솎다 /박철웅 텃밭에서 배추 상추 고추 잎들을 솎아내다가 솎아낼 일이 어디 이것 뿐이겠는가 생각하다가 세상에서 솎아줄 것들이 도처에 널려있음을 본다 차마, 그 대상을 일일이 다 말은 못하겠지만 우리가 가던 길목에도 솎아줄 것이 많고 내 삶의 주변도 솎아줄 것이 많고 내 마음 속의 기억들도 솎아줄 것이 많지만 그중의 나, 내 마음부터 솎아주어야겠다는 생각 불현듯 들어 쇠주 한 잔 붙들고서 지나온 내 삶의 자취를 비추어 본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내 삶의 풍경들 때론 비바람이 불고 꽃도 피었지만 초라한 내 생각의 몰골을 바라보면서 이제 하나 둘 정리할 시각이 가깝다는 생각에 술잔을 조용히 내려놓으며 석양이 빚어놓은 수채화 속으로 물들어 간다 - 계간 아라문학 겨울호에서 텃밭의 배추나 상추도 어려서부터 솎아주어야 먹음직스럽게 자란다. 그냥 내버려두면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 사람도 제것이라고 어려서부터의 모든 것을 다 들고 어른이 될 수는 없다. 부모가 솎아주고 주변에서 솎아주고 학교에서 솎아주어야 정상적으로 사회에 필요한 인물로 자라게 된다. 자신 역시 스스로 솎아주는 작업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세상에는 솎아주지 못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조선시대의 책읽기는 한 특권층에게만 해당된 것이 아니었고 신분에 따라 그 명칭도 다양했다. 왕에게는 경연, 세자는 서연, 문신에게는 사가독서, 잡직 종사자는 습독관제도를 두고 독서를 통하여 인격과 전문성을 향상시키는 계기를 마련토록 했다. 일찍이 책읽기의 중요함을 일깨운 이는 세종대왕이다. 사가독서(賜暇讀書)제도를 지속적으로 시행함으로써 신하들에게 높은 학식과 교양을 쌓도록 해서다. 1426년 세종은 촉망받는 젊은 인재들이 독서에 전념할 수 있도록 1년 정도 휴가를 주는 이 제도를 시행했다. 현재 맡고 있는 직무로 인해 책 읽는 데 전심할 겨를이 없으니, 지금부터 본전에 나오지 말고 집에서 전심으로 글을 읽고 성과를 내어 나라에 보탬이 되라는 게 제도의 핵심이다. 관리로 등용된 인재들에게 재충전의 시간을 주기 위함이었던 이 제도는 일명 독서휴가제로도 불린다. 최소 1∼3년에 이르는 사가독서 기간, 신하들은 집 혹은 산사를 오가며 자유롭게 책을 읽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읽은 내용을 정리하여 월과(月課)로 냈다. 왕은 식량과 술 및 물품 등을 내려주며 독서를 권장하기도 하고, 과제를 주어 수시로 그 결과를 평가하기도 했다. 성종 때에는 독서당도 지어 학
불량 과일 /하재일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의 몸속 깊이 여름내 열매는 방 하나씩 들이고 산다 고백할까, 망설이며, 설익어간다 풀밭에 떨어져 쉽게 뒹구는 것들 때문에 한 생애가 온통 철없는 사랑인 줄 안다 언제부터 내 안에 벌레 한 마리가 들어와 이렇게 신맛도 나고 단맛도 나게 된 것일까 익기 전에 떨어져 멍이 든 불량한 과일들, 대체 감추어 둔 쓸쓸한 상처 한 줌은, 또 뭐람! 내 몸에 든 까만 눈썹의 애벌레 한 마리 누가 그래, 누가 그래, 속절없이 끝난다고? 누구나 제 몸 속 작은 방 하나쯤 들이고 산다. 익기 전에 떨어져 뒹구는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깊은 곳의 울림을 듣노라면 나도 서둘러 떨어진 호기심 많은 소녀이며 방황하는 사춘기였다. 상처가 지나간 자리론 신맛도 나고 단맛도 나는 한 뼘 더 성숙한 또 다른 내가 완성되곤 한다. 찬란했던 청춘의 한 때, 꿈 꿀 수 있는 자유와 이탈할 수 있는 희망 앞에서 맘껏 불량스러웠던 호기어린 날들, 호기심 많았던 멍 자국들, 안으로 더 단단해지는 껍질 속 생이 성장해가고 있다. 불량과일 이라니, 이 얼마나 유혹적인 이탈인가, 달콤한 황홀인가 /정운희 시인
뜨거운 여름이다. 가뭄 끝에 장맛비 내리더니 이제는 연일 폭염이다. 문명의 이기가 발달되다 보니 측정을 예측을 잘해서 그런가 아니면 정말 환경 파괴로 지구가 몸살을 앓아 열병이라도 난 것인가. 겨울이면 겨울대로 난리고 여름이면 여름대로 난리 법석이다. 벌써 오늘만 해도 국민 안전처에서 폭염과 물놀이 주의하라고 문자가 몇 번씩이나 날아왔다. 걱정이 더 되는 것은 잠시도 가만히 계시지 않는 어머니 때문이다. 밭에라도 나갈라치면 미리 상황 파악을 하신 후 먼저 앞장을 서신다. 83세의 어머니를 모시고 나가자니 남에 눈도 의식이 되고 무엇보다 어머니의 건강이 염려가 되어 집에서 편히 계시라 해도 말씀이 통하지를 않는다. 