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 경로당 /서정화 누가 고도리를 꼭꼭 감춰두고 있을까 조심스레 패를 뜨고 종달새 먹으려 움켜쥔 손, 우산 든 사나이에 난데없이 꿩이 날고, 에라이, 똥이나 먹자, 어머니, 자뻑을 하시네, 쌍피에 흘깃대는 눈들, 바닥에 깔린 휘파람새 아무도 먹지 않아 입맛 다시며 안절부절 못하다가 그만 봉황도 놓치고 어안이 벙벙, 솔광을 뚝심 있게 내려놓자 두루미가 날아가니 환장하겠네, 공산은 어디 갔는지 철새가 훨훨 날아가고, 헐, 홑껍데기만 남았구나. 오늘도 끗발 세우려다 어느덧 해는 지고…. -시집 ‘숲속 도서관’ 아, 저렇게 봄날이 가는구나. 화투패를 돌리며 시간을 죽이며 하루가 또 속절없이 저무는구나. 도시나 농촌이나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경로당 풍경이 저러할 것이다. 몇 번 어깨너머로 흘깃거려 본 화투놀이지만 무심코 보아 넘겼었는데 매화나무 가지에 앉은 새가 휘파람새였구나. 흑싸리의 새는 종달새였구나. 비의 꿩과 솔광의 두루미, 공산의 기러기, 똥광의 봉황까지 온갖 잡새가 모여든 화투 속 세계가 경로당 노인들의 심사와 한통속으로 어우러진 것이다. 사회에서도 내쳐진, 가정에서도 별 볼일 없는 존재가 된 노년의 일상이 화투에 투영되어
중·고교의 내신 시험문제 유출 파문이 커지고 있다. 문제 유출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고 그 수법 또한 다양하기 때문이다. 교사나 교직원이 학부모나 학원 강사와 짜고 문제를 빼돌리거나 학생이 교무실에 몰래 들어가 문제를 빼내기도 한다. 적발조차 어려워 지금까지 드러난 유출 사례가 ‘빙산의 일각’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시험은 무엇보다도 ‘공정성’이 생명이다. 내신 시험이 반칙과 불공정으로 얼룩지면 입시 정책에 대한 학부모와 학생들의 불만과 불신은 가중할 수밖에 없다. 최근 발생한 시험문제 유출 사례를 살펴보면 조직적이고 계획적이라는 점에 심각성이 있다. 광주 모 고교의 시험문제 유출은 내부자와 외부자가 공모한 대표적 사례다. 이 학교 행정실장 A 씨는 학교운영위원장을 맡은 학부모 B 씨에게 3학년 기말고사용 시험지를 통째로 빼내 전달했다. 학교 행정실에 보관 중인 시험지를 책임자가 몰래 빼냈기 때문에 자칫 묻힐뻔한 사건이다. 경찰은 B씨가 이 학교 이사장 부인과 고교 동문이라는 점 등으로 미루어 금품 수수 여부를 조사중이다. 학생들이 교무실이나 연구실에 침입해 시험문제를 직접 빼낸 사례는 충격적이다. 지난달 말 부산의 모 특수목적고에서는 3학년…
문희상 국회의장이 국회 특수활동비를 대수술하겠다고 밝혔다. 문 의장은 18일 오전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씀씀이를 모른 채 사용되는 국회 특활비를 폐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목표는 특활비의 폐지 아니면 획기적 제도 개선.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면서 “원칙적으로 투명성이 확보돼야 하고 증빙서류가 첨부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 “그 용도를 꼼꼼히 검토해서 필요한 액수 외엔 과감히 없애거나 줄여야 한다”라고도 말했다.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는 “대명천지에 주머닛돈이 어디 있고, 쌈짓돈이 어디 있고··· 명세서를 달 수 없으면 쓰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 생각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요”라면서 사견임을 전제로, 특활비 예산을 해마다 절반씩 줄여나가는 방식을 제시하기도 했다. 국회 특활비는 그동안 ‘쌈짓돈’ ‘제2의 월급’ 논란 속에서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특활비는 ‘기밀이 요구되는 정보 및 수사, 이에 준하는 국정을 수행’하기 위한 예산이다. 따라서 기밀 유지가 필수인 국가정보원이나 검찰 등 수사기관에 한정해 엄격히 배정해야 한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이 이 예산을 물 쓰듯 나눠 쓰고 있는 것이다. 증빙서류도 없이. 공개적인
