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신문 = 황기홍 화백 ]
인간은 오래전부터 자연의 리듬에 맞추어 살아왔다. 비가 오면 씨를 뿌리고 해가 길어지면 수확했다. 그리고 그 결실의 순간마다 축제를 열어 노래하고 음식을 나누었다. 추석이나 추수감사절, 또는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는 고대의 제사들까지 모두 같은 본능에서 비롯되었다. 먹을 것을 얻는 일은 생존의 문제였지만 그것을 함께 기뻐하는 일은 인간이 자신을 ‘사회적 존재’로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문화인류학자 마르셀 모스는 인간이 계절의 순환을 단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의례를 통해 시간의 구조를 만든다’라고 말했다. 수확제는 자연의 리듬을 사회의 리듬으로 바꾸는 장치였다. 이 장치 덕분에 사람들은 불확실한 자연 속에서도 예측할 수 있는 질서를 느꼈고, 한 해의 끝을 ‘기다릴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었다. 수확의 축제는 곧 사회가 스스로에게 “우리는 아직 살아 있다”라고 말하는 언어였다. 축제의 의미는 경제적 측면에서도 깊다. 평소에는 분리되어 있던 가족, 계급, 혹은 씨족이 이 시기에 모여 음식을 나누고 재화를 돌렸다. 위로와 모스가 말했듯, 제사는 경제적 순환을 사회적 관계로 바꾸는 제도였다. 곡식이나 고기를 나누는 행위는 단순한 나눔이 아니라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한 ‘재
지방의회 해외연수의 본래 목적은 정책 연구와 국제 교류를 통해 지방자치의 수준을 올리는 데 있다. 지방자치의 핵심 기능을 하는 지방의원들이 선진 지방자치를 견학하거나 견문을 넓히는 일은 나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엉터리로 이행되는 지방의회의 해외연수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고질병은 방치돼서는 안 된다. 시스템을 철저하게 개선할 방안을 찾지 못해 아예 해외연수를 폐지한 지방의회도 있다. 경기도 내에서 혈세를 쓰는 지방의회 해외연수가 아직도 엉터리로 시행되고 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경기신문 취재결과 화성특례시의회에서 ‘해외연수는 의원이 하고, 보고서 작성의 주체는 직원들이었다’는 사실이 내부 증언을 통해서 확인됐다. 지난 2일 화성특례시의회 경제환경위원회 3차 공무국외출장 심사위원회에서 위원장이 한 “공무국외출장 보고서 작성은 의원들이 직접 작성하고 자료 정리나 일정 요약 등은 직원이 보조하는 역할만 한다”고 한 말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화성시의회 기획행정위원회·경제환경위원회·문화복지위원회·도시건설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지난달에 독일, 호주, 일본 공무출장을 다녀왔다. 이런 가운데 경제환경위원회는 다음 달에 3박 4일 일정으로 중국 상하이·
‘그래! 저 모습이야. 아니 저렇듯 편안한 얼굴이어야 하는데-’ 한마디로 화안(和顔)이었다. 강의가 있어 가는 아침 길이다. 서서히 차를 몰고 가는데 국화꽃 위로 국화 빛 낙엽이 하나 둘 내려앉고 있다. 차창 밖 오른쪽의 인도였다. 30대 중반쯤 되었을까. 한 젊은 여인이 작업할 때 열고 쓰는 큼직한 가방을 멘 채, 오른손에는 작은 가방을 들고 걸어가고 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이다. 그런데 얼굴을 보니 둥근달을 생각나게 한다. 복스럽게 생긴 모습이랄까! 균형 잡힌 몸에 결 고운 얼굴은 더없이 편안해 보였다. 오늘 하루의 피곤이나 삶에 대한 무게감도 엿보이지 않았다. 담담한 표정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왜 그렇게 보였는지 모를 일이다. 편안한 모습과 근심 없는 마음을 신경 써온 탓이리라. 진정 저렇듯 편안한 얼굴이 그리워서였을 것이다. 문득 내 어머니의 편안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아들 하나뿐인 게 죄인 양,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 조마조마하시면서 나를 기르셨다. 그런데 아들이 편안하게 산다기보다 척박한 땅에 개척정신으로 뿌리내리는데 힘들어하는 모양새가 안타까우셨을 것이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내가 『문학의 이해와 수필의 길』
우리나라는 지난해 말 65세 이상 노인 인구(1024만 명)가 전체의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공식 진입했다.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2023년 기준 83.5세다. 누구나 최소 20여 년의 노후를 대비해야 하는 시대에 잘 사는 것(웰빙) 못지않게 잘 늙는 것(웰에이징), 잘 죽는 일(웰다잉)에 관심을 기울여야 마땅한 시대가 도래했다. 초고령사회에 1인 가구가 급속도로 늘어가면서 웰다잉은 이제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국가사회의 주요 정책 테마로 등장해 있다. 중환자의 여명(餘命)을 평안하게 마치도록 돕는, 삶의 마지막을 존엄하게 하기 위한 제도 중의 핵심은 호스피스다. 신체적·정서적 고통을 완화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돌봄 서비스를 뜻한다. 지난 2016년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호스피스는 수요 대비 공급 부족, 부족한 정책적 지원 등 문제점이 여전하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품위 있게 마무리하고자 하는 이들은 급속히 늘고 있다. 지난 5월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팀이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력 존엄사 및 웰다잉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
