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색해버린 일화지만, 한 연구소에서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교육목표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대부분 ‘지식교육’보다는 ‘인간교육’에 ○표를 해놓고는, 학교에 대한 구체적 요청사항을 묻자 대학진학이 최우선이라는 이중성을 나타내더라는 것이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우선 붙고 봐야 하니까. 좀 미흡할수록 일단 대학은 나와야 인간구실을 할 것으로 여기는 부모가 대부분이니까. 내 자식더러 구태여 빌 게이츠처럼 또 누구처럼 고졸, 대학중퇴로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쾌거의 표본이 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부모 입장에서는 너나없이 마음을 다하는 기원의 최우선 목표가 거의 대학입학이다. 누가 그 관심, 열정, 집념을 나무라고 막을 수 있을까? 게다가 간절한 그 입장에서 고려해야 할 정보들은 자꾸 늘어나고 있다. 정시보다 수시합격생 수가 훨씬 더 많아졌고, 논술·면접이 좌우하는 전형이 있고, 입학사정관제는 부모의 열성에 의한 ‘스펙 쌓기’가 관건이라는 ‘전문적’ 설명이 자극적으로 들리고, 내신성적과 수능고사는 전통적·기본적 조건이다. 더구나…
하이패스 /임희구 외곽고속도로를 규정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속도가 많이 줄어든 것이다 속도를 버리니 가야 할 곳의 멀고 가까운 개념이 없어졌다 급한 것 다 버리고 살아야겠다 생각하며 달리고 있었다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버스가 내 앞을 가로질러 간다 꽁무니에 근조라고 써 붙인 황천 행 버스다 살아오는 동안도 숨 막히게 바빴을 것인데 싸늘한 시체가 된 고인의 세상 마지막 길을 급하게도 모셔간다 앞차들을 추월하여 톨게이트를 하이패스로 통과한다 사는 것만큼이나 저승길 문턱도 하이패스다 라고 빠르게 보여주며 달려간다 쌩쌩 출처 - 임희구 시집 『소주 한 병이 공짜 』- 2011년 문학의전당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보면 달리는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제자리에 있기 위해 계속 달려야 하는 역설. 100여 년 전에 이미 그 책의 저자 루이스 캐럴은 우의적으로 현대인들의 속도에 관한 강박관념을 잘 드러내고 있다. 하이패스는 톨게이트 앞의 흐름을 원활히 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 고속도로에서 쌩쌩 달려온 속도가 잠시의 정차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그것은 “살아오는 동안도 숨 막히게 바빴을 것인데” “저승길 문턱도 하이패스&rdqu
지난해 수원시내 중학교 교장선생님과 점심식사를 하는 기회를 가졌다. 여러 가지 화제 중 하나가 ‘중학교 2학년’의 정체성이었다. 요즘 언론에서 연일 보도되는 바로 중2에 대한 고민이 쏟아졌다. 도대체 조율이 안 된단다. 중1은 중학교 신입생이라 적응하느라 고심하고, 중3은 본격적인 입시생활을 위한 준비로 방향이 정해지지만 중2는 이도저도 아니라는 설명이다. 오죽하면 ‘아줌마’라는 제3의 성(性·Gender)과 함께 세계인들의 사전에 이름을 올려야 할 특이종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행동적 특질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다. 자신의 처지나 실력 등과 상관없이 이 세상 누구와도 맞붙어서 이길 수 있다는 철없는 확신이다. “마음만 먹으면 6개월 내 1등을 할 수 있고, 운동만 하면 격투기선수도 이길 수 있다”는 정도의 자기최면이다. 정치권에도 비슷한 확신 속에 살아가는 종족이 있다. 바로 재선(再選) 국회의원이다. 초선(初選)의원의 경우 300명에 불과한 대한민국 헌법기관이자 입법부의 구성원으로서 국정과 지역구 챙기기에 올인 한다. 누구를 보거나 온화한 미소 속에 고개를 숙이고, 지역구 민원이라면 만사를 제치고 달려간다. 뿌듯한 자긍심 속에…
