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화)

  • 흐림동두천 3.4℃
  • 흐림강릉 3.9℃
  • 흐림서울 4.1℃
  • 맑음대전 6.4℃
  • 흐림대구 7.2℃
  • 흐림울산 8.2℃
  • 맑음광주 9.7℃
  • 흐림부산 10.3℃
  • 구름많음고창 5.9℃
  • 흐림제주 10.1℃
  • 흐림강화 3.6℃
  • 구름많음보은 6.3℃
  • 구름많음금산 6.9℃
  • 구름많음강진군 8.9℃
  • 흐림경주시 7.4℃
  • 흐림거제 7.9℃
기상청 제공

출입기자실 ‘보도담합’ 논란

홍보처 기자실 축소 시사에 기자들 ‘언론통제’ 반발
정부·기자 공청회 열어합리적 개선 중지 모아야

 

기자실이란 언론사 기자들이 취재를 목적으로 뉴스원이 있는 관청이나 중요 기관 또는 단체 안의 특정 공간에 모여 기사를 작성하고 송고하는 장소를 말한다. ‘출입 기자실’ 안에는 작은 벌집 같은 부스가 있어서 기자들이 들어가 작업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요즘 정부의 최고 홍보 기구인 국정홍보처가 이 기자실의 운영 문제를 종합적으로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정부와 기자 사이에 마찰이 생긴 것 같다.

기자실의 모습은 집권자가 바뀔 때마다 변화를 거듭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독재자란 소리는 들었어도 기자들의 자유분방한 태도에 대해서는 꽤 관용적이었다고 한다. 기자들이 기자실에서 한가한 시간에 포커게임을 해도 묵인했으니 말이다. 사실, 우리 기자들이 포커게임을 알게 된 것은 6.25전쟁과 함께 종군기자로 들어온 미국 기자들 덕이었다. 이후 기자실의 포커게임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기자들이 관청을 출입하면서 심한 치욕을 감수해야 했던 시기가 있었다. 박정희의 유신시절이다. 그는 1971년 12월 6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다. 야당 후보인 김대중에게 신승하면서 충격을 받았다. 위기를 느낀 것이다. 언론이 주공격 목표였다. ‘한국신문협회’는 이 선언이 발표되자 사시나무 떨듯 모여서 ‘언론자율에 관한 결정’을 결의했는데, 프레스카드제를 실시하겠다고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정부로부터 사전에 그런 결의를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 때부터 정부 각 행정부처 출입 기자들은 노란 출입증을 가슴에 달고 다녔다. 노란 출입증은 중앙관서 서기관급에 해당하는 증표였다. 이 ‘개목걸이’ 때문에 대다수 기자들은 고개를 들기가 어려웠다.

프레스카드는 유신정권의 언론통제 수단이었다. 공무원들은 그 노란 색깔의 명찰을 보면 금방 기자임을 알 수 있었다. 프레스카드제는 박정희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는 주장이 있다. 1970년 10월 어느 날, 박정희는 도산서원 보수사업 준공식에 참석했다. 그 무렵 박정희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자라면 대단한 특권이었다. 청와대 출입 기자 11명(?)과 사진기자단 소속 기자가 고작이었다. 이런 행사 때는 문공부 출입기자도 비표를 달고 취재가 가능했다. 그런데 준공식 현장에는 ‘보도’라는 완장을 두른 현지 기자 100여명이 몰려든 것이다. 박정희는 이를 보고 혀를 내두르며 “웬 기자들이 저렇게 많으냐?”고 문공부장관 윤주영에게 물었다고 한다. 프레스 카드는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다(강준만 저 ‘한국현대사 산책’).

요즘도 기자실은 등록제를 시행한다고 한다. 누가 누구에게 등록한단 말인가. 이것은 자칫하면 집단이기주의 또는 폐쇄적이라는 오해를 살 소지가 있는 것이다. 미국 기자들도 등록하는 모양이다. 백악관에는 브리핑 룸이 있다. 백악관 출입 기자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기자는 올해 87세인 헬렌 토머스(허스트신문 칼럼니스트) 할머니이다. 그는 올해로 58년째 백악관을 출입하고 있다. 그런 할머니도 AP통신이나 ABC방송 그리고 뉴욕타임스 같은 유력 매체 때문에 지정석에서 밀려날 뻔 한 적이 있다. 브리핑 룸 개축 공사가 화근이었다. 맨 앞줄의 이 할머니에게 뒷줄의 번호를 주자는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다른 기자들은 그의 연공을 배려해서 그대로 옛 자리를 배정했다.

우리 기자실 문화는 일본풍이다. 이미 일제시대에도 일간 신문이 있었으니 출입기자 제도도 있었다. 일본의 행정 부처는 ‘기자클럽’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의 출입기자단 제도나 마찬가지다. 이를 두고 ‘국경 없는 기자회’나 나가노 현의 ‘탈기자 클럽’같은 단체들은 기자실의 폐쇄성과 투명성 결여를 비판하고 있다. 한겨레나 오마이 뉴스 등이 창간 초기에는 기자단 가입을 허용하지 않아 상당한 말썽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이른바 주류신문들은 새로운 언론의 등장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들은 때론 어떤 사건의 보도 방향이나 기사 가치를 예단하며 동료 기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노 대통령은 이를 ‘기자실의 담합’이라고 비난했다.

국정홍보처는 이미 외국의 출입기자실 운영실태를 상당히 조사했고, 그 결과를 토대로 기자실 운영 개선 방향을 발표한다고 한다. 정부가 이 문제로 고심하게 된 것은 문서 유출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기자들은 무시로 공직자의 방을 드나들며 가끔 문서를 슬쩍 빼다가 복사하고는 제 자리에 돌려놓는 사고를 치기도 한다. 이건 문제가 된다. 다만, 문제가 심각하다면 민주주의시대에 맞게 정부와 기자단체가 함께 공청회 같은 절차를 거쳐 합리적인 개선 방책을 마련하면 될 일이다. 언론의 자유는 취재의 자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