지난 칼럼에서 하자 소송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미시공이나 오시공 하자의 경우가 전체 하자에서 70% 정도에 달한다고 설명드렸습니다. 소위 이러한 ‘사용검사 전 하자’의 경우에는, 설계도면과 달리 '미시공' 또는 '변경시공' 한 부실시공으로 인한 하자에 해당하는 것인데, 실제 아파트 건설과정에서는 다양한 설계도면들이 작성되므로 어떤 도면을 기준으로 하여 하자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업승인도면은 사업주체가 주택건설사업계획의 승인을 받기 위해 제출하는 기본설계도서로, 대외적으로 공시되는 것이 아니므로 분양계약의 기준이 되지는 않고, 실제 건축 과정에서는 현장 여건 등을 감안하여 공사 항목 간 대체시공이나 가감시공 등 설계변경이 빈번하게 이루지고 있습니다. 설계변경이 이루어지면 변경된 내용이 모두 반영된 최종설계도서(준공도면)에 의해 사용검사를 받게 됩니다. 아파트 분양계약은 통상 설계변경 가능성을 예정하고 있으며, 수분양자 역시 법령상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설계변경이 이루어진 최종설계도서에 따라 아파트가 하자 없이 시공될 것을 신뢰하고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보기에, 아파트가 사업승인도면이나 착공도면과 다르게 시공되었더라도, 준
민주당은. 필리버스터 시작 24시간 후 강제 종결 표결 정족수를 맞추기 위해 민주당 의원들만 자리를 지키는 상황이 반복되자, 필리버스터 신청 정당의 출석을 일정 수준 의무화하는 방안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민주당 의원은 필리버스터 종결 동의 표결 방식을 현행 무기명 투표에서 전자투표로 바꾸는 개정안을 제출했다. 전자투표를 도입하면 표결 소요 시간이 단축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민주당의 움직임은 민주주의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게 한다.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효율적인 시스템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비효율적인 이유는, 의견이 다른 상대를 설득하고 양보를 이끌어 내며, 동시에 자신도 일정 부분 양보하는 협상의 과정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은 필연적으로 시간을 요구한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단순한 효율성의 기준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이 추진 중인 필리버스터 관련 개정안은 결국 절차의 시간을 단축하려는 시도로 보이는데, 이는 민주주의가 본래 비효율적인 제도라는 점을 간과한 접근이라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더 큰 문제는, 민주당이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정당에 일정 수준의 '불편함'을 부과하려는 의도를 드러내
[ 경기신문 = 황기홍 화백 ]
이재명 국민주권정부에서 시민단체의 존재감이 뚜렷하지 않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 낸 시민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임을 떠올리면 역설적이다. 정부 출범 100일이 넘었지만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가 보이지 않는 것은 정부의 혁신과 운영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시민사회 내부의 요인이다. 4월 4일 윤석열 퇴진을 주도한 ‘윤석열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4월 17일 국회에서 사회대개혁을 위한 정책대안을 발표한 뒤, 6월 10일 자진 해산을 결의했다. 사회대개혁의 후속 노력이 이어지지 못한 채 해산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 9월 23일, 각계 시민단체들이 다시 모여 ‘국민주권사회대개혁전국시국회의(전국시국회의)’로 통합을 결의하며 새로운 도약의 뜻을 밝혔다. “다시는 물러서지 않는 사회대개혁”을 다짐한 이 결의는 늦기는 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음으로는 국회 중심의 개혁 드라이브가 한 요인이다. 국회는 내란·김건희·채상병 등 이른바 3대 특검을 중심으로 적폐 청산과 개혁 작업을 주도해 왔다. 지난 9월 26일 국회는 정부조직개편안을 확정하였다. 이제 정부는 시민사회와 협력하여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