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기관인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발전위원회(위원장 안병욱)’는 24일 1973년 8월 8일 발생한 김대중 납치사건에 대해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지시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최소한 묵시적으로 승인한 것으로 보인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발표에 대해 피해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애매한 내용이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해 줄기차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직접 지시를 주장해 왔다. 그는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치열하게 투쟁했고, 엄청난 선거부정이 자행됐는데도 고작 90여만표 차이로 패배했다. 그는 선거 이후 정보기관의 감시 대상이었고, 사실상 평범한 시민적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해 말, 기약 없는 해외여행을 떠난다. 일본 체류 중 ‘유신 선포’소식을 접한 그는 해외 지지자들을 모아 ‘반박정희운동’에 착수한다.
국정원 과거사위의 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당장 일본이 우리 정부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는 이 사건이 일본의 영토 안에서 발생했으니 주권 침해를 당했다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사건 발생 당시 일본 언론이 깊은 관심을 갖고 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노력했던 것도 다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독재자 박정희를 리버럴한 일본 언론인의 입장에서는 용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사건은 그해 11월 2일 당시의 김종필 총리가 박정희의 특명을 받아 일본 다나카 총리를 방문, ‘정치적 해결’을 봄으로써 한일 양국 정부 간에는 일단락된다. 이후 한국의 기업인이 다나카 총리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줬다는 주장이 일본 안에서 그치질 않고 있다. 그러나 다나카도 지금은 고인이다.
일본 언론이 이 사건을 극성으로 추적 중이던 그해 일본 유력지 아사히신문은 미국 워싱턴 특파원의 기사를 통해 “미국 정보 당국은 버깅(Bugging)을 통해 박정희가 집무실에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에게 김대중 암살을 지시한 것을 알았다”고 보도했다. 국정원 조사위가 이런 기사도 참고했을 것이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미국측의 협조를 얼마나 받았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더구나 우리 외교부 일부가 진실 구명을 방해했다는 소식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외교 공무원들이 아직도 사대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노 대통령은 이제 일부의 진실이 밝혀진 이상, 박정희 대신 일본의 주권을 침해한 사실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그래야 한일 양국의 균형적인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