 영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화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지난 대선 이후 계속된 NLL파쟁으로 인한 정치권의 분위기를 고려할 때 제작진은 제작 초기 단계부터 배급까지 민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변호인’은 우려와 달리 개봉 후 뜨거운 호평을 받으며 감동적인 울림으로 퍼져나갔다. 며칠 전 먼저 보고 온 아내와 딸의 ‘아주 좋았다’라는 말을 듣고, 이 영화의 감독에게 동업자로서 약간의 질투심과 기대감을 함께 안고, 나도 영화를 보러갔다.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했으며 형식은 평범했다. 새로울 것이 없는 영화였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뜨거운 울림에 진동된 이유 중의 하나는 간결한 연출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스토리 전개의 깔끔함과 긴장감을 끌고 가는 완급, 법정 대치 장면의 혈관이 터질 듯한 격렬함 등은 정확하게 보여줄 만큼만 보이고, 다음 스토리는 어떻게 되나
전통사회에서는 자손을 낳아 세대를 잇는 것이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임신하는 것을 첫 번째 과제로 여겼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기가 생기게 해달라는 다양한 기원문화가 있어왔다. 우리에게는 ‘삼신’ 신앙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환인, 환웅, 환검의 삼신상제(三神上帝)는 아기를 점지하는 일에는 유독 까다로워 정성이 하늘에 닿도록 몸과 마음가짐을 바르게 해야 귀한 새 생명을 준다고 해서 합방도 길일을 택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사(後嗣) 없으면 동양에선 양자(養子)를 들이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대를 이어갔다. 서양도 마찬가지다. 함무라비 법전에 따르면 기원전 15∼16세기경 고대 중동에서는 결혼한 여인이 갑자기 죽거나 불임인 경우엔 여종을 대리모(代理母)로 하는 ‘쉬프카’라는 관습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남자가 불임이거나 대를 잇지 못하고 죽는 경우 시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후사를 잇게 해주는 ‘레비리트’라는 관습이 있었다. 방법만 바뀌었을 뿐 현대에 들어서도 대리모는 여전하다. 불임 부부의 체외 수정란을 대리모의 자궁에 착상시켜 아이를 낳아줄 경우 사례비를 주는 게
정치인들의 식언(食言)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이달 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국회정치개혁특위 활동이 예상했던 대로 지지부진하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문제를 놓고 여야가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지난 대선에서 양당이 공약으로 내건 사항이다. 그동안 폐해를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입장을 바꿔 대책 없는 폐지는 안 된다고 반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위헌 소지를 들고 나왔다. 민주당은 공약을 지키는 것이 기본이라며 당장 기초선거 공천제 폐지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국민 입장에서도 의견이 엇갈릴 수 있겠지만 폐지가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선거공영제와 정당공천제의 장단점을 익히 알고 있는 현실에서 각자의 주장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기초선거에서까지 정당공천을 고집하는 것은 풀뿌리 지방자치를 중앙정치에 예속하려는 발상일 뿐이다. 많은 국민들의 생각도 기초선거 공천폐지가 옳다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에서도 기초의회는 우려했던 대로 특정 정당 공천을 받고 등원한 기초의원들은 공천권을 행사한 국회의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음을 인정하는 바다. 더욱 한심한 것은 기초선거 공천제 폐지
