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단순히 잠을 자는 곳이 아니다. 하루가 열렸다가 닫히는 곳이 집이고, 한 사람의 생애가 시작되었다가 마무리되는 곳이 집이다. 집은, 아이를 잉태한 어머니의 자궁이고, 가족을 품은 울타리이고, 문명을 보듬은 사회이고, 국민을 보살피는 국가이고, 생명을 품은 녹색의 별 지구이고, 천지만물의 조화가 싹트는 우주다. 그런 점에서, 셀 수도 측정할 수도 없는 광활한 영역의 집을 네 개의 벽에 둘러싸인 몇 평짜리 공간으로 규정짓는 것은 인간의 착각이다. 지구에 사는 그 어떤 동물도 인간처럼 집을 규정하지 않는다. 어쩌면 인간사회의 비극도 거기에서 출발되었는지 모른다. 땅에 기둥을 세우고 지금부터 이곳은 내 집이니 들어오지 말라고 우기는 순간, 자연의 일부였던 집은 욕심의 일부가 되고 만다. 집이 빚어낸 욕심은 마당과 논밭으로 확장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땅에 선을 긋고 자신의 영역이라 우겨대기 시작했다. 인간들의 영역표시는, 땅을 품은 자연이 보기에 어이없는 행동이었다. 땅과 물과 공기를 빌려 쓰는 동물이 어찌 그것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인간이라는 동물은 땅과 바다와 하늘에 선을 긋고 제 것이라 우겼다. 우긴다고 땅과 바다와 하늘이 누구의 것
가짜뉴스에 대한 손해배상 강화를 골간으로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지난 24일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다. 오는 8월 30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여당의 입장은 확고해 보인다. 여당에서 추진하고 있는 개정안의 핵심은 언론사의 명백한 고의 또는 중대 과실로 인한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점이다. 개정안에는 언론의 고의 중과실의 사례로 보복적이거나 반복적인 허위·조작보도,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 유발, 충분한 검증절차 없는 복제·인용 보도, 내용과 무관한 제목·시각자료 사용 등을 적시하고 있다. 우리가 오랫동안 경험해왔듯이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로 인해 사람이 죽을 수도 있고, 한 사업체가 하루아침에 파산할 수도 있고, 한 집안이 ‘무간지옥’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추산이 어려울 정도다. ‘가짜뉴스’를 내보내는 미디어는 언론이 아니라 사회적 흉기다. 가짜뉴스는 포털에 수직계열화된 미디어 환경 속에서, 조회 수 올리기나 저렴한 뉴스제작 등 주로 경제적 이유로 인해 양산된다. 손해배상제 강화는 이러한 이윤 동기 무력화와 관련이 있다. 미국의 경우 징벌손해
사람들이 만일 도덕적인 삶을 추구한다면 결코 진리를 떠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신분이 높거나 낮거나,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학문이 있거나 없거나, 어떤 인간도 두려워하지 말라. 모든 사람을 존경하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되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말라. 너의 이성이 너에게 계시하는 진리를 추구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신념에 충실하라.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기대하지 말라. 진리를 향한 목소리가 적으면 적을수록 더욱더 목소리를 높여라. 진리가 미망이나 편견, 정욕보다 강하다는 것을 믿고 정의를 위한 수난을 각오하라. 진리는 장소와 시간에 제약받는 것이 아니며, 영원하고 불변한 것, 어떠한 세계에서도 동일한 것, 신과 하나가 되어 그 권능을 지니는 것임을 기억하라. (채닝) 진리를 잡기(雜記)의 책에서가 아니라 사상 속에서 찾아라. 달을 보려거든 웅덩이가 아니라 하늘을 쳐다보라. (페르시아 격언) 네가 진리로부터 떠나는 순간, 태어난 이후 네가 쌓아온 선행의 성과는 모두 사라져 버린다. 네 안에 살면서, 네가 너 자신과 한 몸이라는 것을 아는 지극히 높은 정신이, 모든 곳에서 네가 행하는 선과 악을 관찰하고 있다. (마누 법전) 진리는 단순한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는…
