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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가짜 박사

 

한 20여 년 전의 일로 기억한다. 다니던 회사 대표를 대신하여 벤처기업인들 모임에 과장이었던 내가 대신 참석했었다. 그 모임에 내 친구가 한명 있었다. 나를 발견한 친구가 다가와서 내 손을 덥석 잡고 말했다.

 

“어이, 고 박사 반갑다.”

 

친구의 인사를 받은 나는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

 

“어이, 그래. 반갑다.”

 

그러자 그 모임에 오신 분들이 나를 고박사라고 부르면서 인사를 청해왔다. 그 분들의 명함에는 대부분 박사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게 박혀있었다. 그제야 나는 ‘어, 이게 아닌데?’ 생각했다. 내 명함에는 어디에도 박사라는 표기는 없었다. 사실 그때 나는 박사는커녕 학사도 되지못했다. 대학교 2학년 때 제적돼서 졸업을 못한 상태였다. 어색한 인사가 이어졌고 어색한 시간이 지나갔다. 나는 그날 그렇게 졸지에 박사가 돼버렸다. 그러나 나의 박사사칭 행각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나는 박사들과는 노는 물이 달라서 그들만의 리그에 끼일 기회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데 그것은 내가 사기 친 것은 아니다. 대학 다닐 때 내 별명이 ‘고 박사’였다. 내가 스스로 주장해서 생긴 별명이 결코 아니었다. 친구들이 나에게 부쳐준 별명이었다. 증언해줄 친구들도 많이 있다. 왜 그런 별명을 붙였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로부터 15년 뒤 나는 학교에 복학했으며, 입학한지 30년 만에 인문학사가 되었다. 나의 최종 학력은 학사다. 요즘도 일부 내 친구들은 나를 고박사라고 부른다. 나는 여전히 박사다.

 

세상에 흔하고 흔한 것이 박사다. 박사들이 차고 넘친다. 그중에서도 미국 박사는 얼마나 많은지? 묘하게도 박사들은 필사적으로 자신이 박사라고 불리기를 원한다. 그리고 박사들끼리는 반드시 그렇게 부른다. ‘김박’ ‘박박’ ‘최박’ 그렇게 박사가 대단한가? 나는 ‘박사라고 불리려면 조국 교수 정도는 돼야 박사라 불릴만하지 않는가?’ 생각한다. 그 정도 학식에 그 정도 연구 성과는 쌓아야 박사가 되는 게 아닌가? 그 많은 박사들 중에서 조국 교수보다 논문을 많이 쓰고 학술지에서 인용되고 있는 박사들은 몇 분이나 될까?

 

여기서 최 모 총장 이야기를 해야겠다. 가짜 박사 동양대 최 모 총장도 나 같은 경우가 아닐까? 나는 그의 처지가 이해가 가고 동병상련을 느낀다.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박사라고 사기를 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다보니 박사로 불리게 되었는데 남들이 자꾸만 박사라고 불러주니 자신이 진짜로 박사라고 착각하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최 총장을 변호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박사를 사칭한 적은 없는데 최 총장은 박사를 사칭하여 총장 자리까지 올랐으니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최 총장님, 고졸이면 어때요? 남들이 박사라고 불러주면 박사인 거죠? 파이팅.”

 

가짜 박사 최 총장의 거짓말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가짜 박사 최 총장은 조국 교수와 그 가족들에게 지은 죄를 어떻게 갚을 생각인가? 역사에 남긴 오점은 또 어떻게 지울 것인가? 최 총장은 지금이라도 나처럼 열심히 공부해서 박사 학위를 정식으로 받기를 바란다. 그러나 역사 앞에 조국 교수와 그 가족들에게 크게 사죄하는 것이 마땅한 인간의 도리다. 가짜 박사 최 총장이여! 박사 이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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