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 공간적으로 향하고 있는 방향에서 반대되는 쪽이나 곳. 그늘지고 뭔가 불안하다. 보이지 않는 쪽에 위치해 있어서 그런가. 보이지 않으면 신뢰할 수 없어서인가. 뒤는 허를 찔리기 쉽다. 아는 사람이 치는 뒤통수는 기가 막히고 불쌍한 사람 등을 치면 파렴치한이다. 방심하다가 뒤꿈치를 물리기도 한다. 먹고 난 뒤, 놀고 난 뒤, 사랑한 뒤, 일을 본 뒤에도 항상 깔끔할 것. 그래야 뒤탈이 없다. 사건은 언제나 뒤에 생기고 사고도 뒤에서 나기 때문이다. 교실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축들은 늘 맨 뒷줄에 포진해 있다. 뒤끝이 좋아야 관계가 원만하다. 의견이 안 맞아 언쟁을 높였을지라도 화해할 때는 앙금이 남지 않아야 한다.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가 부지불식간에 꼬챙이처럼 튀어나온 감정이 상대의 심장을 찌르기도 하니까. 맛있는 후식 중의 하나가 뒷담화다. 입 하나로 손쉽게 타인을 음해할 수 있으며 뒤에서 해야 효과적이다. 씹는 맛이 좋아서 씹을수록 중독에 빠지고 말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안주다. 저렴하고 질이 낮아 오래 씹다보면 입맛이 쓰고 가끔 탈이 나는 단점도 있다. 맞장구를 쳐주는 사람이 있어야 조건이 충족된다. 일명 ‘빽(background)&r…
노래방이 일반화되기 시작한 건 1990년대초. 일본식 가라오케가 전국으로 퍼지던중 부산의 로얄전자가 기존 컴퓨터 노래반주기의 단점을 보완, 91년 5월에 광안리와 충무동에 개업한 노래연습장이 시초로돼 있다. 유흥주점에 있는 가라오케와 달리 싼 값에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노래방은 삽시간에 전국 각지로 확산됐고, 직장인 주부 학생 할 것 없이 온 국민의 놀이터가 됐다. 거기에 1999년 3월 영업시간 제한이 사라지면서 노래방은 남녀노소에 일반화된 여가문화로 정착했다. 그해 노래방 창업도 가장 활발해 8천개 넘게 신규등록이 이뤄졌다. 당시 창업한 노래방 중 약 3천300개가 지금까지도 살아남아 영업 중이다. 하지만 논란도 적지 않았다. 특히 노래방내 음주와 여성도우미의 출연으로 ‘퇴폐적인 문화’의 온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단속의 대상으로 바뀌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래방은 2차 회식의 단골코스로서 지존(至尊)자리를 꾸준히 유지해 왔다. 여기에 새로운 트랜드인 ‘코인 노래방’이 생겨나 나홀로족을 흡수 하며 한때 제2의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노래방의 인기가 내리막으로 치닫고 있다. 서민의 여가시설, 노래방이 퇴조하고 있는
잘 알다시피 한류(韓流)는 1990년대 말부터 일기 시작한 한국 대중문화의 열풍을 말합니다. 한국 대중문화의 열풍은 이제 중국뿐 아니라 동남아시아를 거쳐 유럽 등 전세계적으로 확산됐습니다. 그 ‘한류’를 모체로 해서 대학으로는 유일하게 경기대학교에서 한류문화대학원이 2019년에 문을 열었고, 이와 동시에 ‘시조창작전공’이라는 우리나라 유일의 학과가 만들어졌습니다. 국어국문학과의 대학원생이 점차 감소 추세에 있고 지방에 있는 대학들은 거의 고사 직전까지 내몰리고 있는데 여기 전공은 다른 학과의 배가 되는 인원이 입학했습니다. 한국 정신의 원류인 ‘한류’를 얘기할 때 인문학적 바탕은 역시 ‘시조’를 빼고 얘기하기는 힘듭니다. K팝의 운율이 시조의 운율과 닮아있다는 것은 이를 충분히 예증하고 남음이 있다할 것입니다. 그러한 시조가 오늘날 어떠합니까? 시조를 이류의 문학으로 폄하하고, 오히려 우리 것을 업신여기고 있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의 하이꾸와 비교해보면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일본은 하이꾸에 대해 국가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전국에 20만이 넘는 하이꾸 창작 단체가
