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인간
/허정
-1급 자동차정비소
일그러진 놈들만 꾸역꾸역 몰려 들었다
멸치대가리가 떨어진 것 같은 앞이 묵사발 난 놈
옆구리가 쿵 쥐어박혀 쑤욱 몸체가 밀려들어간 놈
네 바퀴가 다 달아나 거꾸로 누운 채 버둥거리는 놈
한바탕 격전을 치룬 환자들이 이송된 야전병원 같다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곳곳에 들려온다
중환자 수술실 바닥에는 검은 혈흔이 가득하다
터져버린 장기는 정품 인공장기로 이식하고
찌그러진 몸뚱이들은 땅땅 망치로 두드려 펴서
성형수술을 해버리니
죽을 고비는 간신히 넘겼지만
아직 몇 년은 거뜬히 더 굴릴 수 있는,
겉은 멀쩡하지만 사고 경력이 있는 중고인간이
정비소를 뚜벅뚜벅 걸어 나온다
- 허정 시집 ‘중고인간’
세상은 참으로 만만치가 않다. 길 위를 잘 달리던 자동차가 어느 순간 돌발한 사고를 피하지 못해 정비소로 실려 간다. ‘멸치 대가리가 떨어진 것 같은 앞이 묵사발’ 나거나 ‘옆구리가 쿵 쥐어박혀 쑤욱 몸체가 밀려들어’ 가거나, 자동차 정비소는 그렇게 상처 나고 피 흘리는 것들의 집합소다. ‘한바탕 격전을 치른 환자들이 이송된 야전병원 같은,’ 그곳에서 들려오는 ‘고통에 찬 신음,’ 우리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 어느 날 잘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내쳐지고 나뒹굴어 지고 심지어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이 뭉개지는 그런 처참함은 고비다. 내가 넘어서고 이겨내야 할 인내의 시간이다. 하여 아직은 더 굴러갈 수 있는 나는 나를 재정비해야 한다. 터져버린 장기를 이식하고 찌그러진 몸뚱이는 망치로 두드려야 한다. 그리하여 뚜벅뚜벅 정비소를 걸어 나와 길 위에 다시 서는 중고 인간, 그들은 모두 내 아버지며 내 이웃이고 내 아들딸들이다.
/서정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