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은 중국 역사상 최초의 명재상으로 알려진 제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이오(夷吾)이다.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으로 잘 알려진 인물로서 관중 또는 관자라고 부른다. 그는 대략 기원전 725년에 제나라 영상현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어려웠던 그는 친구 포숙아와 장사도 하는 등 일찍부터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성인이 되어 관중과 포숙아는 각기 다른 제나라의 공자를 섬기는 처지가 되었다. 관중은 형이었던 공자 규를 섬겼고, 포숙아는 동생인 공자 소백을 섬겼다. 훗날 공자 소백이 왕이 되어 정적이었던 규를 죽이고, 그의 휘하 참모인 관중마저 죽이려고 하였다. 이 때 친구 포숙아가 왕에게 강력건의를 하여 관중을 살려주게 되었고, 나아가 재상으로 임명토록 추천하였다. 포숙아의 배포 큰 아량으로 관중은 사지에서 일약 재상으로 승천한 것이었다. 이후 관중의 강한 제나라 만들기는 본격화하였다. 정적인 관중을 받아들인 제나라 왕 환공(桓公)은 관중의 부국강병책을 대폭 수용하였다. 그는 나라에 물질이 풍부해야 강한 군대도 양성할 수 있고, 백성들의 삶도 윤택해지며 예절을 지키게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관자(管子)라는 책에서도 이러한 신념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그는 ‘무릇…
1970년 초 박정희 전 대통령은 농민, 관계기관, 지도자간의 협조를 전제로 한 농촌자조노력의 진작방안을 연구하라고 특별지시를 내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 농촌 마을마다 “새벽종이 울렸네...”로 시작하는 노래가 울려 퍼지고, 근면·자조·협동 정신을 실천하는 ‘새마을 운동’이 본격 추진된다. 이어 해가 갈수록 정부의 절대적 지원으로 단순한 농촌 개발 사업을 넘어 공장·도시·직장 등 한국 사회 전체의 근대화운동으로 확대·발전했다. 초기의 새마을운동은 ‘농촌의 사회적 혁명’이라고 할 정도로 성과가 매우 컸다. 그러나 절대 권력자의 관심을 앞 세워 사업영역을 지나치게 확대하였던 것 또한사실이다. 이 때문에 과 포장 또는 지나친 목표설정으로 한꺼번에 방대하게 사업체계를 구축하였다는 평가도 있다. 특히 80년대 5공 말기엔 방만하고 정치 권력형 일탈적 운영행태로 된서리를 맞기도 했다. 진행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어도 새마을 운동이 저개발국가의 발전 모델이라는 데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새마을운동을 배워간사람이 어림잡아도 103개국 5만여 명에 이르다. 그 중엔 대통령 총리 국회의장 장관 국회의원 등 지도층이 많다. 새마을 운동은
문수골 왕별 /정영희 저녁은 벽이다 인적을 밀어낸 어둠이 세상을 덮고 길이 없다 어둠 저편 외눈박이 불빛 한 채 눈 밝은 발이 없어 갈 수 없다 산이 어둠보다 더 깊은 어둠으로 허공에 뿔을 묻고 낯선 얼굴로 내려다본다 천둥 치는 계곡물소리 훤한 물길만, 길이 뜬다 누가 나를 앞세우고 가만히 스민다 올려다보니 유년의 왕별! - 시집 ‘바다로 가는 유모차’ 별이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 그 언제였던가, 총총 별이 빛나는 밤하늘 우러른 때가! 문명의 빛에게 빼앗긴 별은 우리 40·50대 이전 세대에겐 꿈과 희망의 상징이었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 가슴을 앓고, 알퐁스 도테의 ‘별’을 읽으며 맑은 설렘으로 잠을 설치고,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앞에선 요동치는 욕망의 발현으로 뻐근했고, 동명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다이얼을 고정시키고 별밤지기들의 촉촉이 젖어드는 음성과 음악에 심취했던, 그 소중한 추억들은 다 어딜 갔을까. 시인은 지리산 문수골에서 첩첩 어둠을 만난다. 문수골 계곡의 물소리만이 길을 내는 어둠은 이 시대의 꽉 막힌 앞날처럼 벽으로 존재한다. 그 때
새벽 공기가 쌀쌀하다. 걸치고 있는 사파리재킷 깃을 올려 목을 감싸도 팔이 시리다. 밥 짓는 연기처럼 올라가는 안개를 보아 낮에는 더울 모양이다. 한때 베스트셀러 작가로 세간의 주목을 받던 한 시인이 홍보대사로 활동해 줄 터이니 호텔에 1년간 무료 투숙을 하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다. 수영장이 있는 특급호텔의 삶을 로망이라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측에 메일을 보냈고 이를 SNS에 게재했다고 해서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자신이 죽은 다음 문화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예상하면 투자가치가 충분하다는 생각에서 였다고 한다. 