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초로 연기된 남북정상회담이 생산적인 회담이 될 것이냐는 우려의 목소리들이 높다. 차기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불과 두달여 앞둔 시점에서 대선정국에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북의 정치적 선전에 이용될 가능성도 없지않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어쨌든, 노무현 대통령은 정상회담 의제 가운데 대륙횡단철도 연결 구상이라는 것을 포함시켜 눈길을 모은 바 있다. 중국횡단철도(TC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연결은 한나라당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대선경선 정책공약으로 내놓은 구상이기도 했다.
대륙을 횡단해 유럽에까지 이르는 시베리아횡단철도는 극동의 한 끄트머리에 매달려 있는 우리의 입지적 조건에서 꿈의 철길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 철길은 또한 우리에게 역사의 아픈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
8월 21일, 오늘은 소련 독재자 스탈린이 구 소련령 연해주에 살던 20만명의 한인들을 1만5천리 떨어진 중앙아시아로 강제 추방하라는 비밀명령서에 사인을 한 지 70년이 되는 날이다. 이에 따라 연해주의 고려인들은 1937년 9월 25일 옷가지와 먹을 것만을 들고 영문도 모른 채 마소를 운반하는 화물차에 강제로 태워졌다.
열차는 달리다 때로는 며칠씩 서 있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 틈에 뛰어내려 먹거리를 구해야 했다. 도중에 죽은 사람은 열차 밖으로 던져졌다. 40여일만에 도착한 곳은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 알마티에서 330km 떨어진 황무지 우슈토베 언덕이었다.
텐산(天山)산맥 줄기를 타고 몰아치는 칼바람과 거센 눈보라, 살을 에는 혹한과 황무지뿐이던 우슈토베 언덕 눈밭에 짐짝처럼 버려진 이들에겐 보상도 지원도 없었다. 우선 언 땅에 구덩이를 파고 갈대로 지붕을 올려 칼바람과 눈을 피해야 했다. 그해 겨울을 나는 동안 1만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이들 고려인들은 1860년대 이래 가난과 기근을 견디다 못해 고향을 버리고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 땅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한 연해주에 정착해 뿌리를 내렸었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스탈린은 극동에서 소련이 일본과 전쟁을 하게 되면 조선의 연해주 한인들은 일본을 지원할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 이들을 강제 이주시켰다고 한다.
소련이 해체되고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독립하면서 이들 55만여명에 이르는 구 소련령의 고려인들은 대부분 무국적 유랑인이 되어 기본 생활과 2세 교육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제 그들이 살고 있는 나라의 국적을 얻을 수 있도록 모국인 우리 정부가 적극 나설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