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전야 /임혜신 한 남자를 찾아 바다를 건너가네 먼 지중해쯤 조개껍질 부서진 달빛을 밟으며 어느 그리스 여신의 젖가슴에서 여장을 풀고 있을 그 남자를 찾아 어둠에 젖은 닻을 채찍처럼 감아쥐고 가네 불안과 환희를 뒤섞는 저 풍만하고 낯선 질투의 품으로 한 여자가 가네 거대한 물의 말을 몰고 달려가네. - 시집 ‘환각의 숲’ / 한국문연·2001 너에게 모든 걸 걸어버린 나는 날카로운 화살이 되고, 지중해 어디쯤에서 너는 희미한 과녁이 된다. ‘어느 그리스 여신의 젖가슴에서/여장을 풀고 있을’,너를 상상하는 나는 새로운 주체가 된다. ‘나’를 나로부터 분리시키고 소멸시키며 오직 너만을 향하는 주체. “비실존의 실존”. 지금 발밑에는 ‘바다’ 뿐이고, 나는 ‘거대한 물의 말을 몰고’ 낯선 육지를 향하고 있다. 너와 나의 미래는 문득 물(水)의 성질을 닮아 갈 것이다. 어떤 중심을 감지할 수 없는 물질과 물질 사이의 시간들. 내가 날카로워질수록 너는 희미하고, 네가 희미할수록 나는 날카로워질 것이다. 어떤 형태를 가지게 될…
김포도시철도가 지난 달 28일 개통됐다. 일명 ‘김포골드라인’으로 불리는 김포도시철도가 개통됨으로써 서울 진입이 30분 만에 가능해졌다. 김포도시철도는 양촌역(김포한강차량기지)을 시작으로 한강신도시(구래, 마산, 장기, 운양), 김포 원도심(걸포.북변.사우.풍무.고촌)을 거쳐 김포공항역을 연결하는 총연장 23.67km로써 10개 정거장이 있다. 김포공항역에서 서울 지하철 5,9호선, 공항철도로 환승하면 여의도, 광화문, 강남 등 서울 도심지까지 가는 시간이 크게 단축된다. 김포지역은 서울과 지리적으론 가까웠지만 그동안 마땅한 철도망이 없어 주민들이 교통 불편을 호소해왔다. 김포도시철도가 개통되자 인근 지역 부동산 시장도 들썩이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김포시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고 미분양 물량도 줄어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국토교통부의 미분양주택현황을 보면 지난해 8월 김포시의 미분양 물량은 772가구였다. 그런데 올해 8월에는 36가구로 1년 만에 미분양물량이 대폭 감소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역세권 상권도 활기를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포도시철도 개통에 이르는 과정은 험난했다. 차량 떨림 등 결함으로 2차례나 개통이 연기됐다. 우
하다하다 이제 약국마저 사기 대열에 합류했다. 건강을 볼모로 지갑을 채우려는 약사들이 등장한 것이다. 경기북부 접경지의 의약분업 예외지역 지정약국들이 백주대낮에 버젓이 불법을 저질렀다. 지정약국이란 병·의원 등이 부족해 의료서비스 접근이 어려운 일부지역에서 의사 처방전 없이 약사가 의·약품을 조제할 수 있도록 허용해준 약국을 말한다. 믿었던 도끼들이 주민들의 발등을 찍었다. 죄질이 나쁜 ‘악마들의 손’이다. 다행히 경기도 민생특별사법경찰단(이하 ‘특사경’)에 덜미를 잡혀 형사입건 됐다. 엄격한 행정처분과 수사확대가 당연히 뒤따라야 한다. 일벌백계(一罰百戒)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도 특사경은 지난 9~10월초까지 연천 등 접경지 6개 시·군에 있는 지정약국 26곳를 수사한 결과 10개 약국에서 저지른 13건의 위반 행위를 적발했다. 크게보면 사전에 대량으로 의약품을 조제하거나 사용기한이 4년 이상 지난 전문의약품을 판매 목적으로 저장·진열해 온 약국들이다. 구체적으로는 ▲의약품 혼합보관 및 사전 대량조제 행위 2건 ▲사용기한 경과 의약품 저장·진열 7건 ▲의약분업 예외지역 지정약국 암시·광고 행위 4건 등이다. 특히 한 약국은 의약품을 규격용기가 아닌…
성역 의궤에 의하면 창룡문은 “용인, 광주로 영남까지 통하는 길이며 문밖에는 나무가 많아 민가는 없다.”라고 묘사하고 있는데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현재는 도로가 북쪽으로 뚫려 이문을 이용하는 사람은 관광객을 제외하고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리고 창룡문 밖은 또 하나의 도심이 있어 그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창룡문에 대해 수원화성의 동문(東門)으로 풍수지리상 좌청룡이며 방위 때문에 사신(四神) 중 동쪽을 의미하는 용(龍)의 이름을 붙였다고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사신을 정할 때는 주체자를 기준으로 방위를 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즉, 화성의 주체인 행궁을 중심으로 보면 창룡문은 정면에 위치하여 남쪽이 된다. 그러므로 사신사상(四神思想)에 의해 수호신을 이름에 사용하려면 용이 아닌 주작(朱雀)이 들어가야 한다. 정조가 청룡문 대신 창룡문이라고 한 것은 동쪽의 방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홍재전서(弘齋全書)에서는 ‘창룡문은 그 형상에서 취한 것’이고 ‘화서문은 그 방향을 분별한 것’이라 기록하고 있다. 창룡문의 이름은 방위와 관계가 없고 자리한 땅의 형상에서 나온…
