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만 되면 교문 위에 달리는 현수막은, 보나 마나 똑같은 ‘불조심 강조 기간’인 시절이 있었다. 그것까지 교장이 정할 이유도 없고 언필칭 창의성을 길러주는 곳이 학교니까 멀쩡한 아이들 두고 교장이 그렇게 해서도 안 되지만 그런 것까지 일일이 통보하고, 지시·명령하고, 살펴보고, 관리·감독하는 곳이 상급관청이고 관내 행정기관이었다. 인용이 괜히 낯간지럽다. ‘화재 발생 빈도가 높은 겨울철을 대비해 방화환경 조성을 통한 시민의 화재 예방 및 안전문화 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협조 요청하오니 안전하고 내실 있는 방화환경 조성 확산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달라’는 공문이 일찌감치 온다. 거기에는 ‘당년 11월 1일~익년 3월 31일/ 불조심 강조의 달(혹은 ‘화재! 당신의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다!’) / ○○기관’을 3행으로 배치하라는 안까지 제시되어 있다. 문안도 걱정 없다. ‘설마하면 큰일날불 조심하면 안전한불’, ‘크고 작은 화재사고 알고 보니 순간 방심’ 같은 예시가 풍부하게 실려 있다. 얼마나 구체적이고 친절
어떤 저녁의 풍경 /정하해 저녁 술잔에 입술이 묻는다 다들 사람냄새가 난다 입을 묶은 남녀가 스마트폰을 들고, 맞은편 빌딩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골동품 같은 말을 버린 지 오래인 듯 웃는 것마저 터치로 한다 맹독이다 버려진 말의 무덤 저녁 나뭇잎이 터치를 하는 소리 바람 탓만은 아닐 것이다 무덤 짓지 않으려고 우리는 포장마차에서 소리를 방출한다 너에게 가려고 손가락을 버렸다 -정하해 시집 ‘젖은 잎들을 내다버리는 시간’ 스마트폰이 우리를 잠식하고 있다. 가족과 식사나 대화를 할 때 텔레비전을 볼 때 전철 안이나 횡단보도를 걸어갈 때, 어느 곳 하나 가리지 않고 고개 숙인 우리는 쉼 없이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다. 그리하여 서로 얼굴 마주 보는 직접적인 대화보다는 스마트폰으로 주고받는 짧은 문장의 대화가 훨씬 편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또한 내 생각이나 마음 상태를 대신 표현해주는 이모티콘 하나 날리는 일이란 얼마나 쉽고 간단한가.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편하게 길들여진 생활 속에서도 못내 아쉽고 그리운 것이 있다. 스마트폰이 보여주는 각종 소식과 흘러넘치는 댓글들 속에서도 문득 느껴지는 외로움, 서로 만나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거나, 우리는 우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10월 30일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을 발표했다. 이 안에는 ‘특례시’가 명시돼 있다. 인구 100만 명이 넘는 광역시급 도시인 경기도 수원시, 용인시, 고양시와 경상남도 창원시가 해당된다. 특례시는 광역시급 위상에 걸맞은 행정·재정 자치 권한을 확보하고 일반 시와 차별화되는 법적 지위를 부여받지만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지위를 유지하는 새로운 지방자치단체의 유형이다. 그동안 수원·용인·고양·창원 이들 4개 대도시는 정부에 특례시 요구를 줄기차게 해왔다. ‘어른에게 아이의 옷을 입히는’ 것과 같은 현재의 획일적인 지방자치제도로는 폭증한 행정수요에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구가 100만 명을 넘어선 이들 도시는 광역시급 행·재정이 요구되기 때문에 행·재정 능력을 갖출 수 있는 특례를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그러나 당장 광역시가 되기엔 해당 도(道)의 반대 등 문제점이 있다. 이에 도에 소속되는 대신 광역시에 준하는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특례시는 일반 시와 차별화된 법적 지위를 부여받는다. 행·재정 자율권이 확대되고 세수가 증가된다. 또 지방분권이 강화돼 진정한 지방자치에 한발 더 다가서게 된다. 그런데 이들
