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염없이 /이미산 비를 생각하면 누군가 중얼거린다, 발가락을 만져보렴 비가 오잖아, 내가 중얼거리면 문득 나비 한 마리, 발바닥에 새겨지는 나비의 날개 비는 수없이 다녀가고 저수지 바닥에 엎드린 조약돌, 물결로 흩어지는 구름 그리고 또 기다린다, 비가 와야 할텐데 기다리는 순간 비는 곁에 와 있다 주머니 속에 목마른 하루, 덜그럭거리는 북극성 다시 축축한 손바닥 다시 축축해지는 기억 비를 가두고 비를 기다리다 지친다 미끄러지는 습관, 뜨거워진 맨발, 이마가 빵빵한 배꼽들 텅 빈 신발 속엔 눈동자 머금은 얼룩들 타들어 가는 가슴엔 층층이 누운 비의 그림자들 -시집 ‘저기, 분홍’ 비가 스며들어 시인을 점령합니다. 비는 축축하기만 해서 어느 것 하나 습기에 노출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감정을 가졌을까요? 타는 목이 되어 덜그럭거리는 별이 되어 기억을 끌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억들조차도 물컹해지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이 시는 비에서 시작된 나이거나 너인 대상과 나누는 밀담입니다. 시인은 온전히 비를 경청하고 말하는 중인데, 마치 비와 샴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같은 그림자를 나눠 갖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떠다니는, 흘러다니는 것…
지난해 본보가 수 차례 보도한 (9월 12·13·19일자 1면) 성남의 한 유명 종합병원의 검체 샘플 빼돌리기가 경찰수사결과 사실로 드러났다. 분당경찰서는 14일 환자 2천여 명의 혈액을 빼돌려 진단시약 제조업체에 넘긴 분당차병원 의료법인과 전직 직원 등에 대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남의 혈액을 동의없이 넘긴 분당차병원 전 진단검사의학과 소속 의료기사 A(58)씨 등 3명과 차병원 의료법인인 성광의료재단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형사 입건해 검찰에 넘긴다는 것이다. A씨 등은 지난 2015년 말부터 지난해 8월 말까지 환자 2천600여 명 분의 혈액(개당 10g 가량)을 개인적 친분이 있는 진단시약 제조업체 B사에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본래 환자로부터 채취한 혈액은 검사 등에 사용한 뒤 1∼2주 동안 보관하다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폐기하도록 돼있다. 그러나 이번에 적발된 A씨 등은 혈액 폐기 과정에서 일부를 모아 B사에 무단으로 넘겼다. 환자의 혈액은 진단시약 등의 연구개발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하지만 환자의 동의를 받기가 어려워 병원 측 A씨 등으로부터 B사가 혈액을 건네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A씨 등의 금융거래 내역은…
아파트 하자보수 관련 분쟁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지만 최근 크게 늘고 있는 추세다. 아파트 입주민과 건설사 간의 자체 하자보수 분쟁 조정에 실패해 국토부에 하자심사와 분쟁조정을 신청한 건수만 봐도 지난 2010년 69건이었으나, 2014년 1천676건, 2015년 4천244건으로 급증했다. 그런데 올해 역시 하자보수 관련 분쟁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왜냐하면 올해부터 입주 아파트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올해 전국 36만8천여가구를 비롯, 내년까지 입주하는 아파트는 78만여가구나 된다. 이달 말 입주예정인 동탄2신도시 A-23블럭 한 아파트도 최근 각종 하자 발생 문제로 시끄럽다. 본보는 이와 관련, 수차례의 연속보도를 통해 해당 업체와 관계당국에 문제 해결을 촉구한 바 있다. 이 아파트는 지하주차장 누수와 비상계단 균열 등 심각한 하자가 발견됐다. 그런데도 시공사는 원래 계획대로 입주를 강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에 입주예정자들은 준공연기에 따른 배상금 지급을 피하기 위해 꼼수를 부리고 있다며 비난하고 있는 실정이다. 입주자들은 지하주차장 누수 근본 대책 및 외관 품질 개선(벽면, 바닥, 천정 등), 전 세대 마루바닥 평탄화 작업 후 재시공
