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그룹을 흔히 ‘삼성공화국’이라 부른다. 꽤 오래 전부터 생긴 말이다. 삼성 그룹이 독립공화국 같다 해 그런 명칭이 붙은 모양이다. 보통 사람들은 사실 잘 모르는 이야기이다. 마침 이 삼성공화국의 정체가 드러날 만한 사건이 하나 터졌다. 삼성 그룹에서 법률 업무를 담당했던 한 젊은 변호사가 ‘삼성’이 그동안 대한민국 각 분야 실세 인맥을 ‘떡값’으로 주물러 왔다고 폭로한 것이다.
김용철(49) 변호사는 호남인이다. 호남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호남에서 살았으니 호남인이 분명하다. 검사 시절에는 전두환·노태우를 구속시키는 등 무서운 검사였다. 그는 이 사건으로 지방으로 좌천당하는 수모를 당했다. 그는 국가 공무원도 신분 보장이 어렵다고 판단, 신분과 고수입을 보장받을 자리를 찾았다. 그는 삼성을 자원했다. 삼성은 그를 그룹 법무팀장으로 고용했다. 호남인이 영남 기업의 요직에 채용됐던 것이다. 묘한 인연이다.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을 떠나 서정이라는 법무법인으로 옮겼다. 서정은 변호사업을 하는 기업이다. 김 변호사의 동참으로 삼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오던 서정이 갑자기 난관에 부딪쳤다. 김 변호사의 아내(법적으로는 이혼 상태)가 돌연 삼성측에 ‘어떤 부사장이 나를 괴롭힌다’는 요지의 괴편지를 보낸 것이다. 김 변호사는 부인과 이 간부의 관계를 몰랐다고 한다. 이 편지 사건으로 김 변호사는 서정과 불편한 사이가 된다. 중앙일보 기자가 그를 쫓아내라고 서정에 압력을 가한 것이다.
삼성측의 처신에 격분한 김 변호사는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사제단)을 찾았다. 사제단은 처음에 그의 말을 제대로 신뢰할 수 없었다. 밤새도록 대화를 나눈 끝에 김 변호사의 진정성을 믿게 됐다. 사제단은 지난달 29일 서울 제기동 성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 변호사의 주장대로 ‘삼성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발표했다.
사제단의 기자회견문을 보면 사제단이 이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고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6월 민주항쟁 20주년을 맞는 이 감격스런 해에 민주화를 위해 산화해 간 민주 영령들의 고귀한 뜻을 되새기며 우리는 오늘 그때의 열정을 다시 살려 ‘제2의 민주주의 운동 곧 경제민주주의 운동’을 펼치고자 한다”고 선언했다. 사제단은 20년 전에도 서울대 학생 박종철군의 고문치사 사건을 폭로해 시국을 반전시킨 바 있다.
사제단의 삼성 비자금 조성 의혹사건 폭로를 보고 반응을 보여야 할 곳은 적어도 세 군데가 있다. 첫째는 청와대이다. 돼지 저금통으로 선거 자금을 조달한 줄 알았던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부터 삼성측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또 당선 이후 ‘당선 축하금’도 받았을 것이라는 의혹도 따른다. 그는 삼성의 국정보고서를 국정에 채택할 만큼 삼성을 신뢰했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그의 말은 삼성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청와대가 이 사건에 침묵하는 이유를 알만 하다.
둘째는 검찰이다. 김 변호사는 검찰의 최고위층이 삼성의 떡값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참여연대와 민변이 삼성을 고발하자 검찰은 “떡값을 받은 검사 명단을 제출하라”고 다그친다. 사건 배당을 하자면 ‘의혹 검사’를 알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제단측은 이를 거부한다. 검찰이 몸통 수사는 뒷전으로 미루고 떡값 검사 수사에만 치중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말 것이라는 의심한다. 삼성의 떡값이 큰 효험을 발휘하는 것 같다. 검찰도 여론 때문에 수사에 착수는 하겠지만 결과는 ‘김용철은 나쁜 놈’선에서 끝날지도 모른다.
셋째는 대한변호사협회(변협)의 태도이다. 김 변호사를 보호할 생각보다는 그가 ‘직무상 얻은 비밀을 누설했다’며 징계를 검토한다는 것이다. 변호사도 사건 의뢰인의 비밀유지 의무가 있다. 그러나 변호사는 ‘사회정의를 실현할 의무’도 동시에 갖는다(변호사법 제1조). 김 변호사와 삼성 관계는 사건에 대한 ‘수임관계가 아닌 고용관계’였다. 변협의 ‘징계 검토’는 부적절하다. 변협 안에 삼성 떡값으로부터 자유로운 변호사가 몇이나 있을까.
한국 경제에서 삼성의 역할은 너무도 크다. 우리 국민 가운데 누구도 삼성이 이 사건으로 위축되거나 위험에 처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희 부자가 이 기회에 기업 경영에서 손을 뗐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면 미국의 마이크로 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처럼 존경받을 것이다. 민주공화국 안에 선출되지 않은 별개의 공화국이 존재한다면 국민은 당황할 것이다. 삼성은 윤리경영으로 모범을 보일 때가 온 것이다.







































































































































































































