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신문 = 황기홍 화백]
예기치 못한 이변 사태로 낯선 이국의 공항에서 예보도 없이 긴 시간 연발하는 항공기를 기다려 본 적이 있는가. 그때 경험했던 지루함과 기다림은, 온전히 내 실존의 몫이라 할 수 있다. 그 지루함과 그 기다림이 실존의 무게를 지니는 것은, 그 지루함과 그 기다림을 ‘지금 여기’의 내 몸이, 내 몸의 감관이 감당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루하다, 기다리다 등은 몸이 만들어 내는 언어이다. 기슴이 뭉클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발을 끊었다, 입술을 깨물었다, 등등의 말들은 몸이 겪어서 토해 놓는 말이다. ‘오금아, 날 살려라’ 하는 말에 이르면 체험의 언어, 몸의 언어가 가지는 인간 휴머니티를 진하게 느낀다. 그런데 이런 몸과 체험 언어가 사라지고 있다. ‘기다린다’라는 말은 부정의 의미로만 부각되고, ‘지루하다’라는 형용사를 현대인들은 별로 실감하지 못하는 듯하다.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 우리의 오감과 우리의 뇌를 무언가가 끊임없이 채워주는 정보 생태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의 지루함을 메꾸어 주는 정보나 콘텐츠들은 SNS에 무한정 들어 있다. 이런 콘텐츠들은 내가 내 몸으로 겪는 나의 경험이 아니라, 미디어를 통해서 나에게 연결
인구 감소 지역으로 분류돼 지방 소멸 우려가 커지고 있는 지방정부들은 인구증가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아이 키우기에 좋은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여러 가지 육아지원책을 내놓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공공산후조리원이다. 공공산후조리원은 출산 가정에 경제적·심리적인 부담을 덜어준다. 출산은 가정이나 사회, 국가의 큰 경사이지만 출산 가정으로서는 만만치 않은 경제적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특히 출산 후 필수 코스인 산후조리원을 이용하자면 수백만 원, 많게는 1000만 원이 넘는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산후조리원 수는 460개(보건복지부 자료)였다. 공공 산후조리원은 전국에 16개(3.5%)밖에 없다. 비용은 민간의 절반 수준이라서 순식간에 예약이 마감된다. 약 1370만 명이 사는 경기도에는 2곳밖에 없다. 여주 공공산후조리원(2019년 5월 개원)과 포천 공공산후조리원(2023년 5월 개원)이다. 여주 13개실, 포천 20개실로 1년 내내 공실이 없다. 경기도에 따르면 이들 공공산후조리원 2곳의 6월말 기준 누적이용자는 2603가정이었다.(지난해에는 761가정, 올해 6월말 기준 375가정) 이처럼 경쟁률이 치열하다보니…
락파, 셰르파족은 태어난 요일에 따라 이름이 정해진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그래서 수요일에 태어난 당신은 ‘락파’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죠. 수요일에 태어난 당신, ‘락파’라는 이름은 아름답고 신비로웠습니다. 그 이름 앞에 잠시 머뭅니다. 무더위에 지친 밤이었어요. 설산을 바라보며 서 있는 당신의 깊은 눈빛에 이끌렸죠. “마운틴 퀸: 락파 셰르파”라는, 당신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 영화였습니다. 여름에 설산을 보는 것만으로도 더위가 벌써 저만치 달아나는 것 같았어요. 차가운 풍경이 나를 이끌고 간 곳은 상상조차 못 했던 놀라운 이야기가 숨어 있었습니다. 락파, 당신의 아름다운 이야기가요. 당신은 낡은 관습을 거부했습니다.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삶을 원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늘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여자에게는 금지된 짐꾼이 되기 위해 남자처럼 머리를 짧게 자르고, 산을 올랐죠.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제 비밀스러운 삶이 너무 좋았어요”라고 말하는 당신을 보며 내 가슴이 쿵쿵 뛰었어요. 비밀이란 말을 이토록 아름답게 쓰는 당신을 ‘문맹’이라고 무시한 사람들은 정작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거지요. 자신을 상냥하고, 사랑이 많은 여자이며, 평화
[ 경기신문 = 황기홍 화백]
