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에 있어서의 참된 용자는 신이 자신의 동맹자라는 것을 알고 있는 자이다. 자아를 부정하는 사람은 그 무엇보다 강하다. 왜냐하면 자아는 우리의 내부에서 신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아를 부정하는 순간부터 우리의 내부에서 행동하는 것은 이미 우리가 아니라 신이다. 한 번은 여왕이 아끼던 보석을 잃어버렸다. 온 나라에 다음과 같은 방을 붙였다. ‘30일 안에 보석을 찾아 돌려주는 사람은 후한 상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30일이 지나서 돌려주는 사람은 사형에 처하리라.’ 랍비 사무엘이 이내 잃어버린 보석을 찾았으나 그것을 30일이 지나서야 돌려주었다. “너는 외국에 가 있었느냐?” 여왕이 그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저는 집에 있었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온 나라에 어떤 방이 붙었는지 모르고 있었느냐?” “아닙니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어째서 30일이 지나기 전에 가져오지 않았느냐? 30일이 지나면 사형에 처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제가 폐하께서 잃어버리신 물건을 돌려드리는 것은, 처형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신이 두려워서임을 보여 드리려 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을 거부하고 자기 자신을 믿으려고 결심한 자는 행복하다.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히말라야 깊은 산속 가릉빈가 새 청청 수려하다는 그 목청 강화도 보문사 사시예불, 독경하는 젊은 스님의 샘물 같은 목소리가 꼭 그랬지요 그때 나는 대웅전 앞 큰 느티나무 아래 벌렁 드러누워 “아이고 이놈의 절 올라오는 언덕길이 장난 아니네!” 투덜대면서 팔락팔락 나부끼는 잎사귀 사이로 슬쩍슬쩍 엿보이는 흰 구름에게 그 마음을 가만히 내맡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쪽저쪽 처마들이 댕그렁 댕그렁 한 소리 시작하는 거예요 스님도 목탁을 놓고 요령을 흔들기 시작했어요 쨍그렁쨍, 댕그렁댕, 쨍쨍, 댕댕…… 이 소리 저 소리 한가운데서 나무가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지요 이렇게 수선스러운 절집은 처음이었지만 마음은 퐁퐁 솟아오르고 있었지요. ▶약력 ▶미네르바(2003년)로 등단 ▶시집 《닥터 존슨》, 《동양하숙》 등 ▶현 강원대 교수
해병대 창설 72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해병대 발전을 제언한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지리적 여건 등 상륙 작전을 수행할 부대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해군 초대 총장인 손원일 제독에 의하여 1949년 4월 15일 진해 덕산 비행장에서 창설됐다. 창설한지 불과 1년 만에 6·25전쟁으로 북한군 제6사단은 마산을 거쳐 부산을 점령하려는 북한군을 진동리전투에서 막았으며 전 장병 일계급 특진하였고, 통영 상륙작전에서는 “귀신잡는 해병대”라는 영원한 애칭을 불리고, 인천상륙작전으로 북진의 발판을 마련했고 서울 탈환 작전을 통해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수은을 세웠다. 도솔산 전투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무적해병”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월남전인 1965년 베트남 전쟁에 전투병력으로 첫 파병하여 짜빈동전투에서는 “신화를 남긴 해병대”의 전통을 수립하여 해병대 용맹성을 발휘했다. 2011년에는 연평도 포격전을 적의 포탄 속에서도 적의 기습 포격에 응징하는 해병대의 용감성을 발휘하여 “싸우면 이기는 자랑스러운 해병대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였다. 4월 13일 신임 김태성 해병대사령관 취임사에서 "다양한