당·정·청이 올해 5개 시도에서 자치경찰제를 시범 실시하고 2021년 전국으로 확대하겠다고 14일 밝혔다.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자치경찰특별위원회가 지난해 11월 내놓은 자치경찰제 도입방안의 입법과 시행 로드맵이다. 15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가 논의된다. 집권 3년 차를 맞아 권력기관 개혁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지만 난제도 많다.자치경찰제와 연계되는 검·경 수사권 조정은 논의될 만큼 논의됐는데도 여전히 진통 중이다.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경찰에 수사종결권을 주는 수사권 조정안에 검찰이 반박하고 경찰이 재반박하는 양상이다. 게슈타포나 중국 공안에 상대를 비유하는 감정싸움도 있었다. 검찰은 최근에도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 수사권 조정안을 비판하고 자치경찰제의 문제점을 지적한 문건을 배포했다.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채 정권의 하수인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군림한 모습이 있었다는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기득권을 내려놓고 분권에 나서는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수사권 조정을 검찰 길들이기로 몰아 정쟁화하거나, 여기에 편승하려는 시도는…
골프는 정해진 규칙 못지않게 에티켓을 중요시하는 경기다. 훌륭한 에티켓이 습관이 되었을 때만이 완벽한 골퍼가 될 수 있다. 에티켓은 라운드를 하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플레이를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줄 뿐만 아니라 다른 골퍼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에티켓은 코스에서뿐만 아니라 골프가 끝난 후에도 적용이 된다. - 지각은 룰과 에티켓의 위반이다. 많은 에티켓이 있는데 그 중에 지각은 룰과 에티켓의 위반이며, 코스에서의 에티켓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출발시간의 엄수다. 경기를 위한 약속시간에 늦으면 자신의 손해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를 플레이어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패널티가 붙지 않는 비공식 경기라 하더라도 지각은 패널티 이상의 에티켓 위반이라 할 수 있다. - 라인 뒤에 서지 않아야 한다. 골프대회에서 캐디가 선수 바로 뒤에서 라인을 점검해주는 동작을 본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 선수가 샷을 하려는 순간 옆으로 비켜서야 한다. 만약 라인 뒤에 계속 서 있을 경우에는 룰 위반이다. 그린에서는 상대방의 시야 속에 서 있지 말아야 한다. 퍼트 라인 선상 앞과 뒤 등 테이크백을 할 때에 상대방의 시야 속에 서 있지 않는 것이 상식입니…
“워크맨, 코닥필름, 노키아 휴대폰, 윈도우폰, 브래태니커 사전.” 구시대의 유물처럼 찾아보기조차 힘든 이것들은 한때 세상을 호령하거나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었다. ‘브래태니커’ 사전만 해도 지식의 보고로 존재감을 뽐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두툼한 사전이 아닌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하나면 언제 어디서라도 내가 궁금해 하는 지식을 찾아볼 수 있는 시대다. 세상에서 영원한 것이란 없다. 로마제국의 위용은 이끼가 낀 유적지와 웅장한 스크린 속에서나 볼 수 있다. 현대 문명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그리스는 부도 직전까지 몰려 유럽을 비롯해 전 세계의 두통거리로 전락했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는 지금의 뿌리이고 기원이지만, 정작 그 지역의 현실은 분쟁과 파괴, 그리고 어쩌면 퇴보의 길을 걷는 듯하다. 문명의 발상지였음에도 진보와 변화의 흐름이 멈추거나 고인 물이 되는 순간, 전성기의 문명은 과거 유적지로만 남을 뿐이다. 중국만 보더라도, 봉건제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순간에 변화를 거부했고, 결국 한줌 되지도 않는 외국의 군함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새로운 시대와 문명의 전환에 대응하지 못한 결과였던 것이다. 기업도 변화와 멈춤의 경계에서 운명이 결정되기 일쑤다.
