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왜 만물의 영장인가? 언어가 있고, 이성(理性)이 있고, 인격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서로 조심성 있는 대화로 관계 형성을 하며 인간답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언론 매체를 통하여 시청되는 정치권의 막말에 국민들은 한탄과 실망을 금치 못하고 있다. 배가 고픈 것은 참아도 남이 잘 되는 것을 배 아파하는 것은 못 참는다고 하는 말이 있다. 우리가 생각하기론 건전한 생산적 반대가 아닌 시기 질투에서, 심술이 나서 하는 지나친 욕설, 저주의 말로 들린다. 얼마전 논란이 된 ‘귀태(鬼胎)’ 발언으로부터 ‘박씨 집안’, ‘당신’ 운운은 인격자의 도를 넘은 망언이라 아니할 수 없다. 지난 대선 때 드러난 ‘그×, 서슬이 퍼래서 사과도 하지 않고 얼렁뚱땅’ 등은 시정잡배가 싸울 때도, 아무리 분해도 그런 욕은 안 한다. 심지어 국민을 대표하는 고위 지도자급에서 이런 저질적 말을 하다니, 아무리 분하고 샘이 난들 이런 말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는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혹 작게는 그 당사자 집안…
“거친 무덤에도 해마다 봄빛은 찾아와/꽃으로 단장하니 풀로 치마 둘렀네./이 많은 꽃다운 혼들 아직 흩어지지 않고/오늘도 비 되고 구름이 되네.” 석주 권필의 한시 속에서는 생전에 아름다웠던 기생이 묻힌 선연동에 꽃다운 혼들이 비와 구름으로 변신한다. 조선시대 평양 기생은 죽으면 모두 평양 북쪽의 칠성문 밖에 장사를 지냈다. 그 묘지를 ‘선연동’, 즉 기생의 ‘곱고 예쁜 고을’이라 불렀다. 시인들에 의해서 스토리텔링이 되어 평양기생의 것만이 아니라, 조선 기생의 북망산까지 확대된다. 이러한 스토리텔링 덕택에 이곳을 지나는 시인들은 반드시 시를 남겼다. 선연동의 스토리텔링은 시인들의 꿈과 감수성을 자극하는 훌륭한 도구인 셈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정보통신의 발달로 매체의 변화에 적응하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여기에 대중 사회의 관심을 끄는 문화 코드 중에 하나로 기생을 빼놓을 수 없다. 누구나 잘 안다고 여기는 것 중에 기생도 빠지지 않지만 과연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을까. 그저 전해 들었을 뿐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가 전부일 수도 있다. 여러 문화원형 중에서 디지털 콘텐츠의 대상으로 기생은 특히…
수입이 크게 줄고 빚이 늘어나도 어떻게든 아이들 교육 지출은 최대한 줄이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게 한국인의 인지상정이다. 용인시가 내년 예산에서 교육관련 예산을 크게 삭감할 예정이라고 한다. 경전철 관련 부채 7천787억원을 갚는 문제 때문이다. 안전행정부는 지난해 4월 용인시에 5천153억원 규모의 지방채 발행을 승인해주면서 향후 초긴축 예산을 짜도록 조건을 달았고, 특히 향후 3년간 교육예산을 삭감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안행부와 용인시는 착각을 해도 보통 착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시가 삭감하려고 하는 교육예산은 주로 학교시설 개선과 사회적 약자 계층의 교육과 관련된 항목이다. 당장 교육환경개선사업비가 73억원에서 24억원으로 3분의 1 줄어든다. 학교 건물과 시설이 낡고 부서져도 고치는 게 3배나 힘들어진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오래된 학교가 많은 처인구의 교육환경부터 나빠질 수밖에 없고 학생들의 안전도 위험해진다. 또한 저소득층 자녀 돌봄교육 예산이 반토막 나고, 초등학교 병설유치원 교사 인건비 지원이 끊긴다. 중증장애인 관련 교육예산도 전액 삭감될 위기에 놓였다. 일부 무책임한 어른들이 저질러 놓은 일로 인해 학생들, 특히 더
이길우(34·미국명 브레드 헬버슨)씨는 국제구호단체 GOL(Gift of Life)에서 활동 중인 사람이다. 그는 1983년 당시 레이건 미 대통령의 도움으로 미국에서 심장병 수술을 받은 후 가난한 나라의 심장병 어린이들을 위한 구호활동을 펴고 있다. 아마 기억나는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당시 신문에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부인 낸시 여사가 환하게 웃으며 한국 어린이 2명을 안고 있는 사진을. 이때 감동 받은 한국인들이 많았다. 한 여의사도 감동했고 수술을 받지 못하는 수많은 국내의 심장병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가슴 아파했다. 이때 ‘우리보다 형편이 못한 국가의 어린이를 데려와 보은 하겠다’는 다짐도 했단다. 그는 그때 다짐을 이행했다. 그 자신과의 약속은 지금도 지켜지고 있다. 현재 가천길재단 이길여 회장의 이야기다. 이 회장은 그로부터 10여년 후인 1992년 4월, 베트남 여성 도티늉(24)씨를 한국으로 초청해 무료로 심장병 수술을 시켜줬다. 이후 1996년에 우즈베키스탄 어린이 2명과 네팔 어린이 1명도 초청돼 수술 받았다. 그리고 이때부터 지금까지 매년 해외 심장병 어린이 초청 수술은 한해도 거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17년 동안 무려 300명
저도(猪島).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육영수 여사 피습사건이 있은 다음해인 1975년 이곳에 있는 청해대를 찾았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거닐던 곳에 혼자와 보니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간절해진다’며 필부(匹夫)로서 소회를 밝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찡하게 했다. 박 전 대통령이 저도를 처음 찾은 것은 1967년 여름, 가족과 함께였다. 당시 성심여고 1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근혜 대통령이 비키니를 입고 사진을 찍은 것도 이때다. 저도는 섬 전체가 해송, 동백나무, 팽나무 등 울창한 수림으로 뒤덮여 있고, 해안에는 202m 길이의 인공 백사장이 펼쳐져 있는 천혜의 휴양지다. 1954년을 전후해선 이승만 전 대통령도 이곳을 자주 이용할 정도였다. 박 전 대통령은 이 같은 저도의 풍광에 매료돼 1972년 대통령 별장으로 낙점하고 이름도 직접 바다의 청와대라는 뜻의 청해대(靑海臺)로 지었다. 섬의 모양이 돼지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저도는 원래 거제군에 속해 있었으나 청해대가 지어지면서 원활한 경호를 이유로 진해시에 편입됐고, 관리도 해군이 맡았다. 그러다 1993년 청해대 시설의 경호가 해제되면서 지금의 거제시로 환원됐다. 그러나 관리는 변하지 않았다. 따라서