여론은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이다. 시나 쓰면서 우아하고 고상하게 살아 물정 모르는 철부지의 어리광쯤으로 보는 듯하다. 또 가난 속에서도 성실하게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질타를 했다. 특급호텔에서 쓰면 더 잘 써지느냐는 비아냥에 무슨 갑질 논란까지 있었다. 그러나 서글프게도 우리 사회에 시인이 갑질을 하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이미 문학은 문화콘텐츠로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어느 호텔이 한 시인의 갑질에 헐레벌떡 달려 나와 그리 하소서 하고 머리를 조아릴지 자못 궁금하다. 월세도 제때 납부하지 못하는 척박
사과는 일찍이 고대 그리스와 로마신화와 고전 문학에 등장했고 세계 여러나라 설화에선 신앙의 대상이 되는등 영물로 자주 묘사돼 왔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이같은 사과를 다음과 같이 풀기도 했다. 인문학적으로 ‘세 개의 사과’가 있다. ‘아담의 사과’ ‘뉴턴의 사과’ ‘빌헬름 텔의 사과’.가 그것이다. 그리고 “아담의사과는 종교를 낳았고, 뉴턴의 사과는 과학을, 텔의 사과는 정치를 만들어냈다.” 사과는 우리 건강과도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사과가 몸에 좋다는 것도 오래전부터 증명되어 오고 있다. 유럽에선 하루 사과 한 개만 먹으면 의사가 필요 없다고 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옛 부터 아침사과는 보약보다 낫다고 했다. 실제 2000년초 미국의 에릭 거쉰 박사는 사과의 페놀성분이 세포 노화및 심장병의 원인인 저밀도 지단백(LDL)의 작용을 차단한다고 밝혔으며 비슷한 시기 핀란드 국립보건연구원은 28년간의 임상조사를 토대로 하루에 사과 1개를 먹으면 뇌졸중에 걸릴 확률이 급감한다고 발표했다. 또 사과를 많이 먹으면 폐암발생률을 58%까지 줄일수 있다는 보고서도 내놓았다. 사과의 풍부한 항산화 물질이 담배속의 유해물질을 억제하는 효과가 크기 때문 이라는 것이…
고장 난 벽시계 /명호경 하루에 딱 두 번 정확한 시간을 맞추는 벽시계 늦잠을 자고 만 아침 벽시계를 보면 안심이 된다 6시 37분, 서두를 필요가 없는 시작이다 회식을 하고 퇴근이 늦은 밤 6시 37분, 여유로운 저녁이 보장된 삶이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조급하게 살지 마라는 무거운 묵언 그놈 참 호상好喪이다 - 계간 ‘리토피아’ 여름호에서 죽은 시계도 하루 두 번은 맞는다. 출근시간 퇴근시간 두 번만 알려주어도 시계의 사명은 그런대로 쓸 만하다. 하루 스물네 시간 시간에 쫓겨 사는 것이 반드시 제대로 사는 인생은 아니리라. 시간에 쫓기며 조급하게 살다 보면 결국에는 마지막 시간까지 앞당길 위험도 있는 것이다. 시간에 끌려간다는 것은 어쩌면 세상에 끌려다니는 것이고, 세상에 끌려다니고서는 능동적이거나 창조적인 삶이라 보기 어렵다. 자신 나름의 생활과 자신만의 여유로운 방식으로 한생을 보낼 필요도 있어 보인다. 내가 시간을 끌고 가거나 시간을 요리하면서 살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 /장종권 시인
새 정부가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교육부는 지난 11일 국공립학교를 대상 ‘교육분야 비정규직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그동안 정규직 전환을 요구해 온 기간제 교사 4만6천여명이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됐다. 교육계의 비정규직 강사는 모두 7개 직종이 있는데 이 가운데 유치원 돌봄교실 강사와 유치원 방과후과정 강사 1천여 명만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시키기로 했다. 기간제 교사가 정규직 전환대상이 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정규직 전환 심의위는 정규 교원 채용의 사회적 형평성 논란 등을 고려했다고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정규교원은 임용고시를 통해 채용되는데 기간제 교원은 그렇지 않으므로 정규직 교원들과의 차별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공립학교의 기간제 교원은 3만2천734명이다. 여기에 사립학교까지 합치면 4만6천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또 국공립학교 강사는 8천343명인데 영어회화 전문강사와 초등 스포츠강사, 다문화언어 강사, 산학겸임교사, 교과교실제 강사는 전환 대상에서 제외됐다. 기간제 교사와 영어·스포츠 강사 등에 대한 정규직·무기계약직 전환이 불발됨에 따라 당사자들의 반발이 심할 것이라고 예상, 정규 교원과…