창업 이후, 기업의 성장을 위해서는 기업의 유·무형 자산 가치가 정확하게 인식되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특정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한 사업 주체의 사업화 역량뿐만 아니라 생산, 영업 능력 등 경영요인과 가격, 품질, 매출 전망 등 사업전망 전반에 걸쳐 사업성 분석이 정확하게 이루어질 때 기업의 지속성장이 이루어진다. 아이디어나 기술의 사업화 과정에서 사회적경제 기업들이 간과하기 쉬운 무형자산은 비유동자산 가운데 하나로 ‘기업의 영업활동 과정에서 장기간에 걸쳐 사용되어 미래의 경제적 효익이 기대되는 자산’을 말하며, 특허권, 디자인권, 상표권 등 산업재산권으로 대표되기도 한다. 무형자산은 구체적인 형태는 없지만, 법률적 권리나 경제적 가치가 있으며, 특허권 확보 여부는 사업화 과정에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기업이 추진하는 단위 사업들의 사업성은 사업화를 통한 수익 창출 가능성 판단이 중요한데, 사업화 실현 가능성과 사업추진 타당성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사업화 역량 분석을 통해 사회적기업이 보유하고 있거나 계획 중인 R&D, 생산, 마케팅, 경영진 역량 등 인적·물적 사업화 역량을 체계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제품경쟁력 분석에서는 제
일엽지추(一葉知秋)라고 잎사귀 하나가 가을을 알아차리게 한다고 했다. 나뭇잎 하나에서 자연의 영혼을 읽어내던 선조들 정신을 우러러 생각하게 된다. 처서 무렵이었다. 선풍기를 껴안고 잠들다시피 했던 금년 여름밤은 기온이 내려갈 줄 몰랐다. 자다가 일어나 불을 켜고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시를 메모했다. ‘선풍기 앞에서/ 나는 생각해 봅니다./ 고향집 앞 시냇물에서/ 아버지와 함께 목욕하던 때를/ 나의 행복은 철없이 지내던/ 그 시절 속에 있었습니다.// 고향을 떠나온 뒤/ 나는 슬픔으로 배불렀습니다.’ 금년 여름밤은 하룻밤 보내기가 일 년보다 더 지루한 것 같았다. 그런데 불타는 하늘 아래에서도 계절의 운행은 변함없는지 새벽이면 바람이 선선하다는 느낌과 함께 냉기 머금은 공기가 살갗에 와닿았다. 처서라고 절기의 이름값을 하는 것인지 살맛 돋는 느낌이었다. 사람은 역시 우주라는 자연 속 가냘픈 생명인가 싶으면서도 누군가에게 고마운 마음이었다. 차분한 마음으로 앉아 한승헌 변호사의 《유머기행》을 읽었다. 그분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일주일 모자라는 일 년 만에 석방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한 상태라서 그는 출판사(삼민사) 일을
분당 인문고전 모임에서 만난 한 선생의 가훈은 '나를 의심하라'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토론을 할 때마다 남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는다. 의심이 가는 대목은 메모해 뒀다가 뒤풀이 자리에서라도 꼭 묻는다. 처음에는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그러나 그에게 지속적으로 질문을 받으면서 그의 가훈 그대로 나를 의심하는 습관이 생겼다. 정확히는 내가 말한 것들, 내 사고, 내 시각. 정말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 생각은 맞는 것인가, 그 반대 지점의 생각은 엉터리이기만 한 것인가. 그 선생의 영향으로 마치 초침이 된 느낌이다. 누구의 말이나 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맥락 속에서 파악하려고 한다. 옳든 그르든 참고한다. 그러나 이 습관은 이따금씩 흐느적거린다. 어떤 일방의 현상이나 주장에 쉽게 동조하는 것이다. 지난 4·7 보궐 선거에서 오점 많은 국민의힘당 후보의 큰 차이 승리는 어려울 것이라는 나자신의 분석을 좋은 사례로 꼽을 수 있다. 돌이켜보면 예술 창작에서 말하는 대상과의 거리두기를 하지 못한 때문이다. 그만큼 나를 의심하라가 깊이 각인돼 있지 못한 것이다. 민주당 대선 경선 국면인 이즈음 거리두기가 이루어져 다행이다. 각 후보들의 면면을 자세히 살
노동은 육체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조건이다. 만약 인간이 노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얼이 죽거나 굶어 죽게 될 것이다. 이것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노동이 정신생활의 필연적인 결과인 것은, 육체에 있어서의 그 불가피성과 마찬가지로 분명한 사실인데도 모든 사람이 다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육체노동에 종사하지 않으면 우리는 반드시 체력을 잃고 진리를 놓치게 될 것이다. 