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지고서야 문득 꽃을 보네/ 네가 떠난 뒤에 비로소 널 만났듯 / 향기만 남은 하루가/ 천년 같은 이 봄날(민병도의 낙화) 화양연화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순간을 의미한다. 그러나 화양연화는 그때가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마련이다.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그때를 추억하기에 화양연화는 모든 사람의 가슴에서 아련히 살아있다. 잠시라도 내가 인생에 태어난 이유며 살아있음을 기억하는 의미있는 순간으로 말이다. 풋풋했던 20대 88올림픽이 열리던 해. 세계 석학들을 초청한 심포지엄 일로 한 친구를 만났다. 이후 줄곧 우리는 서로 의지하는 둘도 없는 친구로 살고 있다. 세월이 훌쩍 지나 직장을 그만두고 이 나이에 무슨 공부냐고 용기를 못 내던 친구가 최근 박사가 됐다. 그가 공부를 망설일 때 나는 강력하게 그의 등을 떠밀었다. 그가 석사 학위를 받고 나서도 나는 그의 등을 또 밀었다. 늦었다하더라도 넌 공부하는 걸 좋아하므로 박사까지 마쳐야 한다고. 그러나 그의 박사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검은 머리는 새하얗게 되었고 눈은 침침해 두꺼운 돋보기를 쓰고서도 줄줄 눈물을 흘리며 공부를 이어가다가 결국 아파서 119에 실려 가기도 하였다. 그가 그 힘든 과정을 다
어느 장터에서 장사꾼이 장사를 시작했다. 이 창으로 뚫지 못할 방패가 없다. 잠시 후에 둥근 방패를 들고 나왔다. 이 방패로 막지 못할 무기가 없다. 창이든 칼이든 다 막아내는 튼튼한 방패라는 것이다. 그러자 구경꾼 중 한 명이 그럼 세상에 뚫지 못할 것이 없는 이 창으로 세상에서 막지 못할, 도저히 뚫을 수 없는 방패와 겨뤄보면 어떠하겠는가 제안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다. 듣고 보니 말하고 보니 참으로 모순된 일이기 때문이다. 矛盾(모순)이다. 矛(창모)盾(방패순). 어처구니가 없다. 1811년 홍경래의 난 때 조부 김익순(金益淳)이 홍경래에게 항복하였기 때문에 연좌제의 의해 집안이 망했다. 당시 6세였던 김익순의 손자 김병연은 황해도 곡산으로 피신하여 숨어 지냈다. 후에 사면을 받고 과거에 응시하여 조부의 행위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답을 적어 급제하였다. 그러나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벼슬을 버리고 20세 무렵부터 방랑생활을 시작하였고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하고 항상 큰 삿갓을 쓰고 다녀 김삿갓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공무원이 일을 열심히 해야할 부서가 있고 적절하게 근무할 부서가 있는 것 같다. 기획부서, 예산부서,…
지난 2017년 5월 27일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선감학원 묘역과 경기창작센터 일대에서 선감학원 희생자 공식 위령제와 추모문화제가 열린 바 있다. 이 자리에는 이곳에 수용됐다가 탈출, 승려가 된 혜법 스님도 참석했다. 8살 때인 1969년 밖에서 놀다가 잡혀왔다고 했다. 가족은 아버지와 한쪽다리를 절던 어머니, 형 2명, 누나 1명이 있었고 잡혀가던 그날 엄마가 쌍둥이 동생을 출산했다는 당시 기억을 갖고 있다. 수원 집에서 성곽이 보였고, 근처에 저수지가 있었다. 문둥이 마을도 있었던 기억이 있고, 동네 학교가 산위에 있었던 것 같다고 한다. 혜법스님은 선감학원에서의 아픔과 복수의 마음을 잊기 위해 출가했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수원시가 가족을 찾아주기 위해 적극 나섰다. 기록물 전수조사와 홍보, 노인대상 집중 탐문 활동을 펼쳤지만 아직 찾았다는 소식이 없어 안타깝다. 이처럼 선감학원 피해자들의 한은 지금도 풀리지 않고 있다. 국가의 잘못으로 혹독한 고통을 당해온 피해자들의 눈물을 우리는 아직도 닦아주지 못하고 있다. 본보의 기획기사 ‘경기도의 굴곡진 현대사-안산 선감학원’(7월31자 1면)는 선감학원이 문을 닫은 지 30년이 넘었지만 생존 선감학원
오늘은 야간진료다. 누군가 화사하게 인사한다. “원장님 계속 치료 많이 받고 싶었는데 일이 너무 늦게 끝나고 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계속 못왔어요”. 요즘 어떠냐는 질문에 “잘 지내요 호호호.” 환하게 웃는 모습이 참 이쁘다. 문득 그녀가 처음 내원했을 때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힘들게 약속을 몇 번이나 바꿔가며 진료실에서 만나 연변 사투리로 꺼내놓는 증상들이 심상치 않다. 자신의 몸에서 고름 냄새가 나고 직장에서도 사람들이 자기를 싫어하고 욕하고 수군거리고 쳐다보고 또 거리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을 쫓아온다고 하였다. 검사가 필요해 대기실에 기다리라고 하는 사이 하필이면 그때 불시에 방문한 타업체의 남자직원이 방문하였다. 그녀는 저 사람이 자신을 쫓아왔다고 말하며 다음에 오겠다고 부리나케 나가버렸다. 나는 소개한 분의 염려를 떠올리며 그녀에게 세심한 관심과 치료가 필요함을 전화로 알렸고 이어 연결되어 딸의 상황을 들은 그녀의 엄마는 자신이 잘 챙기겠노라고 다짐하였다. 그 일을 잊어버릴 때 쯤 그녀는 엄마와 함께 내원하였다. 처음 내원시 증상과 함께 소화불량, 과민성대장증후군, 불면, 통증 등 증상이 한보따리다. 화병과 중증도의 우울과 불안을 보인다.화병은 대게