전 세계의 지역 문화축제의 상당수는 역사성을 근거로 하는 축제이다. 영국의 에딘버러 축제나 브라질의 리오 카니발 축제도 모두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축제다. 우리나라 축제 역시 각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부여와 공주의 백제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축제나 경주 일대의 축제 역시 그렇다. 경기도의 대표적 축제인 수원시의 수원화성문화제나 화성시의 효문화제 등이 세계의 유수한 역사문화축제와 비슷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도 세계적인 스토리를 콘텐츠로 갖고 있고 그 콘텐츠를 기반으로 축제를 만들고 활성화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경기도 내 지역문화축제는 아쉬움이 있다. 역사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에도 역사의 진정성과 고증을 충실히 하고 있지 못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수원화성문화제의 경우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원행을묘정리의궤 기록을 토대로 한 정조의 8일간의 화성행차를 21세기의 역사문화축제로 개최하고 있지만 실제 고증성이 떨어지는 행사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축제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정조의 복식은 원래의 모습이 아니고 관료들의 복식도 군복의 일종인 융복을 입었음에도 조정에서 입는 관복으로 대신하고 있다. 또한 이번에 서울시
지난 9월2일 학기가 막 시작한 첫 주에 광주 고려인마을을 찾았다. 이번에는 교양과목(세계의 한민족)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역사와 문화콘텐츠)와 대학원(에스닉타운과 지역재생) 전공과목 학생들 그리고 재한동포사회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동료교수들도 함께했다. 광주로 향하는 대절버스 안에서 “왜, 최근 5만7천 명으로 늘어난 고려인동포들이 한국에 정착하고 있는지, 또한 안산과 광주 ‘고려인마을’의 현안이 무엇인지”를 소개했다. 도착하자마자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 바람개비아동센터, 고려FM라디오방송국과 고려인가족카페와 고려인마트, 고려인미용실, 또 여행사와 환전소 등 고려인마을의 주요 기관과 상점을 둘러보면서 연해주~중앙아시아~다시 한국으로 이어지는 고려인의 삶을 설명했다. 고려인음식을 체험한 후 우리는 고려인강제이주80주년기념문화제가 열리고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향했다. 아시아문화전당 라이브러리파크 B2층 컨퍼런스홀 및 복도에서 개최된 고려인문화제는 ‘귀환 고려인’ 사회가 대한민국에서 함께 사는 길을 찾기 위해 열렸는데, 이날 고려인강제이주8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박용수 위원장은 환영사를 통해…
고등학교 2학년이던 막내아들이 갑자기 미술을 전공하겠다고 말했을 때 필자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우리 집안에는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 한 명도 없거니와 그 아이도 단지 취미로 미술공부를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름 깊이 고민하여 결정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아이의 결정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구나. 왜 네가 미술을 전공하고 싶어졌는지 말해줄 수 있겠니?” “이것저것 경험을 해봤는데 그림을 그릴 때 제일 행복하더라고요.” 행복을 느낀다는 말에 나는 더할 말이 없었다. 물론 그날 밤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아들이 미술을 전공하도록 부모로서 지원해야 하는지,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경험도 없는데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이 고민은 청소년기 자녀를 둔 부모들이 겪는 진로 선택의 문제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부모의 기대와 다른 자녀의 진로 선택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다. 갑자기 연기를 하고 싶다면서 연극영화과에 가겠다고 하고, 상경 계열 학과에 가기를 바라는데 정작 애완동물학과라는 생소한 분야를 간다고 하고, 이래저래 많은 고민들을 가지고 있다. 진로 갈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