이제 기후로 인한 대참사는 매년 있는 재앙이 되었다. 지난 6월 남유럽의 뜨거운 태양은 여러 나라를 뜨겁게 달구었다. 스페인의 세비야는 43도까지 올라갔고 안달루시아는 그보다 더 한 46도까지 치솟았다. 이곳의 주민과 관광객들은 극심한 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부채나 모자를 써야만 하였다. 이 불볕더위는 스페인에서 최근 3년간 계속되고 있다. 포르투갈 역시 리스본의 최고 기온이 40여도를 육박하였다. 이러한 폭염은 육지만의 현상이 아니다. 바다에서도 수온계가 상승하고 있다. 한반도와 발레아레스 제도의 해수는 기록적인 수치인 26도를 넘어섰고, 지중해의 다른 지역에서도 28도의 표면 온도가 측정되었다. 해안의 바닷바람이 덜 상쾌해져 폭염을 더 견디기 힘든 것이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반복되는 폭염은 지구 온난화의 명백한 지표로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나고, 길어지고, 심해질 전망이다. 유엔의 기후 전문가 그룹 역시 1950년 이후 폭염의 빈도와 강도, 폭염 기간이 증가했고 지구 온난화로 인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경고다. 기후 이변은 폭염만이 아니다. 7월 들어 지구촌이 홍수로 난리다. 얼마 전 미국 남부에 내린 집중 호우는 텍사스를 황폐화시켰고 100명…
경기도의 반도체 수출이 상반기 기준으로 역대 최초로 300억 달러를 넘어섰다는 희소식이다. 이 같은 집계는 최근 미국의 관세정책 변동 등으로 세계 무역 시장이 큰 폭으로 요동치고 있는 상황에서 올린 성과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할 것이다. 경기도의 반도체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세계 각국의 정책 환경변화 등 다양한 외생변수에 적극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지속적인 선방(善防)을 기대한다. 전국 수출이 전반적으로 정체된 가운데 경기도의 금년 상반기 실적은 광역지자체 수출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한국무역협회 경기남부지역본부가 발표한 ‘경기도 2025년 상반기 수출입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경기도의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8% 증가한 804억 9251만 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수입은 4.4% 오른 791억 9043만 달러였고, 무역수지는 13억 208만 달러 흑자였다. 수출 품목 중에서는 반도체가 전년 동기 대비 10.3% 증가한 300억 6296만 달러로 상반기 기준 사상 처음 300억 달러를 돌파하며 단연 돋보였다. 자동차(117억 달러), 반도체제조용 장비(35억 달러)가 뒤를 이었으며, 이들 상위 3개 품목이 전체
나는 스스로 대한민국 '평균 상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최근 그런 내게 이런 상식을 깨는 ‘이상한 뉴스’가 들려왔다. 내용은: “이재명 대통령이 청소년 시절 한 소녀를 살해한 사건에 연루돼 소년원에 수감되었고 그래서 중·고등학교에 진학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요즘은 하도 ‘가짜 뉴스’가 많아서 웬만한 것에 놀라지도 않지만, 이 내용은 완전하게 상식을 넘는 뉴스라 순간적으로 기가 막혔다. 그리고 검색해 보니 “해당 주장은 2021년 검찰 수사에서 허위로 판명됐고, 이를 유포한 유튜버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라고 나온다. 이 가짜 뉴스의 진원지는 “모스 탄(한국명 단현명)” 한국계 미국인 교수로 미 대통령 트럼프 1기 행정부(2017~2021)에서 국무부 국제형사사법대사를 지낸 인물이다. (소위 네오콘인데, 현재 트럼프 2기는 네오콘을 싫어한다. 따라서 이 사람은 정치권에서 그냥 변방의 듣보잡이다). 이 사람이 재직하는 학교는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1971년 개신교 '복음주의'의 정신을 바탕으로 설립된 사립대학교이다. 이런 검색 결과를 보면서 최근 넷플릭스에 올라온 다큐멘터리 영화, “열대의 묵시록(apocalypse in
[ 경기신문 = 황기홍 화백 ]
정부의 ‘6·27 대출규제’가 시행되면서 비아파트 전세 시장에 급속한 위축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 비상이다. 청년층 임차인의 자금줄이 막히면서 공실이 늘고, 임대인들은 보증보험 가입 제한으로 전세 공급 자체가 어려워지는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더니, 딱 그 짝이다. 아파트값의 고공행진을 막겠다는 정책 의지는 평가할 만하다. 아무리 그래도 교각살우(矯角殺牛)는 안 된다. 정부 정책의 허점을 신속히 보완해야 한다. 아파트 가격 안정을 목표로 시작된 ‘6·27 대출규제’의 여파가 다세대·다가구·오피스텔 등 비아파트 시장으로 번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다주택자와 유주택자의 주택담보대출 한도 축소와 함께, 무주택 청년에게 제공되던 ‘버팀목 전세자금대출’ 한도도 기존 2억 원에서 1억 5000만 원으로 축소했다. 문제는 해당 전세대출이 주로 1~2억 원대 원룸, 다세대주택 등에 거주하는 청년층이 집중적으로 사용해왔다는 점이다. 대출 한도가 줄자 곧바로 역전세 현상이 발생하고, 월세 전환이 불가피해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빈방이 방치되는 사례도 증가하는 추세다. 공급 여건도 나빠지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서울의 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