봅슬레이는 방향을 조종할 수 있는 썰매를 타고 눈과 얼음으로 만든 트랙을 통과하는 경기이다. 활주할 때 평균 시속은 135㎞이며, 커브를 돌 때의 압력은 중력의 4배에 가깝다고 한다. TV 화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스피드를 느끼게 하니 작은 썰매를 타고 내달리는 선수들이 느끼는 속도감이 어떨지 짐작된다. 이 종목은 1924년 제1회 동계올림픽경기대회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종목이었다. 그런데 1994년 개봉한 영화 ‘쿨 러닝’ 이후 봅슬레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쿨 러닝’은 겨울이 없기 때문에 봅슬레이 경험이 전무한 아프리카 자메이카 선수들의 도전기를 담았다. 봅슬레이가 고장 나 사고를 당하자 선수들이 썰매를 어깨에 메고 결승점을 통과하는 장면은 감동을 줬다. 겨울이 있는 한국에서도 봅슬레이는 오랫동안 미개척 분야였다. 1989년 국제루지연맹(FIL)에 가입했으나 선수가 없었다. 1999년 현 강광배 한국체대 교수가 국제봅슬레이연맹에 등록하면서 실제적인 국내 종목으로 자리를 잡았고, 2009년 초 한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rsquo
/조영여 히! 하고 헤- 하면 하루 다 간다 뭘 그리 이고 지고 살았을까 몰래 훔쳐 내 것인 양 품어온 것들 미련 없이 버린다 헐거워진 배낭 고개 들어 하늘이 보인다 곁에 있는 당신 얼굴이 오래도록 보인다 --<거와 미> 동인 시집 ‘하루, 다 간다’(2013, 심지)에서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 했던 인생이 이제 하루처럼 여겨집니다. 그만큼 시간의 걸음걸이는 분주합니다. 지금 바쁘지 않은 이가 없습니다. 모두들 모처에서 날이 저물도록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두교의 좀비처럼 누군가 우리의 영혼을 저당잡고 빼앗지 않고서야 우리가 이렇게 의지 없이 허허로운 도시를 헤매고 다니겠습니까. 그런데 본래 우리의 삶은 신에게서 훔쳐온 프로메테우스의 불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입니다. 그러므로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될 이유가 없습니다. 하늘을 쳐다보지 못하고 사는 것은 죄지은 자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되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깨어나 고개 들면 지워졌던 당신의 얼굴이 되살아날 것입니다.…
사이토 준이치에 따르면 일본 사회에서 공공성은 관제용어의 하나였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서도 국가의 공공정책 독점이라는 측면에서 비슷하게 발견됐다. 신자유주의가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면서 ‘국가는 무능하고 고비용적이고, 시장은 유능하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패러다임으로 국가영역의 재화 및 서비스가 민간영역으로 이전되기 시작했다. 이것이 사유화(Privatization)로 명명되었고, 한국에서는 민영화로 번역되면서 개념상의 모호성이 존재한다. 사유화는 공공부문의 주체를 매각 등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으로 전환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공재의 ‘상품화’ 또는 ‘영리화’와 같은 맥락까지 포괄하는 국가의 시장화(marketization of state) 전략으로 시민의 정치적 성격을 훼손해 왔다. 민영화로 개념을 사용할 경우 공공재의 상업화나 영리화 부분이 부각되기 어렵다. 국제적으로 사유화는 시장경쟁의 요소를 도입하는 모든 유형까지 포괄하고 있다. 사유화의 다양한 유형을 살펴보면 우선, 정부의 자산매각을 통한 탈국유화(denationalization)로 공공부문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이나 자산을…
2007년부터 화성 화산동에서는 역사적인 발굴이 두 차례 이루어졌다. 하나는 2004년부터 3년간 경기문화재연구원 주도로 진행된 정조대왕의 초장지 재실터 발굴이고, 나머지 하나는 2012년 12월에 조선왕릉의 핵심 포인트인 능침부분이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의해 발굴됐다. 이로써 초장지의 면모가 드러났다. 정조대왕은 조선 최대의 비극으로 일컬어지는 임오화변(壬午禍變)의 희생자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현재 서울시립대 뒷산인 배봉산에 자리 잡았던 영우원에서 조선 3대 길지로 알려진 옛 수원부 자리로 옮겨 현륭원(현 융릉)을 조성한 것이다. 그리고 억울하게 희생된 아버지의 영혼을 달래고 능을 보호하기 위한 원찰 용주사와 한국 특유의 풍수지리관인 비보풍수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만년제를 설치하였다. 더불어, 정조대왕의 초장지가 있다. 정조대왕은 살아생전 13차례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살펴보면서 자신의 능침자리를 직접 낙점하였다. 이는 사도세자 사후 할아버지 영조의 임오화변에 대한 함구령과 동시에 상복을 입을 수 없도록 하였기에, 죽어서나마 유교의 최대 효의 실천방법인 시묘효행을 완성하려는 의도였다. 1800년 정조대왕의 승하 후 신하들은 정조대왕이 직접 낙점한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