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비평가들이 찬사를 보내는 가짜 예술작품은 사이비 예술가들이 침을 흘리며 기웃거리는 문과 같다. 진정한 예술 작품은 마치 어머니의 태내처럼 새로운 생명의 결정체로서 극히 드물게 예술가의 마음에 나타나는 것이다. 가짜 예술은 수요자만 있으면 기술자나 직공의 손으로 얼마든지 계속 생산된다. 진정한 예술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처럼, 특별히 화장하거나 치장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사이비 예술은 탕녀처럼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진정한 예술의 결과는 사랑의 결과가 새로운 인간의 탄생이듯, 새로운 감정을 이 세상에 불어넣는 것이다. 그러나 가짜 예술의 결과는, 인간의 타락과 만족할 줄 모르는 쾌락의 추구, 그리고 인간 정신의 쇠약뿐이다. 자신의 재능을 팔아서는 안 된다. 그것을 팔게 되면 너희는 즉시 성직매매나 매음 행위와 다름없는 죄에 빠지게 된다. 너희는 자신의 노동은 팔 수 있지만 영혼을 팔아서는 안 된다. 장사꾼들을 몰아내지 않는 한 예술의 전당은 진정한 전당이 될 수 없다. 미래의 예술은 그들을 몰아낼 것이다. 여러분은 우물 속의 개구리의 이야기를 들으셨습니까? 그것은 2000년 전 전국시대에 전쟁군주들이 씨ᄋᆞᆯ들을 못살
데이비드 캠버비치가 열연한 드라마(셜록 홈즈)에서 홈즈는 마지막에 사건 해결의 중요한 정보가 있는 애들러 핸드폰의 암호를 풀어 패를 뒤집는다. 그는 애들러가 그에게 사랑을 느꼈고 게임을 좋아하는 그녀이기에 그것을 핸드폰 비밀번호와 연관 지어 놓았다고 추리한다. 그 사실을 부인하는 그녀에게 다가가며 예전에 한번 마주 잡은 손목에서처럼 지금도 그녀의 맥박이 빨라지는 것으로 그에게 호감이 있다는 단서를 확인한다, 이와 유사하게 손목의 요골동맥의 박동은 몸의 상태에 대해 환자가 말하는 증상의 표현과 겉모습에 드러나지 않는 단서를 표현한다, 그렇기에 예로부터 동서양의 의사들은 이 혈관의 박동을 확인하는 과정을 진단에 사용했는데 같은 부위의 맥동이지만 인식하는 방법은 전혀 달랐다. 동양의 몸과 서양의 몸을 비교한 책 (몸의 노래)에서 동서비교문학자인 구리야마 시게히사는 몸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점, 시각의 차이에 대해 주목한다, 그는 장님의 코끼리 만지기 비유를 든다. 세 명의 장님에게 코끼리에 관해 물을 때 한 명은 길고 얇은 끈처럼 생겼다고 답하고 다른 이는 뭉툭하고 두꺼운 기둥처럼 생겼다고 하고 세 번째 사람은 큰 자루 같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사람은 코끼리의
최근 감사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100년 뒤 우리나라 인구는 1510만 명으로 줄어든다. 한 여성이 15~49세에 낳을 것으로 예상한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을 2018년 수준으로 유지하고 인구의 수도권 집중이 지속한다는 가정 아래 내놓은 전망치다. 인구 감소의 책임을 여성에게 지운 것도 모자라 이제 인구소멸과 지역소멸이라는 용어까지 끌어와 마치 대한민국이 100년 뒤에 망하기라도 할 것처럼 호들갑이다. 그리고 그 책임을 여성에게 떠넘기는 중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비용을 대는데도 왜 출산하지 않느냐는 비난이 도를 넘은 지 오래다. 소멸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 용어와 측정 방식이 과연 우리에게 적절한 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인구소멸이나 지역소멸은 일본이 자국 내 지역의 쇠퇴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한 개념이다. 이것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할지는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다음으로 인구 정책을 큰 틀에서 세우고 출산 중심에서 인구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인구변화를 더욱 정확히 예상하려면 합계출산율, 출생률, 사망률, 국제이동인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1962년부터 인구억제 정책을 시행했다. 이 시기 정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을 둘러싼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윤 의원은 국민권익위원회가 부친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제기하자 지난 25일 “야당 의원 흠집내기”라고 반발하며 대선 경선후보와 함께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문제의 땅이 윤 의원이 과거 한국개발연구원(KDI)근무 당시 KDI가 연구용역을 한 산업단지 인근 땅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다시 윤 의원은 공수처 등에 수사의뢰한다며 결백을 강조했다. 윤 의원과 관련한 부동산 의혹 부분은 수사를 통해 진실이 가려질 것이다. 그러나 권익위의 부동산 조사로 촉발된 논란은 정치권의 민낯을 드러내며 많은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우선 정치인의 자기중심적 눈높이다. 윤 의원의 주장대로 부녀유별(父女有別)로 윤 의원 자신은 위법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임차인입니다’와 함께 현 정부의 부동산 내로남불을 촌철살인 비판하고, 그 여세를 몰아 대선 주자로까지 나섰던 윤 의원이다. 