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는 왜 이성이 아니라 폭력을 사용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기업인들은 달콤한 유혹으로 노동자들이 서로 경쟁하도록 부축이고, 최대한의 노동력을 끌어모아 쓸모도 없는 물건을 생산하고는 이용가치가 사라지면 굶어 죽든 말든 마음대로 해고해도 되는, 그런 사회체제를 원하고 있다. 흙과 햇빛, 동식물계, 광석층을 비롯한 자연 안에는 무진장한 부(富)가 있어서, 모두의 물질적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자연 속에는 빈곤을 초래할 원인이 없다. 불구자와 노동자가 가난에 빠질 이유도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동물이므로 사람들이 만성적인 가난으로 짐승처럼 타락하지 않는 한, 가정적인 애정과 사회적 동정이 스스로 자신을 부양할 힘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을 조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헨리 조지) 사회생활의 개선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사회의 특정 계층에 일부 사람뿐만 아니라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예지와 사랑이 그 일에 결집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 일을 정치가에게만 맡겨두어서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대중이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실제로…
일부 고급아파트에서 배달노동자들을 짐짝 취급하고 있다는 뉴스가 가슴을 저리게 하네요. 성 소수자들의 축제인 ‘퀴어 페스티벌’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도 실망스럽습니다. 우리 국민의 천박한 ‘차별의식’ 잔재를 보여주는 인권 후진국 현상이어서 씁쓸합니다. 인류는 ‘차별’에서 ‘평등’으로 끊임없이 진화해 왔지요. 구시대적 ‘차별주의’는 일소돼야 합니다. 지난해 한 아파트 경비원이 몰상식한 입주민의 반복적인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극이 있었지요. 고통을 호소하는, 고인이 남긴 처절한 육성과 CCTV녹화 장면 속에서 피의자가 힘없는 경비원을 밀치고 때리고 모욕하는 장면은 참담했습니다. 최근 배달노동자들을 차별하고 천대한 일부 아파트의 미개한 ‘갑질’ 소동은 어떤가요? 오토바이 출입을 아예 금지해 배달물건을 들고 먼 거리를 걸어 들어가야 한다지요. 배달노동자들을 화물 엘리베이터로 몰아낸다는 소식은 듣는 귀를 의심케 합니다. 배달비 몇 푼 벌려고 시간 싸움을 벌여야 하는 노동자들의 처지를 왜 그렇게 못 헤아려주는 걸까요? 오는 4월로 예정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야 후보들의 뜨거운 전쟁이 시작됐군요. 그런데 그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는 글로벌 이동 마비와 사회균열 심화, 국가감시의 강화 및 프라이버시 침해 만연 등 국내외적으로 혁명적 변화를 초래하고 있음은 모두가 목도하고 있는 사실이다. 국민들은 불안해하고 따로 놀면서, 코로나가 하루빨리 종식되는 날이 오길 고대하며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간다. 다른 한편으로 주요 강대국들은 코로나 국면을 패권 장악의 마당으로 삼고 다양한 측면에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트럼프의 한심한 코로나 대처로 야기된 미국의 국제 리더십의 공백을 파고들어 중국 중심으로 국제질서의 판을 짜려고 부심 중이다. 지정학적 리더십 장악을 둘러싼 각축이 첫 번째 전선이다. 코로나 발생 전부터 중국은 많은 자원을 신흥시장에 퍼부은 결과, 미국의 대안 세력으로 컸으며 신흥국가들에게는 매력적인 파트너로 부상했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과거 자연재해나 감염병 등으로 위기가 지속되었을 때 적극적인 이니셔티브를 쥐고 그 부정적 효과 차단에 주력하여 회복을 이끌었다. Polio Endgame Strategy 2019-2023을 창안하여 아프리카에서 만연한 에이즈 퇴치를 위해 500억 달러를 투입하여 4300만 명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고, 2014년 에볼
작년 5월 어느 날이었다. 다른 선생님과 복도를 걸으며 아이들이 없는 상황에서 학교라는 공간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배움이 일어나야 할 곳에 배움의 주체가 없으니 특별한 의미를 찾기 어려웠다. 대화가 길어지며 아이들이 학교에 안 올 때의 장점은 뭐가 있을지까지 이어졌다. 내가 다른 건 모르겠고 학교 폭력이 없어져서 좋다고 해맑게 말했다. 옆에서 걷던 선생님이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학교 폭력이 없어진 대신에 가정 폭력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에게 아동학대를 당하다 시설에서 보호 받게 된 아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A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아동학대 신고로 시설 보호 기관에 갔었다. 어린 A에게 시설에서 지켜야 할 수많은 규칙들은 너무 엄격했고, 함께 지내는 아이들에게 적응하는 것도 어려웠다. 접견하며 만난 아빠는 다시 학대하지 않겠다고 다짐의 다짐을 했다. 결국 짧은 기간 시설에서 머무르다 다시 아빠와 살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아빠는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하게 A를 학대했다. 학교에 다닐 땐 그럭저럭 견딜 수 있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자 학대의 정도가 점점 올라갔다. 집안일
재산이나 노동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지급하는 기본소득이 대선 길목에선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토마스모어의 소설 '유토피아'에 처음 등장한 개념으로 정부차원의 기본소득은 핀란드가 효시다. 코로나 시대 대안으로 도입을 추진중인 복지 선진국 프랑스를 시작으로 핀란드, 미국 알래스카, 일본, 브라질의 기본소득 실태를 전문가를 통해 점검해 보는 '기본소득 세계는 지금' 시리즈를 10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주] Covid19는 우리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마스크가 필수인 생활을 연출하고 여럿이 모여 식사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어디 이뿐이랴. 기존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심한 균열로 몰아가고 있다. 테슬라의 일런 머스크(Elon Musk)처럼 통 크고 미래비전을 설계하는 사람은 눈 깜짝할 사이 억만장자가 되지만, 우리 같은 서민들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끼니를 걱정하는 신세가 될 지경이다. 많은 이들은 코로나를 극복하고 일상으로 복귀할 날을 학수고대하지만 이제 그 날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변해가는 세상에 맞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빨리 모색하는 것이 현명한 일 아니겠는가. 코로나시대 대세로…
