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7일의 한미정상회담은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 방안을 내용으로 하는 ‘워싱턴 선언’을 채택했다. 확장 억제를 강화한다는 것은, 미국의 핵우산 보호를 거듭 확인하면서 기존의 재래식 무기 타격 수준과 미사일 방어 능력을 강화한다는 뜻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의 핵 공격시 즉각 반격을 감행해 북한을 궤멸시켜놓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냉정하게 살펴보면,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남한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공공연한 핵 공격 훈련에 대한 방어적 차원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원인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 지금까지의 확장억제도 가공할 화력을 과시하는 마당에 긴장은 더욱 고조되고 평화의 길은 점점 더 험난해질 전망이다. 1968년의 푸에블로호 사건 이래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미국은 그 후로 북한을 대상으로 한 한미합동 군사훈련을 시작한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 부상한 네오콘의 득세와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을 거치면서 미국은 북한을 더욱 더 궁지로 몰아넣는다. 궁지에 몰린 북한의 선택은 핵무기와 ICBM이었다. 조직문화의 기원을 추적하는 화난 원숭이 실험처럼, 이제는 최초의 원인은 실종된 채 ‘북 핵 위협’은 물신숭배의 대상이 되
철쭉은 자연의 은혜 속에 온통 붉어져 세상을 환하게 꾸미고 있다. 오월의 철쭉은 어린이날과 함께 봄의 절정에 이른다. 그래서일 것이다. 젊지 않은 내 가슴도 은근히 가려운 듯 기분 좋은 웃음이 온 얼굴로 번지고 있는 느낌이다. 봄은 내게 말하고 있다. 우리들 봄은 지금 여름의 무성한 숲을 부르고 있다고. 모든 생명이 지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계절의 물레방아를 힘껏 돌리고 있다고. 아파트를 빠져나와 작은 공원으로 가는 길에는 돌계단을 오르는 길목이 있다.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한 이 길은 좌우로 나란히 철쭉꽃밭길이다. 그 길에 올라서 철쭉꽃 무더기를 뒤로 하고 앞산을 바라보면 가슴 평수가 넓어지며 속 뜰이 개운해진다. 그날 그때였다. 두 아가씨가 제일 높은 돌계단 위에서 나란히 앉아 철쭉꽃 담장을 배경으로 셀프 사진을 촬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꽃과 미인들이 만나는 순간을 나는 조용히 기다려주었다. 철쭉꽃 담장 배경 삼아 셀프 사진에 취한 아가씨를 위해 가던 길 멈추고 못 본 척 기다렸다. 뒤늦게 나를 본 두 아가씨는 감사하다고 하였다. 나는 ‘아닙니다. 꽃과 미인이 만나는 순간, 곁에 있게 된 내가 행운이었다.’고 응대하였다. 아침의 숲 속으로 찾아오는…
도시화, 산업화 시기에 도시는 과식했고 촌은 결식했다. 그래서 도시는 너무 먹어서 생기는 병에 걸렸고, 촌은 너무 못 먹어서 생기는 병에 걸렸다. 최근 큰 사회적 문제가 된 전세 사기가 도시가 걸린 중병이라면 지방소멸의 문제는 촌이 걸린 중병이다. 이번 전세 사기의 피해자는 대부분 도시에 몰려있는 청년들이다. 이 청년들은 어디서 온 청년들일까? 돈을 좇아 도시로 간 촌의 청년들이 어떻게든 살 집을 구하려다 피해를 본 것은 아닐까? 경기도 31개 시군의 소득순위와 청년 인구 비율을 비교해봤다. 놀라운 상관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22년 경기도 사회조사의 월평균 가구 총소득 400만원 이상 소득 비율 하위 4개 시군은 28위 가평군, 29위 여주시, 30위 양평군, 31위 연천군이다. 경기도청 주요통계(2022.4분기)의 경기도 청년(19세 이상 34세 이하) 인구 비율의 하위 4개 시군을 보면 28위 연천군, 29위 여주시, 30위 가평군, 31위 양평군이다. 약간의 순위 변동은 있으나 4개 시군이 정확히 일치한다. 소득이 낮은 지역에 청년들도 적게 사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얘기다. 경제적으로 자립을 하려는 청년들이 돈벌이가 안되는 곳에서…