가슴기 살균제 피해 규모가 당초 발표된 것보다 훨씬 크다는 소식에 충격에 휩싸인 하루였다. 뉴스를 듣는 순간 가슴기 살균제 사건이 터졌던 그때 나는 어떻게 생활하고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볼 수밖에 없었다. 가습기는 쓰고 있었으나 다행히 살균제를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무실이나 공공공간에서 가습기를 많이 사용하고 있으니 나 또한 그 피해자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몇 년 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는 사람은 필자 뿐 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예측하지 못했던 재난이 너무나 자주 우리 삶에 찾아오고 있다. 그만큼 사람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만으로도 충분히 무거운 나날인데 홍수 피해나 가습기 살균제 소식은 어느 때보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 같다. 세상은 빨리 변하고 생활의 편리를 도모하는 상품들은 즐비하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하고자 만든 장치와 물건들이 오히려 우리들의 삶을 위협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오늘은 손때 묻은 할머니의 장롱과 같이 우리들의 마음을 위로해 줄 작품 두 가지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조혜진의 개인전 ‘한 겹 Blurry layer’은 올해 초 통인보안여관에서 열렸다. 그는 자개농의 문짝을…
지금 어떤 음악을 듣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여러 가지 대답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본인의 취향이 매우 확고하여 한 장르의 음악만 고수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고, 또 누군가는 조금 더 큰 카테고리 안에서 유연하게 음악을 즐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몇 해 전까지는 힙합 음악이 그리고 요즘처럼 트로트 음악이 사정없이 울릴 때면,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당시 유행하는 음악을 저항 없이 듣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라 본다. 몇 해 전 무한도전의 ‘토토가’ 열풍이 불었다. 연일 그 프로그램에 관한 기사의 링크와 시청 소감 그리고 추억담을 이야기하느라, 사람들의 SNS 타임라인은 꽤 분주했다. 한 세대 전의 음악이 전국의 거리에 흘러나왔고, 나이로 볼 때, 그 당시의 문화를 향유하지 못했을 법한 연령대의 친구들이 그 노래들을 흥얼거렸다. 이 현상은 프로그램의 기획력과 파급력만으로 치부하기에는 상당히 강력했으며, 드라마나 가요의 복고 혹은 레트로의 열풍이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 예견했던 당시의 분위기에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얼마 전 음원 발매와 함께 차트를 점령한 ‘싹쓰리’ 역시 결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는데, ‘토토가’의 킬링 포인트 가운데 하나는 과거의 모
더불어민주당과 정부·청와대가 국가정보원과 검찰·경찰 등 권력기관의 권한을 대폭 조정하는 권력기관 개편안을 내놓았다. 개혁안은 검찰의 수사 범위를 대폭 축소하고 경찰의 역할과 권한을 크게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공룡 수사기관’으로 탈바꿈될 경찰을 바라보는 시각은 마냥 긍정적이지 않다. 중립성 담보를 위한 제대로 된 장치도 안 보이고, 역량에 대한 의심도 좀처럼 걷히지 않고 있다. 개편안에 따르면, 검사의 1차 직접수사 개시 범위는 부패·경제·공직자 등 6대 범죄로 축소된다. 공직자 수사의 경우도 5급 이하는 경찰이, 3급 이상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맡게 돼 검찰은 사실상 4급만 수사하게 된다.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도 폐지된다. 축소된 권한들은 모두 경찰로 이관된다. 수사 개시 및 종결권을 갖게 되는 경찰은 명실공히 수사·정보·보안업무를 총망라하는 슈퍼 수사기관이 된다는 얘기다. 진작부터 전문가들의 걱정이 쏟아지고 있다. 단일 규모의 최대 조직(약 12만 명)인 거대 경찰조직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단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심각한 부작용을 우려한다. 