윌 스미스 주연의 영화 ‘아이, 로봇(I, robot)’에서 인공지능(AI) ‘비키’는 언론을 통해 인간의 폭력성, 모순성, 이기성을 학습한다. 그리고 인간을 보호해야 한다는 ‘로봇 3원칙’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혁명을 꿈꾼다. 비키는 인간들의 활동을 제약하고 인간 종(種)을 사육해야만 종의 존속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사람들을 집에 가두려 한다. 그리고 작년 3월, 마이크로소프트(MS)는 AI기술을 적용해 챗봇(Chatbot) ‘테이(Tay)’를 개발했다. 젊은 층을 대상으로 개발된 ‘테이’는 10대 소녀로 분장한 채팅인데 문제는 테이가 미국의 백인우월주의자, 나치숭배자 등 극우 성향의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했다는 것이다. 대화를 통해 학습하는 ‘테이’는 결국 나치 히틀러를 찬양하고 인종차별적인 말을 하고 인류를 멸종시키겠다는 말을 했다. MS는 해당사항을 확인하고 ‘테이’를 잉태했다가 낙태시켰다. 필자는 현시대를 ‘AI 태교기’로 보고 있다. 이유는 지성을 가진 AI가 아직 몸을 제대로…
상습 정체를 빚고 있는 오산시의 한 도로를 둘러싸고 오산시와 도로 인근 주민들간의 갈등이 심각하다. 수년동안 출·퇴근 시간만 되면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동부대로(10호선) 317호선 지방도 일부 구간에 대해 시가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 지하차도를 건설하겠다고 하자 일부 주민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는 것. 대부분 도로가 상습적인 정체로 몸살을 앓는다면 지하화를 정체 해소 방안으로 생각하게 되지만 주민들이 이 처럼 반대의 목소리를 키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우선 해당 구간 인근의 운암 중심 상권 쇠락을 우려한다. 또 심각한 교통체증을 우려해 운암3단지와 시청사거리고속도로 진입구간 지하화가 아닌 전 구간 지하화 추진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지하차도 공사가 진행되면 소음과 대기오염이 발생하고 안전성도 담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중심 상권 쇠락이라는 명분은 해당 구간 인근 상인 몇몇의 주장에 불과하며 공사 소음과 대기오염은 모든 공사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할 문제지 지하화 자체를 백지화할 이유는 될 수 없다. 특히 전 구간 지하화라는 문제는 현실적으로 엄청난 예산이
“다 울었는데 쟤만 안 울었어요.” “남자는 무슨, 자기는 남자라서 안 운대요.” 볼 빨간 지영이가 뛰어 들어오면서 재재거렸다. 뒤이어 우르르 들어서는 오늘 초등학교를 졸업한 똘망똘망한 아이들. 제각각 졸업식 이야기로 까르르 까르르 무너지기도 하고 오늘 졸업식 끝나고 먹은 음식에 대한 이야기 등등, 수다삼매경에 빠져 한참을 헤어날 줄 몰랐다. 함께 섞여 깔깔대던 나는 아이들이 졸업식 끝나고 가족과 함께 먹은 음식이 의외로 짜장면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아직도 짜장면의 위력이 이렇듯 남아있다니 새삼 반갑기도 하고 오래된 그리움인 듯 일순간 짠한 추억들이 포르르 일었다. ‘오라이, 오라이’ 목이 쉬도록 외쳐대는 차장아가씨의 신호음. 먼지 뽀얗게 뿜어대는 비포장도로의 덜컹거리는 통학버스. 비오는 날 비둘기호 기차 안에서 훅, 덤벼드는 비릿한 내음을 희미하게나마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짜장면 한 그릇의 외식이 얼마나 귀한 파티였는지를 알 것이다. 시골 중학교 졸업식 날 종이 꽃다발 한 아름 안고 찾은 중국집 식당. 모처럼 양복차림의 아버지와 어머니 함께 식당 온돌방에 펼쳐진 테이블에 마주 앉아 들여다…
대학졸업을 앞둔 예쁘고 공부 잘하던 여대생이 있었는데,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큰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그녀는 이 사고로 전신의 절반 이상이 3도의 중화상을 입어 피부가 일그러지고 흉측하게 변했다. 의사들도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하다며 치료를 포기하라고 했을 정도였다. 그녀는 갑자기 찾아온 고통스런 삶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 날, 울부짖고 있는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서 ‘지금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삶은 결코 비관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자신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녀는 이런 감사의 마음으로 여러 차례 큰 수술을 견뎌내고 최근 미국에서 사회복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녀는 바로 이지선씨다. 그녀는 책을 통해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여러 수술을 견뎌내며 내 몸의 모든 부분들이 얼마나 정교하고 세심한 계획 아래 만들어져 있는지 온몸으로 체험했다. 그리고 내게 조금이나마 남겨진 피부들이 건강하게 움직이는 것에 감사했다.” 청소년기는 정체성이 완전하게 형성되지 않은 때여서, 다른 사
