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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렁이 ‘장원댁’과 친환경농업

토양에 맞는 작물 진단 선택
과학농정 실천의지가 중요

 

지금부터 60여 년 전쯤 이야기다. 그때 내가 살던 곳은 다랑이논 몇 뙈기와 산자락의 비탈밭 몇 뙈기가 전부인 산골 동네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모두 베어서 집도 짓고 땔감으로 썼기 때문에 산에 나무라 할 만한 게 별로 없었다. 우리 동네에는 장사를 하는 이도 없어 사람들은 너나없이 모두 매우 가난했다.

이 곳에 ‘장원댁’이라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이 건실하고 성격 좋은 아주머니는 아이들 복은 많았지만 남편복은 없었다. 아이들 여덟 명을 나았는데 둘만 젖먹이일 때 잃고 여섯은 탈 없이 컸다. 장원댁의 남편은 몸도 건장하고 마음씨도 나무랄 데 없었지만 게으르고 노는 걸 좋아 했다. 물려받은 농토가 없었지만 일철에는 적은 품삯이나마 받으면서 일을 해 자기 앞을 가려나갔고 겨울이 되면 윷놀이, 화투 등 놀음에 빠져 집안일은 모르쇠였다.

이에 반해 봄부터 가을까지 장을 담그는 일, 보리를 수확하고 타작하는 일, 길쌈하는 일, 모내기 등이 이어지기 때문에 장원댁의 일손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겨울에도 메주를 쑤는 일, 가끔이지만 장례, 혼례 같은 일들이 있을 때마다 장원댁은 이집 저집에 불려 다녔다.

그때 시골에서는 부인들은 다른 집의 일을 거들어주어도 품삯을 받지 못했다. 대신 식구들이 밥을 얻어먹는 정도가 일종의 보수였다. 여섯 명의 아이들에게 식지 않은 밥을 먹일 수 있다는 게 큰 보수라 할 수 있었다.

나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장원댁에 관해 하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자주 들었었다. “장원댁은 아이들 밥 얻어 먹일 때 아이들 배를 손가락으로 꾹꾹 찔러보며 먹인데.” 약간 비웃음이 깔린 말이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아주머님은 대단한 분이셨음을 깨달았다. 아이들에게 점심을 잘 먹이면 저녁 식사는 건너뛰거나 묽은 죽으로 몇 모금으로 때울 수 있었을 것이니 그 아주머님이 아이들 점심을 어찌 소홀히 먹일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행여나 힘들여 일해주고 얻은 밥을 덜 먹은 아이가 있을세라 아이들의 배를 차례로 눌러가면서 밥을 덜 먹는 아이들이 없도록 하셨던 게다.

진단(診斷)하고 처방(處方)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 그것이 과학적 방법의 요체(要諦)가 아닌가?

그 아주머님이 아이들의 배를 꾹꾹 눌러본 것은 진단이고, 이 녀석은 밥을 더 먹이지 않아도 되겠다고 판단하고 그대로 한 것은 처방과 처방의 실천인 셈이었다.

우리는 모든 일을 과학적으로 하겠다는 말을 무성하게 한다. 요즘 우리는 친환경농업, 고품질 농산물생산, 같은 고무적(鼓舞的)인 말들을 매우 자주 듣는다. 친환경농업을 하려면 과학적으로 농사를 지어야 할 것이고, 품질 좋은 농산물생산도 농사를 과학적으로 지어야 가능할 것이다. 과연 우리는 친환경농업을 한다고, 또 고품질농산물을 생산한다고 자주 말하는 만큼 농사일을 과학적으로 하는가? 우리는 토양과 작물을 바르게 진단하고 처방하면서 이런 저런 농자재들을 쓰고 있는가?

옛날 우리 동네의 그 아주머님이 사셨던 때에는 무엇을 과학적으로 진단하고 처방할 능력도 변변히 없었고 설령 어떤 처방을 했더라도 그 것을 실천에 옮기는 데에 필요한 자재도 변변히 없었다.

오늘 우리에는 없는 게 무엇인가? 진단기술이 없는가? 처방능력이 없는가, 과학영농에 필요한 자재가 없는가? 설령 어떤 자재가 없다하더라도 꼭 필요하다면 그것을 얼른 만들 수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능력 아닌가?

지금의 상황에서 참으로 과학적인 농사가 널리 실천되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아마도 농사를 참으로 과학적으로 지으려는 굳은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지가 없다면 농사를 과학적으로 짓는 데에 필요한 다른 것들이 모두 있다한들 무슨 뜻이 있겠는가?

옛날 우리 동네에 사셨던, 아이들의 배를 꾹꾹 눌러보며 아이들에게 밥을 더 먹여야 할지를 진단하셨던 그 아주머님은 어려움에 처한 우리 농업에 과학적 처방이란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계신 것이다. 그 아주머님이 아직 살아계셨다면 노벨상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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