지난 4일 포천시청 회의실에서 한탄강 개발 사업 자문위원 위촉식이 열렸다. 그 자리는 박윤국 포천시장과 시의 관계자들, 개발 계획의 용역을 맡은 업체, 그리고 자문위원으로 위촉된 사람들이 가지는 일종의 첫 번째 상견례와도 같은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박윤국 시장은 친환경적이면서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는 개발을 해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위촉된 자문위원들의 면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환경 생태학자가 2명, 건축 설계 사업자가 2명, 한탄강 주변 주민 2명, 수자원공사 직원 1명 등이 포천시 관계자를 제외한 외부자문위원들이었다. 자문위원들의 면면을 보면서 스토리 발굴과 작성을 할 수 있는 인문학자가 한 명도 없는 상황으로 인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관광이라는 것은 결국 관광자원을 통해 관광객들에게 관광객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스토리텔링 또는 스토리 메이킹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요즘 인기를 끄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의 SNS가 대유행인 것은 각자 개인이 만들어 낸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이 공감해주고 ‘하트’나 ‘좋아요’를 통해 당신의 이야기가 나에게 의미…
‘크로이츠펠트-야콥병’. 이름도 생소한 이병은 백만 명 중 한 명의 비율로 나타난다고 하는 매우 희귀 질환이다. 알츠하이머 치매 등에 비하여 빠르게 퇴행성 뇌 질환이 진행되면서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는 병이다. 인간 광우병이라 불리며 발병원인도 밝혀지지 않았고 치료제도 없어 국제보건기구 등도 ‘대단히(extremely) 희귀한 병’으로 분류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이같은 희귀질환은 7찬여 가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환자수는 약 2억5천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뇌전증, 루게릭병 등 926종의 희귀질환이 등록되어 있고, 약 50만 여명의 환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희귀질환은 어떻게 분류하는 것일까. 나라마다 다르지만 미국은 20만명 이하의 유병률을 가진 질환을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분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해당 의약품 분류를 위해 2만명 이하의 유병률 질환을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정의한다. 희귀질환은 이처럼 많지만 이중 치료제가 개발된 질환은 10%도 안된다. 확실한 치료법이 개발된 질환 또한 20여 개에 불과하다. 희귀질환은 대부분 유전성·난치성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치료제 마저 가격이 비싸 치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글을 배우는 입문서로서 천자문이 널리 사용되어왔다. 오늘날까지도 한자(漢字)를 알든 모르든 대부분 사람들은 천자문이 무슨 책인지 정도는 알고 있을 만큼 일반화되어 있는 교과서이다. 이 책은 원래 중국 양나라 주흥사라는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만들고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 해서 흔히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한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왔는지는 확실한 기록이 없지만, 일본서기(日本書紀)에 285년 백제의 왕인(王仁)이 일본에 ‘천자문(千字文)’과 ‘논어(論語)’를 전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는 이보다 먼저 보급되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천자문으로는 명필 한호(韓濩)가 쓴 ‘한석봉천자문(韓石峯千字文)’이 있지만 이밖에도 많은 판본의 천자문이 시대마다 지방마다 또는 집집마다 다양하게 사용되어 왔다. 이렇게 시대와 계층, 지역을 망라하여 천자문은 한자교육의 기본 입문서 이자 백성들이 말과 글을 배우는 첫 관문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중요한 교재였다. 왕가에서 세자나 대군들이 배우는 천자문은 비단이나 채색된 고급 장지에 당대 최고의 석학이 써서 만들었고, 사대부가나 일반 서민들은 주변에서 가장 학
