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의 피해가 일파만파다. 카카오톡이 개인정보 유출로 소란스러울 때 많은 사람은 텔레그램이 안전하다며 갈아탔다. 같은 이유 때문일까? 텔레그램은 전 세계 10억 명의 활성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을 기만이라도 하듯 지금 가장 위험한 메신저로 주목받고 있다. 딥페이크 성 착취물이 텔레그램을 통해 유포되기 때문이다. 사실 텔레그램은 태생부터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이 앱은 권위주의 국가가 주요 시장으로 이란, 러시아, 우크라이나 및 구소련 국가들에서 큰 영향력을 떨쳤다. 특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주요 정보는 이 앱을 통해 퍼져 나갔다. 따라서 일부 분석가는 텔레그램을 ‘가상의 전쟁터’라 불렀다. 이를 방증이라도 하듯 최근에는 또 다른 전쟁터가 되고 있다. 특정 인물의 얼굴 등을 영상에 합성한 딥페이크의 온상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CEO 파벨 두로프(Pavel Durov)는 지난달 24일 프랑스 부르제 공항에서 체포됐다. 사기, 마약 밀매, 조직범죄, 돈세탁, 테러 조장, 아동 성범죄 등을 텔레그램에서 방치한 혐의다. 그동안 인터뷰를 꺼리고 베일에 가려 지내던 두로프는 갑자기 세상에 전면 노출됐다. 두
“인간사회에서 슬픔의 종류는 허다하나, 나라를 강탈당한 망국노(亡國奴)의 치욕, 그 이상 가는 슬픔은 없을 것이며, 기쁨의 종류도 허다하나 잃었던 자유를 되찾은 기쁨이야말로 최고의 환희일 것이다.” 훗날 광복회장을 역임한 독립투사 故이강훈 선생(1903~2003)의 저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사》의 첫 문장이다. 우리 조상들은 1910년 8월 29일 그날을 왜 망국의 상실감으로 인한 주체할 수 없는 슬픔과 지독한 분노를 담아서 규정하지 않고, ‘국치(國恥)’라고 여기고 그렇게 말했을까. 그 후 100년도 더 지난 오늘도 우리는 그날을 ‘부끄러움’으로 상기하며, 그날의 조상들처럼 치를 떤다. 힘 없고 가난했지만, 누구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앉아서 밥을 먹던 사람들이, 아무 때든, 어디서고 편하게 누워서 쉬고 또 일하던 사람들이, 필요한 걸 찾아서 궁핍과 남루를 그럭저럭 감당하며 살던 사람들이, 이젠 그 어떤 일도 맘대로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처량한 신분은 가족을 먹여살려야 하는 가장들이었다. 그 통한(痛恨)의 시간에, 그 가엾은 족속의 눈에는 빈 쌀독과 대여섯씩이나 되는 처자식의 입이 가장 먼저 들어온다. “우리 식구들이 머지않아 굶어죽겠구나
딥페이크(Deepfake) 기술은 인공지능의 딥러닝(Deep learning)을 이용해 영상과 음성을 조작해 실제와 구분하기 어려운 가짜(fake)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2017년 외국의 한 인터넷 사이트의 이용자가 유명인의 얼굴을 성적인 영상에 합성한 사건으로 처음 대중의 주목을 받았고, 이후 정치적 인물의 조작 영상 등이 등장하며 더 큰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여성에 대한 성적 범죄에 악용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윤리적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딥페이크 기술을 이해하는 데 있어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Simulacrum) 개념은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 현실과 복제물의 경계가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설명했다. 전통적으로 복제물은 원본을 모방하거나 재현하는 것이지만, 시뮬라크르는 원본이 무엇인지조차 흐릿하게 만들며 복제물이 독립된 의미를 갖게 되는 현상을 나타낸다. 쉽게 말해, 복제물이 원본을 대신하거나 아예 대체해 버리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광고 속 완벽한 이미지들은 실제 사람보다 더 아름답고 이상화된 모습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간다. 이런 이미지가 반복되면서 사람들은 그