권력은 사람을 강자와 약자로 구분시킨다. 그리고 강자와 약자가 만들어지면 ‘폭력’과 ‘희생’이 발생한다. 권력을 소유한 강자에게 약자는 의견을 나누는 상대가 아니다. 평등의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약자의 요구에 대해 주의 깊게 반응하고 적극적으로 주파수를 맞추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약자와 감정을 타협할 필요를 못 느끼고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약자에게 주입한다. 그런데 이런 권력관계는 부부사이에도 존재한다. 만약 여러분이 자신을 강자나 약자로 생각하고 있다면 이미 부부 아포리아(난관)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폭력은 ‘당연함’에서 시작한다. 여자니까 혹은 남자니까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내가 더 잘 알고 있으니 배우자는 당연히 내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부사이라도 나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하는 배우자의 수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여러분이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배우자에게 무엇인가 요구하고 있다면 아무리 작더라도 그것은 폭력이 될 수 있다. 희생은 ‘어쩔 수 없음’에서 시작한다. 여자, 남자, 주부, 잘 알지 못해서 등등 배우자의 의견을 따…
곡직은 대개 옳고 그름을 표현할 때 쓰는 말로, 자의적으로는 直은 많은 이들의(十) 눈으로 보아(目) 숨은 뜻 없이(隱>□) 곧음을 형상화, 곧다, 바르다, 펴다, 세로 등으로 쓰이고, 曲은 대살이나 싸리로 얽기 설기 엮은 모양을 형상화, 구불하다, 그릇되다, 자세히, 악곡 등으로 쓰인다. 불문곡직이란 4자 성어에서 보듯 고래로 윗사람의 비리나 잘못을 종종 아랫사람이 고발하다 보니 나라의 근간인 신분질서가 흔들리는 등, 그 해악에 옳고 그름으로 윗사람을 벌하기보다 오히려 아랫사람을 처벌하는 등 상전의 잘못은 묻지도 고발도 하지 못하게 한 사례들이 역사적으로 종종 있어왔다(주 효종 때 문공의 고사, 당 태종의 고사, 이조 세종 때 허목의 고사 등). 한편 오행으로 볼 때 直은 金이라 질서의 개념이 강하고 曲은 木이라 성장 혹은 생의 개념이 강한데, 直이라면 곧고 바르고 깨끗함을 뜻하지만 맑은 물에 물고기가 살 수 없듯 세속에 유리되다 보면 더불어 살기 어렵기 마련이다. 그리고 세상을 올곧게 잡겠다고 칼을 휘두르면 쌍뚱 정리야 할 수 있겠지만 섬세하지 못한 칼 놀림에 주변을 상하게 하는 등 정도를 넘어 죽음으로도 몰수 있어 直을 조심해 다뤄야 할 것이다(死
1782년 흰머리수리(Bald Eagle)가 미국 국조(國鳥)로 공식 지정된 이면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당시 의회는 흰머리수리와 칠면조를 놓고 무엇을 국조로 할 것인가 격론을 벌였다. 흰머리수리는 원주민이 신성시 여기는 숭배의 동물이었고 칠면조는 청교도들이 인디언에게 감사의 표시로 대접하던 화합의 상징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논쟁 끝에 흰머리 수리가 낙점을 받았다. 이유는, 칠면조는 일부다처고 흰머리수리는 암수 한 쌍이 평생을 함께 산다고 해서다. 하지만 결정에는 이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흰머리수리가 북아메리카 대륙에만 서식하고 있으며 하늘 위 최상위 포식자로서 강한 미국을 지향한다는 건국이념과 무관치 않았다는 게 그것이다. 이러한 흰머리수리를 포함한 독수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조류의 지존이다. 최대 무기는 눈과 부리와 발톱이다. 특히 눈은 지상 500m의 공중에서도 토끼를 찾아낼수 있을 만큼 시력이 뛰어나다. 그 비밀은 망막에 있다. 물체를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심와(fovea) 즉 황반이 사람과 달리 두 개나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 걸쳐 사는 수리류는 210여종이나 된다. 우리나라에는 21종이 기록돼 있다. 이 가운데…
무슨 생각이었을까. 고향마을 입구 저만치 자동차를 세우고 옛날처럼 한참을 걸어들었다. 콧잔등 까맣게 태우며 뛰어다니던 그 옛날 단발머리 친구들처럼 낮게 깔린 구름이 오종종 따라왔다. 막 그림자 드리우기 시작한 비학산 자락으로 어린 날의 추억들이 몽글몽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큰 우물’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동네어귀 첫 집 대문 밖에 자리를 잡은 채, 한 번도 물이 넘치거나 말랐다는 얘기조차 들어본 적 없는 속까지 훤하게 보였던, 입구가 넓고 큰 우물.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오래된 몸, 나무로 짠 뚜껑을 꽉 물고 있는 모습이 마치 틀니를 끼운 노인의 입처럼 햇살에 우물거리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는 조용한 우물의 모습이 마치 고향을 지키고 있는 연로한 어르신들의 모습처럼 쓸쓸해 보인다. 골목마다 아이들 소리로 왁자하던 그 옛날 ‘큰 우물’은 마을 최고의 번화가요 소통의 요충지였다. 남산댁 윤선이가 시집간다는 얘기, 목골댁 장원이가 객지 떠돌다 사고치고 다시 돌아왔다는 소문, 신광댁 어르신이 지난밤에 쓰러지셨다는 속보까지. 봄이면 앵두가 오소소 매달리던 우물가에서 나누는 눈인사, 안부인사
