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단체에서나 화합하고 구성원과 관계를 잘 유지하는 원만한 사람이 돼야겠지만, 사회활동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고 독설가인 필자도 조직 생활은 역시 어려운 일이다. 옛적에 부처님께서 궁궐을 빠져나와 출가하실 때 함께한 마부가 있었다. 부처님과 한날한시에 태어난 찬나이다. 찬나도 출가하여 비구가 됐는데, 부처님과의 개인적인 친분을 내세워 늘 거들먹거렸다. 성격은 괴팍하고 거칠었으며, 욕지거리를 잘해서 부처님의 제자인 목련과 사리자를 헐뜯기도했다. 부처님이 찬나를 불러 가르치셨다. “찬나여, 두 명의 제자는 그대의 선한 벗이니라, 벗을 섬기고 따라서 수행하도록 하라” 부처님이 세번이나 충고하셨지만 소귀에 경 읽기였다. 찬나의 교만함은 고쳐지지 않았다. “아난다여, 내가 입멸한 뒤에 찬나에게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 벌을 주어라, 어떤 비구도 먼저 말 걸지말 것이며 대답도 하지 마라, 그래야 찬나가 부끄러움을 알고 뉘우칠 것이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 아난다는 찬나에게 가서 부처님의 벌을 알렸다. 찬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부처님이 세 번이나 일러주셨는데도 깨우치지 못한 것을 뒤늦게 자책하며 세 번이나 정신을 잃었다. 그 뒤 찬나는 참회해 교만함을 버리고 홀로
대한민국 경관대상을 수상한 수원 광교호수공원에서 2만2천여 명이 참석하여 ‘희망나눔 1m1원자선걷기’ 행사가 펼쳐졌다. 1m당 1원씩 기부금을 모금하는 캠페인이다. 모금된 기부금 전액은 도내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국내 최대 나눔 워킹캠페인이다. 어느 대학 졸업식에서 총장이 들려준 식사(式辭)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자기 밖에 몰라”라는 말을 하면서 공동체를 위해, 사회적 약자를 위해 각자 나름대로 기여하라고 당부했다. 우리 곁에 불행한 이웃을 두고 혼자서는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다. 이 세상에 힘들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만큼 숭고한 일이 있을까.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에 이런 글이 나온다. 안데스 산맥에 불시착한 조종사 기요메가 극한의 상황에서도 고통스러운 걸음을 한 발 한 발 걸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은 “나를 아는 모든 이들이 내가 지금 살아 있다면 걷고 있으리라고 믿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걸어야 한다”라는 확신이었다. 어떠한 난관 속에서도 이상을 위해 끊임없는 발걸음을 계속해야 한다. 우리가 걷는 걸음이 고난의 길일수도 있지만 자선걷기는 남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는 아름다운 걸음이다. 인생에서 가장 값진 시간을 보내는 걸음이다. 작은 나눔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문효치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허공에 태어나 수많은 촉수(觸手)를 뻗어 휘젓는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가서 불이 될 온몸을 태워서 찬란한 한 점의 섬광이 될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빛깔이 없어 보이지 않고 모형이 없어 만져지지 않아 서럽게 떠도는 사랑이여 무엇으로든 태어나기 위하여 선명한 모형을 빚어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가서 불이 되어라 사랑은 뜨겁다. 뜨겁지 않은 것은 사랑이 아니다. 차갑거나 서늘한 것이 어찌 사랑의 체온이 될 수 있으랴. 타오르고 또 타올라 한 줌 재가 될지라도 뜨겁게 타올라야 하는 것. 저 눈부신 태양이 그러하듯이 사랑은 모름지기 뜨겁게 타올라야 하는 것이리라. 그런 까닭에 흔히 사랑은 불꽃에 비유된다. 그렇다면 불꽃같은 사랑의 온도는 얼마쯤일까.만약 사랑이 불꽃이라면, 사랑의 온도 역시 이 불꽃 온도와 같을 것이다. 실제로 촛불의 온도는 1천200도~1천400도이므로, 사랑의 불꽃은 이와 흡사한 1천369도쯤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의 불꽃이란, 두 사람의 심장이 뜨겁게 요동쳐서 불꽃반응(37도×37도=1369도)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오오
