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의 후방기지 “대한민국 정부는 대일본 정부의 행동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십분 편의를 제공하고 대일본 정부가 전항(前項)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군략(軍略)상 필요한 지점을 수의(隨意) 수용할 수가 있다.” 여기서 ‘전항’은 바로 앞의 항목으로 “대일본 정부는 대한국의 독립 및 영토보존을 확실히 보호한다”를 가리킨다. 이게 도대체 뭘까? 게다가 어떤 군사전략상 필요한 지역에 대한 수용을 요구하는 것일까? 이는 러시아와의 전쟁에 들어간 일본이 육군 2개 사단을 조선 땅에 상륙시키면서 맺은 이른바 동맹조약의 내용이다. ‘동양평화’를 내세워 “대한제국은 일본을 굳게 믿고 시정(施政)개선에 관해서도 충고를 받아들일 것”을 제1조로 못 박은 협정으로 말이 협정이지 강제체결된 조약이었다. 1904년의 일이었다. 이듬해인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우리에게 강요한 “을사보호조약”이라는 이름의 식민지 체제를 장착하기도 전에 조선은 이미 국권을 고스란히 상실했던 것이다. 조선땅 천지를 전쟁의 후방기지로 삼아 어디든 일본이 원하는 곳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는 압박에 저항하지 못했으니 그다음 수순은 정해져 있었다. - 러일전쟁,…
남을 비난하지 않는 데는 아주 약간의 노력이면 충분하다. 남을 비난하지 않는 자의 생활은 참으로 당당하다. 그런데 그 약간의 노력을 하는 사람을 이렇게 찾아보기 힘들다니! 한 노인이 꿈속에서 생전에 결점이 많았던 수도승이 천국의 맨 윗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어떻게 그 많은 결점을 가진 수도사가 가당찮게도 저렇게 큰 영예를 누리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한평생 아무도 비난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기는 죄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남을 판단하면서도 자기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으니 결국 남을 판단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단죄하는 것입니다. (바울) 남의 행위를 비난하지 말라. 남을 비난하면 공연히 자신의 마음이 어지러워져 커다란 잘못을 범하게 된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반성하라. 그러면 그것은 결코 헛되이 끝나지 않을 것이다. (성현의 사상) 자기 스스로를 가차 없이 엄격하게 비판하면 할수록, 남을 더욱 공정하고 더욱 너그럽게 비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공자) 남의 불명예 속에서 자신의 명예를 찾지 말라. 선량한 사람은 남의 치욕을, 심지어 그에게 해를 끼친 자의 치욕까지…
법적 소송에서 사실관계를 가장 소중히 다뤄야 하는 판사가 판결문을 쓰느라고 사건 소송서류를 들여다 볼 시간이 없다고 불평한다면 헛소리로 들릴 것이다. 그런데 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실제로 하는 집단이 있다. 언론인을 자임하는 상당수 언론사 취재기자가 그들이다. 그들의 입에서 기사를 쓰느라 취재를 할 시간이 없다는 푸념이 나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논리의 모순이고 궤변이며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 기사가 취재의 토대 위에서 작성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기자 초년 시절 수습기간을 거치게 하고 경찰서와 병원, 사건을 찾아 사람들을 만나서 현장감이 있는 기사를 생산하도록 하는 훈련을 받는 것도 충실한 취재와 엄밀한 확인의 과정에서의 긴장감을 놓치지 말라는 의미 아닌가? 그런데 요즘 기자들은 현장 취재를 통해서 보다는 사이버 공간, 즉 연예인과 정치인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계정을 검색해 기사거리를 찾아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취재 시간과 노력을 더 들이기보다 주로 저질 황색정보들을 골라 ‘단독’이니 ‘속보’니 하는 요란한 제목을 달아 포털에 올리는 경우가 흔하다. 사람들의 관음증을 자극해 조회수를 늘리려는 이른바 낚시행위가 자주 눈에 띈다. 클릭
