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드러나는 사실, 즉 진화 이야기는 사람들을 결합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과학은 수많은 과학자들의 자료를 종합하고 과학 탐구의 전형인 의문과 회의를 키우는 문화적 창조물이고 (잘못을 고친다면) 편협한 신화나 신앙을 요구하여 사람을 분열시키는 종교적 전통보다도 훨씬 설득력 있게 세계를 설명하게 되었다. 과학자들이 언제나 옳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미래 인류의 존재에 대한 가장 의미 있는 이야기는 힌두교, 불교,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보다 과학의 진화적 세계관에서 나오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과학 탐구와 창조 신화를 둘 다 이해한다면 과학 이야기 속에 증명할 수 있는 사실과 개인적 의미를 모두 풍부하게 담는 세계관을 형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298쪽) 참된 진화 심리학 관점에서 보면 영혼과 정신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물질에 의한 불가피한 존재다. 생각은 다른 어떤 것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세포의 활동에서 나온다. (299쪽) 인간은 특별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직립 보행을 한다(바로 이 점 때문에 우리 자신을 말 그대로 다른 종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마주 보는 엄지(도구 사용자 인간), 언어…
어릴 때도 방학은 무척 기대되는 이벤트였다. 늦잠을 자고 하루 종일 밖에서 실컷 뛰어놀 수 있으니까 손을 꼽아가며 방학을 기다렸다. 마냥 놀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때는 방학 숙제가 정말 많았다. 매일 일기 쓰기와 책 읽고 독후감을 몇 편 이상 작성하기는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빠지지 않던 숙제였다. 고학년이 되자 주제를 정해서 탐구해 오기와 문제집 한 권 풀어오기가 추가되었다. 당연히 방학 내내 아무것도 안 하다가 개학이 다가오면 이 모든 걸 다급하게 해결했다. 다른 건 몰아서 해도 지장이 없었는데 일기만큼은 그게 어려웠다. 일기의 내용을 채우는 건 아침 먹고 놀고 점심 먹고 뛰어다니고 저녁때 TV 봤다는 내용으로 채울 수 있었다. 문제는 날씨였다. 이미 지나간 날씨는 거짓말이 어려웠다. 그때는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여서 신문 같은 매체에나 날씨가 적혀 있었다. 앞일을 걱정했다면 그날그날 일기는 안 쓰더라도 날씨는 적어놓았을 텐데 그 정도의 계획조차 세우지 않을 만큼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학교 가서 친구의 일기를 보고 날씨를 베끼기로 하고 개학 전날 밤까지 열심히 일기를 써서 검사를 받았다. 교사가 되고 보니 방학 숙제는 담임교사 재량이었다.
생명은 에너지와 물질의 변환이다. 태양의 불꽃이 광합성 생물의 녹색 불꽃이 되는 것이다. 녹색 불꽃은 꽃식물의 적색, 홍색, 황색, 자주색 등 성적인 불꽃, 즉 다른 생물계를 설득하는 전문가가 된다. 화석화된 녹색 불꽃은 태양의 경제체제 안에 있는 인간의 방에 축적된다. 생명은 끊임없이 열을 소산 하는 화학작용이다. 그리고 생명은 기억이다. 과거의 화학작용을 반복하면서 행동하는 기억이다. 그리고 생명은 자기 초월적이다. 태양으로부터 온 에너지를 저장하고 재분배하면서 생명은 최고 수준의 활동력과 복잡성을 과시한다. 생명이 우주의 큰 영역을 자신의 보금자리로 만들어 간다면 그 과정에서 자신을 어떤 생명으로 만들지 누가 추측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른 포유류 종과 마찬가지로 호모 사피엔스 역시 200만 년을 더 견뎌낼 것이다. 신생대 포유류 종의 평균 존속 기간이 300만 년 보다 짧았다. 모든 종은 사라진다. 멸종하거나 둘 이상의 후손 종으로 갈라지는 것이다. 캄브리아기부터 지금껏 살아 있는 동물 종은 없다. 어쩌면 호모 사피엔스도 오늘날 침팬지와 사람만큼 서로 다른 자손 종 둘로 나뉠지도 모른다. 종의 분리가 기술에 의해 더욱 가속화될 수도 있다. 내구력 있는
