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 시민운동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란 그리 쉽지 않다. 시민운동의 위기를 미시적 관점에서 분석해 보면 영역별, 지역별, 그리고 가치지향에 따라 달리 평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통념상 시민운동의 범주로 분류되는 사회운동은 주로 이념 지향적이고, 정치적 성향이 강한 NGO 중심의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운동을 의미한다. 사회복지형의 운동이나 주민운동, 노동자와 농민운동, 도시빈민을 포함하는 민중운동은 통상 시민운동 대신 사회운동으로 분류되고 있다. 게다가 2000년 이후 등장한 ‘보수’이념을 대변하는 운동도 통상 시민운동의 범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과학적이고 면밀한 분석을 통해 한국 시민운동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는 1990년의 시민운동과 현재 시민운동 사이에 본질적으로 상이한 요소들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 사회는 군부의 권력이 민간으로 이양되면서 구성원 다수의 요구로 정치적 민주화와 사회적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가동되었고, 시민운동은 낙후·부패·반민주로 상징되는 정치집단에 대해 상대적으로 강한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정치집단을 향한 비판과 견제, 새로운 대안 제시 등의 활동은 당시 다양한 사회집단과 구성원들의 확고한 지지와 동의를 확보할 수 있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성장과 사회적 영향력을 강화시킬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 시민운동은 환경과 여성을 포함한 다양한 영역의 분화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집단 정체성과 가치지향성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시민운동은 위에 열거한 것처럼 영역 또는 이념과 가치, 운동방식과 형태 등에 있어 90년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분화·전문화되었을 뿐 아니라 상호 경쟁과 갈등도 심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도 본질적으로는 한국의 시민사회가 당시와 비교해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다는 데에 원인이 있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와 정치체제의 선진화 과정과 구조적 변화의 조건을 이해할 수 있는 현실인식 능력이 필요하다. 정치의 민주화, 경제의 선진화와 지구화, 사회의 다양성. 직업의 분화, 교육의 전문화, 전통적 가치관의 해체 등이 바로 전 사회의 선진화를 촉발시킨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지구화와 다양한 가치관의 공존은 한국 시민사회의 내용과 형식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핵심 요인이다.
이런 전환기적 사회에서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수용할 능력이 없는 운동은 위기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즉 모든 사회운동을 획일적으로 위기라고 재단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시민운동의 위기라는 진단은 특히 1990년대의 운동방식과 조직운영을 고수하는 조직들에 해당되며, 시민운동과 동일시되는 NGO들이 이에 해당된다. 그런 맥락에서 시민운동의 위기는 바로 이 운동단체들에 의해 주도되는 사회운동의 위기를 지칭한다.
현재 이 단체들이 처한 위기의 본질은 외부적으로 사회적 영향력 상실, 시민적 무관심과 부정적 인식, 정부나 언론 등의 사회기구로부터의 비판 등이 있으며, 내부적으로는 상근자들의 노령화, 전문성 부족, 부족한 재정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사회운동의 이념적 분화도 기존 시민운동의 위기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이 시민운동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우선 변화되고 있는 운동의 외적 환경을 직시하고 이에 민감하고 섬세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시민운동의 주체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함께 비판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의식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운동형식과 내용, 조직의 운영 방식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1990년대 방식의 시민운동은 더 이상 힘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변화하는 현실을 적극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과 효율적 대처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는 역시 전문화, 지구화, 지역화, 첨단화 등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위기를 맞고 있는 시민운동이 미래에도 지속적으로 한국 사회운동의 중심에 자리 잡을 것인가, 혹은 사회운동의 부분운동으로 축소될 것인가는 현재 위기에 직면해 있는 시민운동의 상황인식과 대처능력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차 명 제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