얼마 전에는 정부의 부동산 ‘저격수’로 주가를 높여온 김현아 전 의원(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이 서울시의회 청문회에서 부동산 4채 보유 논란 끝에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 후보직에서 도중하차했다. 앞으로 국민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의는 그것을 추구하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랑에 의해 실현된다. 과녁을 명중시키려면 그 과녁보다 위를 겨냥해야 하듯이 공정하려면 자기를 희생해야 한다. 즉 자기 자신에게는 오히려 불공정해야 하는 것이다. 오로지 공정하려고만 하면 결국 자신에게 관대해져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불공정하게 되어버린다. 완전하게 올바른 행동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정직한 인간이 오로지 진실만을 얘기하려고 노력함으로써 거짓말쟁이와 구별되듯이, 정의로운 사람은 정의롭고자 하는 노력에 의해 정의롭지 못한 사람과 구별된다. 부정 그 자체보다 나쁜 것이 있다. 그것은 사이비 기독교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짓 선행, 거짓 사랑, 하느님에 대한 거짓 봉사이다. 사람들은 사랑의 법칙을 실천할 생각으로, 또는 실천하는 척하면서 정의의 요구를 외면하고 자못 우쭐하여 악랄한 부정에 빠져든다. 그들은 교회에 헌금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지만, 그들이 내는 것은 그의 형제들이 피땀 흘려 만든 결과물이다. 재판관은 문제의 어느 한 면만을 보고 옳고 그름의 판단을 내린다. 그러나 사실상 인생에 있어 어떤 측면에서 문제를 보느냐에 따라 어는 것이나 옳다고 말할 수 있는 다양한 대답이
사람이나 사회나 품격이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없는 것이 바로 그 품격이다. 사람들은 스스로의 존엄성을 헌신짝처럼 취급한다. 기이한 것은 배운 사람들일수록 그런 행태가 더 하다는 것이다. 서울대를 나왔든 미국 어디서 유학 생활을 했든 그래서 국내에 돌아와 KDI(한국개발연구원)같은 유수의 기관에서 몸을 담았든 오히려 품격 제로의 현상을 보인다. 그저 자기네들이 옳으니 너희들은 따라오기만 해라, 라는 식이다. 안하무인도 이런 안하무인이 없으며 악다구니도 이런 악다구니가 없다. 한국사회를 가로지르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노자(勞資) 모순이 아니다. 半봉건적 양반-상놈의 대물림의 신분, 계급의식도 아니다. 오로지 당신이 엘리트냐 그렇지 않으냐(서울대를 나왔느냐, 미국 유학을 다녀왔느냐, 판검사나 의사, 교수, 조중동같은 언론사에 다니느냐) 하는 엘리트주의이다. 그야말로 품격 없는, 천박한 선민의식이다. 이 ‘나 잘난 주의’가 한국사회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모든 장점, 모든 미덕을 가로지른다. 열심히 일한 사람들의 공로를 가로챈다. 넷플릭스의 6부작 드라마 ‘더 체어’는 미국 동부에 있는 명문 대학 펨브로크를 배경으로 한다. 미국 전체 8개 아이비리그 중 가장
“소유권은 신성불가침의 권리이므로, 법에서 규정한 공공의 필요성에 의해 명백히 요구되는 경우 이외에는 누구도 소유권을 박탈할 수 없다.” 루이 16세를 단두대에 올려 목을 자르고 대혁명을 완수한 프랑스 시민들이 1789년 8월 26일 선포한 프랑스 인권선언 제17조다. 여기서 소유권의 핵심은 토지다. 대혁명 이전 프랑스 시민들은 토지에 종속되어 살아갔다. 땅에 종속된 인간은 땅을 가진 자의 노예로 살아야 했다. 그렇기에 시민들은 귀족과 성직자들의 노예나 다름없는 삶을 살았다. 프랑스 대혁명은 시민을 타인의 땅에 종속되어 농사짓는 노예가 아닌 자신의 땅에서 농사짓는 농부로 만들었다. 프랑스 인권선언이 소유권을 신성불가침한 권리로 규정한 이유다. 이렇듯 농경사회에서 땅을 가질 수 있느냐 또는 그렇지 않으냐는 그의 신분을 규정했다. 땅을 가진 자는 귀족으로 그렇지 못한 자는 귀족의 땅에 속박되어 농사를 지어야 하는 노예로 살았다. 그렇기에 농지를 농부가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시민혁명의 핵심이었다. 중세의 모든 부조리는 농부가 아닌 자가 농지를 소유한 것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 역시 농지는 농부가 소유해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헌법 제1
-사라진 이름이여 “언론자유투쟁사”에 뚜렷하게 박혀 있는 이름들이 있다. 송건호 그리고 리영희. 그러나 천관우의 이름을 떠올리는 이는 이제 거의 없다. 그가 누군지 아는 이 또한 드물다. 한때 질풍노도와 같이 역사의 소용돌이, 그 중심에 거대한 체구만큼이나 우람하게 서 있던 그였으나 말년의 몇 년으로 평생의 성취를 잃어버린 비운(悲運)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박정희의 3선개헌이 완료되고 이후 종신집권 음모가 진행되고 있던 1971년 4월 19일, 《민주수호국민협의회》가 뜬다. 당시 종교계의 지주 김재준 목사, 인권 변호사 이병린 변호사와 함께 언론인 천관우가 창립대표위원이 되고 이후 함석헌 선생과 법정 스님이 합류한다. 이 조직은 향후 유신체제 반대 운동의 모태로 구심력을 발휘한다. 1925년생이니 이때 천관우는 46세, 같이 이름이 오른 이들과 비교하면 젊디 젊은 청년이었다. 그러나 그가 29세에 한국일보 논설위원을 지냈다는 걸 떠올리면 그 세월에 이르기까지 그가 쌓아온 역사의 위치가 만만치 않았을 것임을 짐작케 한다. 그는 언론인이자 역사가였으며 권력의 탄압에 조금도 굴하지 않는 우뚝 선 산이었고 당대 언론의 우렁찬 목소리였다. 1974년 동아일보가 탄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