두터워지는 햇볕에 겨울잠에서 깨어난, 들녘의 생명들이 나른한 봄잠에 취해있다. 엥…엥…엥에엥…. 날카로운 기계톱 소리가 전원(田園)의 평화를 깨뜨린다. 겨우내 푸르름을 뽐내던, 수십 년생 잣나무들이 잘려나가며 비명을 지른다. 택지 조성을 위하여 뒷산등성이를 사무라이 머리처럼 벗겨내고 있다. 이미, 산중턱에 주택단지가 개발되어 진입도로는 사다리처럼 서있고, 벌겋게 속살을 드러낸 산이 망측하기까지 하다. 이번에는 가파른 팔부능선까지 올라가고 있다. 아무래도 뒷산이 남아나지를 못할 것 같다. 강원도와 접경하는 수도권인 이곳은 산수(山水)가 수려하기로 이름이 높다. 북한강이 가까이 흐르는, 물 보호지역으로 공장도 축사(畜舍)도 눈에 뜨이지 않는다. 생업(生業)을 끝낸 내가 이곳에 자리 잡은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마을은 논밭에도 집을 지을 수 있어, 구태여 산을 망가뜨리며 택지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 물론, 펜션이나 전원주택 등은 평지보다는 숲이나 물 가까이가 좋다. 그렇다 해도, 산자락쯤에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며 건축되어야 한다. 무리하게 가파른 산을 깎아, 자연을 훼손하는 택지개발은 반드시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요즈음에
4월인데 어쩌자고 눈이 오는가. 한쪽에서는 폭설이 내리고 다른 쪽에서는 찬바람이 분다. 그러다가 하루 사이에 다시 반팔을 입게 하는 이상한 날씨. 우수도 지나고 경칩도 지나고 청명도 지났는데 기후는 널뛰기를 한다. 절기가 뒤틀려나가고 있다. 아무래도 우리는 사계절이 뚜렷한 매력적인 “온대”를 잃은 것 같다. 우리 문제만이 아니다. 지난 겨울, 우기가 끝난 줄 알고 다녀온 캄보디아에서는 비가 내렸다. 앙코르와트에 오르는데 갑자기 엄청난 비가 쏟아내려 1시간여를 앙코르와트에 갇혀 있었다. 그 덕에 신전에서 경건한 경험을 했지만, 이런 일이 없었다는 현지인의 말에 확실히 기후변화가 세계적인 것임을 실감했다. 사실, 자연스럽게 기후가 변화한 거라면, 뭐 그리 문제겠는가. 문제는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다보스 포럼’이 종종 중심 의제로 삼는 것이었다. 지구가 더워지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많은 부분 인재(人災)라는 것이었다. 기후변화 국제위원회는 기후변화의 90%가 인류의 책임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사는 게 죄다. 내가 타는 자동차, 에어컨! 겨울엔 반팔, 여름엔 긴팔을 입
수원시 장안구 정자동에 위치한 한 주상복합아파트에 요양원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입주주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주민들은 요양원과 계약을 한 아파트 건설사에 격렬하게 항의하는 한편 수원시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입주자들이 요양원 리모델링 공사 현장을 항의 방문해 공사 중지를 강력히 요구했다. 또 15일엔 수원시청에까지 찾아가 현수막을 내걸고 입주반대 시위를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만히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주민들은 주상복합아파트에 기피시설인 요양원 입점이 말이 되느냐며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주민들은 전문시설인 요양원을 기피시설, 즉 혐오시설로 보고 있는 것이다. 혐오시설이란 해당지역 주민들의 삶에 지장과 고통을 주거나, 주변 지역의 쾌적성이 훼손됨으로써 집값이나 땅값이 내려가는 등 부정적인 외부효과를 유발하는 시설이다. 쓰레기 매립장이나 소각장, 핵발전소, 유류나 가스저장소, 화장장, 장례식장이나 납골시설 등을 대표적인 혐오시설로 친다. 따라서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이런 시설들이 들어서기 전후에는 주민들과 사업 시행자 간에 한바탕 홍역을 치르게 마련이다. 정자동 주상복합아파트 주민들은 기피시설인 요양원이 들어서면 집값이 떨