한때 나는 전원주택단지에 몇 년간 산 적이 있다. 단지 안에는 아주 작은 가게가 하나 있을 뿐, 식당이나 마켓이나 문화시설을 가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했지만 주변이 모두 자연으로 둘러싸여 있고, 주차할 공간이 넉넉하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면 공원마다 운동기구가 있어서 너무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끊임없이 내 공간을 침입하는 벌레들 때문에 방심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벌레를 좋아하는 사람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벌레를 싫어하거나 무서워한다. 특히 집을 비운 사이에 내 영역을 활보하거나 점유하고 있었던 벌레들이 인기척에 놀라 쏜살같이 도망가거나 딱 버티고 있을 때에는 머릿속이 뒤엉키고 몸이 얼어붙는다. 그때에는 휴지로 벌레를 눌러 잡는 사람, 책이나 그릇 같은 것으로 살짝 눌러 놓는 사람, 그냥 못 본 체 뒷걸음질치는 사람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소파 밑으로 숨어들어간 벌레는 내가 이렇게 망설이는 동안 안보이는 곳으로 줄행랑을 친다. 몸을 숨긴 후 어디로 매복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순간 나는 소파에 앉는 것을 두려워한다. 벌레들의 전략은 일단 삼십육계, 그들은 진정성 없이 물러서서 일단 나를 안심시킨다. 저리 작은 체구로 지능적인 술수도 없이…
더위로 인해 열 받는 지구 안에서 웃고 살자고 한다면 정신이 외출해 버린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그래도 웃어보자고 '강의 유머 기법'을 읽다 보니 '사람을 졸게하는 죄' 라는 테마가 있다. 그 내용이다. 늘 교통법규를 위반하던 총알택시 기사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목사님이 동시에 천국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목사님을 칭찬하지 않고, 오히려 총알택시 기사를 칭찬했다. 기가 막힌 목사님이 그 이유를 물어보자, 하나님이 말하기를 “너는 늘 사람들을 졸게 했다. 하지만 총알택시 기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하나님!”하고 늘 기도하게 했다.”고 하는 것이다. 내가 나를 깨우고 나의 길을 가기 위한 심신의 워밍업으로 이른 아침이면 헬스장으로 달려간다. 가는 길에는 한 대학 생환관이 있고 그 산자락 아래로는 도로가 있다. 그 길 가운데는 양쪽 도로를 지켜주는 분계선에 수십 년 된 플라타너스가 우람하고 듬직하게 줄지어 서 있다. 나무는 얼마나 오래 살았으며 삶이 버거웠는지 얼굴에도 몸에도 검은 구멍이 뻥뻥 뚫렸다. 가지는 떨어져 나가고 위로 뻗은 줄기도 꺾어져 버린 그대로이다. 하체만 세월 앞에 당당한 모습이다. 얼마나 처절한 삶이었으면… 하고서 나는 내 삶의 안을…
7월 중순 체코 원전을 수주했다는 뉴스가 주요 언론을 도배했다. 7월 17일 저녁 KBS의 뉴스9은 ‘유럽에서 전해진 속보로 뉴스를 시작하겠다’는 앵커 멘트와 함께 기사 세 꼭지를 연이어 보도했다. 사업비만 3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며, 팀코리아로 경쟁국인 프랑스와 미국을 물리쳤다고 했다. 일주일 전 윤 대통령이 한·체코 정상회담에서 수주를 지원했다는 언급도 빠뜨리지 않았다. 조선일보 18일자 아침 인쇄신문도 ‘유럽서 프랑스를 꺾었다, 24조 체코 원전 수주’라는 제목으로 이 내용을 대서특필했다. 수주액이 최대 40조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극소수 언론이 덤핑 수주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대부분은 기사에서 사설까지 장밋빛 일색이었다. 미국의 1/3, 프랑스의 1/2 가격으로 입찰했다는 내용은 가격경쟁력으로만 보도했다. 한 달 남짓 지난 8월 24일. 조선일보는 1면 머리기사로 ‘미국 태클에 걸린 K원전 체코 수출’이란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한수원이 우선협상 대상국으로 선정됐지만 원천기술을 가진 미 웨스팅하우스사가 몽니를 부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8월 초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동철 한전 사장, 황주호 한수원 사장 등으로 구성된 민관 대표단이 미국
영화 ‘딸에 대하여’는 엄청나게 관객이 몰릴 상업영화는 아니지만 독립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예술영화관을 중심으로 조용히 화제를 얻을 작품이다. 그런데 다른 측면에서, 엉뚱하게 뉴스를 타고 있다. 대전여성영화제와 관련해서이다. 영화의 공식 개봉은 어제(9월4일)였으나 오늘과 내일 이틀간 열리는(9월5~6일) 이 여성 영화 행사에서도 상영될 예정이다. 문제는 대전 시이다. 시가 지원하는 보조금 1350만원의 반납을 고리로 영화의 상영을 철회하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 대한 민원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 대전 시의 주장이다. 영화 ‘딸에 대하여’는 동성애자인 딸이 자신의 파트너를 집에 데리고 들어 오면서부터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엄밀하게 이야기 하자면 딸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딸을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이다. 딸의 성 정체성을 새롭게 알게 된, 그래서 자신의 성 인지 정체성에 대하여 새삼 깨닫고 돌아 보게 되는 한 중년 여성의 이야기이다. 담담하고 성찰 적이다. 이런 영화를 동성애 영화라 해서 민원을 제기하고 그 민원을 앞장 세워 영화 상영을 못하게 하려는 것은 나치의 마인드에 다름 아니다. 검열과 폭력이다. 아무리 지금의 세상이 온통 비상식적으로 거꾸