과거 남북 간 교류가 활발해지기 시작하던 시절(2001년), 남북장관급 회담에 참여했던 북한 통전부(노동당 대남사업 기구) 인사와의 대화에서 내가 깨달았던 한 가지 사실은 내 인식의 틀을 바꾸지 않고는 북한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 서울 도착 첫날밤, 북에서 채널이 하나밖에 없는 TV를 대하다 수십 개 채널의 남한 TV를 대하면서 쉬이 잠을 이룰 수 없었던 북측 R선생은 다음 날 아침에 충혈된 눈을 비비며 나에게 말을 건다. 주제가 은행털이 강도 얘기인 오락영화를 보았는가본데, “야! 긴데, 혼자 다 갖겠다고 끝내는 친구도 죽이누만! 사람 욕심이란 참...”.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가 보다. 비록 영화지만 말로만 듣던 자본주의 현실을 직접 대하다 보니 앞에 있는 남조선 사람인 나도 인간으로 잘 보이지 않는 듯하다. 국가와 사회를 위한 희생봉사, 친구와의 의리를 생명처럼 여기는 집단주의적 가치관이 체화된 그에게, “영화 덴 뭘 그래!” 나의 쉬운 대답이 수긍될 리 없다. 그의 흥분한 모습을 통해 나도 회담 기간 내내 잠을 설치며 북에 대한 내 그릇된 선입관을 생각하게 했고 이후 나의 사고체계는 근본적으로 변하게 된다. 역지사지의 사고 나아가 우리보다 저들이
방송을 보면서 아나운서들이 제일 짜증이 날 때는 장본인과 주인공을 구분하지 못하고 마구 섞어 쓰거나 아예 장본인이라는 표현밖에 모르는 것 같을 때이다. 장본인은 여러 (나쁜) 일을 일으킨 바로 그 사람이다. 주인공은 여러 (좋은) 일을 만들어 낸 바로 그 사람을 말한다. 그러니까 ‘네가 이 모든 일을 그르친 그 장본인이냐’가 맞는 말이고, ‘바로 이 분이 이번 대형 화재에서 어린 아이들을 구한 그 주인공 영웅이십니다’가 맞는 표현이다. 그런데 국영/공영 아나운서조차 이걸 구분 못하고 ‘이번에 올림픽 경기를 승리로 이끈 장본인이다’식의 표현을 쓴다. 한심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선수단을 소개할 때 체르노빌 원전 사진을 내보내고 아이티 선수단을 소개할 때 대통령이 암살된 얘기를 하는 등의 행태는 위와 같은 무식의 소치인가. 그 지경을 넘어선 것이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무엇보다 정치적 올바름에 문제가 있다. ‘라떼에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아버지가, 혹은 선생님이 항상 말씀하셨다. ‘걔가 그래도 애는 착해. 그러니까 너무 싫어하지 마. 사람들 앞에서 너무 뭐라 그러고 그러면 안된다 알았지?’등등의 말씀이셨다. 사람의 좋은 면을 먼저 봐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단어 같지만 사람은 ‘의리’가 있어야 한다. 많은 부부들이 성격도 다르고 답이 없는 관계라도 나이테처럼 켜켜이 쌓인 ‘정’과 ‘의리’ 하나로 버티며 위기를 넘긴다. 흔히들 이런 경우 “전우애로 살아간다”고도한다. 여염집의 장삼이사들도 이럴진대 만인을 위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속된 말로 “의리고 나발이고”식으로 처신하는 것을 보면 처참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정치인의 의리는 수십 년 동안 지켜온 자기 신념과 역사에 대한 책임일진대 말이다. 얼마 전 재보궐선거가 끝나자마자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조국 전 장관 때문에 선거에 졌다며 검찰개혁을 주도하다 멸문지화의 처지에 몰린 장수에게 책임을 돌렸다. 정작 자신들은 조국사태(?)이후 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드높아진 국민들의 개혁 열망을 등에 업고 당선되었는데 말이다. 또 윤석열 씨가 지지율 1위를 달리자 “추미애 전 장관이 윤석열을 키워줬다”며 검찰개혁 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된 사람에게 창을 겨누었다. 가볍기가 새털이요, 얇기가 습자지 한 장이다. 지금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지켜보노라면 원팀은 개뿔, 과연 이들이 한 배를 탄 사람들인가 의문이 들 지경이다. 상대의 말꼬리가 삐끗하기라도 하면 ‘망
요사이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경선 과정을 보면, 한 가지 특징적 현상을 떠올릴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과거 지향성”이다. 미래를 말해야 하는 여당에서 “과거 지향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도 문제지만, 더욱 문제인 것은 “과거의 잘못”만을 거론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정책이나 정치적 행위 중에도 분명 계승할 것이 많음에도, 잘못만을 들춰내는 과거 지향성을 보이는 것이 문제라는 말이다. 현 정권 들어서 가장 먼저 역점을 둔 사안은 바로 적폐 청산이다. 적폐 청산이란, 문자 그대로 과거의 폐단을 “청산”한다는 것이다. 물론 과거를 바로잡아야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울 수도 있지만, 과거의 잘못된 폐단을 단 몇 년간 청산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독일의 경우도 그래서, 역사에 관한 문제는 “청산”이라는 단어 대신 “극복”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역사 혹은 과거를 일거에 깨끗하게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독일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현 정권은 적폐 청산을 내세웠는데, 이 역시 과거 지향성을 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여권의 과거 지향성을 보여주는 사안은 이뿐만이 아니다. 대통령이 사과를 할 때도 보면, 과거…
