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씨가 일본에서 납치당한 것은 1973년 8월 8일의 일이었다. 그는 며칠 뒤 동교동 자택으로 돌아왔다. 자기 발로 걸어온 것이 아니고, 일단의 괴한들이 그의 집 근처에서 풀어준 것이다. 이미 한 세대가 지난 일이다. 그 사이 김대중씨는 대통령을 지냈고, 사람들은 그가 태평양에서 물귀신이 될 뻔했던 일조차 잊은 지가 오래되었다.
이 사건이 돌연 다시 세인의 이목을 끌게 된 것은 김 전 대통령이 지난 9일, 국정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에 대해 ‘납치사건의 올바른 진상을 규명해 발표할 것’을 촉구하면서부터다. 김 전 대통령 측은 “국정원 과거사위가 출범한지 2년이 지났지만 조사대상 7건 가운데 유독 김 대중납치사건에 대해선 조사결과 발표가 지연되고 있다”며 “김 전 대통령의 기본 생각은 진실규명과 사과”라는 것이다.
국정원 과거사위원회는 지난해 2월 3일, 부일장학회(현 정수장학회) 헌납사건, 민청학련 및 인혁당 사건, 동백림 간첩단 사건, 남한조선노동당 사건, 김형욱 실종사건,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 그리고 김대중납치 사건 등 모두 7건을 ‘우선 조사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밝히고 그 동안 김대중 사건만 빼고 6건에 대한 조사 결과 또는 중간조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김대중 사건 조사도 가끔 곧 발표가 있을 거라는 애드벌룬을 띠우더니 어쩐 일인지 아직까지 꿩 구어 먹은 소식이다.
김대중 납치사건 당시 단군 이래 최대의 권력을 누리던 대통령 박정희는 그 해 11월 2일 국무총리 김종필을 일본에 보내 당시 일본 수상 다나카 가꾸에이와 만나게 한다. 두 나라 사이에 이 문제를 공식 종결하자는 ‘외교적 합의(일본 언론은 이를 정치 결착이라 부른다)’를 보게 된다. 양국 총리 간의 대화록은 지난해 2월 비밀해제가 되었다.
이 대화록을 보면 다나카는 “미국 대통령의 보좌관들처럼 엉뚱한 자들이 나와서 ‘나는 대통령이 시켜서 한 일’이라고 하면 야단이다. 그런 놈이 있으면 큰일이다. 김동운 서기관의 행위에 한국 정부의 공권력이 개입한 게 판명되면 문제 제기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에 김종필이 ”꼭 그렇게 하겠다는 건가. 다테마에(겉치레)로 얘기해두는 거냐?”고 묻자 다나카는 “그렇다”면서 “그 사람(김 대중)은 일본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만한 센스도 없다면 장래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악평한다. 김종필은 다시 “당신이 염려하는 것과 같은 엉뚱한 일은 있을 리 없다”라고 대답한다. 이 같은 외교적 합의를 바탕으로 일본 정부는 걸핏 하면 “왜 다 끝난 일을 들쑤시느냐”고 우리 정부에 항의를 하곤 했다.
지금도 일본 내의 일부 언론인은 이 문제를 끈질기게 추적하고 있다. 대표적인 원로 언론인이 전 마이니찌 서울 특파원을 지낸 후루노 요시마사다. 그는 작년 11월 말 출간한 저서 ‘김 대중 사건의 정치 결착’에서 일본의 주권 포기론과 다나카의 3억엔(다른 보도에는 4억엔) 수수설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의 주권 포기란 한국 공권력이 백주에 일본 땅에서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이를 따지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3억엔 수수설은 당시 일본 국내와 서울에서도 퍼진 소문을 말하는 것이다. 박정희는 돈을 좋아하는 다카가가 맨 입으로 봐줄 것 같지 않다고 보고 측근인 이병희(작고)를 보내 봉투 두 개에 현금을 넣어 직접 전달했다는 설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다소 뜬금없이 자신의 납치사건 진상조사 발표를 채근한데 대해 몇 가지 추측이 있다. 하나는 일본 정부 견제용이라는 풀이이다. 일본 정부가 모처럼 잘 풀려가는 북핵문제에 자국인 납치 문제를 들고 나와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을 두고만 볼 수 없다는 생각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개인적 화해 분위기를 틈타 대선 때 두 사람이 손을 잡을 것이라는 소문을 차단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풀이다. 납치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면 박근혜 측은 발끈하면서 정략적인 발표라고 맞받아칠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신이 재임 중에 밝혀야 할 일을 왜 덮어두었느냐고 역공을 취할 가능성도 있다. 김 전 대통령 측은 재임 중 손을 대지 않았던 것은 조사 결과의 공정성과 객관성에 비중을 두었기 때문이라는 해명이다.
지금 국정원 내부 분위기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의식한다기보다는 박근혜 측을 더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사도 다 마쳤다고 한다. 물론 박 정희의 직접 지시를 입증할 증거는 없을 것이다. 어떠한 독재자나 하수인도 범죄행위의 증거를 남기지 않는 법이다. 오직 입에서 입으로 명령이 전달되는 것이다. 국정원 조사위는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것이 공직자의 올바른 태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