그동안 접경지역 주민들은 국가 안보를 위해 희생을 감내해 왔다. 각종 규제로 인해 주민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고 정체돼 있어 오지나 다를 바 없다. 정부는 2011년 접경지역 발전종합계획을 수립해 이 지역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했으나 ‘규모 위주의 백화점 식 나열’이란 비판을 받았다. 이에 정부는 지난 2월 ‘접경지역 발전종합계획’ 일부를 수정해 체계적 지원을 하기로 했다. 투자실적이 없거나 실현 가능성이 낮은 민자 사업들을 과감히 조정해 사업추진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그 때 발표된 사업들은 ▲남북 교류협력 기반조성 ▲생태·평화 관광 활성화 ▲생활 SOC 확충 등 정주여건 개선 ▲균형발전 기반구축 등으로 오는 2030년까지 13조2천 억 원을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지역 주민과 경기도의 가장 절실한 요구는 접경지역을 수도권정비법상 수도권에서 제외해달라는 것이다. 농산어촌도 만찬가지다. 경기도는 그동안 연천과 가평군을 수도권에서 제외하라고 정부에 건의해왔다. 그리고 지난 18일엔 연천군과 가평군 2개 군에 더해 김포시, 파주시, 양주시, 동두천시, 포천시 등 접경지역 6개 시군과…
한국의 소득 격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가운데 30위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통계청이 처음으로 공개한 ‘팔마 비율’은 처분가능소득 기준으로 보면 2015년 1.42, 2016년 1.45, 2017년 1.44로 2011년의 1.74보다는 개선됐다. 그러나 OECD 국가 중에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영국, 리투아니아, 미국, 터키, 칠레, 멕시코 등 6개국만이 한국보다 높았다. 팔마 비율은 소득 상위 10%의 소득점유율을 하위 40%의 소득점유율로 나눈 값이다. 팔마 비율이 커지면 소득 격차가 벌어졌다는 의미다. 불평등 해소를 내건 문재인 정부에서 소득 격차가 계속 벌어지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소득 불평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열심히 일하고 성과를 많이 낸 사람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은 경제의 생산성을 끌어올린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 간의 빈부 격차가 지나치게 커지면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불안이 발생할 수 있다. 이로 인한 국가적 혼란은 국민 전체의 손실로 이어진다. 당연히 소득 격차를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경제가 탄탄하게 성장해서 일자리가 늘어난다면 소득분배 개선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소득 격
승선교를 지나 선암사로 한발자국 더 가까이 올라보자. 승선교를 지나면 승선교 홍예 사이로 바라보았던 강선루를 만난다. 강선루는 계곡에 기둥을 걸친 채 지어졌다. 승선교에서 바라보았을 때는 그리 커 보이지 않더니 바로 앞에서 마주하니 우러러 보이는 게 생각보다 큰 누각이다. 강선루는 앞과 뒤의 편액글씨체가 다르다. 둘 다 고종시기에 쓰여 졌지만 쓴 사람들이 서로 다르다. 정면에 걸린 편액은 김돈희 선생이 쓴 것으로 조금 두껍고 부드럽지만 강인함이 느껴진다. 뒷면에 걸린 편액은 윤용구 선생이 쓴 것으로 가늘고 군더더기 없는 강선루의 느낌이 묻어난다. 두 개의 편액 중 어느 것이 더 강선루와 잘 어울리는가! 비교하고 느껴보는 것도 하나의 묘미이다. 강선루를 지나면 삼인당 연못을 만난다. 삼인당 연못은 통일신라시대의 연못으로 연못의 생김새가 아주 독특하다. 기다란 타원형 모양의 연못에 다시 타원형의 섬이 자리하고 있다. 연못가에는 세 그루의 나무가 우뚝 솟아 있다. 도선국사가 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연못에는 불교의 대의를 담고 있다. 큰 타원형은 ‘스스로 깨닫고 남들도 깨닫게 하라’는 ‘자각각타(自覺覺他)’, 작은 타원형은 ‘스스로 많이 배우고 닦아서 자기를
1895년 12월, 고종이 서재필을 만났다. 갑신정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여 미국에 망명했던 역적 서재필을 정부의 고문관 자격으로 초청했던 것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한국의 토론문화에서 빠트릴 수 없는 일대 사건이다. 서재필은 1896년 4월에 창간한 ‘독립신문’ 사설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무슨 일이든지 공사간에 문을 열어놓고 서로 의논하여 만사를 작정하고 실상과 이치와 도리를 가지고 햇빛 있는 데서 말도 하고 일도 하는 것이 나라가 중흥하는 근본이다” 9월에 고종이 칙령 제1호로 반포한 의정부 관제에 회의라는 항목과 회의운영에 관한 세부 규정이 실려 있다. 서재필이 배재학당 학생들을 통해 토론회를 보급할 무렵에 정부에서도 근대적 회의방식을 채택했던 것이다. 같은 시기, 서재필이 배재학당에서 미국 민주주의를 소개하면서 토론의 필요성을 강조했을 때 깊이 공감한 학생들이 ‘협성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협성회 학생들이 논의를 통해 만든 토론회의 세부 규칙이다. -말하는 사람들은 공평한 발언시간을 가져야 하고, 정해진 방식에 따라 말해야 한다. -토론은 찬성과 반대의 양편으로 나뉘어 자신의 주장을…
