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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의 시대, 사회적 경제] 피하지 말고 슬기롭게 맞서기

 

코로나19와 일상의 변화

 

코로나19, 다시 대유행이 왔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에 닥친 2월의 변화는 12월이 된 지금 창의적인 모습으로 자리잡았다.

 

모임과 만남의 문화가 바뀌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온라인 소통과 디지털 공동체가 각광받겠지만, 그에 비례해서 작은 동아리와 사랑방의 가치 역시 부상한다. 소중해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항상 누려왔던 모임과 만남은 지금 사회적 결핍이 되었다. 사이버 연결상태의 과잉은 피로를 동반한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SNS와 스마트폰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지도 않고 삶을 해방시키지도 않는다.

 

화상회의가 늘고, 스마트폰 전화통화가 많아지고, 업무가 채팅방 대화창에서도 전개되는 것을 바라는 이는 많지 않다. 업무는 편해졌지만, 쉬는 시간까지 그 업무를 온라인으로 해서야 되겠는가, 자문들을 하게 된다. 스마트폰으로 이동 중에 영화를 즐기고 인기 드라마를 시청하는 횟수를 늘이고 싶어 하지만, 인터넷으로 효율적인 일처리를 하고 대소사를 피곤하게 챙기는 것에 대해서는 복잡한 심경을 토로한다. 우리가 디지털 소통장비를 통해서 효과적으로 일을 할 자유를 얻었다고는 생각하지만 일상 속에서 구속되지 않을 자유는 놓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온라인 소통이 늘지만, 하루 24시간 중에 인터넷과 SNS 소통만 남는다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동네와 골목을 넘어 밖으로 못 나가고 사이좋은 사람들이나 이웃을 못 만난다면, 우울과 고독, 고립의 고통이 팽창하고, 좌절과 분노가 증가한다. 그런 현실구조의 문제로 인해서, ‘사회적인’ 자살이 늘어날 수 있다.

정서적으로 자살에 가까운 상태에 직면한 사람들이 많아질까 걱정이다. 신체의 자살만큼 무서운 것은 무기력과 자존감 하락, 패배감과 무력감으로 나타나는, 정신적 자살이라고 부르는 증후들이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기업과 경제조직. 민간단체들은 이런 결핍을 해소하는 일에 주목을 해야 한다.

 

12월 대유행의 교훈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린 이후, 작은 모임, 좋은 사람을 소개받는 만남은 소중한 일이 되어버렸다. 희소가치를 가지게 된 것이다. 살롱과 개더링(gathering)처럼 교류와 협력을 원하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대화의 장은 새로운 문명의 풍조가 되었다. 늘 벌이던 비공식적이고 친밀한 대화의 장을 희귀한 금덩어리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문화현상이 만들어졌다. 말 그대로 정서적이고 감성적인 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소중하고 건강하다고 느끼게 된다. 어찌 보면 소통을 더 진실되게 하고자 하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디지털 화상회의나 유투브방송에 대해서도 많은 이들의 시각이 달라졌을 것이다. 오프라인 현실에서 우리가 곁가지로 하는 일 정도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연예인들이 방송국 프로그램보다 온라인 개인방송에 매달리는 상황이 대세가 되었다.

 

SNS와 소셜미디어는 그것은 중요한 만남의 기회이고, 귀중한 소통의 시간이라고 여기게 되니까, 온라인으로 대화하는 형식을 갖추고 공식적인 토론을 벌이는 풍조가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추세다. 지역마다 주민자치회가 자리잡아 가는 요즘, 주민들이 지역공동체의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화상회의를 하고 채팅방에서 의견을 쏟아내는 일들이 늘어간다. 민도가 높아진다.

 

일방적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는 삶에 치우치지 않게 이런 시간을 가져 균형을 맞춘다면 훌룽한 인생이 될 것이다. 이미 우리는 손닿는 데에서 만남과 모임을 갖고 있다. 많이 마주칠 수 없어졌지만 원하면 마주볼 수 있게 되었다. 얼굴을 보지는 않지만 스마트폰을 보면서 언제든 곧바로 이어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

 

비대면 상황이라고 볼 것이 아니라, 비접촉이지만 즉시접속의 시대가 왔다고 정의하자. 가장 값진 것은 기술장비를 통해서 좋아하는 사람들을 찾아 의식적으로 만나는 삶이다. 방에 갇혀있지만 방에 갇히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고안해내는 소통은 다양하다. 역설적이다.

 

사실 코로나 시대가 아니어도 인류문명은 그리 변해야 옳았을지 모른다. 외로움과 우울증 속에서, 인류에 대한 긍휼로 웃는 얼굴들을 만나게 된다. 동정심가 공감능력을 갖고 위로하고 치유해주려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데 희망을 얻기도 한다.

 

피할 수 없다. 피하지 말자. 코로나19 위기와 현재의 대처에 확실한 답이 다 들어있다, 코로나19가 수개월 후 끝나도 우리는 이런 삶의 방식을 개발해 적용하고 똑바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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