최근 자수성가해 거부를 이룬 재계 인사들이 잇따라 ‘통큰’ 기부를 밝혔다. 국내 최대 배달 앱인 배달의민족을 창업한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이 한국인 최초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등이 설립한 기부 클럽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기부 서약)에 5천억 이상의 기부를 약속했다. 이에앞서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도 재산의 절반(5조원 추정)을 기부하기로 했다. 갈수록 심화되는 극점의 양극화, 코로나 사태 장기화에 따른 국민들의 경제적·정신적 피로감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는 시점에서, 이번 기업발 훈풍이 우리 사회 전반에 나눔 문화의 확산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회 환원의 대상은 꼭 재산만 있는 게 아니다. 재능이나 일반적인 봉사도 소중한 기부다. 그러나 이 보다도 더욱 나눔 문화가 절실하고 파급력 있게 실천됐으면 하는 곳이 있다. 바로 정치 영역이다. 우리 국민들은 자고 나면 종합편성채널에서 쏟아내는 정치권의 싸움을 봐야 한다. 2020년 한 해의 석양이 지도록 지켜본 ‘추-윤 갈등’이 지나가자 이번에는 ‘법무장관-청와대 민정수석실’ 사이의 제2차 파동을 목도하고 있다. 4월에 치러지는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를 둘러싸
신에 대해 어떤 말을 들어도, 또 신에 대해 어떤 말을 해도, 우리의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다. 우리가 신에 대해 이해할 수는 있지만 표현할 수는 없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생각이며, 또 이런 생각이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다. (실레지우스) 진정한 길은 흔히 길이라고 불리고 있는 그런 길이 아니다. 진정한 이름은 흔히 그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그런 이름이 아니다. (노자) 자신의 내부에 만물을 포용하는 것, 그것 없이는 하늘도 땅도 있을 수 없는 존재가 있다. 이 존재는 평안하고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다. 그 작용을 가리켜 이성이라 부르고 사랑이라 부르지만, 그 존재 자체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가장 높고 먼 존재인 동시에 가장 가까운 존재이다. (노자) 신, 그것은 우리에게 정의를 요구하는 무한한 존재를 뜻한다. (매슈 아놀드) 신,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 일부로서 의식하는 모든 것을 뜻한다. 신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것은 어리석다. 신은 삼라만상 속에,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있다. 신앙은 수없이 많지만 신은 단 하나이다. 만일 사람으로서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신을 알 수 있으랴 (인도 금언)
통일부 재직 시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7-8년간 소위 ‘종북좌파’라고 불리던 분들이 북한의 대남사업파트에서 일하는 분들과 나누는 대화를 엿들을 기회가 수차례 있었다. 필자도 반공을 국시로 삼던 시대에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여서 북한에 대한 궁금증과 적대감정이 혼재된 상황에서 직업상 남북간 화해와 협력이란 과제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던 상황이라 조금은 조심스럽게 남북만남의 현장에서 일한 기억을 갖고 있다. 역시 세상이 많이 변했음을 느꼈다. 그들 ‘종북좌파’로 낙인된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내리는 결론은 북한은 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주장이나 행태는 북한체제, 정권에 대한 추종이나 동경이 아니라 분단극복을 위해서는 북한을 감싸 안아야 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논리에 지나지 않았다. 일부 극히 편향된 몽상적 공산주의 신봉자를 제외한다면 우리사회에 종북좌파는 없고 친북주의자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 당시 나의 느낌이요 결론이었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찾아온 남북분단, 이후 서로가 자신만이 정통성을 갖고 있는 한반도의 주인이라는 적대적 관계 속에서 살아오다, 80년대 말 소련을 필두로 한 공산주의권의 붕괴로 곧 북한도 붕괴할 것이고 통일
알고리즘을 간단히 말하면, 내가 검색했던 주제를 로봇알고리즘이 분석 한 뒤 비슷한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노출시키는 방식을 말한다고 보면 된다. 인터넷을 통해 궁금하거나 관심 있는 주제를 검색하는 일은 컴퓨터를 사용하는 유저에게는 숨을 쉬는 일과 같다. 검색 주제는 시사, 영화, 드라마, 노래를 비롯하여 무궁무진하게 다양한데 이러한 알고리즘 방식은 나에게도 매우 유용하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영화 장르나 음악 취향을 자동으로 분석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나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찾기 위한 시간을 절약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편리함 속에는 나와 로봇알고리즘과의 끈질긴 감정싸움이 존재하기도 한다. 로봇과 감정적 싸움을 해봐야 승자는 불을 보듯 뻔한 결과로 귀결됨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경제적 상황과,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지만 있으면 매우 좋을 것 같은 상품 앞에서는 로봇알고리즘과의 감정적 일전을 불사하기도 한다. 지난해 가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아픈 다리의 재활을 위해 운동을 시작했는데 스마트워치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워치도 로봇알고리즘만큼 똑똑해서 운동량의 측정은 물론 움직임이 일정시간 감지되지 않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