1월 취업자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1만9천명 늘어나는 데 그쳤고, 실업률은 4.5%로 글로벌 금융위기 후폭풍이 몰아친 2010년 이후 가장 높았다. 일하고 싶어하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실업자는 122만4천명으로, 같은 달 기준으로는 환란 와중인 2000년(123만2천명) 이후 19년 만에 최다였다. 취업자 증가가 적은 것은 비교 대상인 지난해 1월 취업자가 33만4천명이나 늘어난 데 따른 기저효과라지만, 절대 실업자 수가 환란 때 수준으로 올라간 것은 국민들의 고용 체감지수가 그만큼 악화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용의 양적 측면뿐 아니라 질적 측면에서도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보건업·사회복지서비스업(17만9천명), 농림어업(10만7천명)의 취업자는 늘었지만, 제조업(-17만명)이나 도·소매업(-6만7천명)은 줄었다. 정부가 일자리 예산을 투입해 만들어낸 공공분야에서는 늘었지만, 민간기업이 창출하는 지속가능한 일자리는 줄어든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지난해 4월부터 줄고 있는 제조업 취업자의 감소 폭이 전달 보다 확대된 것도 좋지 않은 신호다. 고용률, 생산가능인구(15∼64세) 고용률, 체감실업률 등 어떤 고용지표도 1월보다 나아진 게 없다. 따라서 정
지난 8일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을 공식 방문 중인 문희상 국회의장과의 인터뷰에서 문의장이 아키히토 일왕을 “전쟁범죄 주범의 아들”이며 “만약 그런 사람이 어르신들의 손을 잡고 ‘정말로 미안하다’고 한다면 그 한마디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이 보도가 나가자 일본 언론정부와 언론매체들은 문 의장의 발언이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한 ‘전범의 아들’이 아니라 ‘전쟁 당시 일왕의 아들’이라고 말했다는 한국 국회 보도관의 말을 전하면서도 비판을 이어갔다. 일왕은 일본 내에서 신격화(神格化)된 존재인데 그런 일왕에게 사과하라고 하는 것만으로도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고노 일본 외무상은 10일 기자회견에서 “2015년 일·한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했다. 일본 내에서 비난이 확산되자 문의장은 11일 오전 워싱턴 D.C에서 기자들과 만나 “전쟁 당시 일본 국왕의 아들이라는 의미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지도자의 진정 어린 사과를 강조하는 맥락에서 나온 표현”이라고 밝히면서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진정성 있는 사과가 우선돼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여기에 더해 “일본 측은 수십 번…
필자의 진로강의는 다음 4가지 질문으로 시작한다. 다음은 귀신같은 알파고 도깨비 방망이 알렉사가 더 발달하여 하나의 AGI가 되어버린 미래로부터 현재 우리들에게 경고하듯 던지는 그 질문들이다. 1번, 왜 어떻게 질문이 부와 권력이 되는가? 2번, 왜 게임을 즐기던 학생이 취업에 더 유리한가? 3번, 왜 병원은 점차 사람을 죽이는 곳이 되는가? 4번, 왜 쓸모가 없거나 적은 것들이 더 귀해지는가? 현재 입시제도 속에서 차라리 ‘SKY 캐슬’ 드라마의 코디가 되고 싶은 교사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발달은 SKY 캐슬을 무너뜨리고 있다. 한 인간의 암기와 이해가 집단지성을 이룬다고 해도 단 하나의 두뇌로 작동할 인공지능의 발달과 빅데이터의 연결에 비교될 수 없다. 병원에서 의학논문을 읽는 IBM 왓슨의 공부속도와 인간 의사의 의학논문 읽는 속도를 비교한 보도를 보면 왓슨이 3시간 읽을 논문을 인간이 다 보려면 3000년이 걸린다. ‘이세돌’을 이겼던 인공지능은 ‘커제’의 눈물 이후 알파고와 알파고의 바둑대결을 했다. 인간 기사들이 상상할 수 없었던 기발한 기보들을 남기고 알파고는 인공일…
작년 11월 13일 한 중학생이 인천 연수구에 있는 청학아파트 옥상에서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알고 보니 동급생 4명으로부터 전날에 이어 한 시간여 동안 집단 폭행을 당하던 중 일어난 사건이었다. 죽은 A군은 공교롭게도 다문화가정 아이였으며, 평소 A군은 다문화가정 출신이라는 이유로 자주 놀림을 받아왔고 집단 따돌림을 받았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다문화 아이들의 경우 학교생활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이들은 언어능력의 부족으로 학습 부진의 정도가 심각한 상태에 있다. 우리나라 국제결혼의 경우 대부분 여성 이민자들인바, 우리말이 서툰 어머니 밑에서 성장하는 자녀들은 언어 습득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곧 학습 부진으로 이어진다. 둘째, 이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성장하면서 경험하는 자신의 문화와 어머니의 문화가 다른데서 오는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셋째, 이들은 집단 따돌림 등 정서적 충격을 경험하고 있다. 어느 통계에 의하면 국제결혼 가정 자녀는 10명 중 2~3명 정도가 집단 따돌림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우리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우리는 한 핏줄이고 우리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