16세기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에서 출발한 데카르트의 사유하는 인간으로서의 인간 명제로부터 21세기의 ‘나는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하는 욕망충족의 소비형 인간 명제에 이르기까지 이 사이에는 수많은 인간 명제가 존재할 수 있다. 그중 내가 좋아하는 명제는 ‘나는 반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까뮈의 명제와 ‘나는 반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브레히트의 명제이다. 이것이야 말로 인간다움의 정체성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삼 년 전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얘기만 들었을 때는 헛웃음으로 넘겼지만, 영혼을 끌어서라도 아파트와 주식에 매몰하는 ‘영끌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는 왠지 모르게 명치 끝이 심하게 저렸다. 그런데 부동산 관련 뉴스가 남한 사람들의 모든 대화를 잠식하는 오늘에 이르러서 나는 맨붕이 되고 말았다. 신자유주의라고 일컬어지는 욕망경쟁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남보다 많이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자연적인 행위로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정신이 물질의 노예로 전락해가는 쾨테가 파우스트에서 예언한 ‘영혼팔이’ 곧 인간성의 타락 내지는 파멸을 보면서는 자포자기하지 않을 수 없다. 뭐 그렇게 내가 뛰어난 사
사물을 대하는 데는 사랑이 없어도 괜찮다. 즉 사랑없이 나무를 베고 벽돌을 만들고 쇠붙이를 쳐도 괜찮다. 그러나 사람을 대하는 데는 사랑이 없으면 안 된다. 그것은 함부로 벌을 다뤄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벌의 성질로 보아 만약 이를 함부로 다룬다면 벌도 다치고 인간도 다친다. 인간은 일할 생각이 있으면 일할 수 있지만, 사랑의 실천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 없이 사람을 대해도 괜찮다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남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사랑을 느끼지 못할 때에는 가만히 앉아 자신을 돌아보는게 좋다. 배가 고플 때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 유익한 것처럼, 사람을 대하는 데는 오직 사랑이 뒤따라야 유익한 인간관계가 이루어진다. 한번 사랑 없이 사람을 대하기 시작하면 결국 사람들에 대한 잔인함과 냉혹함의 한계가 사라지고, 너 자신의 고통에도 한계가 사라질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중요한 계율인 ’원수를 사랑하라‘가 실제로 지켜지는 것을 보기 전에는, 나는 절대로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을 기독교인으로 인정할 수 없다. (레싱)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 즉 온갖 종류의 폭력과 강제, 형벌, 심지어
브레이브걸스의 역주행이 일어났다. 유튜버가 직캠 영상을 자신의 채널에 게재했고 이것이 군생활의 추억을 소환해 단숨에 브레이브걸스를음원차트 1위에 올렸다. 이후 jtbc 아는형님, SBS 런닝맨 등 방송무대의 핫한 출연자가 되었다. 디지털 공간에서 소비자가 만들어낸 사회현상이다. 지상파 음악프로그램 상위에 올라야 음원 차트를 장악하던 과거와 확실히 다른 현상이다. 유튜브의 영향력이 지상파TV 못지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요즘 지상파 방송이나 신문을 레거시 미디어라 부르는 학자들이 많다. 레거시란 유산,잔재 등 낡았다는 의미를 가진다. 결국 레거시 미디어란 과거의 매체이자 유산이란 말이다. TV와 신문이 헐값에 폄하되고 있다. TV와 신문을 자주보는 나도 레거시가 되어버렸다. 한마디로 철지난 꼰대라는 말이다. 우리에게 까치는 항상 정겹다. 어린시절 설날 노래에 등장하는 까치는 세뱃돈을 물어다 주었기 때문이다. 까치가 포악하고 매우 전투적인 조류란 생각이 안든다. 비둘기는 평화와 온건함이고 매는 강경하고 전쟁도 불사한다. 매와 비슷한 독수리는 용맹의 상징일 뿐인데 언어의 상징이다. 인간의 사고는 언어로 구체화되고 소통된다. 반대로 이렇게 사용하는 언어는 인간사고의…
· 1. 춘래불사춘 지난 주말, 모처럼 바깥나들이 했다. 쥐똥나무꽃이 예쁘게 피어 발갛게 져버린 벚꽃의 아쉬움을 덜어주었고, 연둣빛 신록이 어지간한 꽃무리보다 나았다. 하지만 바람이 어찌나 부는지 더러 걷기도 힘들 지경이었고, 기온마저 뚝 떨어져서 제법 추웠다. 옷을 입었다 벗기를 반복해야 했다. 동행이 죄다 춘래불사춘이라 한탄하니, 왕소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조용히 힘을 기르자던 덩샤오핑의 도광양회가 시진핑의 주동작위, 일대일로로 바뀌면서 힘을 뽐내고 있다만, 고래로 중국 한족은 외래 민족과 전쟁만 하면 졌다. 오죽하면 북쪽 사람에게 졌다(敗北)는 말이 관용어로 굳어졌을까. 한나라 원제 시절, 강성한 흉노족과 화친을 맺고자 후궁 중 한 명을 골라 시집을 보내는데, 이때 뽑힌 사람이 왕소군이다. 북방으로 끌려가야 하는 자기 신세를 한탄하며 비파를 연주했는데, 날아가던 기러기가 왕소군의 미모에 홀려 날갯짓하는 것을 잃어버려 그만 땅에 떨어졌다는 경국지색이다. 후일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그녀를 기려 지은 시에 ‘춘래불사춘’이란 말이 나온다. 나라를 지킬 변변한 장수 한 명이 없어, 가녀린 여인을 공물 삼아 화친을 맺어야 하는 한나라의 처지가 말이 아니다. 하긴