벼룩 몇 마리를 빈 어항에 넣는다. 어항은 벼룩들이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는 높이다. 그 위에 유리판을 올려놓아 어항 아가리를 막는다. 벼룩들은 톡톡 튀어 오르다가 유리판에 부딪치는 것이 고통스러워서 스스로 도약을 조절한다. 한 시간쯤 지나면 모두 천장에 닿을락 말락 하는 높이까지만 튀어 올라 단 한 마리의 벼룩도 유리판에 부딪치지 않게 된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이젠 어항 위의 유리판을 치워도 벼룩들은 마치 어항이 여전히 막혀 있기라도 한 것처럼 계속 제한된 높이로 튀어 오른다는 것이다. 어느 교장이 업무가 능숙한 10년차 이상 중견교사나 역량이 탁월한 교사에게 보직을 맡기면 좋겠는데 희망하는 교사가 적어서 기간제 혹은 신임교사에게 맡기거나 제비뽑기도 시켰다는 기사를 봤다. 문득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에 나오는 저 벼룩 얘기가 떠올랐고 그런 학교의 경우 벼룩은 학생들일까, 교사들 혹은 교장일까 그것이 알쏭달쏭하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는 자부심·사명감 넘치던 그 부장교사들을 마침내 제비뽑기로 임용했다고? 놀라운 일이 아닌가! 아이들이 그걸 알았다면 뭐라고 했겠는가! “선생님! 우리도 회장&middo
앉아 있는 사람 /문희정 그가 앉아 있다 3인용 가죽 소파 한 귀퉁이에 닳고 얼룩진 매트리스 위에 바람 부는 세 발만 남은 식탁 의자에 더럽혀진 2월의 눈밭 위에 쇠로 된 시소의 안장 한 끝에 어느 빌라 에어컨 실외기 위에 골목 어귀 콘크리트 계단 가운데 멋대로 웃자란 강아지풀을 뭉개고 엉망이 된 잔디의 검푸른 물 위에 나란한 두 개의 무덤 사이에 허기진 짐승의 늑골 곁에 말들이 끝나버린 입술 아래에 불가능한 사랑의 복숭아뼈 위에 그리고 다시 소파로 그는 돌아와 앉아 있다 슬픔이라곤 처음인 손님의 얼굴로 얼굴이 소파 속으로 꺼져 있다 얼굴을 머금고 소파가 앉아 있다 걸어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낡은 구두를 신고 걸어가는 다리와 좁은 보폭에 맞춰 흐느적거리는 두 팔은 도대체 누구의 것일까. 당신은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한다. 짧은 점심에 먹은 식은 밥이 아직도 위에 남아 있다. 현관을 열고 구두를 벗은 후 거실을 본다. 축축한 한기가 돈다. 당신은 가죽소파로 가서 깊숙이 몸을 밀어 넣는다. 다시 온몸에 한기가 돈다. 당신은 앉아 있다. 하루가 매우 빠르게 지나가고 매트리스와 식탁의자, 2월의 눈밭, 쇠로 된 시소의 안장, 에어컨 실외기, 콘크리
국토부장관과 경기도지사 인천시장 서울시장이 엊그제 한 자리에 모여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이재명 경기도지사, 박남춘 인천광역시장,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은 지난 17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수도권광역교통청 설립과 신규 공공주택지구 확보 등에 협력하기로 뜻을 모으고 수도권 교통·주거환경 개선사업에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지방선거 전인 지난달 3일 이들 후보들이 모여 상생협약을 맺은 지 한달여 만에 다시 모여 수도권의 공동 현안 해결을 위한 정책 간담회를 가진 것이다. 국토부도 이에따라 수도권 지자체와 상호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광역교통청 설립 문제와 예산 지원 방안을 합의해 도심 혼잡을 줄일 수 있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이처럼 극심한 혼잡을 겪고 있는 수도권 교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토부가 교통수단의 안전 확보 및 운영 개선 분야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한편 복합환승센터와 광역급행철도(GTX) 건설 등 교통서비스 확대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더욱이 집권당 소속 의원과 단체장이어서 협력사업에 속도도 붙을 전망이다. 이와 함께 신혼희망타운 10만 호를 차질없이 공급하기 위해 도심 역세권과 유휴지를 비롯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