집에 계시라 말씀드리면 집안에만 박혀있으면 뼈가 굳어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결국은 그냥 빨리 죽으라는 이야기 아니냐, 집구석에 박혀 있는 것보다는 밭에 나가서 운동이라도 하고 곡식 자라는 것이라도 보면 건강에도 좋고 기분도 좋아지는데 왜 안 데리고 가려하냐며 앞장을 서신다. 이런 상황에 86세인 아버지는 정반대의 상황을 연출하신다. 움직이는 것을 무척 싫어하시고 농사일이라도 거들면 큰일 나는지 아시고 방과 부엌을 연실 드나드시며 약주로 세월 하신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부담없는 해외여행 선호 지역으로 알려진 베트남과 필리핀, 태국과 말레이시아 및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ASEAN: 동남아국가연합, 상기 5개국 및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브루나이, 싱가포르 등 10개국) 5개 주요 신흥국들의 경제성장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이들 아세안 5개국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재작년과 작년에 이어 금년 중에도 5%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주요 글로벌 신흥국 중에서는 중국과 인도의 6~7% 성장 전망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수준이다. 아세안 5개국은 태국을 제외한 4개국 모두 서구 열강이나 일본으로부터의 식민 지배를 경험하였다. 이들은 독립 이후에도 내전(베트남과 필리핀)을 포함한 정치적 부침이나 경제적 성장통을 겪어왔지만 동남아국가 특유의 다양성과 유연성을 잘 발휘해 왔다. 1억명이 넘는 인구의 필리핀은 24세 이하 젊은층이 총인구의 절반을 넘는다. 이는 필리핀 경제의 60%를 차지하는 서비스산업의 중요한 성장 배경이다. 필리핀은 2012년 이후 5년 연속 6~7%의 높은 경제성장을 달성했다. 세계은행은 필리핀의 금년 성장률이 신흥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인 6.9%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베트남 역시 9천500
지난 9일 경부고속도로 신양재나들목에서 졸음 운전하다가 다중 추돌사고를 초래해 2명이 숨지고 10여 명을 다치게 한 대형 교통사고가 있었다. 이렇게 졸음운전으로 인한 대형사고가 난 것은 일차적으로 버스 기사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지만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버스회사와 지자체에게도 책임이 있다. 사고를 냈던 버스 운전기사 김씨는 사고 전날만 해도 18시간 넘는 근무를 했고 또 사고 당일 아침에 7시15분 첫차를 운전을 했다. 출퇴근 시간이라든가 운행 준비 시간까지 합하면 잠잘 수 있는 시간은 대여섯 시간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루 평균 16시간을 운행하고 한달에 19일 근무를 하면서 300시간이 넘게 운행을 한 것이다. 버스에 다고 있는 승객들의 목숨을 책임지고 있는 운전기사가 이렇게 가혹한 운전 노동을 하게 된 것은 버스회사가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이다. 자본주의 시대에 기업이 이익을 남기려고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지만 문제는 시민들의 생명을 우선시하지 않고 기업의 이익을 남기려는 것은 절대로 올바른 처사가 아니다. 그러나 과거처럼 버스가 대중교통의 중심이 아니기 때문에 버스회사는 기업적 측면에서 이익을 남기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지
예전에 책을 가장 가까이 할 것 같지만 잘 안 읽는 직장인들이 공무원과 기자, 교사란 말이 있었다. 물론 우스갯소리다. 사실 이 직업군들은 책을 읽지 않으면 뒤처져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러니까 이 말은 남들보다 더 많이 공부를 해야 한다는 뜻인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공직자들에게 책을 읽게 하기 위한 특별한 제도가 있었는데 이것이 ‘사가독서(賜暇讀書)’다. 세종대왕 때 관청에서 공무에 종사하는 대신 집이나 절에서 독서를 하며 학문을 연구하게 한 것이다. 이 혜택을 받은 인물 중에는 신숙주·성삼문도 있다. 성종은 용산의 빈 절집에 ‘독서당’이라는 편액을 내려 사가독서 장소로 이용하도록 했다. 중종 때엔 옥수동에 독서당을 지었는데 현째까지도 ‘독서당고개’ ‘독서당길’이란 지명이 남아 있다. 이 제도가 지금도 시행된다면 공직자들의 환영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자기계발을 위해 바쁜 일과 속에서도 치열하게 공부하는 공직자들이 많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수원시에 근무하는 김해영씨다. 그는 대학원에서 유교철학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철학과 함께 정치와 복지 석사 학위도 받았을 정도로 치열하게 공부했다. 주경야독하기 위해 남들이 기피하는 산골짜기 상수도 정
