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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희칼럼]‘가짜학력’은 양반사회의 잔재

지금은 대선 정국 비리 혁파 절호의 기회
선진국 가기 위한 진통 대학이 해결에 앞장서야

 

요즘 유명 인사들의 가짜학력이 사회적 화두이다. 가짜학력을 내세워 성공한 사람들이 날로 새롭게 밝혀지고 있다. 유명 인사들이 모조리 의심받는 판이다. 가짜가 판치는 원인을 두고도 ‘능력사회’탓이니 ‘학벌사회’탓이니 하는 논쟁이 있다.

 

그러나 가짜학력은 능력사회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우리 사회가 상고 출신 대통령 두 명을 배출했다 해서 능력사회로 변했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학벌사회의 근원은 지난날의 양반사회로 이어진다.

신정아씨의 가짜학력 사실이 처음 밝혀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귀를 의심했다. 우리 사회의 지식인 검증 시스템이 너무 허술하다는 데 깜짝 놀란 것이다. ‘오마이 뉴스’에 그에 관한 기사가 실린 이후 수백 건의 덧글이 올라왔는데, 그 가운데 ‘신정아는 가짜가 아니다. 진짜다’라는 덧글은 조회도 1순위를 기록했다.

 

ID를 돌도사라고 쓴 필자는 “그녀가 한 행동이나 업적은 모두 직접 한 것으로 누가 대신 해준 것이 아니다. (중략) 오직 하나 가짜가 있다면 졸업서류일 뿐이다.” 이 글에 대해 찬성 의견이 79표, 반대 의견은 14표에 불과했다. 이런 세태는 ‘너는 별거냐’는 반발 심리의 표현으로 보인다. 물론 그가 신용불량자임에도 고급차를 몰고 다녔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어떤 반응을 보일 지는 궁금하다.

신정아 사건 이후 ‘가짜학력 파동’은 당분간 온 나라를 뒤흔들 것이다. 가짜학력은 주로 미국의 미인가 대학과 관련돼 있다. 한국인에게 미국은 성공의 땅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자식을 미국으로 보낸다. 옛날에는 자식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낳으면 제주로 보낸다고 했는데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라면 혀 수술도 한다는 세상이다. 신정아는 예일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속였다. 동국대학이 망신을 당한 것이다. 일제 치하시, 일본에서 노동자로 일했는데도 귀국할 때는 유학했다고 속여 상당한 대접을 받았던 사례는 많다. 아직도 식민지 근성이 남아 있는 듯하다.

조선조 실학자 홍대용은 ‘의산문답’에서 “요즘의 유학자들이 말로는 올바른 학문을 부지하고 사특한 논설을 배척하며, 때를 만나 출세하면 인(仁)으로 세상을 구하고, 난세에는 물러나 명철보신을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잘난 척 하는 마음, 이기려는 마음, 권력지향의 마음, 이기심 등에 사로잡혀 있다”며 허학(虛學)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성리학의 허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황우석 사태는 바로 진짜학력자가 세상을 속인 경우이다. 학벌은 성공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조선 500년은 양반과 상민이라는 신분제 사회였다. 사실은 고려 500년도 신분제 사회였지만 조선 시대만큼 엄격하지는 못했다. 이 반상제도는 1894년 갑오경장을 통해 폐지됐다. 반상제도가 폐지된 것은 동학농민혁명의 결과다. 농민혁명은 외세의 개입으로 실패했지만 실권을 장악한 개혁파들은 혁명군의 주장을 수용했다.

 

임진왜란 이후 유명무실해진 반상차별 제도를 더 이상 지켜낼 수도 없었던 것이다. 반상제도의 철폐는 족보 매매라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많은 상민들은 양반의 상징인 족보를 사서라도 신분을 높이려 했다. 요즘 학력을 속이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양반사회가 겉으로는 해체됐지만 마음속에는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가짜학력은 현대판 가짜족보이다.

학력위조는 바로 거짓말이나 같다. “거짓말이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어려운데도 거짓말을 하는 것은, 거짓말하는 이들이 발각됐을 때의 부담보다는 거짓말로 얻어지는 단기적 보상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가짜학력이 탄로 난 어떤 방송인은 “최근 인터넷상에 제 학력이 Y대 경영학과로 돼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지만 인터넷을 못하는 데다 스스로 떳떳하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변명했다.

 

이 사람의 말을 믿는다면 컴맹이 약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낳은 것 같다. 아직도 방송국 마이크를 잡는다니 이 방송국에서는 학력위조가 강 건너 불인 셈이다.

지금은 대선 정국이다.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중요한 시기이다. 학력위조 같은 전근대적인 비리들을 혁파할 절호의 기회이다. 대선 후보들의 거짓말도 검증받아야 하지만 유명 인사들의 학력위조 여부도 샅샅이 밝혀져야 한다.

 

가짜족보가 필요 없듯이 가짜학력도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가짜들의 은신처인 대학들이 이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 시간에 구애받을 일은 아니다.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진통이다. 감수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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