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을 돌이켜 보면 키가 빨리 커서 집안의 높은 곳에 놓여있는 물건을 마음대로 내려놓을 수 있고 이웃 집의 높은 담장을 넘겨다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학창시절에는 공부를 더 열심히 하여 계속 우수한 성적으로 선생님과 부모님께 칭찬 듣고 원하는 학교에 우수하게 합격하는 것이 소원이였으며 성인이 되어서는 내 신분과 직책에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여 상사와 주변으로부터 칭찬받고 인정받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였던 기억이 난다.
요즘 20~30대 젊은이들은 생일 등 기념일에 선물 받는 것을 좋아하고 있다. 때로 작은 선물은 상대의 마음을 감동하게 한다. 이제 50대가 되어서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것 보다 나누어 주는 기쁨이 더 크고 1등 보다 2등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파트 놀이터에는 어린이들이 즐겨 타는 미끄럼틀이 있다. 아이들은 미끄럼을 타면서 서로 먼저 올라가서 한번이라도 더 타려고 한다. 내가 먼저 오르기 위해 앞에 오르는 친구의 바지를 잡아당기며 서로 먼저 오르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앞 친구도 미끄러져 내려와 오르지 못하고 당긴 친구도 오르지 못하게 되며 결국 어린이끼리 다투고 싸우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어 먼저 오르려는 어린이를 뒤에서 엉덩이를 밀어주고 먼저 올라간 어린이는 다음 어린이 손을 잡아 당겨주며 그 다음 어린이는 엉덩이를 밀어주고 하면 여럿이 동시에 쉽게 오를 수 있고 모두가 쉽게 여러 번 탈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린이들의 놀이이고 어린이들의 광경이다.
오늘날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모두가 서로 돕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필자의 작은 소망인 ‘미끄럼틀 오르기 美學’ 이다.
요즘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기성세대의 어른들도 이와 같거나 이보다 더 못한 모습을 가끔씩 볼 수가 있다. 마치 동물원의 맹수들에게 고기 덩어리를 던져주면 서로 차지하려고 싸움하는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오늘날 지방자치단체나 대기업, 종교단체, 독지가 등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생활이 어려운 어린이와 독거노인들을 돕고 사회의 어두운 곳을 환히 밝히기 위해 묵묵히 봉사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하고 선진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따뜻한 마음으로 나보다는 다른 사람을 더 이해하고 베풀고 작은 실수도 너그러이 용서하는 마음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다.
어린이들의 순수를 보고 느끼며 어른들이 많이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들의 욕심은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지만 어른들의 욕심은 상대를 어렵게 하고 심지어 파멸의 길로 몰아 넣은 후 얻는 이익이기 때문이다.
어른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이에게 선뜻 도움을 주거나 받는 것조차 한 꺼풀 의심의 마음이 앞서 자유롭지 못하다. 도움을 받는 사람들은 왜 이 사람이 나에게 이런 온정을 베푸는 것 일까라는 생각과 함께 도움을 준 이후, 나에게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 걱정을 먼저하게 된다. 도움을 주는 사람도 상대방의 자존심을 다치게 하지나 않을까 또는 괜한 동정으로 비춰져 오히려 도움을 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앞선다. 이 모든 것들은 어린이들의 순수를 벗어나 매사를 이해의 관계로 생각하는 성인들의 계산적 행동이 원인이다.
미끄럼 놀이는 정상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반복하는 놀이다. 어찌보면 정상에 오르면 반드시 내려와야 하는 인간사를 가장 잘 표현하는 놀이가 아닌가 싶다. 아둥바둥 남보다 먼저 정상에 오르기 위해 앞 사람의 바지가랑이를 잡아 끌어내리고 조금 앞선 사람은 뒷사람을 더욱 멀찍이 뗴어놓기 위해 발로 밀어버린다. 그러다 두 사람이 엉켜 같이 미끄럼을 타고 아래로 내려오면 어린이들의 놀이에서는 웃음 꽃이 피는 등 재미를 만끽하지만 어른들의 정상 다툼 놀이에서는 서로 돌이킬 수 없는 원수지간이 된다. 먼저 정상에 오른 사람은 반드시 먼저 미끄럼틀을 타고 아래로 내려와야 한다. 이같은 원칙이 어린이들의 놀이에서는 통하지만 어른들의 인생사에서는 먼저 올랐으면서도 늦게 내려가려고 상대방을 밀치는 등 무원칙이 횡행한다. 이제 어른들도 나보다 어려운 타인을 먼저 배려하고 아끼는 순수의 마음으로 돌아가 미끄럼 놀이를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이 아침에 ‘미끄럼틀 오르기 美學’과 같이 늘 남을 배려하며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면 우리 사회는 한층 활기 넘치고 살맛나는 따뜻한 사회가 될 것이다.
신 호 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