생명은 세균이다. 세균이 아닌 생명은 세균인 생명에서 진화했다. 시생대 말기에는 불모지란 불모지는 모두 미생물 매트와 일시적인 더께로 뒤덮였다. 황이나 암모니아가 있는 뜨거운 웅덩이마다 개척자들과 밀려드는 이주자들이 가득 찼다. 세균은 소금 알갱이에 끈끈한 점액을 배출했고, 철분이 많은 연못에서 자철광을 침전시켰다. 극지방 근처의 차갑고 메마른 바위에 들러붙고, 열대의 얕은 바다에서 화산암 조각을 뒤덮어 지구를 푸르게 하면서 광합성 생물은 자신들이 만든 양분을 배고픈 기회주의자들에게 내주었다. 발효 세균의 노폐물은 운동성이 있는 호산성 세균의 먹이가 되었으며, 황산염을 환원하는 세균들의 고약한 숨결은 녹색 클로로비움이나 붉은색 크로마티움 세균들에게 값진 원료를 공급했다. 지구에서 이용 가능한 곳은 모조리 개화된 생산자, 분주한 변혁가, 극한의 개척자들인 세균으로 채워졌다. 자연선택을 받은 자손은 살아남았지만, 그것은 개체군의 동료로부터 플라스미드에 들어있는 유전자를 빌렸을 경우에만 가능했다. 유전자 교환은 분해될 단백질, 유해한 망간 찌꺼기, 산화되거나 환원되어야 하는 위협적인 구리 등 환경의 독소를 제거해야 하는 생물에게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다. 유전자를…
50대에 대한 백신 접종이 7월 26일부터 시작되었다. 55살 이상은 8월 14일까지, 54살 이하 예약자는 8월 16일부터 28일까지 진행된다고 한다. 필자도 50대이기 때문에 8월에는 백신 접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백신 접종 예약을 하기까지에는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백신 예약 당일, 뉴스에서 보도되었던 내용과 마찬가지로 백신접종 예약 사이트는 예약 일보 직전에 접속이 끊어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30여 분을 기다리다가 13초를 앞두고 접속이 세 번이나 끊어지니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네 번째로 예약사이트에 접속을 시도했을 때는 내 앞에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 늘 하던 저녁 운동까지 미루고 예약을 마무리하기로 마음먹은 터라 자꾸만 끊어지는 접종 예약 사이트가 야속하기까지 했다. 이러기를 반복하다 보니 대기 시간이 무려 87시간이라고 뜨기까지 했다. 이렇게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다른 곳에 있던 딸아이가 전화를 걸어왔다. 백신 접종 예약을 대리로 할 수 있으니 주민등록번호를 알려달라는 것이다. 접종예약이 시작된 지 두 시간이나 지났고, 어차피 운동 나가기도 틀렸고 해서 다음날이나 예약을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 아루바, 앤티카 바부다, 안도라, 에스와 티니, 에리트리아, 기니 비 시우, 상투메프린시페, 세이셀, 차드, 바베이도스.... 국가명들이다. 지구 상 어느 곳, 어떤 나라인지 아는가? 지난 23일, 도쿄올림픽 개막식 때 입장한 세계 205개 나라 선수단을 보며 아직도 낯선 국명들이 여럿 있구나 생각했다. ‘카보베르데’가 나온다. 월드뮤직 강사가 되기 전에는 몰랐던 이름. 가수 세자리아 에보라(Cesaria Evora 1941-2011) 때문에 알게 된 이름. 말하자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모르거나 관심이 없었는데 BTS 때문에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비슷한 예다. 여기까지 읽고 바로 유튜브 영상 등을 통해 ‘세자리아 에보라’를 찾아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거구의 늙은 흑인 모습이 뜰 것이고 사시 눈에 고생 찌든 느낌의 얼굴을 볼 것이다. 반전은 목소리다. 어두운데 무겁지 않다. 밝다. 이런 컬러의 목소리가 있었던가. 한 곡 더..... 하다가 모든 노래를 찾아 듣게 될 것이고 베사메 무쵸(Besame Mucho)에 이르면 ‘대체 어떤 삶이 이런 목소리를 만들어냈을까?’라는 궁금증으로 폭풍 검색에 들어갈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