가수 김광석은 애틋한 기억으로 자리한다. 종로 5가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극장에서 그의 마지막 콘서트가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극장장으로 재직했다. 그가 여기에서 장기 콘서트를 했었고 모든 공연일정을 마치고 인사차 사무실에 방문했다. 눈을 마주치면서 잠시 스쳐가는 그의 눈가에서 애수의 눈빛을 보았다. 며칠 뒤에 그가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마지막 본 그의 모습을 아직도 잊지를 못하고 있다. 대구에 그를 기리는 김광석 길이 만들어진 것은 지난 2010년이었다. 그가 태어났던 방천시장에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시행했던 ‘문전성시 프로젝트’로 그의 벽화를 만들면서 서서히 그의 흔적들이 만들어졌다. 가수 김광석은 이곳 대봉동 방천시장 근처 전파사에서 1964년 태어나 다섯 살까지 이곳에서 자랐다. 해방 후 만주와 일본에서 돌아온 이들이 생계를 위해 난전을 만들면서 신천변에 형성된 재래시장이었다. 여기에 예술가들이 모여서 ‘김광석 다시 그리기길’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를 기리는 이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모였다. 최근 김광석 관련 벽화로 채워진 김광석 길은 대구의 핫 플레이스로 주목을 받고 있다. 대구는 현재 청라언덕,…
하늘이 조용히 가라앉고 있다. 활활 타오르던 하늘이 글쎄 서서히 붉어지다가 숯가마 숯덩이 식어가듯 차분히 가라앉는 이 시간. 한여름, 저녁을 맞이하는 초저녁의 그 시간을 나는 참 좋아한다. 도심의 어느 골목을 걷다가도, 오늘처럼 파도소리 출렁거리는 저 소리에 섞인 숱한 인파들의 소음에 섞여서도 문득 불그레한 그날 같은 하늘이 눈에 들어올라치면 내 숨은 서정을 풀어놓기 일쑤다. 언제 풀어놓아도 마음 푸근해지는 추억 속 숨겨놓은 나만의 고유한 낭만, 나는 그 그림 속 풍경을 결코 놓아버릴 수가 없다. 탈 탈 탈 탈 경운기 소리 들리고 집 지키던 강아지가 마중 나오는 골목어귀. 뉘 집 할 것 없이 마당 한쪽 한데 솥 걸어놓은 아궁이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감나무 밑 넓은 평상마루에서 홍두깨로 밀어낸 어머니의 칼국수는 쑹쑹 썰려나가고 소죽솥 아궁이 벌건 불길에 뜸들어가는 소죽냄새가 구수하다. 막내 상한이 차지가 된 칼국수 꽁다리는 몇 개 숯불 위에서 하릴없이 타들어가고 두툼한 생풀 몇 단 엎어놓은 모깃불에서는 매캐한 천연모기향이 바람을 탔다. 왁자하던 밥상머리 소리가 잦아질 때쯤 골목은 서서히 수런거리기 시작했다. 배 채운 아이들의 놀이가 시작된 것이다. 뜨
대학은 이미 시작했지만 모든 학교들이 곧 방학을 한다. 살던 지역과 가정형편에 따라 달랐겠지만 필자는 어릴 적 방학만 되면 시골에 있는 큰 집과 외가 집에 가서 길게는 2주 정도 머물며 사촌들과 함께 곤충채집을 하며 다른 방학숙제도 했다. 또 논두렁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샘에서 박박 문질러 물거품을 빼고 매운 찌개를 만들어 먹고는 했다. 그 때는 미꾸라지뿐만 아니라 이름 모를 붕어들이 참 많았다. 어린 우리들은 우물터와 그릇을 엉망으로 만들어 어른들로부터 꾸중을 듣기는 했지만 그 나무람의 억양은 결코 꾸지람이 아니라는 것을 감으로 알기에 이틀도 못 넘겨 또 미꾸라지를 잡아서 똑 같은 짓을 반복했다. 저마다 잠자리채를 어깨에 하나씩 들쳐 매고 저수지 풀 섶 갓길을 한 줄로 나란히 걸어갈 때면 어김없이 뱀이 가로질러 소스라치게 놀라고는 했다. 반세기가 지나 그 동네를 가보았지만 고기 잡고 수영하던 맑았던 시냇가는 온데간데없고 신작로 옆 그 컸던 한옥 집도 이미 사라지고 고층 아파트가 저수지를 메우고 있었다. 공주 부여로 가는 시외버스가 비포장도로 위에 흙먼지 날리며 지나가면 연소되지 않은 매연 냄새를 맡으려고 버스 뒤를 쫒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 냄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