“비정상의 정상화 1년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1주년을 맞는 5월 10일자 조선일보 1면 머릿기사 제목이다. 대통령의 주관적인 평가를 제목으로 썼다. 넓게 보면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긍정적인 33% 내외의 일부 국민 생각이다. 세 명 중 한 명 정도만 수긍한다는 말이다. 다음날인 11일자 5면에는 ‘2년차 국정은 속도 더 내서 변화 체감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에서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국정 기조에 맞지 않는 관료가 있다면 억지로 설득해서 데리고 갈 필요 없다고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의 발언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알려졌다’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긴다. 그래서 언론 보도에서 금기시하는 표현이다. 소문을 확인해 보도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대통령실 취재원에게 사실을 확인해 ‘말했다’고 해야한다. 없어져야 할 관행이지만 우리 언론계에서는 이 같은 표현을 사실인 것으로 간주한다. 대통령과 관련된 사안일 경우 더욱 그렇다. 윤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돌아본 해설기사에서 조선일보는 윤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기사 일색이었다. 미흡한 부분은 거대 야당 때문이었다는 대통령의 생각만을 그대로 전달했다. 사설도 외교는
오래 전 일이다. 강남 8학군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친구가 학부모 상담을 하고 나서 초등학교가 머지않은 시일 내에 보육기관으로 바뀔 것 같다고 했다. 그곳의 학부모들은 학교에서 질 좋은 교육을 기대하지 않고 보육과 사회성 기르기만을 원한다고 했다. 필요한 교육적 부분들은 사교육에서 채우고 있으니, 그저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들하고 원만하게 지내면 족하다고 했다고. 상담의 내용들이 학교에서 교육은 필요 없고 보육이나 잘 해주면 장땡이라는 식이어서 친구가 상담 내내 자괴감이 들었다고 했다. 친구가 말했던 게 다 들어맞는 건 아니지만 초등학교가 보육기관이 될 것 같다는 예언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 되었다. 내년부터 초등학교는 아침부터 저녁 8시까지 12시간 아이를 데리고 있는 보육기관이 되었다. 공공기관 사업 특성상 한번 들어오기는 쉬워도 빼기는 어렵다. 특히 아이들 대상으로 하는 사업은 그렇다. 일단 시작되면 돌이키기 쉽지 않을 거다. 돌봄 교실 시간이 늘어난다고 해서 교사가 크게 반대할 이유는 없다. 새로운 사업도 아니고 이미 돌봄이 이루어지는 상태에서 마감이 몇 시간 연장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건 없다. 돌봄은 자리 잡은 사업이고 시간이 늘어나며 발생하는
왼팔을 턱에 괴고 무언가 골똘히 사색에 잠긴 남자. 고뇌하는 인간의 형상이 이처럼 고귀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사람(Le Penseur).’ 오귀스트 로댕(August Rodin)의 조각상이다. 예순두 살에 완성한 작품답게 원숙미가 물씬 풍긴다. 이 유명한 작품의 제작자 로댕. 그는 신성불가침 시대 인간의 본능과 관능, 그리고 고통을 매우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한 시대의 예술을 이끈 거장이었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매우 초라했다. 근시로 인해 학습장애를 겪고 국어도 제대로 못하는 학습 부진아였다. 이런 그가 유일하게 흥미를 갖고 즐거워 한 것은 스케치. 그의 부모님은 열네 살 된 아들을 데생과 수학을 공부할 수 있게 파리의 특수학교에 입학시켰다. ‘작은 학교(Petite École)’라 불리는 이 학교에서 로댕은 훌륭한 스승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조각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파리의 명문인 에꼴데보자르(미술대학) 콩쿠르에 세 번이나 낙방했다. 데생 점수는 넘쳤지만 조각 점수는 언제나 모자랐기 때문이다. 이런 그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당대 최고의 조각가 카리에-벨뢰즈를 만난 것이다. 로댕은 이 대가와 일하면서 그의 아틀리에에서 5년간 머물렀다. 이 협
책을 쓰고 책을 만들고 책을 알리는 책문화 현장의 최전선에 있다 보니 세상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난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출판저널’ 편집부 책상에는 출판사에서 만든 새로 출판된 도서들이 쌓이는데 손님처럼 도착한 책들을 검토하다 보면 책은 시대를 기록하고 보여주는 거울이라는 점을 실감한다. 최근 출간된 책 중에서 ‘세계를 이끈 경제사상 강의’에서 유독 눈길을 끌었던 대목은 ‘한국은 진정한 선진국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하다. 이 질문에 명쾌하게 대답하기 어려우면 구체적으로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우리나라는 강대국인가? 우리나라는 경제강국인가? 우리나라는 선진국인가? 어려운 질문일 수 있겠다. 첫 번째 질문, 우리나라는 강대국인가? 이 책을 쓴 경제사상가 김민주 저자에 따르면 G7그룹에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캐나다, 이탈리아가 들어가는데 유엔의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G7그룹에 들어가야 자타가 공인하는 강대국이라고 하니 우리나라는 강대국은 아니다. 두 번째 질문, 우리나라는 경제강국인가? GDP 규모로 보면 우리나라는 2018년도에 10위, 2019년 12위, 2020년 10위였다. 구매력…