출범 50일을 맞은 박근혜 정부가 여야를 넘나들며 소통의 정치를 펼치고 있어 정가에 봄바람이 불고 있다. 새 정부 조각 과정에서 장·차관 후보자 6명이 낙마해 검증 부실 논란과 함께 ‘불통’ 리더십에 대한 비판이 비등한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여야 지도부와 잇따라 만나는 대화 행보에 나선 것은 바람직한 일로 평가한다. 15일 가동에 들어간 여야정협의체도 소통 정치의 시발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정부의 4·1 부동산 대책의 후속 입법 문제를 중점 논의한 어제 여야정협의체 회의에서는 양도소득세와 취득세 감면을 집값 기준으로 하향조정하고 면적기준은 사실상 없애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하루아침에 성과를 내긴 어렵겠지만, 정부와 정치권이 민생을 고리로 대화의 테이블에 마주 앉은 모습을 보여준 것만도 국민에겐 반가운 소식이다. 우리 경제는 7분기 연속 0%대의 성장으로 제자리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얼어붙어있는 투자와 소비를 살리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면 추경 편성이 시급하다. 시간에 쫓겨 졸속·부실 심사를 하게 되면 비판을 피하기 어렵겠지만 멈춰선 성장 엔진을 다시 돌려 경기 부양 효과를 거두고 서민 생활의 어려움을 덜어주려면 정치권이 추경 예산의 규모
경상남도의 진주의료원 폐업 시도는 사회적 약자의 건강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사람마다 타고난 건강상태는 다를 수 있으나, 모든 사람들의 기본적인 건강을 보장하는 것은 현대 국가의 중대한 역할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아프리카 다수 국가들과 같이 국가의 실질적 능력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국가들도 있다. 유럽의 대다수 국가들은 국민의 의료보장을 국가의 중요한 책임으로 보고, 공공의료보장체계를 통해 기본적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선진국 중 공공 의료보장체계가 미흡한 대표적 국가가 미국이다. 미국의 후진적 의료 현실은 2008년 마이클 무어가 만든 ‘식코’ 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2011년 우리나라에서도 산업의학의 송윤희 감독이 만든 한국판 ‘식코’ 영화 ‘하얀 정글’이 만들어져, 무늬만 비영리인 초대형 병원 중심의 시장주의적 의료현실의 부조리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1988년 의료보험제도가 만들어진 이후 우리나라는 상당한 수준의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다수의 국민들이 건강보험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건강보험 급여 확대, 중증질환 의료비 지
“그대 무엇을 먹는지 말하라. 그러면 나는 그대가 누군지 말해보겠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미식가로 불리는 브리야 사바랭은 200여년 전에 미식에 관한 저서를 펴내며 “인간은 미각이 만족되지 못하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먹는다는 것은 우리를 있게 해주는 숭고한 행위이며 동시에 즐거운 일이 돼왔다. 최근 우리 식탁의 식생활 문화도 다양화, 고급화되고 있으며 웰빙 붐과 더불어 고급채소의 소비가 두드러지고 있다. 수많은 채소 중에 이름도 생소한 ‘아스파라거스’는 그리스·로마시대부터 먹기 시작한 서양의 고급채소로, 요즘은 어지간한 대형마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스파라거스는 지중해지역이 원산지인 백합과의 여러해살이 식물로 서양의 육식요리에는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고급채소이다. 봄에 움이 트는 새순을 식용하는 아스파라거스는 지금이 제철이다. 태양의 왕 루이 14세는 궁궐 내에 아스파라거스 전용온실을 갖춰 공급 받았으며, 괴테는 연상의 여인과 사랑을 하면서 아스파라거스를 같이 먹기를 열망하기도 했다. 이렇게 아스파라거스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아스파라긴산이 풍부하다는 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