농산물 가격파동은 해마다 되풀이 된다. 농업인은 농산물의 가격이 폭등했다가 폭락하는 가격파동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요즘 양파마늘 농에게 가격하락은 생(生)과 직결된 일이다. 지난해 가을배추부터 최근 양파마늘까지 가격하락으로 농업인의 눈물은 계속되고 있다. 공산품과 다르게 농산물은 수요와 공급이 변화하게 되면 농산물의 가격이 폭등하거나 폭락하는 가격파동이 반복된다. 공산품은 수요나 공급의 변화가 있더라도 가격이 조금만 변화한다. 하지만 농산물은 대조적으로 변화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크게 변동된다. 농산물은 우리에게 필수재이기 때문이다. 농산물의 수요곡선은 굉장히 비탄력적 형태다. 물론 농산물의 공급곡선도 비탄력적 형태다. 기후변화에 풍흉(豊凶)이 좌우된다. 농산물은 공산품과 다르게 수요가 증가한다고 해서 생산량을 늘려 더 많이 생산하는 게 불가능하다. 농산물은 수요와 공급이 비탄력적이기 때문에 조금만 변동이 생겨도 공급이 변경되면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이 만나는 지점인 농산물의 가격이 크게 변화하게 된다. 풍년이 들면 공급이 증가해 공급곡선이 오른쪽으로 이동하게 되어 농산물 가격이 급락한다. 농업인의 총수입은 감소한다. 흉년이 들면 공급곡선이 왼쪽으로 이동,
문신 /표문순 바람 같은 남자를 스물넷에 보낸 후 어느 날 심장에서 선명하게 돋았다는 나선형 문신하나를 운명처럼 갖고 사네 좌표를 잃어버린 마음의 점을 따라 돌고 또 돌았다는 암록빛 곡선들을 그녀는 혼자가 될 때만 어둠에게 보여줬다네 여자를 훌훌 털고 빈집으로 살아가며 혹한 속 뿌리내린 다년생 근성으로 한파가 휘몰아치는 빙하기를 통과 중이네 평소 단아한 시인의 마음이 담긴 새로운 진술의 시를 만난다. 시사, 시취, 시품 등으로 미루어, 시인 마음의 시상을 읽게 하고 조우하게 만드는 시다. 일반적으로 시를 미화하고, 과장하고, 호기마저 멋으로 품어내는 것이 한시의 경향이었던 시대의 변혁이 아니었던가? 이와는 대조적인 고담하고, 소적한 궁기를 내세운 이채로움 또한 음상 해 봄직한 일면의 가치를 일깨우게 한다. 사소하고 하찮은 사물들도 인간처럼 영혼들이 숨 쉬고 있고, 은밀하게 무언의 말을 건넨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아름다운 시다. 시인의 첫 시집 ‘공복의 구성’ 출간을 축하한다. /박병두 문학평론가…
경기도민들이 DMZ를 걷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지난 27일부터 8월 8일까지 진행하는 ‘DMZ 통일 걷기’ 행사에 동행하기 위해서다. 이 행사는 이 원내대표가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2017년에 시작, 올해로 세 번째다. 지난 27일 강원도 고성을 출발, 인제~양구~화천~철원~파주 임진각까지 340㎞를 걷는 대장정이다. 첫 날 오전 11시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열린 출정식에는 더불어민주당 설훈(부천시 원미구 을)·김민기(용인시 을)·김영진(수원시 병) 등 경기도 국회의원들과 남종섭(용인 4)·박관열(광주 2) 경기도의회 의원, 김기준(라 선거구)·전자영(비례) 용인시의원, 허영 민주당 강원도당위원장, 시민 등 200여 명이 함께했다. 경기도 참가자들은 “강원도와 같이 접경지역에 살고 있는 경기도민들이 통일걷기의 시작을 알리는 출정식에 참가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각자의 상황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완주하거나 구간별 걷기에 동참할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니 대단하다. 이 행사 완주 참가자는 노동자, 대학생, 외국인 등 모두 40명이다. 공개모집을 통해 선발했다. 완주 참가비는 30만 원, 하루 참가비는 3만 원이다. 각자가 당당하게 비용을
경기도와 (사)아태평화교류협회가 공동주최한 ‘2019 아시아태평양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국제대회’가 26일 끝났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이 대회에는 한국 경기도와 북측대표단을 비롯한 필리핀, 일본, 중국, 호주, 태국, 프랑스, 카자흐스탄, 몽골, 인도네시아 등 11개국 300여명이 참가했다. 이 행사는 일제 강제동원의 진상을 규명하고, 성노예 피해 치유 방안을 논의한 자리였다. 참가자들은 “일본의 사과와 배상만이 아시아태평양의 평화와 번영을 도모할 수 있는 길”이라고 인식을 같이 했다. 아울러 일본을 강력 규탄하고, 일본으로부터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기 위한 노력을 끝까지 함께 기울여 나가겠다는 내용의 공동발표문을 냈다. 일제의 만행을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 ‘시효가 없는 반인륜범죄’ 규정하는데 있어서 남북은 물론 모든 참가자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일본의 양심적인 인사들도 자국의 전쟁범죄를 사죄했다. 나시모토 다카오 나시모토노미야재단 이사장은 “역사는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 정부도 이런 보편적 진실을 깨달아야 하고 역사 앞에, 피해를 본 국가와 국민들 앞에 진솔하게 사죄하고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라며 고개 숙여 사과했다. 나