나는 현대의 문학과 철학에 나타나 있는 오류와 결함, 그 지나친 장식과 나약함, 우울함이 현대 문단의 허약하고 병적인 습관의 결과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책은 그리 좋지 않더라도 그것을 쓰는 사람이 더욱 노력하는 훌륭한 사람이어야 하며, 현재처럼 그 사람이 쓰는 것과 실제 인물이 너무 동떨어진 대비를 이루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에머슨) 우리는 육체노동을 통해 외부 세계를 배운다. 풍요로움의 은혜는 그것을 공짜로 얻는 사람보다 그것을 생산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삽을 들고 밭에 나가 이랑을 고를 때, 나는 언제나 큰 기쁨과 함께 육체의 건강을 느끼며, 왜 나는 지금까지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남에게 시킴으로써, 이런 행복을 나 자신한테서 빼앗았던 것일
현실은 영화보다 더 잔인하다. 아프간 수도 카불이 탈레반 에 점령당했다는 뉴스는 말 그대로 지옥도를 보여주었다. 아프간을 탈출하기 위해 발버둥치다 결국엔 미군에게 갓난아기라도 살려달라고 맡기는 뉴스 영상은 그야말로 무간지옥과 다를 바 없었다. 삶의 희망이 노루꼬리만큼이라도 남아 있다면 엄마가 아기를 생면부지의 군인에게 던지지 않는다. 그 참혹한 어머니의 마음을 가늠이나 할 수 있으랴? 아기를 포기한 아프간의 엄마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들에게도 호세이니의 소설처럼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떠오를까? 비극은 멀리 아프간에만 있지 않았다. 조국 전 장관의 딸 조민 양의 부산대 의전원 입학이 취소되었다. 지금 인턴과정을 밟고 있는 조민 양은 앞으로 의사면허 자체가 박탈될 수도 있다. 자칫 그녀가 쌓아올린 전 생애를 부정당할 위기에 내몰린 것이다. 조민양은 최순실의 딸 정유라처럼 삼성을 등에 업고 부당하게 승마포상기록을 내세워 이화여대에 입학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돈도 능력”이라며 세인들의 가슴에 못을 박은 잘못도 없었다. 빌미는 동양대 표창장이었지만 알다시피 조민의 고초는 아빠가 조국이었기 때문에 빚어진 것. 아빠가 국정을 농단했기 때문이 아니
"나로 하여금 소중한 많은 것들을 뒤로한 채, 이곳까지 오게 한 것도, 후회 없이 기쁘게 살 수 있는 것도 주님의 존재를 체험케 만드는 나환자(한센인)들의 신비스런 힘 때문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하게 된다." 이 신부는 부산 인제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병역을 마친 뒤 광주 카톨릭 신학교를 다녔다. 2000년 로마 교황청이 세운 살레시오 신학교에 유학 중 내전 중인 남수단 오지 톤즈 마을에 선교사로 간다. 이 신부가 그곳에서 8년간 실천한 선교 의료 교육활동은 초인적이었다. 그들은 신부를 '남수단의 슈바이처'라고 부른다. 2008년 잠깐 휴가를 나와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대장암 4기였다. 투병기간에 톤즈로 돌아가고 싶어 했으나 끝내 선종했다. 48세였다. 종군기자로 명성이 높았던 kbs의 구수환 피디가 이 신부와 톤즈의 사랑과 우정을 다큐영화로 만든 게 '울지 마 톤즈'다. 나는 지난 2010년 9월 '울톤'을 관람했던 45만 명 가운데 하나다. 요즘도 영화 보면서 종종 눈물 나지만, 그날처럼 펑펑 쏟은 적은 없다. 세 번을 봤는데, 처음 혼자서 보던 날처럼 울었다. 실은 관객 모두 마찬가지였다. 특이한 것은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어
2004년 초여름, 개성 시내를 지나 동북쪽 오관산 방향 개성 영통사 복원 현장으로 가는 길. 울퉁불퉁한 산길을 지나면서 좌우의 산야를 유심히 보니 큰 수목이 잘 보이질 않는다. 옆에 앉은 개성시 인민위원회 K국장의 말이, 자신의 어린 시절에는 큰 나무가 많았었다고 한다. 평양에서 묘향산 가는 길(2시간 길)에서도 어김없이 시골마을 인근 산은 민둥산이다. 2012년 하나원에서 만난 함경도에서 온 탈북청년이 말하길, ‘소학교 시절 학교 다녀오면(자주 학교를 결석하고) 나무땔감을 하는 일이 하루 일과였다고, 주변에 나무가 없어 몇 시간을 걸어 멀리 가야 땔감나무를 구할 수 있었다고’. 겨울에 추위를 견디기 위해선 북한 주민들은 땔감을 필히 준비해야 한다. 시골에서 자란 필자도 중학교 시절 사방공사에 동원된 기억, 식목일만이 아니라 자주 나무 심기 작업에 나선 기억이 있다. 다행히 정부의 시탄 정책으로 무연탄에서 기름, 전기로 난방 방법이 변하면서 지금의 푸르른 산을 보게 되었지만, 북한의 경우는 많은 석탄 매장량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채굴 기술과 자재 부족, 수송을 위한 도로나 수송차량의 절대 부족 등으로 아직도 나무 채벌과 낙엽을 땔감으로 사용함이 일상이다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