임기말을 향해 달리고 있는 현 정부가 북한카드를 회심의 반전카드로 삼아 만지작거리는 느낌이다. ▲지난 1월 개정한 조선노동당 규약 개정 내용을 6월에 흘린 점, ▲개성공단 복원 및 금강산 관광 재추진을 송영길 대표·이인영 통일장관 등이 밝힌 점, 그리고 ▲민간차원에서 민변 등의 국보법 폐지 공론화와 더불어 통일걷기대회· 통일논문대회· 평양탐구학교 등을 잇달아 여는 것 등이 금년 하반기에 ‘통일열기와 북한과의 평화만들기 작업’을 본격화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일부 언론에서 벌써부터 깜짝쇼 식 정상회담이나 ‘대북성과 조바심’을 내지 않도록 촉구하고 있고, SNS 상에는 국보법 폐지 청원과 반대운동이 가열되고 있을 정도로 또 한 번 진영 간 대결 조짐도 보이고 있어 지난 4년 간 심화되었던 국민들 간 갈등의 골이 더 깊게 패이지 않을까하는 걱정부터 앞선다. 노동당 규약 개정 논란부터가 대립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진보진영은 노동당의 ‘당면 목적’ 수정 문구(‘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 과업 수행’)를 두고 북한이 견지해 온 ‘남조선 혁명론이 약화되어 사실상 남조선 혁명론이 소멸된 것’이라고 해석한다. 또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
코로나19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새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더운 날씨에 몸과 마음이 지치는데다, 감염병 걱정하느라 생각까지 쉽게 지쳐 버릴 수 있는 시기다. 그럼에도 우리는 놓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여름하면 시원한 수박과 함께 바다와 계곡에서 즐기는 휴가를 떠올리곤 하지만, 우리가 가장 만저 떠올려야 할 것은 무엇보다 ‘안전’이다. 여름은 냉방기구 등 과도한 전기 사용으로 안전사고가 쉽게 발생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최근 급격한 기후변화로 평균기온이 상승하고 여름철도 길어지면서 전력소비량이 증가, 과열이나 과부하 등으로 자칫 큰 화재로 번질 가능성이 애석하게도 많이 높아진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다른 계절보다 쉬이 지치는 더운 날씨로 오로지 ‘냉방’만 생각하다보면 우리가 꼭 지켜야할 수칙들을 쉽게 놓쳐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사고 예방에 대한 관심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문어발식 콘센트 사용 금지, 냉방기기 이용시 과부하 주의, 음식물 조리 중 자리 비우지 않기, 외출 시 전원 차단, 소화기 위치와 사용법 익히기, 가장 가까운 비상구 확인하기 등 평소 작은…
사회 질서의 개선은 도덕적 완성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내가 이렇게 붓을 들고 있는 방의 창문 밖으로, 코에 코뚜레가 꿰여 말뚝에 매어 있는 커다란 소 한 마리가 보인다. 소는 풀을 뜯어먹다가 저도 모르게 자신이 매여 있는 고삐를 말뚝에 감아버렸다. 소담스럽게 자란 풀을 눈앞에 두고도 배를 주리고 어깨에 달라붙는 파리를 쫓기 위해 목을 흔들지도 못한 채 죄수처럼 가만히 서 있다. 그는 몇 번이나 빠져나갈 양으로 몸부림쳐보지만, 그때마다 슬픈 신음소리를 지르다가 지금은 얌전해져서 조용히 괴로워하고 있다. 엄청난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이해할 만한 자각도 없이, 많은 풀 앞에서 배를 주리며 지극히 연약한 생물에게 비참하게 당하고 있는 이 소의 모습은, 내 눈에는 마치 노동자들의 상징처럼 비친다. 모든 나라에서 땀을 흘리며 풍요로운 부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은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하루하루 진보하는 문명이 새로운 사상의 분야를 개척하고 새로운 욕망을 부추기고 있을 때, 그들은 그 보잘것없는 동물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가축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그들은 불공평하기 짝이 없는 현실을 의식하고, 마음속으로 자신들이 이런 비참한 생활을 보