동물적 생활을 보내는 사람에게 육체적 욕망의 만족이 행복인 것처럼, 자신의 영성을 의식하고 있는 사람에게 자기 부정은 바로 행복이다. 남에게 선을 행하는 사람은 선인이다. 만약 그가 선을 행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받는다면 그는 더욱 더 선인이다. 나아가서 그가 선을 행한 상대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면 그는 최고의 선에 도달한 것이며, 그 선을 더욱 강화할 수 잇는 것은 오직 그가 그것을 계속함으로써 받는 고뇌의 증대뿐이다. 또 만약 그가 그것 때문에 죽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 최고의 완성에 도달한 것이 된다. (라 브뤼에르)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지 않는 사람도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예수) 아집은 영혼의 감옥이다. 감옥이 우리의 육체의 자유를 빼앗는 것처럼 아집은 반드시 우리의 행복을 빼앗는다. (류시 말로리) 남을 위해 사는 것이 비로소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다. 얼핏 이상하게…
기본소득 논의는 일찍이 미국에서 시작됐다. 1960년대 자유주의 예찬자인 통화주의자들에 의해서였다.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1962년 빈곤 퇴치를 위한 수단으로 기본소득의 일종인 ‘마이너스 소득세(negative income tax, NIT)’를 창설하자고 제안했다. 닉슨 대통령(Richard Nixon)은 이에 영향을 받아 자녀가 있는 가정에 연간수당을 보장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 제안은 상원에서 기각됐다. 진보적 입장에서 기본소득을 주장한 인물은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목사였다. 그는 1967년 가난을 물리칠 최선의 수단으로 기본소득을 들었다. 그러나 1980년 공화당의 레이건(Ronald Reagan) 대통령이 탄생되면서 기본소득 논의는 폐기됐다. 레이건은 기본소득이 노동 가치와 양립불가능하고 불건전한 의존문화를 부추길 것으로 보았다. 그러던 기본소득이 최근 재점화되고 있다. 지난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 앤드류 양(Andrew Yang)은 기본소득을 지지했다. 그는 미국의 모든 시민에게 자유 배당금으로 매월 1000달러를 주자고 주장했다. 이 장치야 말로 경제와 고용창출을 위한 영구적 지원이라는 것이다.…
종편 방송을 중심으로 불붙은 ‘트로트’ 신드롬이 실로 대단한 광풍이군요. TV조선이 시작한 트로트 경연 열풍에 거의 모든 방송사가 영향을 받고 있는 형국입니다. 발라드·재즈·록 등은 물론 아이돌 출신들까지 오디션 프로그램에 앞다투어 몰려드는 풍경이 일상이 됐네요. 배우들이 트로트 가수를 꿈꾸는 일도 귀한 일이 아닙니다. 트로트 경연에 나온 유명 발라드 가수가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가슴을 짠하게 만들더군요.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 장르를 바꾸는 일이 쉽지 않을 텐데, 어쨌든 도전하는 모습은 참 대단합니다. 평생을 걸고 해온 음악을 버리고 트로트에 뛰어드는 행태에 대한 일부의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음악은 장르마다 특징이 있고, 독특한 매력도 따로 있긴 하지요. 그 가치를 지키는 일도 소중하지만, 다양한 도전을 끝내 비난할 이유가 따로 있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논란은 또 있어요. 어린아이들이 어른들의 정서를 담은 성인가요들을 부르는 모습이 불편하다는 시각입니다. 얼핏 들으면 일리가 있어요. 그러나 이미 열린 문화 속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트로트를 금지곡으로 막아놓고 동요만 부르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지 않을까 싶네요. 사랑의 기쁨, 이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