마땅한 통제장치가 없는 권력기관이 확장되는 것은 치명적인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오는 17일부터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실시된다. 정부는 예년보다 대폭 축소된 규모로 실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축소 이유는 미국 본토에서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대규모 미군병력이 한국으로 들어오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코로나19로 인해 전반기 한미연합훈련도 연기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기도가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취소해 달라고 정부에 건의했다. 이재강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코로나19 확산방지와 남북관계 신뢰회복을 위해 한미연합군사훈련은 취소돼야 한다며 통일부에 건의문을 보냈다. 코로나19 방역은 정부의 제1국정과제이자, 경기도의 최우선순위 도정 과제인데 한미연합군사훈련으로 인해 코로나19가 확산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도의 주장은 근거가 있다. 지난 7월 30일까지 평택시에서 발생한 코로나 확진 환자가 총 146명인데 이 가운데 71.9%가 주한 미군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같은 기간 주한미군 확진자 121명이 발생했는데 이 중 107명이 경기도에 주둔 중인 미군과 가족 등 관련자들이었다. 더욱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미국 현지에서 의심 증상이 확인됐는데도 한국행 비행기를 타게 한 미국 측의 무책임한 자세다. 따라서 이 평화부지사는 “미군의 대응을 신뢰
토사구팽(兎死狗烹). “사냥하러 가서 토끼를 잡으면, 사냥하던 개는 쓸모가 없어 삶아먹는다”는 말이다. 얼마 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필자의 눈길을 끄는 글이 올라왔다. “포천파출소에 사는 왕방이·왕순이를 지켜주세요.” 포천시의 포천파출소에서 약 3년 전부터 키우던 강아지 왕방이·왕순이를 필요할 때는 계급장까지 달아주며 홍보하더니 이제는 파출소측이 이 강아지들을 파양한다는 내용이며, 심지어 입양당시 ‘동물등록’을 편의상 파출소가 아닌 이웃주민 명의로 했기에 소유권 자체도 부인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아마도 파출소측은 길 잃은 유기견을 돌봐주고 양육함으로 어렵고 힘든 시민을 돌봐주고 도와준다는 경찰에 대한 ‘이미지 제고’와 별반 다른 파출소와 차이점이 없는 시골 파출소에 ‘신규 홍보컨텐츠 창출’ 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 소위 ‘대박’을 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결과는 어떠한가? 말 그대로 토사구팽으로 파출소 입장에서는 안하니만 못한 격이 되어 버렸다. 인간은 본디 이기적이다. 그렇기에 유발하라리의 초 베스트 소설 ‘사피엔스(Sapiens)’를 보면, 인간은 인간의 이기심을 채우고 죄책감을 덜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인간을 제외한
중학교 때 특별 활동반에서 연극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주인공 역은 남학생이었다. 그 상대편 역으로 필자가 뽑혀서 발표회를 앞두고 몇 주를 맹연습했다. 그런데 문제는 주인공인 남자애가 뜨거운 눈빛을 내게 보내는 것이었다. 연극을 하면서도 나는 그 상대편의 남자 주인공 애를 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눈길을 피하며 연극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에도 그 애가 이상하게 나에게 관심 두고 행동했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는 딴청을 피우던 일이 생각난다. 그즈음 나는 국어 선생님을 몹시 짝사랑하였다. 아주 젊으신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그분의 행동 하나하나를 주시하며 왜 그렇게 마음이 설렜는지 모른다. 특히나 글짓기 시간이면 잘 보이려고 열심히 글을 썼다. 그러면 그 선생님께서 잘 썼다고 칭찬해 주실 때 얼마나 기뻤던지, 그날은 온종일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그리고 수업 시간에도 선생님과 눈을 맞추려고 애를 썼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그토록 좋아했던 국어 선생님을 바라볼 때의 내 눈빛은 어떠했을까?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호감 어린 촉촉한 눈빛이었으리라.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임의 손에/ 자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