며칠 전 밤에 귀가를 위해 내리막 도로를 운전하는데 갑자기 ‘펑’하는 굉음에 차를 세웠다. 이미 차는 정상적인 주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덜컹거리고 있었다. 겨우 갓길에 주차하고 살펴보니 오른쪽 바퀴가 완전히 내려앉아 있었다. 도로 이물질에 타이어가 충격을 받은 듯 했다. 일단 차를 옆으로 옮기고 보험사 긴급출동을 불렀다.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린 끝에 긴급출동 기사가 도착해 차를 살피고 있는데 경찰 패트롤카가 왔다. 정신없는 와중에 대뜸 음주측정기를 들이밀었다. 차가 어떤 상태인지 살핀 후에 하자고 하니 막무가내였다. 결국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공무집행 중이니깐.. 비상타이어로 교체하고 현장을 벗어난 후, 다음날 앞바퀴 두 쪽을 모두 교체한 뒤에야 상황이 종료되었다. 하마터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상황이 종료된 후 곰곰이 생각해보니 경찰의 대응이 못내 아쉬웠다.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선후가 어긋났다는 느낌이었다. 수습을 돕고 난 이후 음주측정을 해도 될 문제였다. 화투패를 거꾸로 치는 경우가 어디 경찰 뿐이랴? 5월 10일로 취임 1년을 지난 윤석열정권. 대한민국의 지난 1년은 말 그대로 나락을 향한 폭주였다. 내리막길에서…
2012년 8월 10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했다. 그 이후에도 적지 않은 대한민국 정치인들이 독도를 방문했다. 이번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의 독도 방문도 여기에 포함된다. 독도는 대한민국의 영토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을 포함한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독도를 방문할 수 있고, 이것이 특별한 뉴스가 될 이유가 없다. 마치 어떤 정치인이 부산이나 제주도를 방문했다고 뉴스가 될 수 없는 이치와 마찬가지다. 그런데 민주당은 이번 기사다 일본 총리의 방한 때, 윤 대통령이 “일본의 독도 침탈”에 대해 한마디도 따지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민주당의 주장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민주당은 집권 경험이 있는데도, 이런 주장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독도를 “실효 지배”를 하고 있다. 우리의 경찰이 독도를 수비하고 있고, 독도에 주민등록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도 다수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일본은 안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본은 어떻게든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일본이 수시로 독도 문제를 거론하는 이유도, 독도가 분쟁지역이라는 이미지를 세계에 심기 위해서다. 이런 차원에서 일본은 자신들의 “궤변”에
그는 1885년 연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중국 서당에 다니며 한문을 익혔다. 아버지 최우삼은 약관 20세에 고종으로부터 연변의 도태(道台. 오늘의 도지사)로 임명된 큰 인물이었다. 그는 아들 넷을 두었는데, 운산이 차남이다. 중국사람들 보다 중국말을 더 잘했다. 운산은 그 탁월한 능력으로 중국의 고위인사들과 교류했다. 그 과정에서 청나라의 토지정리 사업을 도왔는데, 그 때 능력을 높이 인정받았다. 그 대가로 광활한 토지를 소유하게 되었다. 실은 그 땅이 쓸모 없는 황무지여서 큰돈 들이지 않았다. 운 좋게도 소유지 여러 곳에 도시가 생기면서 땅값이 치솟았다. 이십대에 연변갑부가 된 것이다. 1908년, 운산은 자신의 여러 소유지 가운데, 사람 살지 않는 한 시골로 조모, 부모, 형 진동 등 4형제와 그 가솔들과 함께 이주했다. 두만강 건너 고향 함경도 온성의 최씨집안 친인척과 지인들을 불러들여 신한촌(新韓村)을 세웠다. 이 마을이 바로 봉오동(鳳梧桐)이다. 봉황은 오동나무에만 둥지를 튼다는 전설이 작명의 배경이었을 것이다. 초거대 농사와 목축업에 더하여 국수, 콩기름, 비누, 성냥, 술, 과자 등 생필품 공장을 차렸다. 제품들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