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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 곁으로 난 숲길을 걷는다. 마른 잎들이 발에 밟힌다. 유난히 길고 추웠던 지난 겨우 내 땅의 온기를 지켜주던 나뭇잎들이다. 바싹 말라있다. 발에 스치기만 해도 ‘바스락’ 소리를 내려 바스러진다. 유난스레 눈이 많이 왔던 탓일까. 강물 흐르는 소리가 요란하다. ‘우르릉 우르릉~’ 천둥소리를 내며 흐른다.

겨우 내 내렸던 그 많던 눈이 모두 함께 흐르고 있겠지.

우리의 삶 속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함께 흐르고 있듯이 말이다.

이제 봄인가. 봄이 오는가 보다.

유난히 길었던 겨울이었다. 그래서인가 보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 간절하다. 따뜻한 날들이 그립다. 발걸음을 멈추고 나무들을 어루만진다. 아직은 겨울이다. 가지들은 헐벗었고 껍질은 트고 해어졌다.

겨우 내내 심했던 모진 바람 탓이리라. 강가의 바람이 오죽 심했으랴.

바람이 불어온다. 옷섶을 여미게 하는 찬 기운은 없어졌지만 아직은 서늘하기만 한 바람이다. 바람에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디서 들리는 소리일까. 고개를 들어 둘러본다. 나무에 기대어 살아가는 담쟁이 잎들이다. 나무들은 아직 봄을 맞지 못하였는데 담쟁이들은 벌써 봄을 맞았나 보다. 잎들 푸르고 무성하다. 어느새 저리되었을까. 잎들 떨어져 앙상한 가지 더욱 초라했던 것이 어제 같은데 어느새 저리도 푸르러졌을까.

제 몸 기대고 살아가는 참나무는 아직도 겨울인데 저 홀로 봄을 맞아 바람에 나뭇잎 흔들고 있구나. 지난 가을에도 가장 먼저 나무의 한가운데서 붉게 타오르더니 봄도 먼저 맞이하고 있구나.

우리의 삶을 닮았다. 언제나 기대어 사는 이들이 가을의 아름다움도 봄의 따스함도 먼저 맞이하는 우리의 삶을 닮아있다. 아니다. 그들이 우리의 삶을 닮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의 삶을 닮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도 아니다. 그들의 삶도 제대로 닮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담쟁이들을 품고 살아가는 참나무들의 의연함을 닮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늘 받은 상처로 괴로워하고 제 삶을 탓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담쟁이의 잎일지라도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소리가 저리도 정겨운 것을 말이다.

푸르륵 푸드득-

담쟁이 잎 바람에 흔들리며 나부끼는 소리가 마치 새 날개 짓 소리같이 들린다. 봄이 오기는 오는가 보다. 나뭇잎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니 말이다. 손을 뻗는다. 나무를 만진다. 겨우 내 헐벗고 해어진 나무이지만 온기가 느껴진다. 따스하다.

살아 있구나. 살아 있구나. 살아서 봄을 맞는구나.

반가움에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 찬다. 아직 새싹도 움트지 않았는데 생명은 꿈틀거리며 봄을 재촉한다. 봄은 어느덧 나무에게 와 있다. 내 곁에 와 있다.

흐르는 강물 오랜 세월 지켜보며 함께 흐르던 참나무들에게 봄이 오는 것처럼 내게도 봄이 올까. 내 삶에도 봄은 오고 있을까. 정말 오는 것일까. 그저 내 삶을 내 삶으로 맞이하며 살아갈 수 있는 날들이 오는 것일까. 내어 달리지 않아도 조용히 걷기만 하여도 되는 내 삶이 오는 것일까.

강물 곁으로 난 작은 개울에 물이 가득하다. 맑은 물이다. 참으로 맑다. 물 아래 돌멩이 하나 이끼 한 올 모래 한 알갱이에 이르기까지 모두 투명하게 보인다. 강가에 늘어서 있는 나무들도 담쟁이들도 모두 개울에 함께 들어서 있다. 개울 속에도 바람이 분다. 개울에 깃든 담쟁이들의 잎도 나뭇가지들도 펄럭이고 흔들린다.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작은 물고기 한 마리 지난다. 유연하게 몸을 움직여 나아갈 때마다 작고 여린 아랫배에서 은색의 비늘이 반짝거린다. 아름답다. 손을 뻗어 만지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누른다.

너도 네 삶을 찾아 잘 살아가라. 아무 탈 없이 잘 살아가라.

이렇게 말하며 보낸다. 마음을 담아 떠나보낸다. 저 홀로 가고 있는 것을 나 혼자 바라보며 떠나보낸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저 산책을 나온 것일까. 아니면 먼 길을 떠나고 있는 것일까.

그저 살아가면 되는 것을 저 작은 물고기도 나처럼 모르는 것이 아닐까.

삶이란 먼 길을 돌아가는 여행과 같은 것이라더니 저 작은 물고기도 나처럼 먼 길을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개울 속으로 손을 담근다. 가만히 담근다. 잔물결이 인다. 잔물결에 돌멩이의 모습도 이끼의 모습도 모래 한 알갱이의 모습도 나뭇가지들의 모습도 담쟁이 잎들의 모습도 작은 물고기의 모습도 모두 일렁인다. 개울 곁에 앉아 있던 내 모습도 일렁인다.

바람도 일렁인다.

내 삶도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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