우리나라의 연간 이혼 건수는 약 12만건. 3만여건이던 1980년대 초 4배에 이른다. 하루 316쌍꼴이니 날마다 ‘돌싱’이 600여 명이 쏟아지는 셈이다. 그중에는 중년 이혼도 대다수 포함하고 있다. 황혼이혼도 마찬가지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둣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혼인지속기간이 20년 이상인 부부의 이혼이 3만6천300건으로 전년에 비해 9.7% 늘었다. 혼인지속기간이 30년을 넘는 이혼 건수(1만3천600건)도 10년 전보다 1.9배 급증했다. 자녀들이 자립하는 시점에 오랜 세월 쌓인 불만이 폭발해 이혼 서류를 내미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성의 ‘반란’이 특히 심하다 그런가 하면 한국의 평균 이혼연령은 갈수록 높아져 남자 46.2세, 여자 42.4세가 대종을 이룬다. 올해 초 통계로는 남자 45~49세, 여자 40~44세가 더 늘었다. 50대 이상의 황혼이혼 역시 가파른 곡선을 보인다. 물론 이혼 이유도 다양해졌다. 하지만 이혼이란 게 이미 형성된 관계를 해소하는 것이어서 파생되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특히 재산 문제에 있어선 더욱 복잡하다. 거기에 자녀가 어릴 경우엔 사정이 난해해 진다. 이런저런 사정을 감안 각자의 삶을 살기위한 선책으로 ‘이혼’ 대
언제부터인지 ’학교는 오늘도 안녕한가?‘라고 묻곤 한다. 그래서 ‘학교는 오늘도 안녕하다’라는 제목으로 동화도 쓰고, 블로그도 운영한다. 아무튼 학교는 늘 안녕해야 하고 아이들도 늘 존중받으며, 꿈을 심고 가꿀 수 있어야한다. 학폭이나 다양한 교육문제로 시끄러워도 결국 미래의 주인공인 학생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2월 명퇴신청교원이 6천38명으로 지난해 보다 30%가 증가했다고 한다. 사교육 중심으로 교육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교권마저 추락하면서 회의를 느낀 일부 교사들이 교단을 떠난다니 안타깝다. 얼마 전 방영되었던 드라마 ‘SKY캐슬’은 입시문제를 소재로 박진감 넘치는 전개, 배우들의 흡인력 강한 연기가 큰 몫을 하여 뜨거운 이슈가 됐다. 입시위주의 교육풍토, 높은 사교육 의존도, 부의 되물림 현상 등 교육격차로 인해 좌절하는 부모들에게 많은 부분 공감할 수 있기에 시청률이 높았다. 하지만, 부모가 원하는 대학입학을 위해 현재의 모든 것을 유보한 채, 기쁨도, 고통도, 감정과 놀이도 내일을 위해 참으라는 부모의 이기적인 욕심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는 학생들의 자화상에 그저 재미로만 시청하기에는 부끄러울 뿐이다. 어쩌면 덜 성숙한 어
행복이란 생활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를 말하며, 불행의 반대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배움에 대한 열망과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지혜의 소중함을 알게 해준다. 엎어지면 코닿는 곳에 학교가 있을 정도로 집에서 학교가 가까운 편인 한국은 매년 발표되는 행복과 관련된 수치는 부끄럽기 짝이 없다. 2018 UN의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나라별 행복도 순위에서 1위 핀란드, 2위 노르웨이, 3위 덴마크, 한국은 57위였다. 또한, 한국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과 기대수명은 높지만, 사회관계나 사회적 자율성(선택의 자유) 항목에서 하위권을 차지했다. 즉, 한국은 사회관계와 선택의 자유측면에서 행복을 제한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행복은 사람마다 기준이 제각각이며 절대적인 기준이 아닌 상대적인 성격이 강하다. 어떤 학생들은 학교에 가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학생들은 성적이 향상되거나 부모나 교사, 친구에게 칭찬을 받았을 때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물론, 학교생활에서의 행복의 바탕에는 교사의 수업에 대한 만족도가 기본으로 깔려 있는 셈이다. 그럼, 학교 안에서 학생들이 행복하려면 어떤 조건이 충족돼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