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4일, 대통령 직속기관인 국정원 과거사 위원회(위원장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는 사건 발생 33년 만에 처음으로 ‘김대중 납치사건은 박정희 대통령의 묵시적 승인 아래 중앙정보부(현 국정원의 전신)가 기획하고 저지른 사건’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그리고 일본 주권을 침해했음도 인정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번 발표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한·일 양국 정부 그리고 피해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 측에 의해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전망이다.
김대중씨가 1973년 8월 8일, 일본의 대형 호텔 방에서 백주대낮에 정체불명의 괴한들에 의해 납치됐을 당시 그는 이 호텔에 은밀히 투숙했다. 그를 미행하고 살해하려는 한국 특수요원들의 감시망을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주재하던 서울의 큰 신문사 특파원 2명을 만난데 이어 서울에서 찾아온 양일동 통일당 당수도 방에서 만났다. 괴한들은 양일동이 호텔 방을 빠져 나간 다음 바로 들이닥쳐 그를 큰 마대에 싸서 승강기를 이용, 지하실로 내려갔다. 얼마 후 김대중이 납치됐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김대중의 납치사건은 오직 일본과 미국 언론의 관심사였지, 한국 언론은 납치사건으로 짐작은 하면서도 ‘김대중의 자작극’이라는 정부 발표만 보도했다. 대통령 긴급조치 때문에 알아도 보도할 수 없는 언론환경이었다. 이 때 이같은 세기적인 엽기사건을 추적하는 언론은 당연히 일본 언론과 미국 언론뿐이었는데, 한국인 여기자 한 사람이 뛰고 있었다.
그가 바로 당시 서울의 MBC 워싱턴 특파원 문명자(72)씨였다. 그는 김대중씨와 일찍이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그는 지금도 언론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기사에는 당시 사정이 정확하게 기록돼 있다. 그는 전날 모처럼 시간을 내서 두 아이들을 데리고 멕시코의 휴양지 아카풀코에 머물고 있었다. 다음날 새벽 눈을 뜨자 전화벨이 울렸다. 워싱턴에 홀로 남아 있던 남편이었다. 그는 “여보,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듣기만 하시오. 김대중씨가 도쿄에서 없어졌소. 틀림없이 중앙정보부의 짓이오. 그는 평소에 수첩에다 중요한 사항들을 깨알같이 메모해서 다니는 사람인데 그 수첩도 중앙정보부 수중에 들어가 있을 것이오. 그러니 당신이 한민통 미국 본부 결성식에서 한 역할도 이미 다 파악됐을 것이오. 당신도 위험하니 동행한 이창희 대사 부부에게는 다른 말 하지 말고 급한 일이 생겼다며 돌아오시오. 그도 공무원이니 상부의 지시가 있으면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오.”
그는 국무성 브리핑 룸으로 달려갔다. 당시 국무성에 출입 등록이 된 한국 특파원은 10여 명이었다. 낮 12시 정례 브리핑 시간. 아무도 김대중 납치사건에 대해 질문하지 않자 대변인에게 “한국 중앙정보부가 야당 지도자 김대중을 납치해 가서 현재까지도 그의 소재가 확인되지 않고 있는데 이 사건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무엇인가요?” 대변인은 미리 준비한 듯 “한국의 야당 지도자 김대중씨가 실종된 것은 사실인데 우리는 현재 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기자회견장을 나와 사무실로 돌아와서 한 시간쯤 지났는데 주미 한국 대사관 이상옥 정무차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문 기자님, 오늘 국무성 기자회견에서 무슨 질문을 했고, 답변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그는 내가 김대중 사건을 질문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기자가 회견에서 질문한 내용까지 대사관에서 조사합니까?”라고 퉁명스럽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는 이후 서울로 돌아가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미국에 망명했다.
문명자의 기사 가운데 가장 주목을 끄는 대목은 당시 다나까 일본 총리에게 박정희가 4억엔을 주고 이 사건을 ‘정치적 결착’했다는 주장이다. 문 기자의 취재에 따르면 박정희는 KAL 조중훈 사장에게 4억엔을 마련케 하고 이 돈 가운데 다나까에게 3억엔 그리고 외상 오히라에게 1억엔을 각각 나눠줬다는 것이다. 일본 언론은 이 ‘검은 돈’의 거래를 ‘주권침해’이상으로 파헤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고 관련자 모두 죽었다.
이번 국정원 진실위의 조사결과는 일본의 반응 여하에 따라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일본의 일은 일본에게 맡기고, 우리 국회가 다시 청문회라도 열어서 진실 규명을 위한 배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우선 박정희의 ‘묵시적 승인’이 아닌, ‘살해 지시 의혹’을 밝혀내야 이 사건은 진정한 과거 청산이 되는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비록 자신의 재임 중 ‘피해자’라는 이유로 직접 조사 지시를 내리지 않았지만 지금도 ‘박정희의 살해지시’를 믿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