홍범도만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사람도 드물다. 1868년 평양의 서문 밖에서 머슴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머슴, 군인, 종이공장 노동자, 승려, 포수, 의병, 광산 노동자, 독립군, 농부, 부두 노동자, 혁명가의 삶을 살았고 마지막 직업은 극장 수위였다. 그가 한 일은 수없이 많지만 한 단어로 그를 규정해야 한다면 독립군일 것이다. 그보다 더 오래, 그보다 더 많이 일본군과 싸우고 그보다 더 크게 일본군을 이긴 사람은 없었다. 27세에 강원도 단발령에서 황해도 출신의 동지 김수협과 함께 일본군 12명을 처단한 이래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52세까지 그는 싸우고 또 싸웠다. 그 과정에서 그는 가족 모두를 잃었다. 아내는 일제의 고문으로 죽고, 큰아들 양순은 그와 함께 일본군과 싸우다 열일곱 살 나이에 전사했다. 작은아들 용환은 그와 함께 만주를 유랑하다 병으로 죽었다. 핏줄 하나 남기지 못하고 머나먼 중앙아시아에서 극장 수위로 생을 마감한 그의 유해조차 아직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필자가 그를 다시 소환하는 이유는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위대한 업적을 재평가하자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비운에 찬 한 영웅의 생애를 제대로 기리자는 것도
“이상반응 없는지 대기하셨다가 안내사항 받고 가시면 됩니다.” 잔여백신 당일예약에 성공했다. 스마트폰 앱에서 잔여백신 조회와 당일예약을 반복했는데 드디어 잡았다. 얀센이냐 아스트라제네카냐 가릴 여유는 없었다.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 105일 만에 접종자 수가 1000만 명을 넘겼다. 국민 5명중 1명이 백신을 한 번이라도 접종했다. 나도 먼저 편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잔여백신은 사전예약자가 접종 당일 예약을 취소하거나 최소 잔여형 주사기를 사용했을 때 추가로 생기는 물량이다. 잔여백신 안내를 예약해둔 병원에서 알림이 오기 전에 지도에 뜬 표시를 보자마자 클릭했다.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운영 종료시간이 저녁 6시라고 표시돼 있었지만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예방접종 예진표를 써서 접수했다. 정보 수신 동의에 ‘예’를 표시하고, 아픈 증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아니오’를 반복해서 표시했다. 대기실에는 예진표를 든 사람들이 띄엄띄엄 있었다. 다들 대기실 앞 TV 뉴스를 보고 있었지만 진료실과 주사실 문이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할 때마다 그 쪽으로 신경을 쓰는 것이 느껴졌다. 내 순번 앞에는 젊은 나이의 남자 몇 명이 있었다. 얀센 백신의…
코로나19로 세금을 내지 못하는 생계형 서민체납자가 늘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업부도나 휴·폐업, 실직 등의 경제사정으로 재산이 없고 소득도 없는 체납자들은 세금을 내기가 어렵다. 세금 뿐 아니라 공공요금도 못내는 이들이 많다. 더불어민주당 이소영 의원에 따르면 주택용 전력 체납액도 지난해 말 기준 138억 원에서 올 4월 기준 143억원으로 5억원 늘었다고 한다. 이의원은 코로나19로 인해 가계 사정이 어려워진 탓으로 보고 있다. 이에 경기도는 생계형 체납자 2000여명을 발굴해 이 중 절반을 복지 서비스에 연계해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생계형 체납자의 압박감을 덜고 희망을 주기위한 조치다. 반면에 고액 악성 체납자는 철저히 추적해 징수하거나 압류 등의 강력히 대처하고 있다. 도는 ‘세금 체납은 공동체 질서를 해치는 불공정’이라며 징수 전담 부서인 ‘조세정의과’와 실태조사 역할을 맡은 ‘체납관리단’을 지난 2019년부터 운영해오고 있다. 지금 각 지방정부들은 악질적인 고액․상습체납자 문제로 골치가 아프다. 정말로 형편이 어려워져서 세금을 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세금 납부능력이 분명히 있음에도, 세금을 회피하는 비양심적 체납자들도 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