“오늘은 안정을 취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영양제를 좀 맞도록 합시다.” 벌써 세 시간째 링거 줄에 혈관을 내어주고 나는 말이 없는데 창 밖 빗물은 억척스럽게도 몇 시간째 창문을 훑어 내리고 있다. 하염없이 쏟아지는 그 빗물 바라보자니, “내 눈물을 모아 놨으면 우리 동네 저수지 몇 개는 막았을 기다.” 아버지 입원해 계신 입원실 창문으로 흘러내리던 그 빗물 바라보시며 한없이 쏟아내시던 어머니 그 눈물 보는 듯하다. 유난히 병치레를 많이 하셨던 아버지께서 철 따라 응급실, 중환자실을 거쳐 입원하셨던 그 대학병원을 마치 동네 마실 다니듯 하셨던 어머니. 삶을 살아가는 데는 기쁨만 벗할 수 없다는 아버지 철학처럼 병도 벗 삼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셨던 그 아버지 날마다 더 닮아가시던 어머니. 장기 입원 환자들의 인기스타, 여행에도 산소 호흡기를 끼셔야 했던 자주도 아프셨던 아버지 함께 계실 때가 그리도 미련이 남으셨던지 아버지 돌아가시자 6개월도 못돼 혼자된 아픔 견뎌내지 못하고 위암을 얻으셨다. 태어나 처음으로 어머니 응석을 볼 수 있었던 때가 그때였다. 본인이 위암인지도 모르고 위 전 절제수술
최근 경기도내 시·군에서 사회복지시설의 민간위탁 선정 과정에 대한 공정성 시비가 보도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키워드가 ‘복지’라고 할 정도로 다양하게 나타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사회복지관, 노인복지관, 장애인복지관 등을 비롯한 각 영역의 사회복지시설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특히, 최일선에서 어르신 등 복지대상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시·군 단체장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의 정치적 역량을 확대하는 중요한 수단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인 분위기 속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앞으로 1년 남은 지방선거에서 사회복지시설이 지역주민들을 위한 양질의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기능과 역할을 하기보다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과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복지시설 민간위탁의 목적은 사회복지서비스의 전문성과 지방정부의 부족한 재정의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사용되어 오고 있다. 특히 지역주민들의 다양한 욕구에 부합한 양질의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시·군에서 직영하기보다는 민간 위탁방식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 민간위탁의 가장 큰 장점은 사회
날개/반칠환 저 아름다운 깃털은 오솔오솔 돋던 소름이었다지 창공을 열어 준 것은 가족이 아니라 무서운 야수였다지 천적이 없는 새는 다시 날개가 사라진다지 닭이 되고, 키위가 된다지 『포엠포엠』 2013년 여름호 VOL.58 알다시피 진화는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가장 편안한 상대는 존재의 발전에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나를 위협하는 존재라야 그것에 대항해 뇌가 작동하고 살아낼 길을 모색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화라는 측면에서 가족은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한다. 새에게 ‘창을 열어준 것’도 ‘무서운 야수였다지’ 않은가? 새의 아름다운 깃털은 종족보존을 위한 구애의 한 방편이라는 설을 보면 이성은 인류의 미학적 발견과도 밀접하다. 아름다운 깃털이 생기기 전 ‘오솔오솔 돋던 소름’은 무엇이었을지 조금은 상상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성향숙 시인
그때를 아시는가?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남문 일대는 수원의 최대 상권이었다. 하지만 지금 남문 일대의 유동인구는 크게 줄어들었다. 50여 년 동안 남문을 대표했던 중앙극장이 폐업됨과 동시에 이 지역의 상권은 줄어들었다. 그로 인해 자연히 지역 상인들의 시름은 깊어만 갔다. 그때를 아시는가? 극장표를 사서 동시상영 영화를 두 편 보고, 극장 내 매점에서 국수나 라면 한 그릇을 먹으며 즐거워하던 것을. 수원에서 오래 산 사람이라면 그때를 기억할 것이다.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은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을 것이다. 중앙극장은 1951년 팔달문 인근에서 문을 연 이래 수원을 대표하는 위락시설로 시민들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해 왔다. 2000년 CGV 메가박스 등 초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밀려 수원극장, 단오극장, 아카데미극장, 대한극장 등이 줄줄이 간판을 내릴 때도 중앙극장은 꿋꿋이 버텼다. 그러나 극심한 경기 침체로 남문 상권이 죽어가는 데다 불황의 여파까지 겹치면서 결국 ‘중앙극장’이라는 간판을 완전히 내리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수원의 상징이면서 경기도 최고(最古)의 중앙극장은 60여 년의 애환과 추억을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