옴부즈만(ombudsman) 제도는 여러 기능이 있을 수 있으나 행정권의 확대·다양화 및 재량권 증가에 따른 권리 보호의 불충분에 대하여 의회의 개입을 통한 행정 구제 제도의 결함을 보완함으로써 국민의 권리 보호 기회를 확대하고자 하는 것이 주요한 기능이라 할 수 있다. 행정 옴부즈만제도는 현대 행정국가화 현상의 심화에 대응한 행정 통제와 국민권리 보호 차원에서 도입됐다. 최초의 옴부즈만 제도는 1809년 스웨덴에서 시작돼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려는 제도’로 시행되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행정부의 역할과 기능이 강화되자 이에 대한 통제와 국민의 권리구제 차원에서 세계 각국에 널리 보급돼 있다. 옴부즈만 제도는 세 가지의 성향을 보유하게 되는데, 이는 시민사회의 옴부즈만이기 위한 전제이기도 하다. 첫째, 옴부즈만 제도는 정부의 잘못을 정부 스스로 시정하는 하나의 제도로서 시민 위주 성향을 갖는다. 인간은 누구나 전지전능하지도 않고 감정의 지배를 받으므로 인식과 판단에서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올바르고 좋은 의견을 제시하면 반대하거나 화를 내다가도 잘못을 깨닫고 그 의견을 따른다. 또 어떤 사람은 계속해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이승하 오죽했으면 죽음을 원했으랴 네 피고름 흘러내린 자리에서 꽃들 연이어 피어난다 네 가족 피눈물 흘러내린 자리에서 꽃들 진한 향기를 퍼뜨린다 조금만 더 아프면 오늘이 간단 말인가 조금만 더 참으면 내일이 온단 말인가 그 자리에서 네가 아픔 참고 있었기에 산 것들 저렇듯 낱낱이 진저리치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을. - 시집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 문학사상·2018 시인의 윤리성은 고통을 발견하고 표출하는 곳에서 발현된다. 이러한 시적 노력은 참혹한 고통 속에도 생은 값진 것이니, 좀 더 참고 견뎌보자는 정언이다. 시적 주체는 ‘오죽했으면 죽음을 원했으랴’ 타자의 고통과 직접 소통한다. 시인은 제 고통을 차단하고자 했던 타자의 한계상황과 끊임없이 정동하며 묻는 것이다. 이승하 시인은 표제작인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에서 이렇듯 새로운 대속적(代贖的) 고통관을 제시하고 있다. ‘네 피고름이 흘러내린 자리에서/꽃들 연이어 피어난다’는, 이를테면 ‘너’의 ‘참음’의 영향이 미래의 가능성으로 부활한…
다시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엔 22일 오전 미세먼지가 몰려와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으로 떨어졌다. 올해 초 우리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미증유의 미세먼지가 다시 등장하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 근본 대책을 세우라는 국민들의 요구가 거세다. 중국 발 미세먼지에 대한 긴밀한 국가 간 협조와 함께 국내 미세먼지 발생 원인을 제거하라는 것이다. 특히 디젤차량을 수소차와 전기차 등 친환경 차량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문재인 정부는 미세먼지 대책 일환으로 2035년까지 화물차 등 사업용 차량과 건설기계 동력을 디젤 등 화석연료에서 수소·전기로 전면 교체키로 방침을 정한 바 있다. 특히 수소 경제 활성화의 일환으로 수소차 보급 확대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국내 수소차 보급은 2017년 말 170대였는데 올해 7월에 1천898대로 증가했고 연말에는 6천400여대(누적기준)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의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에 따르면 오는 2040년까지 수소차 290만대를 보급하고, 수소충전소 1천200개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한다. 정부의 경력한 의지는 내년 예산에서도 드러난다. 수소승용차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