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날이다.
하여, 부모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깊은가를 다룬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읊으려고 했다. 부모님 은혜를 하해(河海)에 비길까. 그러다 문득, 우리네 부모들의 삶을, 특히 청춘을 온통 저당 잡았던 일련의 세력들에게 분노가 미쳤다. 일본 군국주의다. 그 자들의 만행을 거론하자니 입이 더러워질까, 접는다. 우리 부모의 개개인의 삶은 물론 가족과 민족사까지 피폐하게 만든 ‘견잡자(犬雜者)들’이다. 그런데 풍문에 그 유전자를 받은 이(蝨)들이 자신들의 섬에서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니 안타깝다. 박멸되지 않는 DNA.
내가 그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소설가 전상국 선생의 중편 소설에서 였다. “아베의 가족”. 1979년 처음 세상에 나와 그 해 한국문학작가상과 이듬해인 1980년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했으니, 전 선생의 필력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작품이다. 잠깐 내용을 들추면 이렇다.
“화자인 ‘나’의 어머니는 한국전쟁 때 미군에게 강간당해 백치인 ‘아베’를 낳았다. 그런데 이 아베의 IQ가 20에 못 미치는 극단적인 저능아다. 스물여섯 살이 될 때까지 그 입을 통해 나오는 단어는 오직 ‘아베’다. 대소변도 물론 가리지 못한다. 그러나 성욕만은 강해 ‘여자만 보면 그것이 어머니고 누이동생이고를 막론하고 달라붙어 사타구니를 비벼’댄다”는 내용이다.
참 묘하다. 성명학(姓名學)에 따르면 사람의 운명도 이름 따라 간다는데, 섬나라 그 아이와 양태가 닮았다.
사월 어느 날 같은 이름의 아이가 섬나라 수도의 돔 야구장에 출몰했단다. ‘96’이란 숫자를 몸뚱이 앞뒤에 붙이고. 96대 총리라서 그랬다는데 속내는 다른 데 있다는 해석이 더 신빙성이 있다. 일본 군국주의 회귀를 위한 헌법 96조 개헌. 극우파들은 열광했을 게다. “96 아베!”를 외치면서.
그 모습을 보면서, 2011년 일본 대지진 때 대한민국의 스타들이 릴레이 형식으로 만든 ‘PLAY FOR JAPAN’이 떠올랐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늘 희망을 잃지 않으면 반드시 길은 있다고 해요. 지금 이 순간에도/…/반드시 살아남기 위해서, 반드시 사랑하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계실 수없이 많은 분들께 조금이나마 힘을 드리고 싶네요.(…)’ 이것이 인류애(人類愛)다. 알겠냐, 96(狗肉), 아베.
최정용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