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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의 難讀日記 (난독일기)] 발

 

우리는 늘 바닥이었다. 앞발 두 개가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 우리의 신세는 바닥이 되었다. 인간들의 직립은 바닥을 딛는 우리의 운명을 강요하는 것이어서, 곧추 세운 머리의 하중은 몸뚱이의 것이 되지 못하고 우리 것이 되었다. 머리가 강요한 아픔의 깊이를 목도 허리도 다리도 받아내지 않았다. 받아내지 않고 흘려보낸 것들은 뼈와 살과 피를 따라 밑으로 흘러 땅에 고였다. 땅에 고인 것들을 딛고 서는 건 늘 우리 몫이다. 우리는 바닥에 산다.

 

늘 바닥일 수밖에 없음은 부당한 것이었으나 우리는 받아들였다. 우리의 받아들임으로,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몸뚱이가 바닥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바보 같은 결정이었지만 후회는 하지 않기로 했다. 후회한다고 해서, 후회를 돌이킬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우리에겐 없다. 선택권은 늘 머리 꼭대기에 있고 우리에게 하달되는 건 선택의 결과뿐이다. 결과 또한 매번 부당해서, 인간들이 잠든 순간에도 우리는 발가락을 세우고 보초를 서야 한다.

 

입이 하는 소리를 우리는 믿지 않는다. 손이 쓰는 말도 거짓임을 우리는 잘 안다. “위를 보지 말고 아래를 보라”고 말하는 입은 역겹고, “밝음 뒤에는 어두움이 있다”라고 쓰는 손은 뻔뻔하다. 입과 손은 인간들의 직립을 거룩함으로 포장하는 가면이자 꼭두각시일 뿐이다. 그러함에도, 그러함을 알려야 하는 수단으로 입과 손을 빌어서 쓸 수밖에 없는 우리의 처지는 얼마나 한심한가. 그런 점에서, 우리의 우울과 좌절과 절망은 입과 손이 보기에 코미디이다.

 

하늘을 보기 위해 직립을 선택했다고 말하는 건 무책임하다. 적어도 우리는, 단 한순간도 하늘을 우러른 적이 없다.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순간에도 우리의 의사를 전달할 투표용지가 우리에겐 주어지지 않는다. 나아가던 물러서던, 우리는 인간이 빚은 족쇄 속에서 바닥을 딛어야 한다. 그것이 빌어먹을 우리의 운명이다. 그럼에도 주눅 들지는 않는다. 가장 먼저 내디뎠다가 가장 마지막에 거둬들이는 것은 언제나 우리들이니까.

 

우리는 늘 바닥이다. 인간이 오랑우탄이기를 거부한 순간부터 우리의 신세는 바닥이 되었다. 인간들의 반듯한 척추는 바닥을 딛는 우리의 운명을 강요하는 것이어서, 땅과 멀어질수록 깊어지는 하중은 몸뚱이의 것이 되지 못하고 우리 것이 되었다. 말과 글이 토해내는 온갖 구린내를 눈도 귀도 코도 입도 감내하지 않았다. 감내하지 않고 쏟아져 나온 것들은 책과 신문과 방송을 따라 밑으로 흘러 땅에 고였다. 땅에 고인 구린내를 감내하고 사는 건 우리 몫이다. 우리는 바닥에 산다.

 

생각은 인간이 하지만,

인간보다 먼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바닥에 사는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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