맛있는 빵을 먹을 때 “야 이거 예술이네!” 하며 감탄사를 발할 때가 있다. 같은 조리법인데도 모양과 크기를 달리할 때마다 빵의 질감이 달라져서 또 다른 풍미의 빵이 탄생한다. ‘예술이다’라는 말은 맛이 좋다는 최고의 감탄사 중 하나이다. 그런데 예술적인 빵을 만들려면 먼저 마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반죽은 어떻게 해야 하며 성형은 어떻게 할 것인지 그리고 발효와 굽기에 대한 것까지. 조리법이란 어찌 보면 모두에게 해당하지 않는 지극히 개인적인 비법일 수밖에 없다. 환경과 온도, 장비와 재료가 다르면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변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빵을 잘 굽는 비법은 오로지 한 가지밖에 없다고 한다. 많이 만들어보는 것이다. 많이 만들어서 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어보는 것만이 비법인 것이다. 천부적으로 타고난 예술가가 있는가 하면 수많은 노력으로 거장이 되는 예술가가 있다. 좋은 예술작품을 만드는 방법은 개인적인 재능이 중요하다 하겠다. 예술인들은 감동적이며 창의적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 수많은 실패와 성공, 그리고 인내의 시간을 보낸다. 그 예술인들이 보여주고 들려주는 예술작품을 통해 어떤 때는 감동…
‘문학의 집 서울 남산문학당’에서 기획한 ‘영미문학 산책’ 강의를 얼마 전 마쳤다. T. S. 엘리엇(Eliot: 1888∼1965)의 ‘황무지’로 시작해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1882∼1941)의 ‘더블린 사람들’ 마지막 단편인 ‘죽은 사람들’로 강의를 끝내면서 상당한 수준의 수강생들이 보여준 학구열에 큰 감동을 받았다. 최근 지면에서 소설가 최인훈이 꼽은 추천 도서 중 ‘더블린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과 선생이 흰 눈에 발자국 내는 것조차 싫어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한때는 절로 사용돼 절집이라 불리던 돈암동 산꼭대기 집에 눈이 쌓일 때면 너른 마당을 뒤덮은 순백의 세상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계시던 선친이 떠올랐다. 15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더블린 사람들’은 조국 아일랜드와 더블린에 대한 조이스의 복합적인 감정의 산물이다. 조이스는 20대 초반인 1904년 조국을 떠나 성년의 삶 역시 유럽대륙에서 살았지만 그의 작품의 중심에는 항상 더블린이 있었다. “나는 항상 더블…
지난 7월 20일은 세기의 스타이며 불세출의 배우로 일컬어지는 이소룡의 타계 46주기였다. 그는 ‘당산대형’, ‘정무문’, ‘맹룡과강’, ‘용쟁호투’, ‘사망유희’ 등 5편의 영화를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다, 그렇지만 그의 인기가 당대 최고였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1973년 7월 27일, 한국의 이소룡 팬들은 이날을 ‘브루스 리 데이’로 정하고 매해 기념을 하고 있다. 이날은 한국의 팬들이 이소룡을 처음 만난 날로 서울 피카디리 극장에서 ‘정무문’이 상영돼 56일간 31만5천579명을 동원했다. 이 기록은 그 해 최고 흥행기록이다. 이후 그의 영화는 속속 개봉됐고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한국영화계에는 때 아닌 태권도영화 붐이 일었고 이소룡의 캐릭터로 등장한 많은 배우들이 홍콩으로 떠났다. 그리고 이소룡 문화현상이라고 일컬어지는 문화 전반에 걸친 그의 영향이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런데 세기가 바뀐 지금은 어떠할까? 이소룡은 아날로그 시대의 영웅이었는데 지금 디지털 시대에도 유효할까? 답은 ‘아니다!’일 것이다. 그것은 디지털 시대를 맞아 마블영화의 슈퍼 히어로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소룡 세대를 3기로 나누어 본다면 1기 세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