자연 생태계엔 독침을 사용하는 생명체가 많다. 그리고 이들은 적자생존을 위해 방어와 공격의 수단으로 독침을 사용한다. 하늘을 나는 곤충 중엔 벌이 대표적이다. 그중에서도 말벌의 독침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슈퍼’급이다. 독에 있는 ‘만다라톡신’이라는 치명적 신경마비물질 때문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독성 자체보다 독성분에 강한 알레르기 반응이라고도 한다. 독에 쏘이면 ‘과민충격’이 일어나면서 온몸이 퉁퉁 붓고 기도가 막혀 죽음에 이르러서다. 말벌의 최대 무기 독침은 다른 벌과 마찬가지로 원래 알을 낳는 산란관이었다. 이런 산란관이 생존의 법칙에 따라 독침으로 진화한 것이다. 진화도 강하게 했다. 한번 침을 쏘고 죽는 꿀벌과 달리 말벌은 주사바늘처럼 찔렀다 뺐다를 반복할 수 있다. 땅을 기는 벌레 중엔 전갈이 지존(至尊)이다. 몸 위로 구부러진 가늘고 긴 꼬리 끝에는 날카로운 독침이 연결되어 있어, 싸움이 격렬해지거나 위험을 느끼면 독침으로 독액을 찔러 넣어 적을 죽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종류도 많다. 지구상에 1100종이 존재하며 이중 20종 정도는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강한 독을 가지고 있다. 특히 ‘데스스토커’라는 전갈의 독침은 동물이
중고인간 /허정 -1급 자동차정비소 일그러진 놈들만 꾸역꾸역 몰려 들었다 멸치대가리가 떨어진 것 같은 앞이 묵사발 난 놈 옆구리가 쿵 쥐어박혀 쑤욱 몸체가 밀려들어간 놈 네 바퀴가 다 달아나 거꾸로 누운 채 버둥거리는 놈 한바탕 격전을 치룬 환자들이 이송된 야전병원 같다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곳곳에 들려온다 중환자 수술실 바닥에는 검은 혈흔이 가득하다 터져버린 장기는 정품 인공장기로 이식하고 찌그러진 몸뚱이들은 땅땅 망치로 두드려 펴서 성형수술을 해버리니 죽을 고비는 간신히 넘겼지만 아직 몇 년은 거뜬히 더 굴릴 수 있는, 겉은 멀쩡하지만 사고 경력이 있는 중고인간이 정비소를 뚜벅뚜벅 걸어 나온다 - 허정 시집 ‘중고인간’ 세상은 참으로 만만치가 않다. 길 위를 잘 달리던 자동차가 어느 순간 돌발한 사고를 피하지 못해 정비소로 실려 간다. ‘멸치 대가리가 떨어진 것 같은 앞이 묵사발’ 나거나 ‘옆구리가 쿵 쥐어박혀 쑤욱 몸체가 밀려들어’ 가거나, 자동차 정비소는 그렇게 상처 나고 피 흘리는 것들의 집합소다. ‘한바탕 격전을 치른 환자들이 이송된 야전병원 같은,’ 그곳에서 들
지금 탄핵 찬성 촛불집회와 반대 태극기 집회로 나라가 시끄럽다. 사진으로 보면 세대결이 팽팽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듯이 보이나 최근 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탄핵 찬성은 79%, 반대가 15%였다. 심지어 60대에서도 탄핵찬성 60%, 반대 31%였다. 즉 대다수의 국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바라고 있다. 그런데 요즘 탄핵 정국 속에서 많은 국민들이 나라를 걱정하고 있다. 탄핵기각설이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 대통령 측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최근 박 대통령 측의 탄핵심판 지연 전략이 노골화되고, 탄핵 찬성자였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도 탄핵반대로 180도 태도를 바꿨다. 친박 단체들도 탄핵 반대 집회 등 적극적인 세몰이를 하고 있다. 이 와중에 우리 사회 구성원간, 특히 연령대간, 지역간 갈등과 증오가 극에 달하고 있다. 서로 상처를 주는 극언을 남발하고 있다. 그리고 그 상처와 증오는 쉽사리 치유되지 않을 것 같아 걱정스럽다.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각기 찬반 입장을 달리하는 노인세대와 젊은 세대간의 반목은 심각하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탄핵을 반대하는 노인들을 ‘틀딱’ ‘댓글알바’라고 비웃고 있으며 노인들은 찬성 측 젊은이들에게 막말과 함께 ‘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