요즘 건물 옆을 지나가다 보면 ‘임대문의’라고 쓰인 현수막을 많이 보게 된다. 분명 예전보다 비어있는 상가가 늘어난 느낌이다. 이런 풍경을 마주하는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닌 듯하다. 최근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가 내놓은 한식, 커피, 양식, 호프, 제과점, 패스트푸드, 치킨 등 7개 외식업 현황 분석 결과, 지난해 연말부터 매 분기 폐업하는 매장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서울 지역의 폐업 점포 수는 프랜차이즈와 일반 점포를 모두 합쳐 지난해 4분기 4606개에서 올해 2분기 5014개로 8.9% 늘었다. 업종별로 살펴보면, 커피전문점을 제외한 6개 업종의 매장 수가 모두 감소했다. 치킨집은 지난해 4분기 5564개에서 5498개로 1.2% 줄었고, 동일 기간 패스트푸드점은 5921개에서 5840개로 1.4%, 호프집은 8598개에서 8220개로 4.4% 줄었다. 반대로 커피전문점은 11만8714개로 0.6% 늘었다. 이는 저가 커피 브랜드가 매장 수를 빠르게 늘린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한식음식점, 제과점, 커피전문점을 제외하고 올해 개업 점포보다 폐업 점포가 더 많다는 분석이다. 폐업률이 가장 높은 것은 5%를 차지한 패스트푸드점. 외식업
지난 8월 8일 한국독립기념관장이 된 김형석은 지난해 12월 이렇게 말하였다. “1948년 8월 15일에 정부를 세우게 되는 거예요. 거기에서 부터 대한민국이 시작되는 겁니다." 한국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된 뒤에도 그는 이런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했다. 대한민국이 1948년 8월 15일 건국되었고,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이라고 하면서, 독립투쟁의 역사를 부정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왜곡하는 것이 뉴라이트 역사관이다. 뉴라이트는 ‘반일종족주의’를 바탕으로 한다. 반일종족주의는 “친일은 악이고 반일은 선이며 이웃 나라 중 일본만 악의 종족으로 감각하는 반일종족주의를 고발한다”(이영훈외, 『반일종족주의』, 2019)라고 한다. 일본의 식민지배 35년간 한국인을 억압, 착취, 수탈, 학대하였다고 하는 일반적 통념을 거부하면서 뉴라이트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절대적으로 숭배한다. 이승만학당(이사장 이영훈)이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철학, 독립운동, 건국업적을 올바로 인식하고...전파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고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자.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개원식에서 이승만 의장은 “이 국회에서 건설되는 정부는 즉, 기미년(己未年)에 서울
1789년 7월 14일 프랑스의 성난 민중들이 파리의 바스티유 감옥을 공격했다. 세금인상을 위한 형식적인 삼부회에 동원된 평민대표들은 사제들과 귀족층의 일방적인 회의결정에 분노해 민중 폭동을 일으킨 것이다. 자유, 평등, 박애의 민주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혁명의 열기는 구체제의 파괴를 명분으로 왕과 왕비를 처형하는 등 극도의 공포정치로 이어졌다. 영국은 프랑스보다 먼저 시민혁명을 달성해 의회정치가 일찍 자리를 잡은 나라였지만 혁명 소식은 바로 전달되었다. 그때 아일랜드 출신으로 영국 의회에서 성공한 정치인이었던 에드먼드 버크는 이 사태를 예의 주시했다. 그는 프랑스 대혁명의 여파가 영국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급격한 변혁보다는 검증된 과거의 전통을 존중하면서 점진적인 변화를 지지했다. 그는 영국의 전통적 가치를 지키는 것이 프랑스처럼 혁명적 변혁보다도 우수하다는 논지의 글을 썼다. 그 글이 유명한 '프랑스혁명에 관한 고찰'이었다. 여기서 버크는 보수주의(Conservatism)라는 정치사상을 창조해 냈다. 버크의 보수주의는 결코 변화를 거부하는 사상이 아니다. 한 사회의 문명은 자신의 경험과 타인의 경험이 결합해서 만들어낸 전통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